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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하영' 증조부, 안상호는 누구? [한방이슈]

한방이슈 2026.08.25 오후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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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1월 5일 자에는 한 조선인 의사의 부고 기사가 실립니다.

'내선가정의 성공자'

의사의 부고인데, 정작 제목에서 가장 먼저 강조한 건 의술이 아니었습니다.

일본인 부인과 화목하게 살았다는 이 남자.

한국인 최초로 일본에서 정식 의사 자격을 얻은 인물이면서, 한때 대한제국 황실을 진료한 의사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토 히로부미의 추도회 준비위원 명단에서도 그 이름이 발견됩니다.

도대체 안상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안상호는 고종 9년인 1872년 태어난 거로 의학사 연구에 기록됐습니다.

또 다른 기관에선 1874년 태생으로 적고 있어 정확한 출생연도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당시 조선은 그야말로 격동기였습니다.

그즈음 미국이 강화도를 공격한 '신미양요'가 발생했고, 서양과의 통상을 거부한다는 척화비가 전국 곳곳에 세워졌습니다.

바깥세계에 빗장을 잠그던 시대에 태어난 아이는 훗날 일본으로 건너가 서양의학을 배우게 되는 겁니다.

안상호는 서울에서 하급 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생활에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시대를 보는 눈만큼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과거시험을 공부하던 시대가 저물고 외국어가 새로운 출세 수단으로 떠오르던 시기.

안상호가 선택한 건 일본어였습니다.

안상호는 1898년 '관립 일어 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같은 해 정부 유학생으로 뽑혀서 일본 도쿄에 가서 자혜병원 의학교에 들어가 서양의학을 공부합니다.

일본어를 배우겠다는 선택 하나가, 훗날 직업과 결혼, 그리고 삶의 방향까지 결정하는 출발점이 된 셈입니다.

1902년, 조선은 대한제국이라는 이름으로 근대화를 서두르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서양의학을 배운 한국인 의사는 손에 꼽았습니다.

바로 이때 안상호는 일본에서 의학교를 졸업합니다.

그리고 의사 개업 자격까지 따냅니다.

졸업한 뒤 일본에 남아 병원에서 일하던 안상호는 뜻밖의 환자와 만나게 됩니다.

1906년 러일전쟁 승리 기념 행사를 위해 고종의 아들인 의친왕이 특사 자격으로 도쿄에 왔는데,

의친왕이 병이 나자 수행원들이 현지의 한국인 의사를 수소문했고, 자혜병원에 있는 안상호에게 연락했습니다.

이 진료를 계기로 두 사람의 인연이 이어집니다.

안상호는 1907년 조선으로 돌아오는데요.

그리고 이듬해 의친왕은 전 군수 김성기와 안상호에게 3천 원을 내주며 '자선병원'을 세우도록 맡깁니다.

당시 신문에는 이 병원이 가난한 노동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추진됐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1909년 11월 23일 매일신보에는 의친왕이 직접 안상호의 진찰소를 찾아갔다는 기록도 등장합니다.

이 진찰소 때문에 안상호는 최초의 근대 개업의로 평가받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자신의 이름을 내건 개인병원을 처음으로 연 한국인 의사였던 셈입니다.

[하영 / 배우 : 내가 듣기로는 양의학으로 한양에 이제 개업을 아마 처음 하신 의사라고…]

당시 조선 의료계는 일본인 의사들이 주도하던 상황이었는데,

1908년 한국인 의사들은 자신들의 모임인 '의사연구회'를 만듭니다.

이 모임의 부회장이 안상호였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안상호는 새로운 의학을 들여오고 한국인 의사들의 자리를 넓히려 했던 인물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불과 1년 뒤, 일본이 조선을 강제병합하기 1년 전.

1909년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합니다.

서울에서는 이 죽음을 애도하기 위한 '대한국민추도회'가 추진됩니다.

준비위원은 100명.

그 명단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안상호'라는 이름 석 자가 나옵니다.

안상호가 직접 자원했는지, 아니면 당시 유명 의사이자 황실 진료를 담당하던 인물이어서 선정돼 통보를 받은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명단 하나만으로 안상호가 갑자기 친일로 돌아섰다고 볼 수 있을까요?

답을 찾으려면 이후 행적을 더 봐야 합니다.

일제의 국권침탈 6년 뒤인 1916년.

당시는 일제가 헌병 경찰을 앞세운 무단통치를 이어가는 시기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의사나 사업가처럼 조선의 유력 인사들을 식민 통치 안으로 끌어들이려던 시기였습니다.

그때 경성의 관료, 경제인, 의료인 등이 참여한 '대정친목회'가 만들어졌습니다.

조선인과 일본인의 친목과 융화를 내세운 단체였습니다.

안상호는 이 단체의 평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는데요.

배우 하영의 소속사도 1916년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안상호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1918년 12월.

이번엔 안상호 개인이 아니라 가족 전체가 신문에 등장합니다.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 기자가 고종의 아들인 영친왕과 일본 황실의 마사코, 즉 훗날 이방자 여사의 결혼을 앞두고

조선인과 일본인이 결혼해 사는 가정을 소개하기 위해 안상호의 집을 찾아갑니다.

기사 제목부터 강렬합니다.

'전연히 내지화한 의사 안상호 씨의 가정'

쉽게 말하면, 완전히 일본식으로 살아가는 집이라는 의미입니다.

당시 안상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일본 사람과 똑같다. 지금 조선 옷은 한 벌도 없다. 그리고 음식도 매운 것은 조금도 못 먹는다. 조선 사람과 상종하는 일이 없으니 불편할 일도 없다"

안상호는 일본 유학을 계기로 일본인 여성과 결혼해 5남매를 뒀습니다.

일본에서 공부한 조선인 의사, 일본인 아내, 일본식 생활을 하는 가족.

'조선과 일본이 하나'라는 모습을 선전하기에 이보다 눈에 띄는 사례도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안상호는 전혀 다른 이야기에서 거론됩니다.

1919년 1월 고종이 덕수궁 함녕전에서 갑작스럽게 사망합니다.

윤치호는 자신의 일기에, 염을 하는 자리에 있었던 이에게 들었다며

고종의 팔다리가 심하게 부어 바지를 찢어야 했고, 이가 빠져 있었으며, 목에서 배까지 검은 줄이 있다고 기록했습니다.

'고종이 독살됐다'는 소문이 퍼졌고, 그 소문 속에 안상호의 이름도 등장합니다.

고종의 딸, 덕혜옹주의 일본 유학 시절 동창생의 증언 채록문엔 이런 내용도 나옵니다.

"'전의'인 안상호가 홍차에 비소를 넣어 궁녀를 통해 황제에게 드시게 했다"

이처럼 후대 기록엔 안상호가 독약을 제공했다는 등 죽음에 관여했다는 여러 형태의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하지만 안상호가 고종의 사망에 관련돼있다는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관련 연구에서는 당시 안상호가 고종 곁에 항상 있던 주치의가 아니라 황실의 촉탁 의사이자 개업의였고,

고종이 위급하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궁으로 들어간 거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혹을 겪고도 안상호와 조선 왕실의 인연은 계속됩니다.

1926년 고종의 아들이자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인 순종의 건강히 급격히 나빠집니다.

순종은 그로부터 2주 뒤인 1926년 4월 25일 숨을 거둡니다.

당시는 3·1 운동 이후 일제가 '문화통치'를 하던 시기였지만,

순종의 죽음은 새로운 저항의 불씨가 됩니다.

순종의 장례일인 6월 10일, 서울에서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6·10 만세 운동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약 1년 8개월 뒤. 1927년 12월 31일 안상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닷새 뒤 '매일신보'가 그의 죽음을 크게 다뤘습니다.

다시 부고 제목을 보겠습니다.

'근대 의학의 선구자'도

'왕실 의사'도 아닌

'내선가정의 성공자'


나라가 사라지고 세상이 완전히 뒤바뀌던 시대.

조선이 대한제국을 거쳐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동안 근대 엘리트로 성공한 한 조선인 의사가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갔는지를 봤습니다.

그리고 그의 선택 이후 의사의 길은 자신을 포함해 4대에 걸쳐 후손들에게도 이어졌습니다.


YTN 김승환 (ksh@ytn.co.kr)
YTN 장동욱 (dwjang@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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