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한파 소식이 찾아왔다. 매서운 칼바람에 볼이 빨갛게 얼어드는 이맘때면 몸과 마음이 더 바빠지는 이가 있다. 바로 부산 경남 지역에서 21년째 숙련기술을 활용한 봉사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박진관 명장이다.
지난 2013년 건축설비 분야 대한민국 제1호 명장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박 명장은 야간으로 기능대학을 다닐 당시, 시골마을을 다니며 집집마다 농기구부터 터진 수도나 보일러를 고쳐준 것이 계기가 돼 재능 기부 형태의 봉사활동을 꾸준히 펼쳐왔다.
공고 시절부터 40년이 다 되도록 기술을 다져온 덕분에 고장난 배관이나 얼어터진 수도, 못 쓰게 된 양변기 등 웬만한 건 박 명장의 손길을 거치면 모두 제 기능을 찾는다.
이밖에도 복지시설을 돌아다니며 시설 보수를 해주고, 무료 급식 봉사활동 등을 펼치는 그가 최근 가장 분투하고 있는 봉사활동은 바로 기초수급자 등을 위한 보일러 수리, 교체 봉사활동이다.
지난 2009년, 보일러와 냉동기, 가스, 건축설비에서 한 글자씩 따온 ‘보냉가설봉사단’에 가입한 이후 박 명장은 부산 곳곳을 돌며 보일러 없이 추운 겨울을 지내야만 하는 이웃들에 온기를 전해왔다.
'시민영웅을 만나다' 여섯 번째 주인공 박진관 명장을 부산광역시 당감동의 한 봉사활동 현장에서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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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박진관 명장이 부산 당감동 어느 기초수급자의 집에서 보일러를 수리하고 있다.
이 날 박 명장이 찾은 현장은 보일러가 고장 나 지난 7년간 홀로 추운 겨울을 지내온 한 기초수급자 어르신댁이었다.
낡은 보일러 배관을 잘라내고, 청소하고, 새 것으로 교체하는 등 대공사 수준의 작업에 추운 날씨인데도 박 명장은 금세 구슬땀을 흘렸다.
반나절이 꼬박 지나고, 드디어 보일러 연통에서 포근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박 명장은 “7년간 난방이 되지 않아 냉골에서 지내야 했던 어르신이 올 겨울부터는 따뜻하게 지내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흐뭇하다”고 봉사활동을 마친 소감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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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수리작업이 끝난 후 보일러 사용법을 설명하는 박진관 명장
□ "'추위'가 주는 '고통' 너무 잘 알아"…외면할 수 없었던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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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관 명장이 YTN PLUS와 인터뷰하고 있다.
“형편이 어려웠던 시절, 건설 현장에서 창고지기를 하며 한겨울에 보일러 없이 추위에 떨어봤습니다.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정말 힘듭니다. 그래서 ‘추위’가 주는 ‘고통’이 어떤지 잘 압니다. 마음 같아서는 모두 돕고 싶지만 상황이 따라주지 않아 우선순위를 정해야 할 때면 마음이 무겁고 편치 않습니다”
해마다 박 명장 앞으로 쏟아지는 의뢰는 200여 건. 그러나 봉사활동에 드는 인력과 비용, 시간 등이 따라주지 않은 탓에 실제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그 중 15~20건에 그친다.
박 명장은 "이번처럼 우리 봉사단의 도움을 가장 필요로 하는 분들을 선정하기 위해 한 달에 네다섯 군데 정도 사전답사를 진행하다보면 마음이 참 무거워진다”고 말했다.
그는 “2층 옥탑방에서 17년간 보일러 없이 지낸 어르신댁을 찾아 새벽 2시가 넘도록 작업한 적도 있고, 수도 배관이 터져 8년 간 양동이에 물을 받아쓰던 분을 찾아 양변기 교체까지 해드린 적도 있다”고 말했다.
또한 "잠도 오지 않을 정도로 살갗을 에는 추위와 고통을 겪어봤기 때문에 그런 분들을 더욱 외면할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어린 시절 가정형편이 어려워 공고에 진학해 일찍부터 건설현장에서 일했던 박 명장은 하숙비가 없어 건설현장의 자재창고에서 쪽잠을 자며 지낸 적이 있다.
그는 “사람이 너무 추우면 잠도 오지 않는다"며 "한겨울에 보일러 없이 전기장판 만으로 추위를 버티며 겪었던 고통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기술 봉사자 한 명이 아쉽고, 보일러와 자재 하나하나 다 아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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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2019 자원봉사 이그나이트 대회서 대상을 받은 박진관 명장
그래서 박 명장은 본인의 기술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게 참 감사하고 뿌듯하다고 강조했다.
박 명장은 "기술을 가진 게 상당히 자랑스럽고, 두 아들도 기술자로 키워냈다"면서도 "우리 기술자들의 손길이 닿아야 할 이웃들이 정말 많은데, 기술자는 부족한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최근 박 명장이 한 봉사대회에 나간 이유도 바로 그러한 현실 때문이다. 박 명장은 ‘2019 자원봉사 이그나이트 V-Korea X 부산’에서 대상인 행정안전부장관상 등을 받았는데, 그는 “봉사활동 많이 한 걸 자랑하려고 나간 게 절대 아니다. 그 대회에 나가서 우리 주변에 숙련기술자들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웃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 박 명장이 이그나이트 대회에서 탄 상금은 모두 보일러를 구입하는 데 사용됐다. 뿐만 아니라 박 명장이 청소년 진로 지도 등의 강의료나 원고료 등에서 얻는 수입은 몽땅 봉사활동에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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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박 명장과 함께 봉사활동중인 둘째 아들 박근용 씨
박 명장의 두 아들 역시 그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지금껏 봉사에 참여해오고 있다.
이 날 봉사현장에도 함께한 둘째 아들 박근용 씨는 "봉사하는 아버지를 중학생 시절부터 따라다니며 자연스레 기술을 익힌 덕분에 현재는 대학교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씨는 "솔직히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녔기 때문에 그동안 봉사활동이 크게 특별한 일이라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지난 번에 ‘이그나이트 대회’ 당시 청중 평가단의 반응을 보고 좀 놀랐다"며 새삼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느껴졌다고 웃었다.
박 명장 역시 "힘들 때마다 두 아들이 버팀목이 되어준다"며 "봉사활동에 함께 해주는 두 아들이 무척 고맙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봉사활동 자체보다는 우릴 향한 냉소적인 시선이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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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활동에 있어 힘든 점은 없을까?
박 명장은 “가장 힘든 건 일부 봉사활동을 공명심이나 명예욕 때문에 한다는 식으로 바라보는 시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의심의 눈초리가 나한테만 향했을 땐 견딜만 했는데, 애꿎은 후원자에게로 향하는 게 가슴 아프다"며 "평소에 미용 봉사를 자주 하던 분이 봉사 때 만난 어르신들을 통해 식사는 무료 급식 등으로 해결되지만 추위를 못 참겠다는 얘길 들었다며, 기술은 없으니 보일러라도 지원하고 싶다는 연락을 주신 것을 계기로 지금껏 정기적으로 보일러를 후원해주시는 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후원해주고 있는데, 후원자 분 역시 다른 목적이 있을 거라는 곱지 않은 시선에 마음 고생이 심했다"며 봉사활동에 대해 사람들이 좀 더 따뜻하게 바라봐주면 좋겠다고 전했다.
그러나 박 명장은 “봉사가 끝난 후 그에게 고맙다며 울먹이고, 진심으로 기뻐하는 이웃들의 모습을 보면 말로 표현 못 할 벅찬 감정이 든다”며 봉사활동을 멈출 수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 "봉사활동을 하면 느낄 수 있는 보람, 직접 만끽해보세요!"
또, 그는 “정부의 도움으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오고, 기술도 배울 수 있었던 만큼,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생각을 언제나 하고 있다”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봉사활동을 할 생각”이라고 포부를 말했다.
박 명장은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현재 청소년 진로 지도를 나가고 있는데, 제가 기술자로서 청소년들의 롤 모델이 되어 좋은 숙련기술자들이 많이 나타나는 것”이라며 “기술을 활용한 봉사활동에도 많이 관심가져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어 “봉사활동과 후원 활동에 힘쓰고 있는 분들이 많이 계신데, 그분들을 비롯해 제가 봉사활동을 지속하는 이유가 다 있다”며 “말로 설명할 순 없지만 사람들에게 봉사활동을 할 때 드는 기분, 보람을 직접 느껴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기획: 서정호 PD(hoseo@ytn.co.kr)
촬영: 강재연 PD(jaeyeon91@ytnplus.co.kr)
취재: 강승민 기자(happyjournalist@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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