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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은의 영화이야기] 은행나무가 지켜본 200년의 시간들, 침묵의 친구]()
▲ 영화 <침묵의 친구> 포스터
일디코 엔예디 감독의 세계에서 소통은 언제나 언어 너머의 영역에 존재해 왔다. 장편 데뷔작 <나의 20세기>(1989)가 근대 과학의 여명기 속에 살아가는 두 자매의 엇갈린 운명을 환상적인 필치로 그려냈다면,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 수상작인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2017)는 꿈속에서 사슴이 되어 만나는 남녀를 통해 육체의 한계를 넘어선 공감대를 상상해 본 결과였다. 이처럼 감독이 평생 탐구해 온 소통의 불완전성과 초월적 연결이라는 테마는 신작, <침묵의 친구>에 이르러 인간의 수명을 훌쩍 뛰어넘는 은행나무의 연대기로 확장된다.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여러 세대의 고독을 묵묵히 지켜본 이 침묵의 관찰자는 전작들이 보여준 생물학적 서정성을 전 우주적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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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은의 영화이야기] 은행나무가 지켜본 200년의 시간들, 침묵의 친구]()
▲ 영화 <침묵의 친구> 스틸컷
홍콩의 신경과학자 ‘토니’(양조위)는 독일 마르부르크 대학에 새로 부임해 인지과학을 가르친다. 그러나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캠퍼스는 전면 봉쇄되고, 토니는 학교 시설 관리인과 단둘이 남겨진다. 예기치 못한 정적 속에 고립된 이방인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외부 세계는 식물원의 거대한 은행나무뿐이다. 타인과의 연결이 물리적으로 차단된 이 절대적 고독의 시간은 역설적으로 그가 식물의 지각 체계라는 낯선 영역을 탐구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토니는 세계적인 식물학자 ‘엘리스’(레아 세두)에게 화상 통화로 도움을 청하고, 은행나무와 소통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다. 토니의 실험과는 별개로 영화는 1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나무의 기억 속에 남겨진 인간들을 소환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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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침묵의 친구> 스틸컷
1908년, ‘그레타’(루나 웨들러)는 보수적인 교수들의 모욕과 편견을 이겨내고 마르부르크 대학 식물학부 최초의 여대생이 된다. 그러나 여성의 지성이 엄격히 통제되던 시대에 그레테가 마주한 식물원은 남성 중심적 권위가 지배하는 배타적 구역이다. 그녀는 부당하게도 방탕하다는 모함을 받고 하숙집에서 쫓겨나 사진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사진 기술을 배우게 된 그레타는 카메라가 식물의 구조를 기록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깨닫고, 식물의 곡선과 질감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그레타의 에피소드는 35mm 흑백필름으로 촬영되어 사회의 경직성과 그레타의 열정을 명암 대비로 극명하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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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은의 영화이야기] 은행나무가 지켜본 200년의 시간들, 침묵의 친구]()
▲ 영화 <침묵의 친구> 스틸컷
이 흑백의 영상은 16mm 컬러 필름으로 촬영된 1972년의 캠퍼스 풍경과 교차된다. 서툴고 내성적인 문학도 ‘하네스’(엔조 브룸)는 위층에 살고 있는 히피 기질 다분한 ‘군둘라’(마를레네 부로우)를 짝사랑한다. 군둘라는 창가에 제라늄을 키우며 식물이 인간과 인간의 기분에 반응하는지 연구하고 있는데, 잠시 여행을 떠나면서 하네스에게 제라늄 관리를 맡긴다. 혼자 남겨진 하네스는 더 많은 실험을 통해 제라늄이 자신의 존재와 기분에 반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점차 이 작은 생명체와 교감하게 된다. 하네스가 제라늄의 전자기적 반응을 살피는 과정은 물리적 한계로 인한 소통의 불가능성을 기술적 장치로 극복해 보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사실 하네스의 장치들은 토니의 최첨단 장비에 비하면 원시적인 것들이지만, ‘침묵’하는 자연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의지가 세대를 넘어 이어지고 있음을 입증하기에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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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은의 영화이야기] 은행나무가 지켜본 200년의 시간들, 침묵의 친구]()
▲ 영화 <침묵의 친구> 포스터
일디코 엔예디 감독이 선택한 세 시대의 단편들은 공히 인간의 유한한 시간이 거대한 자연의 생애 안에서 어떻게 명멸하는지 보여준다. 1908년의 흑백 필름에 박제된 저항의 순간, 1972년 16mm 화면에 포착된 청년의 사랑, 그리고 2020년대 팬데믹으로 고립된 현대인의 초상은 모두 소통이라는 과제를 위해 한 그루의 은행나무 아래로 수렴된다. 200년 가까운 세월을 견뎌온 은행나무의 침묵은 그의 이야기에 관심을 두고 경청하려는 인간의 겸손함 앞에 사라진다. 영화 내내 나무의 일부만 비추던 카메라가 서서히 멀어지면서 나무 전체를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한 인간의 시간이 끝나도 지속될 나무의 생애에 우리 시대는 어떤 나이테로 새겨지게 될까. 몇 편의 사적인 실험 일지가 인류의 인문학적 성찰로 이어지도록 설계된 이색적인 작품이다.
■ 글 : 윤성은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 전주국제영화제 이사)
YTN 브랜드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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