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2월 말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2차 북핵 6자회담.
회담에서는 '북핵의 평화적 해결과 한반도 비핵화'를 문서로 합의했습니다.
[이수혁 / 남한 6자회담 수석대표(2004년 2월 말) : 비핵화 원칙이나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에 대해서 컨센서스(합의)를 이뤘다는 것은 앞으로 6자회담의 기초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작성된 김정일 극비 지시문 추정 문서입니다.
국가안전보위부 제2자연과학원 안전보위부에 내린 것입니다.
제2자연과학원은 북한의 군사무기 개발을 주도하는 연구소의 집합체로 지금은 창설 당시 명칭인 국방과학원으로 이름이 변경돼 있습니다.
김정일은 지시문에서 북한이 매우 중요한 무기 개발에 성공했음을 시사했습니다.
"이번에 국방과학원 과학자들, 대단히 수고가 많았다. 이제 한시름 놓고 편히 잘 수 있게 됐다.
김일성 수령 생존 시절 항상 마음 쓰던 문제인데 정말 대단하다."
"국방과학원에서 제기하는 문제는 제때 해결하고 담당 부서에서는 그들이 요구하는 자재 설비를 100% 보장하라"
[정준희 박사 / 통일부 정세분석국장 역임 : 북한이 볼 때는 재래식 무기 쪽에서는 현격하게 남한보다 뒤처져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비대칭 전력으로써 군사적 우위를 점해야 되겠다는 전략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이걸(핵미사일 개발) 하고 있고…]
그러면서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는 구소련 과학자들을 잘 돌봐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구소련 과학자들이 생활에 불편한 점이 있으면 연구 성과에 지장이 있다. 사소한 문제까지 관심을 돌려 가족까지도 철저히 책임지고 잘 돌봐야 한다"
구소련의 핵 과학자들이 북한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연구 활동을 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윤걸 대표 /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 (북한은) 구소련이 무너질 때 소위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나름대로 더욱 충성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구소련 핵미사일 관련된 과학기술자들을 포섭해서 데려오는 일을 했습니다.]
2005년 7월 7일 국가안전보위부로 하달한 김정일 극비 지시문 추정 문서입니다.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제6차 6자회담을 20일 정도 앞둔 시점입니다.
"감시 대상에서 제외했던 구소련 망명객들을 감시 대상에 넣어 6자회담 기간에 비밀이 새나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내부 정보가 계속 해외로 유출되고 있다…국내 반탐국과 대외 정보국 일꾼들이 제대로 일하지 않고 있다"
북한이 구소련 과학자에 대해 핵 개발을 위해 최대한 우대하면서도 기밀 유지를 위해 철저히 감시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 우크라이나 파병 문제로 북한과 러시아가 밀월 관계를 과시하면서 김정일 극비 문서들은 더욱 주목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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