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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파 배우 '세대 교체' [최광희, 영화 저널리스트]

2008.03.05 오후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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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


흔히 영화의 작품성을 이야기 할 때 감독의 연출력만큼이나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평가 역시 빠지지 않는 항목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만큼 어떤 배우가 어떤 연기를 선보이느냐가 작품성에도 아주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겠죠.

그런데 최근에 새로운 연기력과 이미지로 무장한 배우들이 급부상하면서 연기파 배우의 계보에도 세대 교체가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영화 저널리스트 최광희 기자와 함께 이 얘기 나눠 보겠습니다.

연기파 배우다, 하면 일단 한국영화에선 송강호, 최민식, 설경구, 이 세사람을 많이 언급하게 되지 않습니까?

[리포트]

세 사람 모두 한국영화의 전성기가 시작된 90년대 말부터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습니다.

송강호와 최민식은 '넘버 3'와 '쉬리' 등의 영화를 통해 충무로 내에 탄탄한 입지를 다졌고, 이후 각각 '살인의 추억'과 '올드보이' 등의 영화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또 설경구는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뒤 여러 작품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줬습니다.

세 사람 모두 거의 10년째 주연급 배우로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데, 최근 들어 세 사람 사이에서 살짝 명암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송강호 씨가 '괴물'과 '우아한 세계', 이창동 감독의 '밀양' 등으로 이어지며 가장 왕성한 연기 활동을 선보이면서 흥행과 평가 면에서 모두 고른 호응을 얻고 있는 반면, 최민식 씨의 경우엔 2005년 이후 '주먹이 운다' 이후 최근 영화쪽에선 이렇다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데, 전수일 감독의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에 캐스팅돼 3년만의 충무로 복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설경구 씨는 얼마전 김태희 씨와 함께 출연한 '싸움'이 흥행 고배를 마시면서 주춤하고 있지만, 강우석 감독이 '공공의 적'의 속편 격으로 연출하는 '강철중'으로 야심찬 부활에 나설 예정입니다.

[질문]

10년 가까이 한결같기란 쉽지 않겠죠.

오르락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겠고요.

이런 가운데, 요즘 연기력이라는 측면에서 이들 못지 않게 극찬을 듣고 있는 배우들이 떠오르고 있다죠?

[답변]

가장 먼저 김윤석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근 사실상 첫 번째 단독 주연을 맡은 영화 '추격자'가 극장가에서 화제를 불러 모으면서 각종 언론의 관심을 독점하다시피하고 있는 배우입니다.

앞서 언급한 세 명의 배우와 사실상 거의 동년배인데 뒤늦게 빛을 보게 된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영화 '추격자'에서 김윤석은 연쇄 살인범을 추격하는 출장안마업주로 등장하는데,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과 인간적인 면모를 동시에 지닌 이중적이고도 복합적인 캐릭터를 훌륭하게 소화해 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언뜻 송강호 씨와 연기 패턴과 이미지가 유사해보이기도 하는데, 송강호 씨가 연민을 불러 일으키는 스타일이라면, 김윤석은 악한의 느낌이 더 강하다는 것이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질문]

사실 김윤석 씨는 '추격자' 이전부터 연기파 배우로서의 잠재력을 보여줬죠?

'타짜'의 아귀역으로도 화제가 됐잖아요?

[답변]

사실 악역으로 주목 받는다는 게 쉽지 않은데, 2006년작 '타짜'에서는 악의 화신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닌, ‘아귀’ 역으로 관객들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 영화에선 전라도 사투리와 서울말을 섞어 쓰면서 인물의 느낌을 표현해내고 있는데, 대사의 톤을 미세하게 조절하는 능력에서 탁월한 연기 감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윤석은 같은 해 개봉한 '천하장사 마돈나'라는 작품에서도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 바 있습니다.

성 정체성 때문에 고민하는 아들을 학대하는, 가난한 술주정뱅이 아버지로 등장했는데, 김윤석의 존재감이 영화의 리얼리티를 강화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질문]

'추격자'에서는 연쇄살인범으로 등장한 하정우씨의 연기도 높은 점수를 얻고 있죠?

[답변]

하정우는 이 영화에서 연쇄 살인범 지영민 역할을 맡았는데, 반듯하고 준수한 이미지와 정 반대의 사이코패스적인 살인범 역을 탁월하게 소화해 냈다는 평가를 듣고 있습니다.

이미지와 본질이 충돌할 때는 공포감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데, 이번 영화에서 하정우가 딱 그런 공포감을 만들어내고 있는 주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정우 역시 이십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주 고집스럽게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작품성에 근거해 채워가고 있는 보기 드믄 젊은 연기파입니다.

독립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로 주목받기 시작해 김기덕 감독의 '시간'이나 '숨'에 잇따라 출연했고, 최근에는 김진아 감독의 저예산 영화 '두번째 사랑'에 출연하면서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연기의 폭과 깊이를 동시에 확장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는데, 바로 그런 드러나지 않게 쌓아온 연기 내공이 이번 영화 '추격자'를 통해 비로소 폭발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질문]

어쩌다 보니 오늘 영화 '추격자'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됐는데, 그밖에 또 주목받는 연기파 배우는 누가 있나요?

[답변]

지난해 2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세븐 데이즈'에서 주인공인 변호사 여성의 친구로 등장한 형사 역의 박희순이 요즘 특히 주목받으면서 연기파 배우들의 뉴웨이브에 합류하고 있습니다.

박희순은 이미 '귀여워'나 '남극일기' 등의 영화를 통해 이미 연기력을 인정받긴 했지만 대중적인 관심권 안에 들어오진 못해 왔는데, '세븐 데이즈'는 그런 박희순의 연기자적 잠재력이 대중적으로 확인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연초에 개봉한 임필성 감독의 '헨젤과 그레텔'에서는 악역을 맡아 호연을 펼쳤고, 이번주 개봉하는 '바보'에서도 비중 있는 역할을 연기하는 등 충무로의 A급 배우로 급부상하고 있다.


어쨌든 이처럼 세대 교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새로운 연기파 배우들이 기존 연기파들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같은 현상은 스타급 배우들의 흥행력에 대한 거품이 꺼지면서 캐스팅에서도 인기나 유명세 같은 변수보다 캐릭터에 걸맞는 연기력을 보여줄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게 고려하는 경향이 이전보다 강해진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영화의 취약 장르였던 스릴러 장르가 최근 강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또 다른 연기파를 발굴하게 해준 계기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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