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3.1 운동 100주년 기획 보도, 오늘은 친일파가 살았던 집이 문화재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는 실상을 보도합니다.
문화재청이나 지자체는 유서 깊은 건물이라 보존할 가치가 있다면서, 친일파의 집이라는 사실조차 알리지 않고 있습니다.
홍성욱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서울시 민속문화재 22호.
하루 평균 5백여 명이 찾는 북촌 백인제 가옥입니다.
백병원 설립자 백인제 선생이 마지막 소유자라 해서 이름 붙여졌습니다.
그런데, 사실 집을 짓고 처음 거주한 사람은 을사오적 이완용의 외조카로 '창씨개명'에 앞장선 친일파 한상룡입니다.
하지만, 그의 친일 행적은 한 줄도 나오지 않습니다.
해설사도 설명을 꺼립니다.
[백인제 / 가옥 해설사 : (친일 관련 역사)부각을 시킬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얘기는 했죠. (그건 해설사 선생님 생각이신가요? 서울시 입장인가요?) 약간 서울시가 그런 방향으로 가긴 하고요.]
서울시 민속문화재 12호, 윤웅렬 별장도 마찬가지.
남작 작위까지 받으며 친일에 앞장선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이 없습니다.
정부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천여 명과 관련된 잔재물은 전국 수백 곳에 달합니다.
이 가운데 이렇게 문화재로 등록된 곳도 여러 곳입니다. 하지만 어디에도 친일 역사는 함께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강원도 문화재 66호 민성기 가옥.
경술국치의 주역 민영휘의 손자로, 할아버지 무덤을 관리하기 위해 지은 집이지만, 누구 무덤인지는 알리지 않습니다.
국가 민속문화재인 전북 부안의 김상만 고택.
친일파 김성수가 어린 시절을 보냈고, 심지어 김성수의 동상까지 설치했지만, 설명은 없고 그의 아들 이름을 붙였습니다.
친일의 흔적을 의도적으로 교묘하게 지우고 관광 자원이라며 세금을 들여 보존하고 있는 겁니다.
[문화재청 관계자 : 문화재는 건축적 가치가 (인정돼서) 문화재로 지정되었지, 당시 정치적이나 어떤 인물의 영향은 없었다고 판정이 나왔어요.]
그러나 부끄러운 과거를 숨기고 문화재로 지정해 홍보하는 건, 역사를 왜곡할 뿐만 아니라, 국민을 속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방학진 / 민족문제연구소 : 관광수입이 줄어들 것이다. 자기 지역의 이미지가 훼손될 것이다. 이런 우려를 하면서 오히려 (자치단체나 공공기관이) 자발적으로 그 인사들의 친일 행위를 드러내는 것을 꺼리고 있는 것이 전국적인 현상입니다.]
문화재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는 친일파의 유물들.
우리 사회가 어떻게 친일의 역사를 감추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YTN 홍성욱[hsw0504@ytn.co.kr]입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