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지난 해 11월 10일 새벽 5시, 경기도 용인 죽전패션타운 앞 횡단보도를 건너던 병원 조리사 안선희 씨(47)를 음주 오토바이가 덮쳤다.
좌측 뇌를 심하게 다친 안 씨는 사지마비, 인지저하 등으로 간병인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이 힘들게 됐다.
가해 운전자 20대 손 모 씨는 무면허에 혈중알코올농도 0.083%, 면허 취소 수준으로 술을 마신 상태였다.
# 2.
올해 초, 족발 가게를 운영하던 정종기 씨(56)는 배달을 다녀오던 길에 음주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났다.
지난 1월 26일 저녁 8시,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한 대로변. 승용차 한 대가 중앙선을 침범하더니 좌회전 차선으로 진입하던 정 씨 오토바이를 정면으로 쳤다. 정 씨는 추돌 여파로 뒤에서 달려오던 택시에 또 한 번 부딪혔다.
가해자는 혈중알코올농도 0.04% 가량 면허 정지 수준으로 술을 마신 50대 정 모 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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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례 중 누구에게 ‘윤창호법’이 적용됐을까? 놀랍게도 모두 적용되지 않았다.
안선희 씨 사고 가해자는 단순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치상)’등의 혐의로만 재판에 넘겨졌고, 지난 6월 17일 열린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 받았다.
故 정종기 씨 사고 가해자 역시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치사)’등의 혐의만 적용돼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게 됐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두 사례 모두 수사 단계에서부터 가해자가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라고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윤창호법’이 적용되려면, 음주로 인해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가 돼야 한다.
“사실 음주 수치가 0.15%나 0.2%가 나와도 멀쩡한 사람들이 있잖아요. (가해자의) 걸음걸이라든지 혈색, 당시 진술한 내용이 어느 정도 또렷했거든요. (가해자가) 완전히 정신없을 정도의 상태는 아니었어요.”
- 경찰 관계자
하지만, 법령 그 어디에도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를 판단할 근거는 나와 있지 않다.
도로교통법상 혈중알코올농도에 따라 면허가 정지, 취소되는 것처럼 객관적인 수치가 반영돼있는 것도 아니다.
현재로선 윤창호법 적용 여부를 순전히 수사기관이나 사법기관의 해석과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모든 사람마다 운전이 곤란한 상태가 다를 수 있다고 해서 정량적인 기준 없이 문구 하나만으로 수사와 재판이 어느 정도 자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입법 취지대로 음주운전에 경각심을 갖고 피해를 예방하려면 피해자를 비롯해 모든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입법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희범 변호사
안선희 씨는 병원조리사 일과 공부를 병행할 정도로 열정적이었지만, 한순간에 삶이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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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사고 후 9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하루종일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피해자 안선희 씨
“언니 학교 졸업장도 우편으로 받았어요. 졸업장 보면 좋아할 것 같아서 보여줬는데, 알아보지도 못 하더라고요...참 열심히 살던 언니였는데, 아무 잘못도 없이 이렇게 된 게 너무 허망하고 억울합니다. 법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 같아요.”
-안승희 씨 / 피해자 안선희 씨 동생
故 정종기 씨가 운영하던 가게는 남은 가족들이 운영하고 있다. 故 정종기 씨의 손길이 곳곳에 닿아있는 가게에서 남은 가족들은 서로를 다독이며 정 씨의 빈자리를 겨우 채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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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늘 화목했던 故 정종기 씨 가족
“오순도순 그냥 서로 서로가 의지를 하며 살았는데, 한순간에 다 무너져 버렸어요. 우리 가족은 이렇게 피가 마르고 있는데, 가해자는 저렇게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잖아요.”
-임원빈 씨 / 故 정종기 씨 아내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가해자를 용서해요? 저희는 가해자를 용서하지 않을 건데, 판사님께서 그 사람을 용서해주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정지영 씨 / 故 정종기 씨 첫째 딸
‘법의 핵심은 음주 운전에 대한 근본적인 의식 전환’이라는 설명과 함께 국회에서 통과했던 ‘윤창호법’.
"네가 우리 옆에 없다는 게 너무 어렵고 마음이 시리지만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역경을 헤치고 너의 이름 석 자가 명예롭게 사용될 수 있도록 움직일게"
-김민진 씨 / 故 윤창호 씨 친구
법 시행 3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故 윤창호 씨 가족들과 친구들의 간절했던 바람은 공허한 울림이 돼버렸다.
YTN 강승민 (happyjournalist@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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