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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나치 전력 불거진 안익태...우리 기억 속 안익태는?

2019.01.22 오후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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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안익태.


'세계적인 무대에 선 훌륭한 한국인 음악가'

10여 년 전부터 제기돼온 실체 논란에도 불구하고 안익태 선생을 이렇게 기억하는 분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우리 기억 속 안익태는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1906년 평양에서 태어나 일본 유학 생활을 거쳐 미국에서 음악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유럽에서 활동하며 베를린 필 등 세계적인 교향악단을 지휘하는 음악가로 평가받았습니다.

그의 대표곡을 보겠습니다.

작곡가 안익태 하면 단연 '애국가'가 떠오르죠.

이외에도 코리아 판타지, '한국 환상곡'이 대표곡으로 꼽힙니다.

우리 민족의 발자취와 수난을 그린 역사적 대서사시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유럽에서 활동하던 안익태가 국내로 들어온 건 광복 후 10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애국가 작곡가로서 방문 당시 국민의 환대를 받았고 한국인 최초로 문화포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세상을 떠난 뒤에도 안익태를 향한 존경과 예우는 이어졌습니다.

1965년 그가 사망한 직후 정부는 국민훈장 2등급인 문화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습니다.

12년 만에 그의 유해가 고국으로 돌아왔을 당시 '안익태'라는 이름 하나로 이목은 집중됐고, 그의 유해는 국립묘지에 안장됐습니다.

그는 말년을 보낸 스페인도 안익태를 기념하고 있습니다.

'안익태 거리'로 이름 붙은 대로가 생겨났고 안익태 선생이 생전에 살았던 집이 '안익태 기념관'으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세계를 무대 삼아 활동했던 훌륭한 음악가로 인정받았던 안익태.

하지만 2009년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며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친나치 활동설까지 제기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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