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YTN 아트스퀘어를 찾은 이는 ‘덩어리’라는 조금은 특이한 키워드를 제시한 김민우 작가다. 작가는 작가 본인이 살고 있는 벨기에에서 숲과 구름을 관찰하며, ‘덩어리’라는 개념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세상의 이미지를 화폭에 담았다.
이력만으로 살펴본 작가의 인생은 매우 독특하다. 과학고등학교, 카이스트 등 국내 과학 수재들이 필수로 거치는 코스를 거치고 프랑스에서 환경공학으로 대학원을 졸업했음에도 현재 ‘화가’의 위치로 자신의 진로를 잡았다. 게다가 현재 살고 있는 곳도 국내가 아닌 벨기에. 과학도로서 현상에 대해 수많은 의문을 가졌던 그의 삶에 대한 태도가 ‘작가’ 김민우에게로 이어진 듯하다.
김민우 작가가 표현한 ‘덩어리’의 개념을 작품을 보면서 감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전시는 9월 30일까지이다.
▼ 다음은 김민우 작가와의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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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rcissus 2021C0028, 130.3 x 97.0cm, oil on canvas, 2022
Q. 전시 주제를 소개해 주세요.
제 작품은 덩어리라는 개념으로부터 시작을 했는데요. 덩어리는 상이한 유사성을 가지고 있는 개념이라고 보시면 될 거 같습니다. 작품을 보면 작품들이 서로 약간 유사한 이미지를 보이는데, 제가 이런 패턴을 만들어냈거든요. 현재는 이런 알록달록한 색깔이나 모양을 제가 착안해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이런 덩어리 개념을 확장한 나르키서스 시리즈를 비롯해 ‘LIKE H2O’, 그리고 ‘Susunwha(2)’ 등의 작품들을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제 작품의 주요 개념인 덩어리를 확장하며, 색과 형태, 화면 구성 등 표현 방식에서도 다양한 시도를 했던 결과물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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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KE H20, 50.0 x 40.0cm, oil on canvas, 2022
Q. 작품의 아이디어는 주로 어떻게 떠올리나요?
저는 일상, 자연, 사람, 철학, 종교 등 다양한 곳에서 작업의 영감을 받아요. 초기의 덩어리 패턴과 ‘나르키서스’ 시리즈는 자연이 풍부한 벨기에에서 숲, 구름, 야생화 등을 통해 영감을 받아 그릴 수 있었어요. 자연을 관찰하고, 그를 통해 사색하는 걸 좋아해요. 벨기에서는 구름이 한국에 비해 낮게 떠요. 변화무쌍한 날씨만큼이나 구름의 모양도 매우 다양합니다. 그렇게 오랜 기간 다채로운 구름들을 관찰하며 사색을 즐기던 어느날 ‘구름들은 모두 다른데, 왜 우리는 이들을 모두 구름이라는 이름으로 부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이 이어져, 서로 다르면서도 닮아 있는 ’상이한 유사성‘을 지닌 덩어리 패턴을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페인팅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가령, "페인팅이란 무엇인가?", "페인팅은 세계와 어떤 점에서 닮아 있는가?", "색과 형태는 페인팅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가?"와 같은 질문들인데요. 저는 페인팅의 유기적이고 비고정적 특성이 이 세계와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세계는 모호하고, 비고정적이고, 불확실한 성질을 가지며, 따라서 정의하기 어렵습니다. 이것은 관찰자에 의해 경험하는 세계가 지극히 개인적이고, 고유하기 때문이기도 한데, 페인팅에서도 페인터는 유일한 관찰자이자 행위자로 존재합니다. 또한 비슷한 특성을 보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모호한 세계를 자유롭고 유기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매체가 바로 페인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페인팅은 마치 세계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듯, 저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기 때문에 페인팅 자체를 생각할 때 많은 영감을 받는 것 같습니다. 마치 바다 거북이 바다 속에서 헤엄치는 것처럼, 제 몸의 움직임이 붓질을 통해 페인팅이 되고, 그것이 다시 (나의) 세계를 진동시키듯, 페인팅을 마주하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페인팅을 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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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RAWBERRY ICECREAM FEELING, 45.3 x 53.0cm, oil on canvas, 2022
Q. 전시 작품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요?
사실 모든 작품들이 스토리가 있으니까 굉장히 소중하고, 어떨 때는 마음 아프기도 하고 그런 것들이 있는데,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데에 굉장히 기쁜 마음이 드는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나르키서스 시스리즈 중에 제일 큰 작품인데요, 바로 'Narcissus n20210001'로, 나르키서스 시리즈 중 첫 번째 유화 작품입니다. 그래서 작품 넘버링도 1번입니다. 원래 나르키서스는 아크릴 물감으로 작업을 했었는데요. 유화 물감을 사용함으로써 투명도를 높이고 많은 레이어를 쌓아, 덩어리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 나르키서스를 구상할 때처럼 수많은 시도와 수정을 거쳐 완성된 작품입니다. 또한, 이 그림은 2021년에 완성되어 서울의 한 갤러리에서 전시될 예정이었으나, 벨기에에서 한국으로 배송되는 과정에서 운송사의 착오로 분실되었습니다. 다행히 일본에서 트래킹하여 찾아냈지만, 전시 기간에 늦어 대체 작품을 전시하게 되었고, 이 그림은 결국 전시되지 못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드디어 이 작품을 선보일 수 있어 매우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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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rcissus n20210001, 110.0 x 160.0cm, oil on canvas, 2021
Q. 작품 제작에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제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과 작업적인 개념들이 테크닉적으로 일관된 표현을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페인팅은 개념과 테크닉이 일치할 때, 타인의 시선에서 작가가 바라보는 세계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저는 고정되지 않은(non-fixed) 화면을 만들기를 원해요. 이를 위해 투명하고 광택이 나는(gross) 물감과 불투명하면서 건조한(dry) 물감을 섞어 사용합니다. 이렇게 해서 평면적인 컬러 덩어리와 깊이 있는 반투명 배경을 다층 레이어로 표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덩어리들의 경계 부분은 이러한 투명성과 불투명성 사이에서 고민하며 더욱 신경 써서 제작합니다. 저는 보통 컬러풀하고 생동감 있는 색을 덩어리 쉐이프에 사용하는 반면, 배경에는 무채색 계열, 특히 그레이 컬러를 사용하여 화면의 균형을 맞춥니다. 그레이 컬러는 저에게 있어 덩어리들의 색을 찾는 데 필수적 요소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덩어리들은 색의 투명성과 채도 및 이들의 조합에 따라 단단하고 탄력 있게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유연하고 열려 있으며, 약간 덧없고 애잔한 화면의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겠지만, 저는 페인터로써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캔버스에서 시도하며 쏟아붓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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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RÉATURE MARINE n20220002, 53.0 x 45.5cm, oil on canvas, 2022
Q. 작가님의 작품 속에서 주제를 표현하는 방식이나 작업 노하우를 들려주세요.
저는 저의 경험과 사유로부터 얻은 발견들을 페인팅에 녹여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제 시그너쳐 작품 중 하나인 나르키서스는 이러한 점에서 잘 구현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나르키서스는 하얀색 수선화에서 영감을 받아, 무채색 배경과 불투명/반투명 컬러들을 사용하여 다양한 회화적인 실험을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수선화의 강인하면서도 소박한 특징을 담고자 했습니다. 수선화는 아직 눈이 채 녹지 않은 겨울에 고요히 피어나는데, 소박한 색과 모양 때문에 평소에는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꽃입니다. 그러나 어느 겨울에 우연히 주변에 있던 화려한 야생화들 덕분에 발견할 수 있었어요. 튤립, 양귀비, 국화 등 알록달록한 꽃들이 멀리서 눈에 띄어, 가까이 가서 자세히 살펴보면서 고요히 피어 있는 수선화를 발견했습니다. 그 수선화는 섬세한 백색 꽃잎들이 겹치면서 뉘앙스를 만들어냈고, 이 섬세한 그레이의 차이가 저에게 고요한 생동감과 아름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나르키서스의 컬러풀한 쉐이프와 섬세한 배경 패턴으로 표현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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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ysage Absolu Évanescent 완벽하고 덧없는 풍경, 65.0 x 80.3cm, oil on canvas, 2022
Q. 작품 세계에 영향을 미친 작가님의 성장 배경이나, 특별한 경험이 있나요?
가족 중에 목사님도 있을 정도로 종교적인 환경에서 자랐는데 현실과의 괴리감을 좀 많이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절대적인 존재에 대해 물음이 많았던 것 같고 어린 나이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항상 질문을 던졌던 것 같아요. 또한 공학도 혹은 예술가로서의 경험, 아시아 문화 혹은 유럽 문화, 그리고 여성으로서의 사회적 경험은 경계와 세계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하고, 질문을 던질 수 있게했습니다. 이러한 경계인으로서의 지위는, 불확실성 가운데 어떤 유사성을 발견해내려 하는 방식으로 발전하였고, 이는 제 그림에서 덩어리 패턴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벨기에에서 순수 조형 미술 석사 과정을 밟으면서 만난 철학 교수님(Aram Mekhitarian)을 통해 철학적 사유 방식을 익힐 수 있었는데, 이 경험은 간극이 클 수 있는 공학과 예술의 어떤 브리지가 되어준 것 같아 저의 예술적 세계관을 형성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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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전시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최근 프랑스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 퐁티의 책을 읽고 있는데요. 예술 미학적으로나 철학적으로나 굉장히 중요한 개념을 발견한 철학자거든요. 그의 책 《눈과 정신 (L’OEIL ET L’ESPRIT)》을 읽으면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존재, 그 흐름과 역류, 그 성장, 그 폭발, 그 소용돌이, 화가는 어떤 것도 평가할 의무 없이 모든 것에 대해 바라볼 권리를 가진 유일한 존재이다.“ 저는 약간 관객들이 이번 전시에서 그림을 보면서 이번만큼은 어떤 정의를 내리거나 모든 것을 명명해야 되는 위치에서 좀 벗어나 퐁티가 말한대로 어떤 화가의 눈이 되어 하염없이 그냥 그림을 바라볼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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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sunhwa(2), 160.0 x 110.0cm, oil on canvas, 2021
Q.. 관객들에게 작품을 감상하는 팁을 준다면?
작품을 감상할 때, 멀리서 보면 선명한 컬러 쉐이프들이 먼저 눈에 들어와요. 그러나 가까이 가면 배경의 패턴과 섬세한 움직임이 드러납니다. 그렇게 부분에서 전체로, 혹은 전체에서 부분으로 시선을 옮겨 가며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눈에 띄는 색상 외에도 레이어 간의 섬세한 덩어리들의 움직임의 흔적과 그로부터 발생한 화면의 세밀한 변화를 발견할 수 있어요. 또한 덩어리들의 진동과 서로 밀고 당기는 작용, 혹은 그들 간의 속삭임과 같은 상상을 하면서 그림을 감상하시면 보다 생동한 그림을 만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과정은 제가 수선화를 발견했던 경험, 나르키서스 작품을 그리며 느꼈던 희열, 그리고 신화속 나르키서스가 연못 위에 비친 자신을 발견하며 경험한 무아의 상태를 반영했습니다. 관객분들께서도 이러한 경험을 작품을 통해 함께 느끼실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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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기에 현지에서 화상 인터뷰 중인 김민우 작가님
Q. 앞으로 작업 계획은 무엇인지, 작가로서의 포부나 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앞으로 작가로서는 조금씩이라도 성장하면서, 제가 그려야 될 것들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그려내는 작가로 남고 싶습니다. 그리고 작업적으로는 계속해서 ’덩어리‘ 개념을 확장시켜 나가면서 나르키서스나 유사한 개념을 확장시켜 나갈 계획이고요. 현재 제가 프랑스 화가 폴 세잔의 작품을 많이 연구를 하면서 페인팅 자체에 대한 질문을 많이 던지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유동적인 성격이나 불확실한 그런 성격들을 세잔의 작품과 함께 연구하면서 제 화풍에도 녹여낼 방법을 고민하는 등 더욱 정진하고자 합니다.
YTN 홍보팀 이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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