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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 울린 그 현수막...25년간 딸 찾던 송혜희 아버지 별세

2024.08.31 오후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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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정지웅 앵커
■ 전화 연결 : 나주봉 전국 미아·실종 가족찾기 시민의모임 회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인용 시 [YTN24] 명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앵커]
실종된 송혜희를 찾아주세요. 애절한 이 현수막과 포스터, 길을 가다몇 번 씩은 봤던 경험 있으실 겁니다. 25년간 실종된 딸을 찾아 전국을 헤맸던 아버지 송길용 씨가 끝내 딸을 만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전국 미아·실종 가족찾기 시민의 모임, 나주봉 회장 연결해 송길용 씨의 마지막 모습과 장기 실종자 찾기 현황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나주봉 회장님 나와 계시죠?

[나주봉]
안녕하세요.

[앵커]
안녕하십니까. 실종자 송혜희 씨 전단지와 현수막은거리에 몇 번 씩은 마주쳤기 때문에 아버지의 마지막이 더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 같거든요.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하는데 어떻게 됐습니까?

[나주봉]
얼마 전에 심장이 병이 생겨서 급성심근경색증 시술을 받고 퇴원하셨는데요. 지난 26일 트럭을 가지고 볼일을 보러 나갔다가 교통사고로 운명을 하시게 됐습니다. 참 안타깝고 통망합니다.

[앵커]
송혜희 씨 아버지께서 오랜 세월 딸을 찾으러 다니다 보니까 생활도 좋지 않았을 것 같아요.

[나주봉]
많이 어려우셨죠. 99년도 송혜희가 실종되고 나서 두 부부는 생업을 포기한 채 전국을 누비다가 엄마는 먼저 작고하셨고 혼자 남게 된 아버지는 실종된 딸을 찾으려고 현수막과 전단지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 폐지와 폐품을 수거하셨습니다. 늘 운전을 하고 전국을 다니면서 팔아서 플랭카드 만들고 이렇게 다니셨어요.

[앵커]
현수막 말씀을 해 주셔서요. 마지막까지 딸 현수막을 제작했다고 하던데 당시 어떤 상황이었습니까?

[나주봉]
사망하시기 하루 전에 전화가 와서요. 현수막을 많이 만들어야 하는데 돈이 없다고 걱정을 하시는 말씀을 하셨고. 그리고 연락이 없었어요. 그런데 현수막 제작업체에서 연락이 왔어요. 주문한 현수막을 제작해도 되냐고, 이렇게 송혜희 아버지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냈는데 유족분들께서 그걸 확인하고서 저희 아버님 사망하셨으니까 그거 중단해 주세요, 이렇게. 연락을 받은 현수막 업체 사장님이 제게 사고 소식을 전해 줘서 접하게 됐습니다.

[앵커]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까지 딸을 찾기 위한 현수막 제작을 하셨다는 말을 들었으니까 더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 같습니다. 25년간 전국을 헤매며 많이 힘드셨을 것 같은데 평소에 송혜희 씨 아버지는 어떻게 딸을 어떻게 찾으러 다니셨습니까?

[나주봉]
찾는 방법은 유일하게 플래카드하고 전단지 배포, 이런 걸 하셨는데요. 트럭에 크게 사진을 붙여서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또 심지어 무인도 섬까지 아주 샅샅이 뒤지고 다니셨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즐기던 술, 담배 모두 끊고 혜희를 못 찾으면 못 죽는다고. 딸 찾는 데 그야말로 평생을 바친 딸바보, 최고의 아빠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앵커]
아무래도 오랜 시간 같이한 송길용 씨를 보낸 뒤에 상심이 정말 크실 것 같습니다. 이제 나 회장님께도 여쭤보자면요. 실종자 가족이 아닌데도 미아와실종자 찾는 일을 하게 됐다고 들었거든요. 이 일을 시작하신 계기는 어떻게 됩니까?

[나주봉]
저는 80년대 노점에서 군밤장사를 했었어요. 그러다 88올림픽을 전후로 해서 정부에서 단속을 해서 삶의 터전을 잃고 각설이 분장을 하고서 인천 월미도에서 테이프를 팔고 있는데 그 당시가 91년도 7월달이었는데 개구리 소년 부모님들이 전단지 배포하는 걸 보고 잠깐 이분들 아이들 찾는 데 도움을 드리려고 시작한 것이 33년째 되고 있습니다.

[앵커]
아무래도 오랜 시간 같이 활동하셨는데 송길영 씨죠. 혹시 고인이 평소 부탁한 내용이나 자주 하던 말이 있을까요?

[나주봉]
2주에 한 번, 3주에 한 번 올라오셔서 저하고 식사를 하면서, 차 마시면서 농담 비슷하게 한 말씀이 있어요. 내가 먼저 죽게 되면 회장님이 우리 혜희를 꼭 찾아주실 거죠?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그러니까. 그러면서 내가 죽으면 어떻게 할 건데요? 그러면 제가 챙겨드려야죠, 이렇게 하면서 그런 말씀을 자주 했어요, 농담 비슷하게. 지금 그걸 생각하면 나한테 남기는 유언이었나,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앵커]
25년간 찾던 딸을 못 만나고 끝내 눈을 감기까지 저희가 상상할 수 없는 큰 고통일 거라고 감히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많은 미아나 실종자 가족들이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을 텐데요. 이 가족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어떤 걸까요?

[나주봉]
이번에 송혜희 아버지 사건에서 보셨듯이 전국의 실종자 가족분들은 하나같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숯검뎅이 가슴을 쥐어뜯으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기적 같은 일이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시면서 참 힘들게 지내고 있습니다. 곧 추석이 다가오는데 잃어버린 자식을 생각하면서 얼마나 힘들게 살아갈까 걱정을 하니까 마음 한켠이 더 무섭습니다.

[앵커]
회원 가족 대부분 장기 실종아동이나 청소년으로 알고 있는데 현재 장기 실종아동이 얼마나 됩니까?

[나주봉]
최근 5년간 발생한 실종아동은 대부분 경찰이 발견해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고요. 그런데 1년 이상 찾지 못하는 아동도 1336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특히 20년 이상 실종돼 찾고 있는 장기실종 1044명이 되고요.

[앵커]
장기실종자 같은 경우에는 말씀해 주신 것처럼 20년 이상입니다. 상당히 긴 시간인데 그런데 개인의 차원에서는 찾는 데 어려움이 많을 것 같거든요. 정부 등으로부터 실종자를 찾기 위한 도움 같은 것들이 있습니까?

[나주봉]
경찰에서는 여러 가지 시뮬레이션을 해서 시스템으로 찾고 있는데요. 워낙 오래되고 또 단서도 미흡하고 또 제보자도 없고 그래서 혹시라도 가족분들은 이렇게 기다리고 있죠. 반대로 아이들이 찾아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입양이 되거나 또 예전에 아이 없는 사람이 데려다가 키우는 경우가 종종 있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부모하고 자식 간의 혈액형이 다르고. 그래서 그런 걸 혹시 누군가로부터 떨어져서 이분들하고 사는 게 아닌가 생각을 하고 오히려 반대로 찾아올 수 있는 그런 거라도 혹시 있지 않을까, 부모님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고요. 그리고 지금 아시다시피 AI를 활용한 여러 가지 방법론으로 해서 이렇게 또 DNA 이런 걸 해서 찾고 있는데 그런 걸로 기대감도 있고요.

[앵커]

회장님, 저희가 이 내용과 사진을 다시 한 번 보여드리려고 하는데요. 25년간 딸을 찾던 아버지의 쓸쓸한 사망 소식 전해드리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애타게 찾던 송혜희 얼굴을 시청자 여러분들 다시 한 번만 자세하게 봐주시죠. 실종된 송혜희 씨는 송탄 여자고등학교 2학년이던 지난 1999년 2월 13일 오후 10시쯤 경기도 평택시 자택 인근 버스정류장에서 내린 뒤 실종됐습니다. 시청자 여러분도 송혜희 씨의 얼굴 잘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송혜희 씨뿐 아니라 장기 실종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기 위해 사회의 관심이 정말 많이 필요한 때라고 저희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 어려운 시간 내주신 나 회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실종자 가족에게 힘이 돼주시길 바랍니다. 오늘 고맙습니다.

[나주봉]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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