지난 8월 대규모 소비자 피해가 발생한 ‘머지포인트’와 같이 선불전자지급수단 발행업자로 등록하지 않고 관련 영업을 하는 업체가 50여 곳이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언제든 제2의 머지포인트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머지플러스가 운영한 머지포인트는 2년 전 ‘무조건 20% 할인’으로 유명해진 상품권 서비스다.
그러나 지난 8월 금융감독원이 머지플러스에 전자금융업 등록을 하라는 시정 권고를 내리면서 몇몇 유통업체들이 제휴 관계를 끊으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몇몇 영세 업체를 남기고 서비스를 모두 중단했다.
미리 포인트를 구매했던 사람들이 포인트를 소진하기 위해 영세 업체에 몰려들면서 이른바 ‘머지 런(merge run)’ 사태가 발생했다.
현행법상 전자금융업에 등록되지 않은 머지플러스는 오로지 한가지 업종에만 ‘상품권’을 발행할 수 있는데 이를 어기고 마트, 편의점, 커피 전문점, 음식점 등 다양한 분야의 가맹점들을 모아 상품권 판매를 해온 것이 문제가 됐던 것.
전자금융업자는 사용자들의 예치금을 보유하는 일종의 은행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금융당국의 엄격한 관리·감독을 받는다.
전자금융거래법은 △전자금융업자는 금융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자본금, 재무 건전성, 사업계획 등 등록 요건을 갖춰야 한다. △부채비율을 자기자본의 200%로 유지해야 한다. △선불전자지급수단 충전 한도는 200만 원으로 제한된다. △충전하고 사용하지 않은 미상환 잔액 대비 자기자본 비율을 20% 이상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머지플러스는 전자금융거래법의 규제를 피해 ‘상품권 발행업’으로 영업을 해왔다.
상품권법은 지난 1999년 폐지돼 소비자를 위한 안전장치가 없고 인지세만 내도 무제한으로 발행이 가능하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이런 회색지대에서 자금을 유통할 경우 예치금의 외부 신탁, 지급보증보험 가입 의무가 없어 지급 불능 상태가 발생할 경우 소비자 자금을 보호할 수단이 없어진다. 즉, 회사가 다른 목적으로 고객 예치금을 모두 사용하더라도 규제할 방법이 없다는 것.
여기에 제2의 머지포인트 사태가 또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유는 전자금융거래법이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고 낡은 법이 되었기 때문. 선불충전금은 일종의 ‘예금’ 성격이 있기 때문에 업체가 엄격하게 관리해야 하지만 현재 전금법에는 선불충전금을 외부기관에 별도로 보관하도록 하는 등의 규정이 없다.
전금법은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인 2006년에 제정된 뒤 큰 골자는 변한 바 없다. 그러나 그사이 핀테크 업체에 몰리는 자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9천억 원이었던 선불충전금 예치 잔액은 올해 3월 2조를 돌파했다. 즉, 2조가량의 돈이 적절한 법적 보호장치 없이 핀테크 업체들의 주머니에 있는 것이다.
각종 ‘페이’뿐만 아니라 커피업체들도 선불카드를 통해 커피값을 결제하도록 하고 있는데, A 커피 회사의 경우 선불충전으로 예치된 돈이 지난해 기준 1,800억 원이었다. 일각에서는 ‘은행의 경쟁 상대가 A 커피’라는 소리까지 나오는 이유다. A 커피사가 선보인 선불금 자동충전 서비스 역시 사실상 계좌 성격을 지니는 서비스에 가깝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핀테크 업체의 내부 사정을 정확히 알 수 없고 소액을 충전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눈먼 돈’이 되기 쉽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지난해 독일에서는 유명 핀테크 회사 와이어카드가 2조 원대 분식회계를 한 것이 적발되면서 파산해 소비자가 피해를 보기도 했다.
금감원은 이들 미등록 업체 58개를 대상으로 전금법 등록 요건을 충족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자료 제출을 요청한 상태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들 업체 중 약 30%가 이미 요구 자료를 제출했다.
나머지 업체들도 이달 초까지는 자료를 낼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등록 요건을 충족한 업체가 확인되면 최대한 빨리 선불업자 등록을 유도해 당국의 감독 영역 안으로 끌어들인다는 계획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핀테크의 발전 속도보다 법 개정 속도가 느리니 그사이에 피해를 보지 않도록 너무 큰 금액을 충전해놓는 일은 지양하도록 해야 한다.
YTN 김잔디 (weeping07@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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