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전체 직원 가운데 60% 이상이 공직을 마친, 이른바 올드보이로 꾸려진 정부 조직이 있습니다.
한 사람당 보통 30년 넘게 근무해 경력을 모두 합치면 2,700년이 넘는다고 하는데요.
다시 현업으로 복귀한 이들이 맡은 업무는 손톱 밑에 박힌 가시를 빼는 일입니다.
이승배 기자입니다.
[기자]
지난해 광양제철소 산업단지에 묶여 있던 입지 규제가 풀렸습니다.
본래 철강 업종만 들어가게 땅에 제한이 걸려 있었는데, 2차 전지와 수소 같은 첨단 산업이 가능하게 문턱을 없앤 겁니다.
포스코는 4조 원 넘는 투자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김학동 / 포스코 부회장 (지난해 4월) : 철강을 넘어서 친환경 미래 소재 대표 기업으로 도약해서 국가 경제발전에 이바지하고자 합니다.]
[한덕수 / 국무총리 (지난해 4월) : 호남과 포스코의 새로운 도전에 우리 대한민국 국민과 정부가 항상 함께 하겠습니다.]
지난달엔 늦깎이 학생을 가르치는 평생 교육시설의 숙원이 해결됐습니다.
교육과정은 일반 학교와 같아도 우선순위에 밀려 무상급식을 못 받았는데 개선이 필요하단 지적에 규정을 고치기로 했습니다.
[이지은 / 졸업생(오미자 씨) 가족 (지난달 16일) : 행복한 여고 시절을 선물해 주신 청암고등학교와 저희 엄마에게 예쁜 추억을 만들 수 있도록 엄마의 친구가 돼 주신 모든 어머니 아버지 분들 마음을 다해 정말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손톱 밑에 박힌 가시처럼 아프고 빼내기도 어려운 규제를 정비한 사례들인데, 주도적 역할을 했던 건 '퇴직한 올드보이'였습니다.
[권진수 / 국무조정실 규제혁신추진단 : 국가가 우리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구나, 라는 그런 심리적인 소속감, 인정감 이런 것이었다고 생각됩니다. 현직 때는 못 했잖아요, 그 점에 대해서 미안한 마음도 들고 그랬습니다.]
조직을 처음 꾸린 건 지난 2022년 8월.
다른 일 병행 없이 오직 불필요한 규제만을 손보려고 만들었습니다.
전체 140명을 뽑았는데, 그중 60%를 4급 이상에서 공직을 마친 퇴직 공무원으로 채웠습니다.
평균 나이는 66살, 보통 30년 넘게 근무를 해서 경력을 모두 합치면 2,700년이 넘습니다.
기재부와 금융위, 국토부, 과기부, 복지부, 교육부 등 웬만한 중앙 부처 출신이 다 있습니다.
규제 대부분이 여러 부처 간 이해가 얽혀 있어서 과거 실무 작업을 하고 퇴직한 각 부처 올드보이를 다시 불러 고치게 한 겁니다.
직함은 모두 전문위원, 승진도 인센티브도 없지만 복지부동할 필요도 없습니다.
[노영규 / 국무조정실 규제혁신추진단 : 부처의 입장을 생각해야 하는데 여기는 돌아갈 부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자유롭게 비교적 객관적으로 방향을 잡을 수 있다는 것, 밑에 직원도 없고 상사도 없어요. 그런 조직은 여기밖에 없습니다.]
같은 '올드보이'인 한덕수 총리도 격주로 회의에 참석해 의견을 나누고 있습니다.
지난 1년 8개월 동안 해결한 규제는 331개, 인증 관련 성과만 따지면 1,500억 원이 넘는 경제 효과를 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이정원 / 국무조정실 국무2차장 : 규제 개혁을 추진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이 부처 간의 이견 조정입니다. 근거 자료, 데이터, 사례 이런 것을 분석하고 수집해서 논리적으로 설득이 가능한 대안들을 만들어보려고 노력 중에 있습니다.]
처음 모집 때만 해도 누가 지원할까 걱정이 컸지만, 입소문이 나면서 이제는 경쟁률이 4대 1이 될 정도로 인기가 높아졌습니다.
'규제는 만들어본 사람이 잘 푼다', 이 한 문장에서 시도된 실험이 앞으로 어떤 의미 있는 성과를 더 낼지 관심입니다.
YTN 이승배입니다.
촬영기자;이동형
그래픽;홍명화
YTN 이승배 (sbi@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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