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의 신문기사입니다.
"유죄냐, 정당방위냐? 혀 잘린 키스·미·킥"이라는 제목인데요.
그해 5월, 경남 김해에 살던 18살 최말자 양은 자신을 덮치려던 20대 남성의 혀를 깨물었다가 중상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정당방위를 주장했지만, 이듬해 법원은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합니다.
후에 이 사건은 정당방위를 다툰 대표적인 사례로 형법학 교과서에도 실립니다.
1995년 대법원이 법원 100년사를 집대성한 [법원사]에도 '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으로 소개되지요.
그 사이 세상도 변했습니다.
1990년에 나온 김유진 감독의 영화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1988년 한 여성이 귀갓길에 성폭행을 하려던 남성의 혀를 자른 실제 사건을 소재로 했는데, 최 씨 사건과 달리 이 사건은 2심과 대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됐죠.
사건으로부터 56년 만인 2020년 5월, 이제 일흔을 훌쩍 넘긴 최말자 씨가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수사 당시 검사가 불법 구금을 하고 자백을 강요했다는 이유에서였는데요.
최 씨의 목소리 직접 들어보시죠.
[최말자 / 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 피해자(지난 2021년 11월) : 그렇게 치욕스러운 조사를 받았어요. 그것도 모자라서 나중에는 결혼하라, 그 미친 사람하고 결혼하라 그래요. 어떻게 결혼하겠어요? 그래서 못 한다고 하니까 돈을 주고 합의를 하랍니다. 그게 말이 됩니까, 검사가. 왜 돈을 줍니까. 남자 장애 만들고 불구 만들었다는 그 책임에서 합의를 하랍니다, 결혼은 못 하겠다 하니까. 왜 돈을 줍니까. 나는 죄가 없어도 지금 구속이 되어 죄인으로 사는데, 죄가 있다면 징역을 살겠습니다. 돈은 10원도 못 줍니다.]
부산지법과 부산고법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며 최 씨의 청구를 기각했는데요.
하지만 대법원이 그제(18일), 재심 청구를 기각한 원심결정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불법 구금에 관한 일관된 진술은 충분히 신빙성이 있고,
판결문과 신문 기사 등을 통해 알 수 있는 일련의 사정들이 제시됐다며
재심 청구를 바로 기각할 것이 아니라 사실 조사를 거쳐 다시 판단하라는 겁니다.
성범죄 피해자가 아니라 중상해 피의자로 구금돼 조사를 받고 유죄 선고까지 받았던 18살 소녀.
이제 78살이 된 최말자 씨가 60년 만에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YTN 나연수 (ysna@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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