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김환기와 함께 한국 추상미술의 길을 만든 유영국!
감각적인 색채와 절제된 구도만으로 폭발적 에너지를 뿜어내는 독보적 작가지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것도 사실입니다.
최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대규모 회고전은 그래서 더 귀한 전시인데요.
지금 이 시대, 화가 유영국이 재조명돼야 하는 이유 짚어봤습니다.
김정아 기자입니다.
[기자]
산 그리고 산,
고향 울진의 자연에서 얻은 에너지가 화폭에 그대로 옮겨졌습니다.
강렬하고 밀도 높은 색채와 절제된 듯 대담한 구도!
유영국에게 자연은 눈에 보이는 풍경을 넘어 모든 것을 포용한 내면의 심상입니다.
[최은주 / 서울시립미술관장 : 그는 강렬한 색채와 절제된 기하학적 구성을 통해 자연을 내면의 풍경으로 응축한 심상의 상을 구축했습니다.]
처음부터 추상이었습니다.
해방과 한국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단 한 번의 타협도 없었습니다.
[이주헌 / 미술평론가 : 유영국 선생의 추상은 어떤 다른 대상을 참고한 게 아니라 아주 순수한 추상을 시도했습니다. 그래서 어찌 보면 김환기 선생보다도 더 전위적인….]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컸던 과묵했던 아버지!
[유진(아들) / 유영국문화재단 이사장 : 어떤 게 좋은 그림이냐고 여쭤본 적이 있어요. 그러니까 아버님이 '네가 봐서 좋은 것이 좋은 그림이다'라고 얘기하셨어요.]
그림에 대한 열정을 뒤에 두고 고기잡이 배에 몸을 싣기도, 양조장을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1964년, 마흔아홉이 돼서야 첫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이 전시회를 기점으로 유영국은 모든 사회적 활동을 내려놓고 전업 작가를 선언합니다.
[여경환 /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 본인 스스로는 이 기간(1964년 이전)이 작업에 온전히 투신하지 못했던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표현을 해서, 내가 시간을 벌충해야 한다는 그런 어떤 압박감들 때문에 더더욱 1964년에 그런 결심이 이루어졌지 않았을까….]
그러나 시대를 앞서간 그림은 팔리지 않았고 환갑을 앞두고 처음으로 그림이 팔렸습니다.
그림을 알아본 사람은 고 이병철 회장이었습니다.
[유진(아들) / 유영국문화재단 이사장 : 아버님이 희로애락 표현이 없었어요. 전혀 사시면서, 그런데 어머님이 저한테 편지에 '아버님 그림이 팔렸어!' 하고 이렇게 감격해서 한 줄 써서 보내셨어요. 그래서 제가 그런 줄 알았죠.]
색채의 화가, 한국의 몬드리안으로 불리며
김환기와 더불어 한국 추상미술의 발판을 마련한 거장이지만
제대로 조명받기 시작한 건 2010년이 넘어서입니다.
[이주헌 / 미술평론가 : 한편으로는 차가운 듯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굉장히 따뜻한 이런 그 특징을 갖고 있고요. 어찌 보면 그런 K컬처의 선두 주자라고 그럴까요? 굉장히 인터내셔널하고 보편적인 요소와 더불어서 굉장히 한국적인 요소가 뚜렷이 담겨 있기 때문에….]
2023년 뉴욕에서 첫 해외 개인전을 열었고
이듬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도 성황리에 전시회를 마쳤습니다.
[여경환 /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 한국 미술사에는 드문 감각의 화가인 거예요. 유영국이라는 이름은 다시 발견되어야 하는 이름인 것 같아요.]
추상의 기초를 다진 일본 유학 시절부터
추상의 절정을 보여준 60~70년대,
병마에도 끝까지 붓을 놓지 않았던 말년의 평온한 작품까지
전시장에 펼쳐진 170여 점 작품들을 돌아보면 한국 추상미술 거장의 60년 예술 여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습니다.
YTN 김정아입니다.
영상기자 : 최윤석
YTN 김정아 (ja-kim@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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