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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토크] 인생을 연기하는 배우 박인환

2015.10.23 오후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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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환, 배우

[앵커]
오늘 공감토크의 주인공은요. 우리 시대 아버지부터 노년의 로맨티스트까지 우리의 인생을 연기하는 배우입니다. 박인환 씨와 함께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이번 주에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한창이었는데 선생님께서 이산가족의 애환을 노래하는 그런 뮤지컬에 이번에 참여하시게 됐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작품인가요?

[인터뷰]
6.25 때 헤어져서 1983년도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있었어요. 그걸 기회로 또다시 상봉하는 이산가족에 대한 얘기예요, 한마디로.

[앵커]
뮤지컬 제목이 서울 1983, 이렇게 되는 거죠? 이산가족 상봉 얘기를 다루었다고 설명을 해 주셨는데요. 선생님은 거기에서 어떤 역할을 맡으셨나요?

[인터뷰]
저는 6. 25 때 이북으로 납치당했다가 몇 십 년 후에 다시 상봉하는 그런 남편, 아버지의 역할을 맡았습니다.

[앵커]
공교롭게도 이번에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끝나는 시점과 작품이 30일부터 시작이 되는데, 시작하는 시점이 거의 맞물려 있잖아요. 이렇게 기획이 된 건가, 많은 분들이 생각을 하실 텐데요.

[인터뷰]
글쎄요, 정말 우연찮은 계기로 들어 맞았는데. 연극을 옛날부터 그 시대의 거울이라고 표현을 했어요. 그 시대의 상황을 무대에 형상화 해야 된다. 그 시간이 지나면 영상물이나 특히 그림, 시, 소설은 먼 훗날에도 다시 볼 수 있는데 연극은 훗날에는 볼 수 없는 건데요.

그러니까 그 시대를 반영하는 게 연극이라면 너무 시기가 적절한 거예요, 이번 작품이. 의도적을 기획된 것은 아닌데 우연히 정말 시의적절한 작품인데요. 얼마나 이 아픈 얘기를 무대에서 잘 보여줘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앵커]
이산가족 상봉 행사의 여운이 그대로 무대로 옮겨지지 않을까 싶은데 얼마 전에 영화 국제시장이 상당히 호평을 받았잖아요. 이게 뮤지컬판 국제시장이라고 소개도 되던데요. 좀 닮아있는 부분이 있다고 보십니까?

[인터뷰]
보는 각도에 따라서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죠. 6.25를 통해서 한 가족이 헤어져야 됐고, 국제시장이라는 영화는 아들이 가족을 돌보며 이끄는 얘기고, 우리 작품은 한 어머니가 4남매를 혼자 돌보면서 살아가야 하는 얘기인데 큰 비극은 6. 25를 통해서 벌어졌다는 거죠.

그래서 가족의 헤어짐과 가족을 일으키는, 우리 작품에서는 어머니가 주인공으로 험난한 인생을 살아온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앵커]
뮤지컬이다 보니까 그 작품에 나오는 노래도 심금을 울린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들어보니까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이 곡이 굉장히 심금을 울린다고 하던데요. 어느 부분에 이 노래가 나오는 건가요?

[인터뷰]
엄마가 그러니까 제 부인이 이산가족 찾기 행사에 나가서 그 장면에도 이 노래가 나오고 엔딩에 어머니가 돌아가십니다. 그때도 이 노래가 나와요.

[앵커]
이 노래가 어떻게 보면 이산가족 애환을 상징하는 그런 노래의 추억이 담겨 있는 노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인터뷰]
그렇죠.

[앵커]
뮤지컬에 대사도 상당히 가슴을 울리는 대사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선생님이 기억하시는 대사 중에 어떤 대사가 가장 심금을 울립니까? 조금만 좀 읊어주시죠, 대사를.

[인터뷰]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박갑희, 살아 있었구만. 당신 눈매가 그대로라고 할 것 같아. 못 알아보면 어쩌나 했는데 고생이 많았구먼. 손마디가 거친 걸 보니 그걸 알겠어. 그걸 알아. 헤어질 때 이 말이 참 가슴 아파요. 부디 남은 생 행복하게 잘 살고요, 내가 그렇게 간절히 기도할 것이니.

[앵커]
가슴이 찡한데 이번에 이제 남북 이산가족 행사가 있었고 많은 분들이 60여 년 만에 가족을 만나는데, 모두 한눈에 알아보고 얼싸안는 그런 모습이 지금 막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부부 상봉을 뮤지컬 속에 담아내신 거죠?

[인터뷰]
네.

[앵커]
상대 역할로 나문희 선생님이 출연하시게 됐는데 정말 많은 작품을 같이하셨잖아요. 이번이 몇 번째 작품 정도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인터뷰]
정확하게 세어보지는 않았어요.

[앵커]
엄청 많으시죠?

[인터뷰]
네. 영화도 몇 번 같이했고 조용한 가족, 수상한 그녀, 드라마는 수없이 많이 했어요.

[앵커]
그래서 두 분을 소울메이트다, 이렇게 표현도 하더라고요. 마음에 드십니까?

[인터뷰]
글쎄요, 그 정도까지야 되겠어요?

[앵커]
나문희 씨랑 같이 캐스팅이 계속된다는 건 두 분의 호흡이 그만큼 잘 맞고 또 굉장히 잘 어울리는 그런 커플이라고 많은 분들이 생각하시기 때문일 것 같은데요. 나문희 선생님이랑 실제로 작업하다 보면 어떤 점이 가장 잘 맞으십니까?

[인터뷰]
아직도 소녀 같은 그 순수한 감성을 지니고 계세요. 그 연세에. 참 순수하시고 그런 면이 참 좋아요.

[앵커]
요즘에 뮤지컬 준비 한창 하시다 보니까 이산가족 상봉행사, 누구보다 눈여겨서 보셨을 텐데 이번에 65년 만에 부부 상봉하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어떤 느낌이 드셨나요?

[인터뷰]
가슴이 아프죠. 이 작품에서 저도 헤어졌는데 이북에서 가족을 가졌어요. 아들하고 딸이 있어요. 그런데 부인은 지켰거든요. 이사도 안 가고 청량리에서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고. 또 내가 만나면 주려고 신발하고 코트를 항상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나는 가정을 이북에 갖고 있고 또 헤어져야만 되는 그런 아픔이 있으니까 만나서 즐거움은 순간이고 또 다른 아픔은 계속되는 것 같아요.

[앵커]
지금 선생님 뒤로 나오는 할머님이 이순규 할머님이시고요. 이번에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서 60여 년 만에 남편을 만나신 할머님입니다. 지난 잃어버린 시간과 또 앞으로 함께할 시간을 기약하기 위해서 손목시계를 선물하셨다고 하고요.

남편이 찾아오지 못할까 봐 이사를 65년 동안 안 가셨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그 작품의 내용과 맞닿아 있는 사연이 아닌가 싶은데요.

[인터뷰]
네, 그렇네요.

[앵커]
할아버지 눈빛을 보면 뮤지컬 공연하실 때 그 느낌이 이해가실 것 같은데요. 어떤 느낌이신가요?

[인터뷰]
얼마나 절실했겠어요. 얼마나 그립고. 뭐 말로 표현할 수 없겠죠.

[앵커]
앞서서 기억에 남는 대사 중에 마지막 대사도 읊어주셨는데 그만큼 이산가족 상봉 행사로 가족을 만난 분들의 기쁨이 또 헤어지고 나면 굉장히 사무치는 아쉬움으로 그렇게 남게 될 것 같은데요.

[인터뷰]
그렇죠, 그런 대사가 있는데 우리 통일이 되면 또 만날 수 있을까, 이렇게 묻는데 누구도 그 대답을 정확히 해 줄 수가 없겠죠.

[앵커]
44년의 연기 인생 동안 선생님의 인생 뉴스, 가장 큰 인생 뉴스를 한 가지 꼽자면 어떤 게 있을까요?

[인터뷰]
글쎄요.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것 중 하나고 정말 잘됐다라고 생각하는 건 제 아내와 결혼한 거겠죠.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여러 가지로 어렵고 힘들었는데 가장 강력한 지원군을 만난 거죠.

알다시피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연기자 생활이라는 건 참 불규칙하고 여러 가지로 힘든데 제 단독의 매니저 역할을 하랴, 코디 역할을 하랴. 또 모니터, 연극이건 방송이건 꼭 모니터를 해서 문제점 지적해 주고. 그런 게 가장 크게 저한테 힘이 됐고,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앵커]
연극활동을 하시다가 이제 TV 연기자로 가시는 길에도 부인의 역할이 크셨다고 하던데요?

[인터뷰]
그랬죠. 왜냐하면 그때만 하더라도 연극은 순수예술이라 그걸 지키라고 하는 주위의 분위기들도 있었어요. 그런데 영화나 드라마는 좀 상업적이다. 상품적으로 물들지 말고 순수예술을 지키라고 하는 선배들이나 스승들도 있었는데 결혼을 하고 나니까 현실 아니에요.

그러니까 연기자가 할 수 있는 게 TV나 영화를 하는 길밖에 없어요. 돈을 벌려고 하면. 그러니까 TV를 하기 시작했는데 정말 힘들더라고요. 처음에 가서, 왜냐하면 환경 시스템이 다르니까. 하루 연습하고 하루 녹화하는데 연극은 한 달 이상 연습하고 충분히 익숙해진 다음에 무대 공연을 하는데 이건 뭐 어떤 건 당일 아침에 연습 한번 하고 그냥 녹화를 해요.

그리고 스튜디오 사정도 완전히 세트 세우고 조명 설치하면서 하는 게 익숙하지가 않아서 한동안 고전했어요. 그래서 포기하려고도 했었죠. 그랬더니 아내가 그러더라고요.

다른 선배들은 그 과정을 다 겪었지 않았겠느냐. 당신은 어떻게 편한 것만 하려고 하느냐. 연극은 돈이 안 생기기 때문에 가족적이고 편할 수는 있지만 남들도 그 과정을 다 겪었는데 그걸 넘어서야 되는 선 아니냐. 또 그거 들어보니까 그것도 또 맞는 얘기더라고요.

[앵커]
내 인생의 뉴스로 결혼을 꼽으셔서 선생님이 정말 로맨티스트다, 그런 생각이 들었었는데요. 선생님이 좋은 작품도 많이 하시고 여유도 좀 생기시면서 아내분에게 보답의 선물이라고 할까요. 그런 걸 드리셨습니까?

[인터뷰]
그러니까 우선 모든 걸 다 맡기죠, 경제권을. 통장에서부터 다요. 그리고 하고 싶은 것 다 해라. 그래서 많이 여행을 다녀요. 그래서 저보다 더 하고 싶은 것, 너무 고생했고, 나 때문에요.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거밖에 없어요. 그래서 통장 다 이렇게 맡기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라. 그런데 막상 여자들은 돈 많이 못 써요.

[앵커]
선생님, 끝으로 많은 후배 연기자들이요, 선생님께서 40년 넘는 연기자의 길을 걸어오셨지만 또 반짝스타도 많잖아요. 또 좌절하는 그런 후배들도 많고요. 그런 후배들에게 끝으로 한마디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인터뷰]
그러니까 동료들이 그런 말을 많이 했어요. 일이 있다고 자랑하지 말고, 일이 없다고 슬퍼하지 말라고. 우리 직업이라는 게 내가 원해서 되는 게 아니라 선택받는 직업이거든요.

그래서 선택받을 수 있도록 평소에도 항상 준비하는 수밖에 없어요. 또 주어졌을 때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어요. 이게 무슨 수학 방정식이 있고 무슨 해답이 있는 게 아니에요. 그냥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기회가 오고, 그 기회가 더 큰 길을 만들어줄 거라고 생각해요.


[앵커]
40년 넘게 진실한 연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웃음과 눈물을 선사했던 배우, 박인환 씨와 함께했습니다. 선생님, 오늘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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