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행 : 변상욱 앵커
■ 출연 : 박숙경 /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앵커]
국내 최대의 인권유린 사건으로 꼽히는이른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의 첫 번째 공식조사 결과가 지난주에 나왔습니다. 피해자들의 증언을 중심으로 해서 구성된 보고서인데 당시의 끔찍한 참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피해자 심층면접을 총괄한 박숙경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를 모시고 내용을 좀 들어보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영상에서 잠깐 봤습니다마는 오랫동안 벌어진 인권 유린이어서 영상에 다 담기는 불가능한 것이고요. 우선 형제복지원 사건을 간략하게라도 먼저 설명을 해 주시고 얘기를 시작해야 될 것 같습니다.
[박숙경]
아까 화면에서 잠시 말씀해 주셨지만 의미로 따지자면 형제복지원 사건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제기된 사회복지시설에서의 인권유린 그리고 비리 사건이었고요.
사건개요는 간략히 말씀드리자면 보통 1975년도로부터 형제복지원이 운영됐다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 저희 이번 조사 결과 더 많이 밝혀진 것은 1960년에 부산의 형제육아원이라고 하는 100여 명 남짓한 남자아이들을 수용했던 미신고 시설에서 출발해서 1987년도에 이 사건이 알려질 당시에 3000명, 많게는 한때 4000명도 넘게 수용되었던 거대한 괴물처럼 자라난 시설이었고요.
그 시설에 사실은 부산역 등에서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끌려갔고 감금당하고 그랬던 시설들이었고 그리고 사실 이 사건의 의미는 국가의 개입에 의해서 무고한 시민들이 강제수용됐던 국가폭력 사건이다.
[앵커]
예를 들면 가난해서, 주거가 일정하지 않아서 거리를 어떡하다 떠돌게 되면 예비 범죄인으로 본 거나 마찬가지겠죠. 그러니까 잡아다 무조건 가둬놓은 거죠?
[박숙경]
그렇죠. 당시에 옷차림만 허름해도 또는 주민등록증만 없어도 또는 그것과 상관없이도 거의 납치에 가깝게 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끌려갔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저도 1987년 취재했던 기억도 있고 한데 그때로부터 그분들이 피해자로서 나와서 증언한 것도 2013년이니까 25년 만이고 첫 번째 조사보고서가 나온 것도 33년 만에 나온 겁니다.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오래 걸린 거라고 봐야하죠?
[박숙경]
일단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을 텐데요. 첫 번째는 87년도 당시에 정부여당과 부랑인시설들의 반대가 굉장히 심했고요. 두 번째는 주류 권력자들의 방해와 사회적 무관심이 지속적으로 있었고요.
또 세 번째는 지금도 나오지만 국회 진상규명을 운영하는 과거사법 더 이전에 19대 국회에서는 형제복지원 피해자 피해 관련된 특별법 이 부분들이 지속적으로 무산되면서 이루어진 부분들이 있죠. 그래서 87년도 사건 당시에 사실 당시에 야당인 신민당에 의해서 사실은 1차 조사가 이루어졌었고요.
그 당시에 국정조사권을 발동하자고 제안이 이뤄졌지만 당시의 민정당에서 무마가 됐고요. 그 당시 그리고 또 시국사건으로 굉장히 중요한 박종철 관련한 부분이 있어서 그 부분에 묻힌 부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게 되게 안타까운 부분인데 그렇게 시민들의 무관심 속에서 잊힌 가운데 사실은 검찰, 대법원 또 당시 부산시정 등 권력의 일선에 있는 사람들의 압력이 전방위적으로 있었고요.
그래서 89년도에 주범인 박인근 원장 이 사람이 감금, 폭행, 살인 여러 가지 이런 형사사건에 대해서 최종적으로는 다 무죄판결을 받고 겨우 횡령죄로 2년 6개월 살고 나와서 그나마도 다시 형제복지원 대표이사로 돌아와서 거의 최근까지도 대표이사직을 역임했습니다.
[앵커]
대표이사직을 맡아왔었던 거군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옆에서 지켜보다 보면 감금, 폭행, 살인 교사. 이런 것들이 들어가면 감독을 왜 이렇게 못했어라고 자기들 책임이 돌아올 것 같으니까 그런 건 다 빼버리고 횡령, 개인의 비리로만 살짝 그렇게 처벌이 되고 끝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받거든요.
피해자들을 다 120, 130명 정도 된다고 얘기 들었습니다마는 만나신 분들의 다 얘기를 듣고 그걸 다 보고서를 내셨는데 그분들이 전해 주신 이야기를 소개 몇 가지 해 주시죠.
[박숙경]
이번에 실태조사 심층면접 자료조사에서 세 가지 조사가 이뤄졌는데요. 사실 이번 조사의 이전에는 또 그동안 대책위원회 활동을 통한 자료들이 많이 도움이 됐었고요. 피해자들이 주로 말씀해 주셨던 부분들은 그동안 살아남은 아이, 숫자가 된 사람들. 이런 구술집들을 통해서 여러 번 됐던 내용들이 확인이 되어졌고요.
그런데 주로 거기서 벌어진 일이 무엇이냐. 이게 중요하잖아요. 한마디로 형제복지원은 지옥보다 더한 지옥이었다. 그리고 수용 과정에서 납치와 감금은 계속 얘기가 되는데 일례로 형들이랑 해운대 수영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아이가 끌려간다거나. 그리고 그 안에서 일단 들어가게 되면 개인성이 말살 당했습니다.
그러니까 뭐냐 하면 들어가는 순간 남자들은 삭발, 여자들은 아까 화면에서 보신 것처럼 머리가 다 잘리고 그다음에 파란색 추리닝 한 벌을 입고 이름도 사라진 채 숫자로 불린다거나.
[앵커]
번호만 부르는 거죠.
[박숙경]
그다음에 군대, 수용소 문화. 여러 가지 그리고 가장 심각한 것은 끔찍한 강제노역이 있었고요. 그런 노역 과정에서 사실 엄청난 돈이 축적됐을 걸로 여겨지는데 그 돈은 다 어디로 갔는지 지금 알 수가 없는 상황이고 구타와 체벌, 그리고 성학대도 굉장히 심각하게 있었고요.
그다음에 해외 입양이나 이런 부분들도 있었는데 이번에 조사과정에서 보니까 굉장히 체계적으로 후원자 관리를 했었고. 그 후원자 관리하는 데도 역시 원생들이 많이 동원됐었습니다.
[앵커]
그게 결국은 자기네들한테 수익이 되니까 그런 거겠죠?
[박숙경]
네, 그리고 지금 주목되어야 할 부분이 그동안 또 많이 묻혀져 있는 부분들, 그 안에 정신병동이 있었고. 이 정신병동에 수용된 사람들은 더 끔찍한 일들을 당했지만 이 부분은 아직도 조사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앵커]
저도 오늘 오신다고 그래서 예전에 썼던 기사를 한 번 찾아봤습니다. 제가 썼던 기사를. 이렇게 보니까 제목을 제가 그렇게 붙였더군요.
국가가 국민을 짐승으로 만들었다라고 그렇게 썼던 게 있었는데 지금 그렇게 간략하게 설명해 주셨지만 그 안에 담겼던 고통이라는 건 참 이루 말할 수가 없는 거죠. 그런데 지금 그분들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저는 그것도 참 궁금합니다.
[박숙경]
제가 이 조사를 저희 연구팀 전체가 진행하면서 형제복지원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게 너무 마음을 아프게 때려왔었고요. 대부분이 굉장히 가난하고 열악한 상황인데 예컨대 기초생활수급자가 전체의 45%, 전 국민 기초수급자의 평균 수치는 3.4%예요.
그러니까 거의 10배가 넘죠. 그다음에 경제생활수용 당시 그 당시 처음에 장애가 있었던 사람들이 한 4.7% 정도였는데 현재는 33%가. 그러면 일반적인 장애 출현율은 몇 프로냐? 우리나라 5.4%입니다. 이 역시도 엄청난 수치고요. 그다음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용기간에 취학연령의 아동들이 많았는데 무학인 경우가 60% 이상. 이 부분은 이분들에게 굉장한 아픔과 이런 걸로 여전히 남아 있고요.
또 원가족들에게 복귀한 이후에도 사실상 적응하지 못하고. 뭐냐 하면 본인이 겪었던 그 끔찍한 일들이 막상 가족에게 돌아왔을 때 잊혀지지 않는데 사람들은 그걸 알 수가 없는 거예요. 이런 과정 속에서 괴로움과 갈등이 굉장히 심해서 또다시 가족이 해체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고요.
그래서 이분들의 트라우마 상황이 악몽, 그다음 자살시도, 아까도 나왔는데요. 이런 경우에 그러니까 어느 정도냐 하면 북구 오간다의 내전을 겪은 사람들보다 더 높은 수준이다.
[앵커]
그 정도로. 저도 들었던 거 기억나는 게 피를 흘리면서 그냥 밥을 묵묵히 먹어야만 했다든가 동료의 시체를 묻어야 했다든가 이런 것들이 있으니까 그게 트라우마로 당연히 남아 있겠죠. 제일 기억에 남는 사례는 어떤 것이었는지 하나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박숙경]
제가 아까 겪은 일에 대해서도 말씀드려야 될 것인데 이번 상황에서 저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 너무나 많은 분들이 그 안에서 사망이 아니고 사실상 살해당했다. 구타, 방임 여러 상황에 의해서 또 영아들 같은 경우도 많이 사망이 이루어졌고요.
그런데 이게 형제복지원이 굉장히 무서운 게 무서운 수용소의 전형적인 문화들이 그 안에서 아주 체계적으로 작동되고 있었고 그게 뭐냐 하면 박인근이라고 한 사람 일가족 외에 불과 10명도 안 되는 직원이 있었는데 전체 수용자들에 의해서 서로가 감시하고 서로가 할 수 있는 그런 문화가 됐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안에서 사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암매장을 당했는데 제가 만난 분은 거기서 살아남기 위해서 잘 보여서 결국은 소대장까지 올라간 이번 조사에서 유일한 소대장 출신인데 이분의 인터뷰를 할 때 그분이 본인이 겪었던 그 일들이 잊혀지지 않고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든지 탈출 이외에 알려주기 위해서 부산시청도 가고 언론사도 찾아가고 했지만 계속 묵살당하고 묵인당하고 그 아픔이 여전히 그대로 살아남아 있었던 모습이 가장 기억이 납니다.
[앵커]
그러면 아직도 진행 중인 거나 마찬가지라고 하셨는데 남아 있는 과제들은 어떤 것들입니까?
[박숙경]
우선은 지금 사망자 유해발굴 사례 관련된 조사가 철저하게 이뤄져야 하고요. 이건 그분이 정말 당부하신 부분이고 실제로 형제복지원이 있었던 그 장소에 아파트가 들어섰는데 그 아파트 건설 당시에 수십 구의 유해가 나왔었지만 그것도 지금 묻힌 상황이라 진상조사가 너무나 필요하고요.
그다음에 정신병원이나 시설로 재수용된 사람들의 실태 파악도 이번에 저희가 충분히 할 수가 없었는데 개인정보나 이런 것 때문에 국가에서 지금 확인해야 하고 이분들 대부분은 사실 저희가 주목해야 될 게 형제복지원 사건 이후에 사건이 끝난 게 아니고 그중의 상당수의 사람들은 다른 시설로 전원돼서 수십 년째 시설에 계신다는 거고요.
그다음에 다른 시설들에서 벌어진 구타 이런 것들이 유사한 상황에서 구술이 이루어졌는데요. 이런 부분들에 관한 국가 차원의 진상조사 개입.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국회에 계류 중인 과거사법이 통과가 되어야 되겠죠.
[앵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게 이름은 형제복지원, 부랑자보호법. 이런 식으로 되어 있는데 거기서 이렇게 끔찍한 인권유린이 벌어졌다는 건 가슴 아픈 일입니다. 박 교수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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