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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요] 자폐인사랑협회 김용직 변호사"자폐,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은 게 아닌데..."

2024.11.19 오전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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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 날짜 : 2024년 11월 17일 (일요일)

■ 진행 : 이성규 교수
■ 대담 : 한국 자폐인사랑협회 김용직 회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성규 교수(이하 이성규) : 세계에서 태어나는 아기 백 명 중 한 명은 자폐증을 가지고 태어나고 우리나라에서는 백 명 중 세 명 정도가 자폐증 증상을 보인다고 합니다. 그저 늦되는 아이인 줄 알았던 내 아이가 자폐아라는 판정을 받았을 때, 부모의 심정은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은 긴 터널을 걸어갈 수밖에 없는 자폐인 가족들이 외롭지 않게 묵묵히 애쓰는 분을 모셨습니다. 별명이 ‘자폐인 가족의 대부’인데요. 변호사로 활동하시면서 20년 가까이 한국 자폐인사랑협회를 이끌고 있는 김용직 회장과 함께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 한국 자폐인사랑협회 김용직 회장(이하 김용직) : 네 안녕하세요.

◆ 이성규 : 자폐인사랑협회. 이게 어떤 단체입니까?

◇ 김용직 : 자폐성 장애인들은 스스로 자기 의사를 표현하기가 아주 어려운 장애인들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자기 권리 원고를 스스로 할 수 없는데 그동안에는 그런 단체가 없었죠. 그래서 20여 년 전에 처음으로 이런 단체를 만들자는 그런 컨센서스가 이루어져서 만들어진 단체고요. 자폐성 장애인과 가족들을 대변할 수 있는 공인된 유일한 단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이성규 : 지난달 26일로 기억하는데요. 서울시와 함께 ‘2024 오티즘 레이스’를 하셨더라고요. 성공적이었죠?

◇ 김용직 : 덕분에 아주 성황리에 잘 이루어졌습니다. 날씨도 좋았고요.

◆ 이성규 : 오티즘 레이스.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까?

◇ 김용직 : 우리 친구들은 체육 활동하기도 쉽지는 않은데. 달리기부터 이제 시작했었는데 가족들과 더불어 한번 달릴 수 있는 그런 기회를 마련하고자 했었고요. 그리고 이 장애가 수술이나 약으로 금방 치유될 수 있는 그런 장애가 아니라서 장기적인 그런 대응해야 되는 장애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마라톤이랑 아주 딱 어울리더라고요. 그래서 5년 전에 이런 행사를 시작했고요. 이걸 하면서 인식 개선도 하고 더불어 같이 즐길 수 있는 그런 하루가 됐으면 해서 만들었습니다.

◆ 이성규 :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뛰었어요?

◇ 김용직 : 공원 안에서 주로 우리 친구들은 4월 2일이 ‘세계 자폐인의 날’이라서 4.2km를 걷거나 뛰거나 그렇게 했고요. 일반 마니아들을 위해서는 단축 마라톤도 하고 10km도 하고 그렇게 했습니다.

◆ 이성규 : 올해로 다섯 번째더라고요.

◇ 김용직 : 다섯 번째인데 처음에 1~3회는 마침 코로나 팬데믹 시절이어서 버추얼 대회로 했었고요. 작년에 처음으로 오프라인에서 함께 대면해서 뛰었습니다. 그러니까 실질적으로는 두 번째로 큰 행사를 한 것입니다.

◆ 이성규 : 코로나 중에 가족 분들 참 힘드셨죠?

◇ 김용직 : 그럼요. 더더욱 힘들죠.

◆ 이성규 : 어디 나갈 수도 없고 집 안에서 전부 케어를 하시던 그런.

◇ 김용직 : 그런 시절에 우리가 IT 강국이라서 버추얼 대회가 또 순조롭게 잘 이루어졌고요. 이제 대면할 수 있는 때가 됐으니까 그런 행사를 하게 된 것이죠.

◆ 이성규 : 자폐인에 대한 관심이 많이 올라간 것 같은데. 이 자폐와 발달장애, 어떻게 다른 거죠?

◇ 김용직 : 한때는 자폐를 발달장애인이라고 말했던 때도 있었는데요. 법적으로는 발달장애는 중분류고 거기에서 소분류로 되면 지적장애랑 자폐성 장애 이렇게 두 가지 장애가 발달장애로 포섭되는 그런 개념입니다.

◆ 이성규 : 우리나라의 발달장애인은 얼마나 되죠?

◇ 김용직 : 발달장애인은 한 30만 명 정도가 되는 걸로 알려져 있고요. 그중에서 한 3만 정도가 자폐성장애인입니다. 그런데 아마 등록이 제대로 안 된 분들도 있고 그래서 한 4만 정도 되지 않을까. 이렇게 추정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 네. 근데 아까 오티즘 레이스 말씀을 드리면서 ‘자폐성 장애 운동 경기’ 이렇게 안 하고 ‘오티즘 레이스’라고 하셨잖아요. 근데 그 ‘오티즘’이라는 말을 회장님께서는 자폐성 장애인이라는 단어보다는 좀 더 선호하신다고 들었습니다.

◇ 김용직 : 이 자폐라는 말 자체가 스스로 폐쇄한다는 그런 말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실은 자폐성 장애인들이 스스로 폐쇄하는 게 아니고 우리가 다가가지 못하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고요. 자폐라는 말 자체가, 뭐가 꽉 막혀서 잘 안 될 때 우리가 ‘자폐적인 사회’ 이런 말까지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제일 나쁜 말로 쓰는 경향이 많아서 낙인 효과가 있고 그래서 이 자폐라는 말을 좀 용어를 바꿔야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티즘은 영문으로 ‘자폐성 장애’인데 오티즘은 그런 인식을 조금 덜 하게 될 수 있어서 그것도 어원을 따지면 뭐 비슷한 맥락이 있을 수 있습니다마는 세계화됐고 그래서 오티즘 레이스로 하면 자폐성 장애로 직접적으로 그런 낙인 효과는 좀 덜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기대를 갖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적절한 용어를 찾으려고 지금 학자들이랑 같이, 자폐학회라고 있는데요. 거기랑 같이 한번 용어를 한번 찾아보자 그러고 있습니다. 근데 몇 년 됐는데 적절한 게 잘 안 나오네요.

◆ 이성규 : 오티즘을 다룬 영화와 드라마들이 있는데 그중에 조승우 주연의 <마라톤>이라는 영화가 있고 또 드라마에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꼽을 수 있겠는데요. 우영우 등등의 드라마에서 보이는 그런 특징들이, 일반적으로 오티즘 가족들도 동의한다고 생각을 하세요?

◇ 김용직 : 그러니까 자폐성 장애의 특징을 조금 잘 표현하기는 했지만. 일반적인 자폐성 장애인들이 변호사가 되거나 특별 부분에 아주 뛰어나다거나 그렇게 연결될 수는 없고요. 대부분은 좀 어렵죠. 그러니까 일반인들 중에서 특출한 능력을 발휘하는 비율이랑 자폐성 장애인 중에서 특별하게 자라는 비율이 거의 비슷한 것으로 되어 있고요. 사실은 자폐성 장애라고 해서 무조건 다 잘하는 게 아니고 잘하는 애들은 많지는 않죠. 그래서 변호사를 자폐성 장애인도 할 수 있다. 그거는 뭐 경계성이거나 아주 특별한 좋은 친구들이 가능한 거고. 그러니까 아주 심한 자폐성 장애인들은 또 다른 상대적 박탈감이랄까 그런 것도 있긴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 드라마 자체가 자폐성 장애라는 것을 인식 개선하는 데는 좀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고요. 마라톤도 마찬가지로 그 당시에는 자폐성 장애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을 때인데 그게 널리 알려지고 그거를 통해서 저희 사랑협회가 만들어지는 계기도 됐고요. 그렇게 된 것이죠.

◆ 이성규 : 사랑협회가 만들어진 게 2006년이죠?

◇ 김용직 : 네. 그러니까 마라톤 영화에서 붐이 좀 불어서 그런 사람들끼리 모여서 2005년도에 그렇게 됐는데요. 저희가 이제 준비를 해서 2006년 1월 달에 창립을 했고 보건복지부의 인가는 1년 또 걸렸죠. 2006년 말에 받았으니까요.

◆ 이성규 : 그렇죠. 그 자폐성 장애, 오티즘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셨던 그 계기가 있죠? 늘 하시던 말씀이지만 다시 한 번 해주시죠.

◇ 김용직 : 저도 자폐성 장애라는 걸 알 수가 없었는데. 40년쯤 전에 저희 아들을 만나서 자폐성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렇게 돼서 여기에 관여하게 됐고요. 자폐성 장애가 그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잘 알려져 있지도 않을 때인데 아무튼 그때 책도 보고 뭐 이것저것 해서 알게 됐고 정말 어려운 장애라서 여기에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었죠.

◆ 이성규 : 네. 큰아드님이 82년생이더라고요.

◇ 김용직 : 네.

◆ 이성규 : 나이가 그러면 몇 살이에요?

◇ 김용직 : 이제 만 나이도 마흔이 넘었죠.

◆ 이성규 : 그러니까 40여 년 전에 말씀하셨듯이 자폐에 대해서 잘 알려지지도 않았고 그랬는데. 처음 ‘아, 내 아들이 자폐구나. 자폐성 장애구나.’ 이걸 아셨을 때. 그때가 판사로 재직하셨을 땐가요?

◇ 김용직 : 그때는 군법무관 시절인데. 저희 집사람이 또 의사라서. 저희는 좀 늦되는 걸로 생각하고. 어른들도 ‘아이 뭐 잘 클 수도 있다.’ 그런 말씀들을 하시고.

◆ 이성규 : 늦어지면 더 잘 된다고.

◇ 김용직 : 그래서 일면은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자폐성 장애라는 생각이 많이 드는 거예요. 우리 집사람이랑 같이. 그래서 그 당시에 저희는 외국에서 오신 소아정신과 선생님들이랑도 같이 봤더니 그분들도 아직 모른다고 하셔서 일면으로는 ‘정말 늦되지만 더 잘될 수도 있겠지.’ 이런 희망도 갖고 ‘아니야, 이거 정말 아닐 것 같아.’ 이런 생각도 하고 그게 막 교차됐었죠. 그런데 거의 한 살 될 무렵에는 저희는 누가 좋게 말하더라도 그건 좋게 말하는 걸로 보고 자폐성 장애로 거의 생각을 굳히고. 그렇게 해서 그 대응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 이성규 : 네. 판사라는 직업이 사랑협회 만들어내고 그전부터 그쪽 일을 하시는 데 좀 도움은 되셨나요?

◇ 김용직 : 판사는 그런데 사회랑 막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그런 직업이 아니라서 그거 자체가 도움이 될 수는 없고요. 그런데 제가 우연히 공부할 때 사회복지와 관련되는 신부님들을 만나가지고. 제가 연수원 시절에 사회복지법인 이사가 됐었어요. 그래서 이런 쪽에 관심이 많았는데 우리 아들이 직접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죠. 그런데 그렇게 되니까 조금 기적을 바라기도 하고 그래서 꽃동네도 찾아가고 그럴 일이 많았죠. 그리고 전문가들도 만나보고 그런 과정을 거쳤죠.

◆ 이성규 : 그리고 발달장애인법이 2014년에 제정이 됐잖아요. 이때 회장님 역할 많이 하셨죠?

◇ 김용직 : 제가 이제 사랑협회 만들고 나서 이게 법과 제도를 고쳐야지 일반적으로 다 혜택을 보는 거에 대한 인식이 좀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런데 마침 제가 또 행정고시 출신이라서 우리 동기생들이 또 국회의원도 많고 또 사법연수원 출신도 많았고 문재인 대통령도 다 동기니까. 그때는 의원이었죠. 그런데 그전부터 법을 만들어서 뭘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서 그때부터 전문가들을 모아서 저희 사무실에서 각 전문가들 다 모여서 초안도 만들어보고 별일을 다 했죠. 그래서 국회의원들도 수없이 만났죠. 그러니까 한 70~80명은 만난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걸 몇 년 동안 그렇게 해서 그리고 보건복지부 관계자분들도 만나고 여러 분들이 도와줬죠. 그런데 그게 한 10년은 걸린 것 같습니다. 근데 그런 거를 거쳐서 규모라든지 그 중심적인 거를 해서. 그래서 어떤 때는 포기했을 때도 있었고 그리고 각 당의 대선 공약이나 총선 공약으로 발달장애인법 제정을 또 넣게 만들고 그래도 뭐 어렵더라고요. 그런데 하여간 10년이 가까이 걸린 것 같습니다. 그래서 꾸준히 그걸 해서 또 만들어지려니까 아주 급하게 또 만들어지기는 했는데 우여곡절이 많았죠.

◆ 이성규 : 그러네요.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은 발달장애인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애쓰시는 한국 자폐인사랑협회 김용직 회장과 이야기 나눠보고 있습니다. 어떤 곡을 하나 추천해 주시겠어요?

◇ 김용직 :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우리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그 노래 신청하겠습니다.

◆ 이성규 : 네. 김용직 자폐인사랑협회 회장님이 추천하신 최승원의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듣고 오셨습니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은 변호사이자 한국 자폐인사랑협회를 이끌고 있는 김용직 회장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근데요. 처음에 자제분이 이런 증상이 있다고 거의 확신하셨을 때는 어떠셨어요?

◇ 김용직 : 좀 기가 막히기는 하죠.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이런 걱정을 같이 하는 분들이 분명히 있으실 텐데. 그래서 그런 분들도 찾아보고 돌아가신 황인철 변호사님 그리고 엊그저께 돌아가신 또 의사 선생님. 여러분들이 모여서 뭔가 하고 계시더라고요. 그런데 그때는 뭐 대처할 수 있는 조기 교실조차 없을 땐데. 그래서 우리가 한번 외국에 있는 걸 번역해서 스스로 한번 해보자. 조기 교실도 스스로 열고 그래서 자폐아 부모회를 또 꾸리고 그랬었죠.

◆ 이성규 : 판사복을 벗으신 이유도 그런저런 일들을 하시기 위한 일환이었나요?

◇ 김용직 : 아주 숭고하게 그럴 것까지는 없고요. 처음에 그런 일을 하면서 저는, 법관은 항상 그 사회적으로 그런데 드러나게 할 수는 없는 직업이라서 익명으로 그런 걸 했죠. 그러다가 부장판사로 있을 때 저는 그냥 처음에 법안에서 끝까지 가겠다는 그런 생각을 많이 한 사람인데. 그냥 그게 더 가치 있을까. 우리 애들을 위해서 그냥 돕기만 해서는 너무 진도도 안 나가는 것 같고. 그래서 처음에는 우리 애를 위한 시설을 좀 만들어 봐야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으로 나왔다가 이제 그것보다도 전체를 위해서 하면 자동적으로 좋아지니까 그걸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스스로 자립한다는 게 제일 어려운 장애가 자폐성 장애가 아닌가 싶고요. 뭐 말씀들 많이 하는데. 우리 자폐성 장애인이랑 뇌성마비 심한 그런 장애인들은 그 애를 케어하는 게 꼭 필요하니까 ‘애보다 하루 늦게 죽길 원한다.’ 그런 말을 많이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일반 장애가 그렇지는 않을 텐데 이건 특히 어려운 장애라서 그런 것도 있죠.

◆ 이성규 : 그래서 이제 일반적으로 자폐인 가족으로서 사시면서 고용 문제. 자립과 정말 깊은 관련성이 있는 분야가 고용 쪽인데요. 이 문제 이거 어떻게 풀어야 될 것 같습니까?

◇ 김용직 : 저도 그냥 중증장애인을 그냥 부양하는 것보다 적절하게 근로를 통해서 해야지 스트레스도 해소되고 오히려 비용이 덜 든다고 이렇게 생각하고 있고요. 근로는 아시다시피 헌법상으로도 권리이자 의무인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그만큼 중요한 건데 자폐성 장애인 특히 중증의 자폐성 장애인은 근로라든지 고용하기가 너무 어렵거든요. 그래서 우리 일반적인 고용을 생각하면 안 되고 그래도 고용을 하게 하는 그러니까 노동을 하는 적절한 시간을 줘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뭐 고용의 중요성은 다들 얘기하는데 장애인고용공단에서도 그냥 쉽게 숫자만 한다고 그럴까. 그런 게 많아서 중증에 오히려 집중해야 되는데. 그 경증 분들은 제도가 바뀌어서 넉넉히 또 고용이 될 수가 있거든요. 그런데 정말 고용이 안 되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 노력을 해야 되는데 그게 조금 부족하지 않나 싶고요. 지금은 이제 장애 예술인들 해가지고 미술, 음악 이런 식으로 회사에 고용하는 식으로 하는데. 회사에 가서 하면 상관없는데 집에 있으면서 비정상적인 그런 게 많아서 제 생각에는 고용을 조금이라도 하는 보호 작업장 같은 데에 그 최저임금을 다 줄 수는 없지만 일부라도 보존해 주는 그런 방식으로 해서 고용을 장려해야 되지 않을까. 그래야지 스트레스 해소가 돼서 오히려 소위 말하는 도전 행동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하여간 고용 문제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학교 졸업하고 나서 일정한 수준의 각자한테 알맞은 그런 직업을 우리가 비장애인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8시간 그거 말고 어떤 친구는 2시간도 되고 어떤 친구는 1시간 이런 식으로 거기에 맞는 거를, 그런 데 더 집중해 줬으면. 공연공단이나 정부에서. 그런 생각이 좀 많이 있습니다.

◆ 이성규 : 노동이 포함된 삶의 터전을 이렇게 만들어서 거기서 지낼 수 있게 하고 또 일도 할 수 있게 하고 외출도 좀 할 수 있게 하고 그렇게 좀 됐으면 좋겠네요. 보조 인력이 좀 많이 붙어줘야 되겠지만요. 아버님으로서 이렇게 살아오시면서 지금 소회를 들었는데. 다른 가족들 사모님과 또 세 자녀 두셨죠? 나머지 두 형제. 이 영역으로 넘어가면 또 사회 역할이 또 추가돼야 될 것 같아요.

◇ 김용직 : 다른 장애도 뭐 그렇지만 특히 자폐성 장애는 가족 지원이라는 게 굉장히 필요하고요. 거기에 시간을 다 투여하게 되니까요. 그리고 사실 말씀 듣고 나서 저도 반성이 되는 것이 그 나머지 두 아이들은 아무래도 ‘자기 스스로 잘하겠지’라고 생각하고 저희가 관심을 덜 가질 수밖에 없었더라고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까 그래서 미안하죠. 근데 지금 보면 그 친구들은 그런 거를 저희가 하는 걸 통해서 중증의 장애인들과 더불어 살아 나가는 걸 좀 배우고 하지 않았을까.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지금 말씀하신 대로 비장애 가족들 그런 친구들한테 더 마음을 쓰지 못한 거. 그게 아주 잘못이라고 생각하고요. 중증장애 가족이 있더라도 나머지 가족들에 대해서도 좀 신경을 쓰셔야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저 스스로 반성하는 부분입니다.

◆ 이성규 : 그런데 이제 그건 가족의 일원으로서 하시는 거고 이 또한 사회적 다가감이 있어야 되지 않나 하는 그런 생각입니다.

◇ 김용직 : 그래서 저희가 캠프를 할 때도 형제자매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꼭 같이 합니다. 그 사람들도 마찬가지 다른 종류의 스트레스를 받게 되니까요. 그거를 또 어루만져줘야 된다고 생각을 해서요.

◆ 이성규 : 이와 관련해서 ‘신탁 의사결정 지원센터’ 이런 게 있던데. 이게 뭐죠?

◇ 김용직 : 그거는 부모 사후에 그걸 도와줄 상황이 형제도 쉽지 않고요. 형제가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그래서 아시는 대로 성년후견인법까지 만들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걸로 다 해결이 안 되더라고요. 그러니까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제공하는 기초적인 그런 서비스 외에 그 예산이 다 될 수가 없으니까 부모들이 아픈 손가락을 위해서 남겨놓은 재산을 그냥 넘겨주기가 너무 어렵거든요. 당사자가 스스로 못하니까. 그걸 성년후견인을 통해서 하려는데 성년 후견인도 그걸 담보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런데 신탁은 특정 목적을 위해서만 사용할 수 있는 거라서 그 돈을 제공한 부모나 이런 분들이 목적을 다 정해놓으면 그게 다른 데는 쓸 수 없는 그런 효과를 갖게 됩니다. 그래서 신탁이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는데 저희가 그 신탁의 개념을 법조인이니까 아니까 저희가 10여 년부터 한번 그걸 시범 사업을 해본 거죠. 신탁을 통해서 이렇게 된다는 거를.

◆ 이성규 : 책도 좀 나오지 않았었나요?

◇ 김용직 : 네. 그런 것도 좀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거를 활용해서 신탁을 통해서 재무 관리를 좀 해주는 거 하고. 또 큰 거는 부모들이 일정 규모의 재산을 우리 장애인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거를 장애인 특별수여신탁이라고 하는데요. 그거는 이제 별도의 법이 필요합니다. 여러 가지 그걸 규율할 수 있는. 그래서 그런 법을 또 만들려면 이게 보통 일이 아닌데요. 그거를 최종 목적으로 하고 지금 현재 발달장애인 중에서 돈을 어느 정도 버는 친구들도 있지 않습니까? 그거를 관리를 해줄 수 있는 거를 저희가 시범적으로 신탁 사업으로 하고 있고. 국회에서도 그거라도 우선 좀 키우자 그래가지고 이번에 조금 증액이 되고 그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걸로 연습을 하고 저희가 생각하는 장애인 특별수요 신탁을 통해서 부모들의 돈도 활용해 가지고 당사자들을 위해서 서비스를 조금 더 향상시킬 수 있는 그런 거를 해보려고 합니다.

◆ 이성규 : 그게 좀 성공적으로 잘 진행됐으면 좋겠고요. 이제 올해도 다 갔습니다. 내년도 계획을 말씀하시면서 마무리해 주시죠.

◇ 김용직 : 네. 모든 게 그렇지만 조기에 적절히 중재되는 것이 너무 중요해서 WHO에서 개발한 CST라고 부모, 양육자들을 훈련해서 우리 친구들에게 적절한 교육을 하는 그런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걸 더 확대하고 아까 말씀하신 신탁 관련 법제도 잘 해서. 저는 가톨릭 신자입니다마는 프란치스코 성인이 말씀하신 대로 그 도구로 잘 활용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그런 작정입니다.

◆ 이성규 :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자폐인을 위해 앞장서고 계신 한국 자폐인사랑협회 김용직 회장과 함께 했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김용직 : 감사합니다.

◆ 이성규 :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는 YTN 라디오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서 다시 들으실 수 있습니다.


YTN 이은지 (yinzhi@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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