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원자력발전소의 외부 전력 공급이 끊기는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 '비상 디젤발전기'입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그 중요성이 다시금 부각 됐죠.
그런데 국내 대부분 원전의 '비상 디젤발전기'가 실제 비상 상황에서 화재나 오작동이 일어날 경우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습니다.
김진두 기자가 단독 보도합니다.
[기자]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대지진과 해일로 전원이 끊기면서 시작됐습니다.
이때 '비상 디젤발전기'가 전기를 생산해 원자로를 식혀야 하는데, 침수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원자로가 녹는 대참사가 발생한 겁니다.
비상 디젤발전기는 이처럼 원전 안전의 최후 보루로, 어떤 경우에도 작동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 가동 중인 국내 원전 27기 가운데 20기의 비상 디젤발전기가 화재나 소화 설비가 오작동을 일으켰을 경우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이산화탄소가 나오게 돼 있는 비상 디젤발전기 구역의 소화설비 때문입니다.
불이 나면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온도는 영하 78.5도
이로 인해 실내 온도는 영하 50도 이하로 뚝 떨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비상 디젤발전기가 작동할 수 있는 내환경 조건은 영상 10도~50도 사이로 돼 있습니다.
따라서 극저온 상태에서도 발전기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해야 하지만, 관련 시험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정윤 / 원자력 안전과 미래 대표 : (비상 디젤발전기는) 100회의 기동 및 부하 시험을 해서 한 번도 실패 없이 정상 작동해야 원자력발전소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산화탄소가 방출되는 극저온의 열악한 환경에서도 제대로 기기작동이 가능한지를 확인하는 시험을 한 사례는 단 한 군데도 없습니다.]
심지어 이산화탄소 소화설비는 원전의 안전 규정도 명백하게 위반하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이산화탄소 소화설비는 화재가 감지되면 자동 폐쇄장치(송풍기, 방화댐퍼)로 해당 구역을 우선 격리합니다.
이어 그 위치의 밸브를 개방시켜 이산화탄소를 방출해 불을 끄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작동하는 자동폐쇄장치는 원자로 시설 중 안전 등급, 소화설비는 비안전 등급으로 분류된 설비입니다.
원자로 시설의 안전등급과 등급별 규격에 관한 규정은 비안전등급 설비는 안전등급 설비와 '연동'되지 않아야 한다고 돼 있습니다.
[제보자 / 원자력 시설안전 분야 전문가 : 안전등급 설비는 문제가 생겼을 경우 원자로 안전과 직결되는 설비입니다. 그런데 덜 중요한 비안전설비가 안전설비를 작동시킨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죠.]
이산화탄소 소화설비가 국내 경수로 원전으로 확산한 과정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초기 원전에는 미 원자력규제위원회의 요건에 따라 물을 사용하는 스프링클러 방식이 채택됐습니다.
하지만 이후 국내 주도로 건설한 한빛 3, 4호기부터 소화 설비 방식이 모두 이산화탄소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운영허가 심사에 들어간 신고리 5, 6호기는 안전 문제를 이유로 다시 스프링클러 방식이 선택됐습니다.
[제보자 / 원자력 시설안전 분야 전문가 : 누가 어떤 과정을 거쳐 물에서 극저온의 이산화탄소 방식으로 바꿨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아무도 문제를 지적하지 않다가 신고리 5, 6호기에서 다시 물로 바꾼 건 무슨 이유일까요?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해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극저온 상황에서 비상 디젤발전기의 가동 시험을 한 적은 없다고 시인했습니다.
비안전설비와 안전 설비의 연동과 관련해서는 '연결'될 수 있다는 규정을 내세웠지만,
단순 연결과 다른 설비를 작동하는 '연동'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어서 엄격히 규정을 지켜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비상 디젤발전기는 2대가 가동 중이어서 문제가 생겨도 대응 가능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고 시에 이산화탄소 소화설비의 오작동은 동시에 일어날 수 있고, 이 경우 모든 비상 디젤발전기는 기능이 상실된 것으로 간주합니다.
원전 안전 관리는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던 일본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YTN 김진두입니다.
YTN 김진두 (jdkim@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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