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라디오(FM 94.5) [YTN 뉴스FM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일시 : 2026년 5월 21일 (목)
□ 진행 : 박귀빈 아나운서
□ 출연자 : 정춘숙 전 의원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 박귀빈 :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라디오 입니다. 여자라서 겪어야 했던 불합리했던 일들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평생의 업으로 여성 운동의 길을 선택한 정치인이 있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에서 24년 동안 활동하면서 여성폭력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가장 가까이에서 듣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여성들 사회에 실질적인 변화를 이끄는 입법 성과도 낸 분이죠. 20대 비례대표, 21대 용인병 국회의원을 지낸 정춘숙 전 의원, K-여성 정치 시민학교 8교시 선생님으로 모셨습니다. 선생님, 어서 오세요.
◇ 정춘숙 : 네, 안녕하세요.
◆ 박귀빈 : 저희가 ‘시민학교’이기 때문에 모든 오시는 분들이 선생님이시거든요. 카메라 있는데요, 인사 말씀 짧게 부탁드려요.
◇ 정춘숙 : 예,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용인시 수지구 풍덕천동에서 9년째 살고 있는 전 국회의원 정춘숙입니다. 재미있고 유익한 K-여성 정치 시민학교 청취자 여러분 만나게 되어서 정말 반갑습니다.
◆ 박귀빈 : 네, 반갑습니다. 어서 오세요. 오늘이 벌써 ‘여덟 번째 수업’인데요. 그동안 수업을 하셨던 선생님들께 혹시 이 시간에 대해서 소문을 들으셨나요?
◇ 정춘숙 : ‘가서 즐겁게 많은 얘기를 할 수 있다’ 이런 얘기를...
◆ 박귀빈 : 많은 얘기를 하실 수 있게 저희가 최대한 시간을 확보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자라더라고요. 워낙 해 주실 말씀이 많으셔 가지고. 그래서 바로 시작을 하겠습니다. 오늘 수업 준비하시면서 “평생의 운동으로 여성 운동을 택했다” 이런 말씀을 해 주셨다고 들었거든요.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 정춘숙 : 제가 1964년생이니까 어렸을 때부터 그런 성차별 이런 일들이 많이 있었고, 저는 그런 거를 ‘아, 그렇지’하고 넘기는 사람은 아니었던 거죠.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관심이 있었고. 그런데 제가 ‘여성의전화’에 한 30살에 가게 됐어요. 제가 생각했을 때보다는 빠르게 여성 운동을 시작하게 됐고요. 그리고 제가 1982년도에 대학을 들어갔으니까 학생 운동도 했고, 노동 운동도 했고 그러면서 사실은 ‘노동자로 평생 살겠다’ 이런 생각을 했는데. 그때 표현으로 하면 제가 학생운동 출신, 학출이기 때문에 간극이 있었습니다. 존재의 간극? 그래서 ‘평생 존재로부터 출발하는 운동을 하고 싶다’. 그러면서 굉장히 저 자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고. 그러면서 ‘여성 운동을 평생에 업으로 하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 박귀빈 : 특히 선생님이 살아오신 그 시절에 대부분 여성들은 비슷한 경험을 공감을 많이 하실 것 같은데. 그걸 어떻게 표현을 하셨냐 하면, ‘존재의 간극’이라고 표현을 하셨어요. 이거 쉽게 풀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 정춘숙 : 예를 들면 제가 평생 노동자로 살려고 생각은 했지만, 그때 대학을 한 30% 정도밖에 안 가는 그런 시절이었는데. 요즘은 거의 다 대학을 가잖아요? 그중에서 여성들은 더 대학을 적게 가게 되고. 그래서 제가 막상 노동 현장에 들어갔을 때 노동자로 사는 데 되게 한계가 있는 거예요. 그리고 저희 때는 예를 들면 저희 같은 ‘학출’ 같은 경우는 간부로 할 수도 없었고 그러면서 ‘평생 노동자로 사는 게 정말 힘들겠구나’ 이런 생각하게 됐고. 그러면서 ‘흔들리지 않는’ 그리고 ‘나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운동’ 이런 생각을 하게 됐고. 그게 ‘여성 운동’이라고 생각하게 된 거죠.
◆ 박귀빈 : 앞서 사회가 그러니까, 남들 다 그러니까 ‘그래, 그냥 수긍하고 살아야지’ 이런 스타일이 아니라고 하셨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하나 헤쳐나가면서 개척자의 느낌으로 살아오셨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상처는 많이 입으셨을 것 같아요.
◇ 정춘숙 : 많이 입었죠. 제가 ‘나 여자이기 때문에 차별 받아’ 이런 생각을 맨 처음 한 게 ‘초등학교 1학년 때’였거든요? 그때 저희 할머니께서 그때도 아마 혼자 무슨 생각이 들었을 텐데... 제사를 지내게 된 거예요. 2학년 올라가는 설날 제사를 지내게 됐는데, 저희 할머니께서 “너는 제사 지내지 마” 이렇게 하신 거죠. 그래서 제가 이렇게 했으면 별일이 없을 텐데 제가 “왜요? 저도 제사 지낼 거예요” 이렇게 얘기한 거죠. 저희 할머니의 명언이 있었습니다. “넌 여자라서 안 돼” 이렇게 얘기하신 거예요. 그래서 거기서 제가 “예.” 이렇게 안 하고 대판 싸운 거죠. 할머니하고 여자는 제사 지내면 안 된다고 법에 써 있냐 이러면서 그때 굉장히 여자이기 때문에 차별 받는구나 이런 생각을 되게 많이 하게 됐고
◆ 박귀빈 : 지금 18살 때, 28살 때 얘기가 아니고요. 8살 때 말씀을 해 주시는 겁니다.
◇ 정춘숙 : 그때 저보다 6개월 빠른 사촌 오빠가 있었는데, 그게 눈에 보여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오빠는 제사 지내기 싫어서 막 놀러 나갔는데 오빠는 막 억지로 데리고 오라고 하면서 제사 지내려고 딱 준비하고 있는데 ‘너는 안 돼’ 이렇게 한 거를 제가 눈에 보면서 ‘왜 나는 안 되냐’ 이런 거를 막 따졌던 거죠.
◆ 박귀빈 : 그때부터 우리 선생님의 이 사회에 맞서 나가는 과정 속에서의 상처가 그때부터 시작이 됐네요.
◇ 정춘숙 : 그럼요. 그리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그때는 대학을 안 가는 사람이 더 많을 때여서, 저희 아버지가 “너는 대학 가지 말고 돈이나 벌어 와라” 딱 그렇게 표현하셨는데. “계집애가 대학은 뭐하러 가냐”.
◆ 박귀빈 : 예전에는 여성들을 보통 그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특히 이제 내 딸이고 하니까.
◇ 정춘숙 : 맞아요. 그렇게 했는데 제가 끝끝내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했죠. 제가 원하는 학과로 진학을 했고, 그래서 어떻게 보면 되게 속 썩인 딸이죠. 자기의 뜻을 꺾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삶을 개척하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차별도 많이 겪었고. 상처도 많이 입고 그랬습니다.
◆ 박귀빈 : 그런 길을 걸어오시면서 나중에 아버님은 달라지셨을 것 같은데요?
◇ 정춘숙 : 나중에 국회의원이 됐을 때는 약간 자랑스러워하셨지만.
◆ 박귀빈 : 국회의원까지 오셨어야 했어요?
◇ 정춘숙 : 오랜 세월이죠. 학교 다닐 때 학생 운동했죠? 저희 때는 학생 운동 하고 이럴 때는 그때 1982년, 83년 이럴 때니까 학교에서 전화를 하는 거예요.
◆ 박귀빈 : 부모님들은 속상하실 수 있죠.
◇ 정춘숙 : 그럼요. 대학을 보내놨더니 엄한 짓을 한다 이런 거. 그다음에 심지어 노동 운동을 하고. 그래서 제가 요즘 말하는 위장 취업으로 공장을 들어갔거든요. 그리고 노동조합을 만들고 그것 때문에 잠깐 감옥을 갔다 오고.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저희 아버지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는, 그다음에 ‘여성의전화’라는 곳에 가서 여성들을 돕는 그런 막 일을 하잖아요? TV에 데모한다고 나오고.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굉장히 별로 이렇게 인정하고 싶지 않으셨죠. 나중에 국회의원 되니까 그때서야 ‘니가 괜찮게 살았나 보다’ 이렇게 생각을 하셨고 그전까지는 제 나름의 인생을 살았지만, 저희 아버지는 그게 별로 마땅치 않으셨고. 저희 엄마는 조금 다르셔서 여성의전화 가고 이런 거 되게 자랑스럽게 생각하셨고, 그다음에 뜻이 있어서 그렇게 한다고 많이 이해해 주셨죠.
◆ 박귀빈 : 그러니깐요. ‘한국여성의전화’에서 그래서 일을 하신 거잖아요? 24년간 활동을 하신 건데, 이곳이 ‘여성폭력 피해자들이 상담도 하면서 그들을 지원도 하고 그러는 곳’이죠?
◇ 정춘숙 : 맞습니다. 지금도 굉장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고요. 저도 그런 얘기를 많이 했는데, “여성의전화에 가서 많이 사람이 됐다” 이런 얘기를 많이 하는데, 왜냐하면 그때의 운동권들은 굉장히 이렇게 상명하복적인 그리고 남성 중심의 문화에 굉장히 길들여져 있었던 거에 비해서, 여성의전화는 굉장히 수평적인 조직을 지향하고 굉장히 민주적인 의사결정, 토론하고 이런 거가 되게... 그다음에 여성주의라고 하는, 성평등이라고 하는데 눈을 떴죠. 제가 항상 주장하지만 눈을 뜨면 다시는 감을 수가 없는데, 그런 거를 많이 배우게 됐습니다. 제 인생에 말하자면 전환점이 된 거죠. 그리고 개인의 선택과 그런 것들이 모여서 연대하고 이런 거를 새롭게 배운 굉장한 장입니다. 그래서 제가 다른 사람이랑 다르게 되었던 지점이 바로 그 지점이 아닐까 생각하죠.
◆ 박귀빈 : 아마도 우리 선생님이 ‘내 스스로가 여기서 많이 바뀌었다. 눈을 떴다’ 이렇게 표현하신 거는 직접 경험하신 것도 있지만, 여기서는 실질적으로 현실에서 여성들이 어떤 삶을 사는가. 어떤 문제가 있는가를 정말 적나라하게 다 겪으셨을 것 같아요. 현실이 어땠던가요?
◇ 정춘숙 : ‘여성의전화’라는 조직은 당사자 여성을 직접 지원하는 조직이거든요. 그래서 전화 상담도 하고, 면접 상담도 하고, 폭력 피해 여성과 아이들을 위한 쉼터도 운영을 하고. 그 사람들의 뜻들을 다 모아서 법을 만들죠. 예를 들면 가정폭력 처벌에 관한 특례법,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에 관한 법 그거를 시작한 것도 제가 1994년 세계 가족의 해를 맞아서 ‘가정폭력 방지법’이라는 이름으로 시작을 하게 됐고. 그래서 여성들의 삶을 정말 직접적으로 옆에서 느낄 수가 있는데 굉장히 참혹하죠. 폭력을 당하는데 무슨 이유가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거는 다 트집을 잡죠. 제가 가장 인상적인 거는 ‘왜 머리를 내 허락을 안 받고 잘랐냐’ 말이 안 되잖아요. 그다음에 수시로 자기의 생활을 보고를 해야 돼요. 아주 제가 인상적인 거는 친족 성폭력을 저지르는 남편과 이혼을 하는 그 과정 자체가 너무나 폭력적이어서, 제가 그 당사자를 손잡고 정말 남부지법 지하실 보일러를 막 돌아다니면서 피해 가지고 결국은 이혼을 하고 그런 거. 예를 들면 이혼하러 딱 갔는데 당사자를 막 끌고 가려고 하는 거죠. 그래서 제가 막 못 가게 했더니, 갖은 욕을 막 저한테 하죠. 그래서 끌려가게 생겼어요. 이분이 너무나 폭력을 많이 당하다 보니까 저항을 못하는 거죠. 되게 몸이 굳어가지고. 그래서 제가 그 사람을 끌고 거기 사무 보는 데 있잖아요? 거기로 들어간 거예요. 안 그러면 끌려가게 생겨서. 너무 웃기는 건 그 남자가 어떤 직책이 있는 남자분이 앉히니까 말을 잘 듣더라고요. 우리한테 그렇게 막 욕을 하고, 이 사람을 끌고 가려고 하고 이러더니.
◆ 박귀빈 : 그 폭력을 행한 남성분이요?
◇ 정춘숙 : 그렇죠. 그거 보면서 제가 너무 기가 막혔는데. 그분이 아무것도 아니고 거기 판사도 아니고 그냥 거기 일하시는 분인데.
◆ 박귀빈 : 그냥 남성 직원 말을 하니까 말을 잘 들어요.
◇ 정춘숙 : 소장님 정도 됐을까요? 아무튼 거기 책임자 정도 되시죠. 앉아가지고 “이혼하러 왔다”. 그런데 여기서 왜 이렇게 소란 피우냐 어쩌고저쩌고... 이거 데리고 가서 얘기하려고 그랬더니 어쩌고 이러니까 당신이 이 여성한테 물어서 “이혼하려고요.” 그러니까 “그럼 이혼하시면 되고 왜 여기서 이렇게 하냐” 하니까 말을 듣는 거예요. 제가 너무 깜짝 놀랐죠. 그러고 나서도 판사님 앞에서 이혼하겠다고 얘기를 하고 그러고 나왔는데도 이 남자가 그 법원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거죠. 트럭을 딱 대고. 보통 그 트럭 뒷좌석에 야구방망이 이런 걸 많이 갖고 다녔다고 하는 이 피해자의 얘기가 있어서, 그래서 정문을 못 나가고 뒷문으로 나가기 위해서... 정말 아까 말씀드린 거 지하를 돌아다니면서 겨우겨우 도망을 나온 그런 경험이 정말 너무나 생생하죠.
◆ 박귀빈 : ‘한국여성의전화’에서 24년간 지금 활동을 해오고 계시고, 예전에는 가정 폭력부터 해서 사회적인 폭력이 엄청 많았을 것 같고. 그나마 지금은 사회적으로 인식도 많이 달라졌고 그런 일이 줄어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떤가요?
◇ 정춘숙 : 그러니까요. 그런데 제가 2024년 낙천하고 나서 다시 세상에 이만큼이나 도움 되는 일을 하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해서 재교육을 받고 여성의전화에 다시 면접 상담을 갔는데. 가서 한 1년 정도, 제가 작년 11월 정도까지 한 1년 정도로 다시 상담을 했거든요.
◆ 박귀빈 : 완전 최근이네요.
◇ 정춘숙 : 최근입니다. 하면서 느낀 거는 세상이 되게 달라졌다고 생각을 하는데, 한편으로는 아직도 그런 놀라운 일이 엄청 많다. 특히나 제가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상담을 했는데 처리가 안 되는 거죠. 그리고 불법 촬영. 너무나 심각한 피해고 그것 때문에 TV에도 나왔고 막 이런데도 처리가 안 되는, 진행이 안 되는 거죠. 그다음에 누구도 이 사람의 얘기를 들어주지 못하는 거. 이런 너무 가슴 아픈 일이 많이 있고 젊은 여성들 같은 경우. 특히나 가난하고, 능력 있고, 예쁜 젊은 여성들 같은 경우가 굉장히 타깃이 되는 이런 것들을 많이 보게 돼서요. 너무 안타까운 일들이 지금도 있다는 거죠.
◆ 박귀빈 : 그러니까요. 당시 예전은 말할 것도 없고 이런 문제를 공론화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으니까요.
◇ 정춘숙 : 너무 힘들었습니다. 가정폭력 같은 경우는 지금도 잊어버리지 않는데, ‘비바람은 집 안에 들어갈 수 있지만 법은 집 안에 들어갈 수 없다’. 그게 언제적 얘기냐 하면 1983년에 여성의전화가 생겼는데. 그때 처음으로 보도했을 뿐만 아니라 1998년 7월 1일부터 가정폭력 관련 법들이 시행이 됐는데 그날 아침에도 모 신문에 난 얘기예요. 그래서 가정 내 폭력 문제를 ‘사적인 문제다’ 이렇게 하면서 처벌하지 못하게 하는데. 사실 가정이야말로 흔히 되게 편안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만 놀라운 폭력이 발생하는 곳이거든요. 거기에 사회적인 제재가 전혀 안 들어간다. 이거는 그냥 거의 가해자가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는 그런 조건이죠.
◆ 박귀빈 : ‘이건 가족 일이니까 그냥 가족들이 알아서 하세요’ 이렇게 하는 인식이 여전히 있다고는 하더라고요.
◇ 정춘숙 : 지금도 굉장히 많이 있는데 그때는 말할 수 없이 많았고.
◆ 박귀빈 : 말씀을 듣고만 있어도 이런 활동을 하시는 것 자체도 굉장히 힘드셨을 것 같거든요. 어떻게 버텨내셨는지도 궁금한데요.
◇ 정춘숙 : 저희 별일이 다 많죠.
◆ 박귀빈 : 나를 계속 이렇게 일을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뭐인지도 궁금합니다.
◇ 정춘숙 : 그런 거는 아무래도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고요. 우리 동지들이죠.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고, 무엇보다도 ‘피해자들의 목소리’. 나 이렇게 힘들어, 나 이렇게 고통당해, 나와 같이 이 일을 해결해 줘 이런 목소리가 늘 살아 있고 그러니까는 힘들어도 지쳐 쓰러질 수가 없는 거죠. 이런 목소리들이 있고 그 일을 같이 하려고 하는 동지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과정을 통하면서 힘을 더 냈던 것 같아요.
◆ 박귀빈 : 정치의 길로 들어서신 건 20대 국회입니다. 비례대표로 들어오셔가지고 21대에는 지역구에 직접 도전하셔서 당선이 되신 건데. 정말 험지로 꼽히는 용인병에서 당선이 되셨단 말이죠. 그런 활동들이 정치로 이끄셨나 봐요. 그 과정도 궁금합니다. 또 지역구 도전하신 이유도 궁금합니다.
◇ 정춘숙 : 저는 국회의원이 되겠다 이렇게 해서 활동한 게 아닌데, 제가 임기를 마치게 됐어요. 임기를 마치게 되면서 사람들이 정치하면 좋겠다 이런 제안을 해줬고. 그래서 도전하게 됐고, 비례대표가 되고 나서는 지역구를 갈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보통 지역구를 지옥구라고도 하거든요? 그 정도로 힘들다고 생각해서요. 용인병에 도전하게 된 건 용인병이 16년 동안 국민의힘이 국회의원을 한 곳이에요. 그래서 저희 민주당으로서 굉장히 험지 중에 험지인데, 제가 지역구를 찾게 된 이유도 선배 여성 의원님이 ‘여성 비례대표 국회의원들은 책임 있게 지역구 가야 한다’ 이런 얘기를 하셨어요. 왜냐하면 여성의 정치 세력화가 너무 필요하고, 여성들의 삶 혹은 대한민국의 변화를 위해서는 여성들이 더 많이 정치를 해야 되는데. 그렇다고 한다면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되어서 일정한 기반이 있는 사람들이 정말 지역구에 출마해야 된다 얘기를 하신 거죠. 그래서 지역을 찾으면서 일단 우리 당 국회의원 아닌 곳, 제가 비례대표 국회의원이었는데 같은 동료랑 경쟁하는 거 별로 원치 않는다 그런 거 하나 있었고 두 번째는 다른 당이라 하더라도 여성 국회의원이 아닌 곳을 하고 싶다.
◆ 박귀빈 : 남성과 겨루겠다?
◇ 정춘숙 : 예. 왜냐하면 여성 국회의원 그러지 않아도 적은데 여성들끼리 경쟁한다 이런 거 별로 원치 않고. 그러다 보니까 용인병이 나왔는데요.
◆ 박귀빈 : 선택을 하신 거네요.
◇ 정춘숙 : 네. 선택을 했는데 거기가 정말 16년 동안 다른 당에서 국회의원을 하셨고 남성분이고 그런 지역을 가게 된 거죠. 그런데 제가 그런 면에서 단순해서 ‘그러지’ 이래가지고 바로 이사를 하고 그때부터 활동을 하게 된 겁니다.
◆ 박귀빈 : 그래서 당선이 되셨어요. 그 험지에서.
◇ 정춘숙 : 그렇죠. 아무도 된다고 안 했습니다. 마지막까지 안 될 거야. 왜냐하면 저희가 굉장히 어려운 지역이고, 그냥 말씀드리면 약간 강남 같은 곳 그런 곳이어서 우리 당은 엄두를 못 냈어요. 제가 갈 때도 모든 사람이 ‘가지 말아라’ 반대했고 거기 출마했을 때도 모든 사람이 ‘안 될 거야 이렇게 했는데 제가 도전을 했고요. 제가 2018년도 3월에 갔거든요. 하필 3월 8일 날? 그래서 선거할 때까지 한 2년 정도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정말 막 갈고닦고 별짓을 다 해서, 그 지역구 의원님 계시잖아요? 오죽하면 그 동네 분들은 제가 거기 지역구 의원인 줄 알 정도로.
◆ 박귀빈 : 그렇게 해서 얼마나 열심히 활동하셨으면 지역 내에서 비례대표로 들어오셔서 지역구 의원이 되신 건데, 정치계로 들어오니까 정치계에도 여전히 여성에게는 굉장히 어려운 벽이 있었죠?
◇ 정춘숙 : 너무 어렵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여전히 정치는 남성의 영역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지금 국회의원이 많이 늘었다고 하지만 20%. 아주 절대적으로 적고 그다음에 비례대표 국회의원들이 되게 많죠. 그것도 감사한 일이긴 하지만 선거법에 의해서 17대 이후부터 비례대표 의원을 정할 때 교호순번제로 하게 돼 있어요. 그러면서 획기적으로 여성 의원들이 늘어나게 됐는데, 어쨌거나 지금 그래도 여성들 한 20%밖에 안 되는... 정말 남성의 영역이라고 흔히 얘기할 수 있는 정도고. 그래서 여성들이 굉장히 적기 때문에 여성들의 대표성이 굉장히 없는 거. 목소리가 굉장히 안 나오게 될 수밖에 없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이번에 지방선거... 오늘 시작하는 날인데 지금 기초단체의 여성 후보가 지금 8.7% 정도밖에 안 돼요. 절대적으로 적은 거죠. 제가 용인시장에 출마했었는데 예비 후보로 등록을 해서 선거 운동 가잖아요? 그러면 사람들이 ‘시의원 나오셨냐고’ 그럴 정도로 아직도 멀었다. 그래서 아직도 정치라고 하는 너무나 중요한 영역에서 여성의 대표성이 너무 적은 거. 당연히 여성 목소리가 적게 들릴 수밖에 없는 그런 게 현실이고요. 하나는 남성 정치하려면 돈, 인맥, 지지자 이런 게 있어야 된다고 보통 얘기하는데. 남성들이 그런 사회적 연결망이 엄청 많잖아요? 저희 남편 봐도 남자 고등학교 선배는 거의 하늘이거든요. 그런 돈 막 모아주고 이런 게 있는데, 여성들은 그거에 비하면 굉장히 이런 게 적습니다. 돈을 모을 수 있는 것, 인맥의 측면 이런 면에서도. 저희 남편이랑 저랑 나이가 같고 비슷한 삶을 살았는데, 제 친구들은 다 집에서 할머니가 돼서 손자를 보고 이런 걸 하는데 아직도 저희 남편의 아는 사람들은 다 지금 어떤 역할도 하고, 돈도 벌고 막 이런 걸 하는 거예요. 굉장히 불리하고 그다음에 아직도 유권자들도 제가 22대 때는 등원을 못하겠는데, 예를 들면 지역에서 경쟁자가 나타났을 때 ‘남자가 해야지 이런 얘기를 쉽게 했다는 거죠. 그런 인식 이런 측면에서 여러 가지 면에서 아직도 정치는 남성의 영역으로 인식이 되고 있죠.
◆ 박귀빈 : 그걸 확실히 느끼시는군요. 왜냐하면 벌써 의원 수 자체가 너무나 엄격하게 차이가 나기 때문에, 우리 선생님의 의정 활동을 보면 ‘여성폭력 대응’과 ‘돌봄’이라는 키워드를 강하게 느낄 수가 있거든요. 여성폭력 방지 기본법, 스토킹 처벌법, 스토킹피해자 보호법, 돌봄통합법 제정까지 이끌어 오신 거라 이런 입법 과정, 만들 법만 봐도 여성이 왜 국회에 들어가야 되는가가. 여성 정치인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가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국회 밖에서도 계속적으로 이런 시민들과 꾸준히 만나고 계시잖아요? 여성 리더십 아카데미, 수지 시민정치학교, 대학생 청년명예보좌관 프로그램 운영하고. 여기서 정치를 어떻게 표현하셨냐면 ‘권력이 아니고 민주시민을 키우는 과정이다’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지금 지역 내에서도 이런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시는 이유가 있으실 것 같아요.
◇ 정춘숙 : 우리가 지역위원회가 다 있지 않습니까? 그런 지역위원회가 선거 때만 움직이는 플랫폼이 아니라. 정말 그 지역에서 시민들의 의식과 삶을 바꾸는 그런 역할을 하기를 되게 바란 거죠. 그래서 제가 나중에 표현하기를 ‘지역 운동하는 것처럼 지역구를 운영했다’ 그렇게 얘기하는데 지금 사회자께서 말씀하신 그런 내용들이 전부 다 민주 시민들을 더 키우고, 성평등한 인식을 가꾸는 그런 거죠. 그래서 예를 들면 강좌 내용이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그다음에 ‘성평등 사회는 나에게 어떻게 도움을 주는가’ 그리고 ‘어떻게 우리는 정치를 통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나’ 이런 내용들을 쭉 하기 때문에. 그게 저의 꿈 같은 거였는데 우리 수지를 바꿔서 대한민국을 바꾼다 약간 이런 거. 그래서 수지의 시민들이 굉장히 교육 수준도 높고, 인식 수준도 굉장히 높은 그런 지역이거든요. 그래서 그분들이 성평등한 의식, 민주주의에 대한 깊은 성찰과 확신 이런 것들을 갖고 있으면 그걸 가지고 대한민국을 바꿀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한 거죠.
◆ 박귀빈 : 그렇죠. 민주시민이 많아지면 의식 자체가 변하기 때문에, 여성 앞에 생긴 벽도 조금씩 얇아지고, 낮아지고, 없어지고 이런 과정이 가능한 거겠죠. 말씀 들어봐도 여전히 정치 참여 문턱은 여성들에게 굉장히 높습니다. 특히 청년 여성들에게도 더 그런데요. 아마 정치 관심 있지만 쉽게 도전하지 못한 여성들 많으실 거고 또 각자 자리에서 굉장히 유리천장에 맞서고 있는 여성들 계실 겁니다. 오늘 끝으로 수업의 핵심 포인트 한 줄로 정리 부탁드릴게요.
◇ 정춘숙 : 역시 시간이 엄청 짧네요.
◆ 박귀빈 : 그러니까요.
◇ 정춘숙 : 목표를 정하고, 도전하고, 버티고, 연대해서 반드시 이루어라. 출마 없이 당선 없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박귀빈 : 여러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정춘숙 전 의원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정춘숙 : 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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