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멋진 세상 속 건축가와의 만남_ 정진국 한양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인터뷰 1. 세계로 근접하는 관문인 교육이 사회적 기제로 작동되어야, 사회를 이롭게 하는 사회 체계로서의 건축의 중요성을 강조해… 인간성 회복을 위한 도시의 최소 단위가 바로 건축, 건축을 디자인으로 보질 않고 질서와 구축과 구조로 건축을 이해해야 해… 내가 건축을 하는 근본적 이유는 인간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데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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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지옹 역서
질 좋은 건축의 토양은 튼실한 건축이론을 통해 더욱 확고한 기반을 다진다. 학계의 심층적이면서도 다양한 건축이론과 논문을 통해 건축은 과거와 현재와의 접목을 이어가고 끊임없이 다변화되는 미래의 건축구상을 차분히 준비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일찍이 선진화된 프랑스에서 유학하며 건축과 예술사학을 배워온 정진국 교수는 건축이론과 설계 영역을 지속적으로 넘나들며 굵직한 건축행보를 이어간다. 르 코르뷔지에가 선택한 색채들, 상자의 재구성과 같은 저서와 다채로운 건축 논문작업은 물론 틈틈이 설계 작업을 통해 자신의 건축관을 지속적으로 입증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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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의 재구성 저서
“프랑스에서 공부하면서 교육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어요. 아시다시피, 건축설계, 건축이론, 건축역사 등 소위 건축학 교육에 있어서 외국과 한국은 큰 차이가 있어요.” 프랑스에서는 일주일 내내 설계를 해도 시간이 모자랐는데 한국에서의 학부 재학 시절에는 설계란 그저 여러 과목 중의 하나일 뿐이었죠. 졸업하기 직전까지도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정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정진국 교수는 건축학과의 정체성이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특히 공학교육의 일부로 간주된 상황에서 건축학 교육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다는 것이 그의 정리된 생각이다. 귀국해서 다행히 그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기관을 도움을 받아 ‘한국건축학교육인증원’이 출범하는 데에 큰 일익을 담당했던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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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사람_ 정진국
정진국 교수가 교육에 이렇게 신경 쓰는 이유는 세계로 근접하는 관문이 바로 자질 있는, 즉 경쟁력 있는 후배들의 양성에 있기 때문이다. 각각의 전문 분야에서 재능을 갖춘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그것이 사회적 기제로서 작동돼야 하는데 우리의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건축을 이야기해야 하는데 건축 외적 이야기만 난무하며, 학생들은 생각하고 질문하는 대신에 유명 건축가와 유명 대학교를 맹목적으로 추종할 뿐입니다. 세계는 그 분야의 전문가로서 적절한 문제를 제기하고 적절한 해답을 제시하는 자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듯 교육의 중요성과 함께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은 체계로서의 건축이다. 개념에서부터 상세에 이르기까지 수준 있게 실현되지 않는다면 세계를 설득할 수 없다. 하나의 건물을 실현하는 작업은 공무원, 기술자, 건축주, 작업자 등 여러 전문가들과의 협업을 필요로 한다. 뿐만 아니라 언론과도 협업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세계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평가와 소개와 홍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체계로서의 건축은 집단적 참여와 사회적 책임의 의미로 이해돼야 한다고 정진국 교수는 거듭 강조한다. 그 자신 스스로 지식의 측면에서, 감각의 측면에서, 정서의 측면에서, 건축은 개인적으로 언제나 사회를 이롭게 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때의 사회란 한국 사회에 국한되지 않는다. 세계 사회라는 의식이 없다면, 세계인의 공감을 얻어낼 방법이 없다. 세계가 공통적으로 당면한 과제와 개인적으로 당면한 과제와의 연속성에서 내면화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도시는 탄생부터 갈등의 용광로이지만, 우리나라의 도시는 특히 더합니다. 공동체 의식은 이미 사라져 버렸고 도시는 각자가 각자에 대해 투쟁하는 영토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본에 도취돼 버린 도시에서의 인간적 관계는 자꾸만 축소해갑니다. 그렇기에 유일한 희망이 건축에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한 효과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이 도시의 최소 단위인 건축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도시가 미학적 대상으로 비춰지기 시작한 것은 다행한 일이지만 공시적으로 통시적으로 연속성을 상실한 공간으로 채워진 도시는 무의미하다고 정진국 교수는 설명한다. 정진국 교수 스스로 건축을 디자인으로 보지 않는다. 건축은 인간과 공동체를 위한 공간과 사물과 자본의 재편성이며, 그렇기 때문에 건축은 질서와 구축과 구조로 이해돼야 한다는 것이다. 도시적 차원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결국 건축에 있어서 삶을 규정하는 제반 조건을 재인식하는 일이 중요하다. 예술과 기술의 이름으로 서구 사회를 이끈 근대주의자들의 생각을 재독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정진국 교수는 나지막이 도시와 건축에 대한 학자적 논지를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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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지암주택_ 정진국
탈근대주의가 팽배하던 1970년대 한국에서 역사와 이론 수업에 관심을 가져, 당시 인문학의 중심지였던 1980년대 파리에서 건축이 결코 디자인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 프랑스고등사회과학원(EHESS)에서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적 다색채를 연구해 박사학위 취득, 설계와 연구, 교육은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동일한 수준에서 서로 긴밀히 소통할 수 있어
정진국 교수가 과거 대학에서 건축 공부를 시작할 당시인 1970년대 중반은 탈근대주의가 한창 무르익고 있었던 시기였다. 근대건축에 대한 총체적 비판과 함께 다양성, 상대성, 불확실성의 논리로 무장한 탈근대주의가 본격화되었던 것이다. 수업에서는 이러한 경향을 보이는 건축가들이 대거 소개되었고, 유행의 첨단을 달리는 그들의 소위 ‘디자인’을 따르도록 요구되었다.
이러한 흐름에서 비추어 볼 때 건축이란 시대정신을 반영한다는 거창한 말을 들었다 하더라도 눈에 보이는 대로의 형태였으며, 형태를 다루는 능력이 어느 정도 있다면 건축 공부만큼 쉬운 것도 없었다고 정진국 교수는 당시를 회상한다. 하지만 학생 정진국에게 시간이 지나면서 형태 위주의 사고방식에 변화가 생긴다. 감각에 의존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한 연유로 그는 역사나 이론 수업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고, 이러한 시점에 박학재 교수와 이해성 교수와의 만남은 그에게 더욱 소중한 순간이었다. 두 교수들의 서양건축사 강의와 현대건축사 강의는 그에게 더 많이 생각하게 만드는 자극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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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지암주택_ 정진국
“제 머리 속에는 설계와 연구가 따로 있지 않았어요. 당시 이해성 교수께서 하신 말씀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제게 외국에서 건축 공부를 하고 싶다면 근대건축의 발상지인 유럽으로 가라고 하셨어요. 물론 그게 무슨 의미인지 그때는 몰랐었다”고 정진국 교수는 속내를 밝힌다. 이내 대학 졸업 후 사회 초년생이 된 정진국은 건설회사에 취직하여 5년 동안 많은 공사 현장을 누볐다. 철근, 시멘트 등 실제 건물을 만드는 과정에 투여되는 수많은 요소들을 다루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하지만 지식에 대한 끝없는 열정은 그를 더욱 채찍질하게 되었고 정진국은 유럽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 과감한 결단을 보인다. 프랑스 파리로 건축공부를 하러 떠난 것이다.
“사실 그곳으로 간 이유는 기호학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지금도 그렇지만 1980년대의 파리는 인문학의 중심이었고 구조주의, 현상학, 언어학, 정신분석 등 세계 최고의 지성들이 열정적 토론을 벌이는 곳이 파리였어요. 하지만 기호학이 건축 공부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죠.”
정진국의 건축 공부는 파리벨빌건축대학(ENSAPB)에서 다시 이어진다. 당시 학습 과정은 새로운 발견의 연속이었다. 특히 근대 건축과 역사 연구와의 접목을 목표로 건축교육의 또 다른 지평을 열고자 앙리 시리아니 교수(Henri Ciriani)와 그의 동료 교수들이 구성한 교육과정은 정진국에게 일종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후 5년 동안의 건축 공부를 통해 자연스럽게 건축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그는 건축이 결코 디자인일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우치게 된다. 그리고 만일 그가 앞으로 건축가라는 직업을 갖는다면, 근대 건축의 창시자 르 코르뷔지에에 관한 이해를 심화시키는 것이 건축가로서의 과제처럼 여기게 되었다.
“설계나 연구를 통해서 저를 직접 지도해주신 분들을 존경합니다. 그분들은 제 자신에게 채찍질을 가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죠. 모든 순간이 배움의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악조건이라도 거기에는 배움이 있기 마련입니다.” 결코 자신을 이끌어준 고마운 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아야 한다고 정진국 교수는 끊임없이 되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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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지암 주택_ 정진국
인식과 감각과 표현, 이러한 대상들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면서, 결국 그는 잠시 설계를 미루고 건축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를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그가 문을 두드린 곳은 프랑스고등사회과학원(EHESS)이었다. 그곳에서 정진국은 철학자이자 예술사가로서 세계적 명성을 가진 위베르 다미쉬(Hubert Damisch) 교수를 만났고, 그의 지도로 4년 동안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적 다색채를 연구해 박사학위 논문을 완성했다. 정진국 교수의 ‘르 코르뷔지에가 선택한 색채들’은 글자 그대로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적 다색채를 연구한 결과물이다. 이것은 1993년에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을 한국어로 요약한 단행본인데, 원래의 박사학위 논문 제목은 ‘눈과 벽,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적 다색채의 기원 1923~1931’이다. 당시에 정진국 교수는 기존의 학설을 뒤엎는 혁신적 이론을 발표했고 박사학위 논문은 지금도 주제와 관련된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참고문헌 중의 하나로 간주되고 있다. 건축과 색채와의 관계는 인류가 은신처로 동굴을 발견한 당시까지 되돌리는 근원적 의문을 던진다. 이러한 비중 있는 과제를 근대 건축과 함께 생각한 르 코르뷔지에의 초기 작품에 한정해서 연구한 것으로서, 즉, 여기에는 현상과 본질에 관한 철학적 성찰이 담겨 있다.
그의 또 다른 저서인 ‘상자의 재구성’은 근대 건축의 전형으로 평가되는 상자에 관한 연구이다. 한국에 있는 세 가지 건축적 대상인 부석사, 소쇄원, 종묘정전 등과 함께 르 코르뷔지에의 기적의 상자를 분석하고 그때까지 실현된 그 자신의 다섯 가지 작품을 소개한 단행본이다. 상자를 형태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골자이다. 상자는 공간적 육체성으로서 스스로를 드러내는 물질로서의 허공이다. 이후 기적의 상자에 대한 심화된 연구가 요구됐고 현재 르 코르뷔지에의 후기 작품을 중심으로 이에 관한 논문을 작성 중에 있다. 이외 근대 건축과 르 코르뷔지에의 저서를 번역했는데, ‘프레시지옹’과 ‘르 코르뷔지에의 사유’ 등을 통해 정진국은 자신의 건축이론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해 나가고 있다.
“연구와 설계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별개의 분야지만 동일한 수준에서 소통할 수 있는 것이죠.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건축 공부에 있어서 학제적 연구의 필요성은 두말할 나위 없습니다.” 설계와 연구, 교육, 이 세 가지를 하나라고 여긴다고 정진국 교수는 힘주어 말한다.
“모든 창작자가 그렇듯이 전통은 중요한 자산이자 동시에 피하고 싶은 덧입니다. 시대 구분은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방편일 뿐, 전통 건축과 현대 건축을 구분할 아무런 까닭이 없습니다. 모든 것은 변화하기 마련입니다. 창작자는 그 무엇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그 무엇을 만들기 위해서는 앞서 알아야 하는데, 왜냐하면 아는 만큼 그 무엇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변화를 보고 변화를 알고 변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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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공연예술센터_ 정진국
근대주의자들, 그 중에서도 르 코르뷔지에는 정진국 교수의 강력한 참조체이다. 또 그만큼 비중 있는 참조체가 있는데 그것은 한국적 가치라고 언급한다. 한국적 가치라는 말은 한국성과 같은 전통이나 그의 계승과 같은 역사주의적 접근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다만 정진국 교수는 이것을 문화적 특이성으로 상대화해서 이해한다. “한국의 전통도 세계의 다양한 문화 중의 하나입니다. 더욱이 한국의 전통도 한반도 전체 전통 중의 반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한국적 가치라도 나의 인식에 포착되는 것, 특히 지금 내가 볼 수 있는 조선 시대의 몇몇 사례에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들을 통해서 근대주의자들이 추구했던 생각들을 읽고 있습니다.”
정진국 교수는 건축이 사유의 결과이고 사유는 당대의 인식성과 연관돼 있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구조주의적 접근을 하고 있다. “건축이 다른 학문 분야, 다른 전문 분야와의 소통을 통해서 문화적으로 성숙된다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가 없죠. 특별히 관심을 두는 대상이 있다면, 그것은 소통의 의미 자체를 잉태했던 시대, 즉 근대주의적 상황입니다. 그중에서도 추상성과 형상성은 제게 중요한 화두들입니다.” 이러한 건축에 대한 많은 논제들이 ‘건축도시학제간설계연구소’로 집결되고 있는 셈이다. >>인터뷰_ 정진국 한양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자료 건축도시학제간 설계연구소, 기사 출처_ 에이앤뉴스 AN NEWS(ANN NEWS CENTER) 제공
인터뷰어_ 안정원(비비안안 Vivian AN) 에이앤뉴스 발행인 겸 대표이사, 한양대학교 실내건축디자인학과 겸임교수 annews@naver.com
제공_ 에이앤뉴스그룹 ANN(에이앤뉴스_ 건축디자인 대표 신문사 ‧ 에이앤프레스_건설지, 건설백서 전문출판사)
정진국 Jin Kouk Jeong 정진국 교수는 한양대학교와 파리벨빌건축대학(지도교수: 앙리 시리아니)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파리고등사회과학원(지도교수: 위베르 다미쉬)에서 예술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6년과 2005년에 한국건축가협회상을 수상했고, 작품으로는 ‘평창동 주택’, ‘곤지암 주택, 토포하우스’, ‘경주 주말주택’, ‘고기동 주택’, ‘소금항아리’ 등이 있다. 주요 저서로는 ‘르 코르뷔지에가 선택한 색채들’, ‘상자의 재구성’, ‘프레시지옹’(역), ‘르 코르뷔지에의 사유’(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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