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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은의 영화이야기] 곤(鯤)은 붕(鵬)이 되지 않는다, ‘아가미’]()
▲ 영화 <아가미> 포스터
“북쪽 바다에 사는 커다란 물고기. 그 크기는 몇천 리나 되는지 알 수 없는데, 그 이름을 ‘곤(鯤)’이라고 한다. 이 물고기는 남쪽 바다로 가기 위해 변신하여 새가 되는데 그 이름을 ‘붕(鵬)’이라고 한다.” - 영화 ‘아가미’ 중,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서 인용-
구병모 작가의 베스트셀러, ‘아가미’가 애니메이션으로 완성됐다. 세계적인 애니메이터 안재훈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원작이 지닌 서정적 공기와 인간의 실존적 비극을 특유의 영상미로 구현해 냈다. 가장 눈에 띄는 각색은 배경을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의 시공간으로 변주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시각 매체가 빈곤이나 소외를 전시할 때 빠지기 쉬운 ‘대상화’라는 윤리적 오류를 피하기 위한 결단으로 볼 수 있다. 이국적 배경이 주는 생경함은 인물들의 물리적 환경에 대한 선입견을 유보하는 대신 그들 각자가 처한 심리적 고립감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원작의 영상화를 넘어 다채로운 시청각적 상상력과 변주를 통해 삶의 비정함과 구원의 문제를 묵직하게 다뤄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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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은의 영화이야기] 곤(鯤)은 붕(鵬)이 되지 않는다, ‘아가미’]()
▲ 영화 <아가미> 스틸컷
‘아가미’는 ‘곤’(정해인), ‘강하’(강하늘), ‘해류’(이청아), ‘이녕’(김선영) 등 다양한 인물들을 등장시켜 죽음과 삶, 소외와 유대, 파멸과 구원을 동시에 이야기한다. 이처럼 다층적인 서사를 관통하는 매개체는 강, 호수, 바다, 비로 대변되는 ‘물’의 이미지다. 영화는 인물들이 마주하는 물의 깊이와 온도를 다르게 묘사하며 순환하는 물의 양가적 속성을 보여준다. 먼저, 곤에게 물은 지상의 차별로부터 격리된 안식처이자 해방구로서, 아가미를 가진 그의 특별함이 발현되는 곳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물은 강하가 그에게 강제로 돈벌이를 시키고 체벌을 가했던 폭력의 장이 되기도 한다. 물이 다시 곤에게 긍정적인 의미로 돌아서는 것은 그가 강물에 빠진 해류를 건져내면서부터다. 해류와의 조우는 궁극적으로 곤에게 타인과의 소통 가능성을 열어주는 중요한 사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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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은의 영화이야기] 곤(鯤)은 붕(鵬)이 되지 않는다, ‘아가미’]()
▲ 영화 <아가미> 스틸컷
아가미가 없는 인물들에게 물은 대체로 잔혹하게 작동한다. 약에 빠져 살던 강하의 엄마(이녕)가 결국 이성을 잃고 깨진 병을 휘두르는 순간, 영화는 그녀가 검은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환각 장면을 삽입시킨다. 이 신에서 물은 그녀를 평생 괴롭혀온 실패와 중독의 종착지이며, 고래처럼 날아오르지 못하고 수면 밑에서 끝나버린 생의 무덤이 되어 버린다. 또한, 강하는 곤의 행방을 추적하던 해류를 만나던 날, 폭우에 휩쓸려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이녕에게 물이 심리적 기제였다면, 강하에게 물은 자신과 할아버지의 목숨을 앗아가는 비정한 현실 그 자체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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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은의 영화이야기] 곤(鯤)은 붕(鵬)이 되지 않는다, ‘아가미’]()
▲ 영화 <아가미> 스틸컷
한편, 해류는 물이 가진 죽음과 삶의 속성을 동시에 체득한 인물이다. 강물에 빠진 해류는 잠시 죽음의 유혹을 느끼지만, 이내 아가미와 비늘을 가진 신비스러운 존재와 마주하게 된다. 그 찰나의 경험 이후, 해류에게 물은 그녀와 다른 차원의 개체와 교감할 수 있는 연대의 열쇠가 된다. 결핍과 고통을 안고 살아가던 해류가 곤의 발자취를 쫓는 여정은 물이라는 울타리에 고립되어 있던 타자의 존재를 증명함으로써 다시 한 번 스스로를 물에서 건져 올리려는 몸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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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은의 영화이야기] 곤(鯤)은 붕(鵬)이 되지 않는다, ‘아가미’]()
▲ 영화 <아가미> 스틸컷
곤의 아가미는 이러한 물의 양가적 속성과 정확히 궤를 같이한다. 아가미는 오랫동안 곤을 사회로부터 격리하고 세상의 변두리로 밀어낸 깊은 흉터와도 같았지만, 폭우가 사람들을 휩쓸고 간 후, 이 상흔은 한 줄기 희망으로 반전된다. ‘장자’(莊子)의 곤이 붕으로 변하여 하늘로 날아오른다면, ‘아가미’의 곤은 자신에게 주어진 몸을 받아들이고 그 쓰임을 바꿈으로써 이전과 다른 존재가 된다. 상실감의 파도 속에서 곤은 절망하는 대신 아가미를 통해 물 밑을 유영해 나간다. 그의 아가미는 더 이상 치명적인 장애가 아니라 가라앉은 강하와 할아버지의 유해를 찾아내 그들의 영혼을 위로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 된 것이다. 세상이 용인하지 못했던 기형적 신체가 비정한 현실의 밑바닥으로 침잠하는 이들을 구원한다는 역설은 ‘아가미’의 판타지적 설정을 리얼리즘의 궤도로 끌어올린다. 아가미가 타인의 호흡기가 되어주는 순간의 신비를 아름답게 포착해 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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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가미> 포스터
YTN 브랜드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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