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헌법재판소가 임신 32주 전까지 의료인이 태아의 성별을 부모에게 알리지 못하도록 한 의료법 조항이 위헌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국민 의식이 발전해 남아선호사상이 사라졌고, 태아의 성별을 알려는 부모의 욕구도 마땅한 권리로 존중돼야 한단 겁니다.
홍민기 기자입니다.
[기자]
1987년 제정된 의료법 조항은 의료인이 태아의 성별을 부모나 주변 사람에게 알리는 행위를 임신 기간 내내 금지했습니다.
당시 우리 사회에 남아있던 남아선호사상으로 인해, 성별을 알게 된 부모들이 낙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성별 고지 금지' 조항은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22년 만인 지난 2009년, 첫 변화를 맞았습니다.
'임신 32주'까지만 태아 성별을 알리지 못하도록 법이 바뀐 건데,
이 역시 시대에 뒤처졌단 반발이 부부들을 중심으로 잇따랐습니다.
재작년과 지난해 각각 임신한 강 모 씨 등 부부 세 쌍도, 임신 32주 전에 태아 성별을 알지 못하게 하는 건 부모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거라며 헌법소원을 냈습니다.
그리고 1년여 만에 헌재는 재판관 6대 3 의견으로 해당 조항에 위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헌재는 먼저, 1993년 이후 남녀 출생아 성비가 꾸준히 균형을 이루는 등, 국민 의식이 발전해 법 제정 근거가 된 남아선호사상은 이제 사라졌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조항을 위반해 고발되거나 재판에 넘겨진 경우도 10년 동안 단 한 건도 없고,
현실에선 임신 32주 전에도 직·간접적으로 태아 성별을 아는 경우가 적지 않은 만큼 사실상 법이 사문화됐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그간 의료인이 '분홍색 옷', '파란색 옷' 등으로 에둘러 성별을 알려줘 온 세태를 반영한 겁니다.
[정정미 / 헌법재판관 : (해당 조항은)부모가 태아의 성별 정보에 대한 접근을 방해받지 않을 권리를 필요 이상으로 제약하여 침해의 최소성에 반하므로 과잉금지 원칙을 위반하여 헌법에 위반됩니다.]
헌재가 부모들 손을 들어 주면서 앞으로는 의료인이 임신 기간 중 언제라도 태아의 성별을 알릴 수 있게 됐습니다.
'태아 성별 고지 금지법'이 제정된 지 37년 만입니다.
헌법소원을 낸 청구인 측은 시대를 반영한 결정이라며 환영했습니다.
[강성민 / 헌법소원 청구인 측 대리인 : 의사들이나 부모들이 자녀에 대한 준비도 못 하고 불법의 현장으로 내몰렸었는데, 좀 그런 부분들을 반영한 선고가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다만 재판관 3명은 남아선호사상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 성별 고지가 낙태로 이어질 수도 있다며, 개선 입법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헌재의 이번 위헌 결정으로, 의료와 출산 현장에도 많은 변화가 뒤따를 전망입니다.
YTN 홍민기입니다.
촬영기자;최성훈
영상편집;마영후
그래픽;지경윤 기내경
YTN 홍민기 (hongmg1227@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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