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글에서 YTN 데이터랩은 기후위기 시대에 시민들의 안전 길라잡이가 되어야할 침수 지도가 혼란스럽게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관련 기사: 침수 위험 반지하 주택 실태, 데이터로 추적하기 ② / 너무 다른 '침수 지도'...뭘 믿어야 하나?) 이번에는 한발짝 더 들어가 그동안 우리가 몰랐거나 외면해왔던 재해 정보 관리 체제의 이면을 침수 지도를 중심으로 조금 더 파헤쳐보겠습니다.
자연재해대책법에 따르면 침수 피해가 나면 지자체는 의무적으로 침수흔적도를 제작해야하며, 행정안전부는 관련 지도통합 시스템을 운영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미지 확대 보기
현재 정부와 지자체가 공개해놓은 ‘재난 지도’는 침수흔적도, 도시침수지도,하천범람지도,해안침수예상도, 산사태위험지도,지진발생지,열 분포도 등 다양합니다. 여기에 더해 재해정보지도는 홍수 사태시의 대피 경로와 대피 장소까지 담고 있습니다. 인터넷상에서 만날 수 있는 행안부의 생활안전지도, 서울시의 서울안전누리, 부산시 도시침수통합정보시스템의 재난지도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미지 확대 보기
생활안전지도 침수흔적도 캡처 화면
이들 자료는 대부분 기후변화 시대의 기상재난과 관련성이 깊은 공간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으로 극한호우로 물에 잠기는 피해를 입었던 영역, 즉 이미 과거에 피해를 입었고 앞으로도 피해를 입을 잠재성이 있는 영역을 표시한 침수흔적도를 1차적으로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 지역의 어느 건물이, 배수가 불량하거나 저지대여서, 혹은 치수 시설이 미흡해 얼마나 침수 피해를 입었는지를 담은 정보, 즉 ‘기후 재난의 흔적’은 미래의 피해를 최소화할 방법을 강구하기 위한 중요한 자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떨까요?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면, 정부와 일부 지자체 사이트에서 공개한 침수흔적도는 이원화되어 있었습니다. 내용이 그냥 다른 정도가 아니고 전혀 다른 침수지도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달랐습니다. 더욱 심각한 점은 기자가 해당기관에 알릴 때까지, 중앙정부도 지차제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겁니다. 설상가상으로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규명할 과거의 자료와 기록도 부족한 것으로 보입니다.
YTN이 방송 보도에서 다룬 인천과 서울의 사례를 차례로 다시 짚어보겠습니다.
이미지 확대 보기
인천시 상습침수구역 웹지도 캡처 화면
먼저 인천. 인터넷에서 인천 상습침수지역을 검색하시면, 인천광역시가 공개한 데이터 지도로 연결됩니다. 바로 가기를 클릭하면, 인천광역시의 오픈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른 모든 데이터 지도와 마찬가지로 침수지도는 2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쉽게 참조해보도록 화면으로 표출되는 웹지도가 있는가 하면, 전문 데이터 분석도구인 지리정보시스템 GIS 도구에서 분석이 가능하도록 내려받을 수 있도록 한 데이터 파일 형태의 지도 자료가 있습니다. 모두 일반 시민들에게도 열려있는 자료인데, 다운로드 가능한 데이터 파일은 특히 실무자와 전문가들이 방재대책이나 도시계획 등을 수립할 때 꼭 필요한 데이터입니다. 인천시는 2가지 모두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맵보기’라는 글자를 클릭하면 웹지도 화면으로 연결되어, 2017년 기준으로 작성했다는 인천 도심의 상습적인 침수 구역들을 하나하나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이미 언론 보도 등을 통해서도 과거의 침수 피해 사실이 전해졌던 지역들이고, ‘인천광역시 자연재해저감종합계획’ 이라는 인천시 공식 문서에서도 이들 지역은 내수재해 이력지구 라는 이름으로 분류가 되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미지 확대 보기
그런데 행정안전부가 운영하는 생활안전지도 사이트의 재난 지도 코너 침수 흔적도를 살펴보면, 인천시가 공개한 상습침수지역이 대부분 빠져있음을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기자는 행정안전부에 공문을 통해 공개 요청해 취득한 생활안전지도 침수흔적도의 GIS 파일과 인천시가 공개한 GIS 파일을 비교 분석해보았습니다. 인천시가 “상습침수지역”이라고 분류한 면적을 계산해보니 서울 여의도 면적의 1.3배에 달하는 크기였습니다.그런데 그 중 99.8%가, 말하자면 거의 모든 “상습침수영역”이 생활안전지도에는 누락되어 있었습니다. 더욱이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상습침수지역은 적어도 2번 이상 반복적으로 침수됐을 구역일텐데도, 1번 이상 물에 잠긴 구역을 표시한 생활안전지도 침수흔적도에 거의 다 빠져 있다는 점입니다.
이미지 확대 보기
서울 열린데이터광장 캡처 화면
서울특별시는 ‘서울안전누리’라는 사이트를 통해 2010년부터 2022년까지 비가 많이 와서 침수 피해가 발생한 11개 연도의 침수흔적도를 웹지도 형태로 공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서울시 열린데이터광장 사이트에서는 분석이 가능한 공공데이터 지도 형태로 11개의 침수흔적도 GIS 파일을 모두 내려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미지 확대 보기
역시 행안부 침수흔적도 파일과 비교해봤습니다. 육안으로 봐도 두 침수흔적도가 차이가 난다는 점을 알 수가 있습니다. GIS 분석을 해보니 서울시 공공데이터 침수흔적도 파일에 표시된 침수 영역의 60%(면적 기준)이 생활안전지도 침수흔적도에는 누락되어 있었습니다. 주로 2010년과 2011년의 침수 영역이 큰 차이가 났습니다. 어떤 이유에서 이런 간극이 생긴 걸까요? 어느 쪽을 믿어야 할까요?
<침수 지도의 수수께끼>
취재 과정에서 서울시, 인천시와 행정안전부의 침수 지도 담당자는 공통적으로 이같은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실토했습니다. 지자체가 공개한 지도와 행안부 지도가 따로따로 이원화되어 있었다는 점이 큰 문제라는 점도 모두 인정했습니다.
생활안전지도 사이트를 운영하는 행정안전부는 “해당 침수흔적도 자체가 각 지자체에서 제출한 지도 파일을 취합해 공개한 것이라면서 지자체가 출처도 알 수 없고 본인들도 틀렸다고 말하는 자료들을 별도로 공개한 것이 문제”라는 입장입니다.
인천광역시는 상습침수지역 지도 파일의 제작 경위에 관해 뜻밖의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2017년 당시 지도 파일을 직접 제작한 담당 공무원은 현재 해당 부서에서 자리를 옮긴 상태라면서, “본인이 당시에 만든 지도 건수도 많고, 오래 되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는 전언만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어떤 지도인지 지도 제작자가 기록으로 남겨놓은 자료도 남아있지 않다는 겁니다. 다만 인천광역시 침수 지도를 제작했다는 당사자의 입을 통해서 정확한 자초지종을 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인천시의 ‘자연재해저감종합계획’ 문서를 통해서 인천 시내의 침수 피해를 입은 구역과 일치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침수 이력과 방재성능 목표 여러 가지를 검토해 종합적으로 판단한 지도일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왜 행정안전부에 제출한 침수흔적도에는 대부분의 ‘상습침수구역’이 빠져있는지는 속시원한 답변을 듣기 어려웠습니다.
서울특별시의 담당 공무원은 서울시가 자체적으로 올린 데이터지도와 생활안전지도에 큰 차이가 발생한 배경에 대해, 2010년과 2011년 침수지도가 신빙성이 떨어져 믿을 만한 것만 다시 추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서울안전누리와 행안부 생활안전지도의 웹지도에는 재제작한 지도가 올라갔지만, 공공데이터 포털과 열린데이터광장 사이트의 공공데이터 지도파일은 기존의 지도가 올라갔다는 설명입니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정확한지는 어떻게 가려냈을까요? 침수흔적도는 침수 영역 뿐만 아니라, 침수 시점과 침수심, 침수면적 등등의 데이터 속성값이 데이터 지도 파일에 반영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같은 세부정보가 빠져 있어 정확한 자료가 아니라고 판단한 결과라는 설명입니다. 2015년에 입력한 국가재난안전관리시스템 (정부와 지자체의 내부 시스템)상의 침수 피해 정보와 2010년과 2011년 당시 애초에 제작한 침수흔적도를 종합해 좀 더 신빙성 있는 침수흔적도를 다시 제작했을 거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2015년 당시 내부 데이터베이스는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2010년과 2011년에는 침수흔적도가 왜 “정확하지 않게” 만들어졌는지에 관해서는 확실한 답변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재제작 과정에서 빠지게 된 침수영역 중에서도 실제로는 침수됐을 가능성이 높은 구역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문제 제기했지만, 근거 자료가 없는 상황에서 수정 보완할 여지는 없다는 대답만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자연재해대책법상, '재해지도 작성 기준 등에 관한 지침'은 도시와 농촌의 주거와 상업 산업단지의 경우 30㎝ 이상 물에 잠겨 상당한 불편을 야기했을 때를 ‘침수’라고 정의합니다.물론 지자체장의 판단에 따라 침수의 범위를 더 넓게 잡을 수는 있어 각기 다른 기준의 적용이 가능했습니다. 올해부터는 물에 잠긴 깊이와 무관하게 침수피해가 나면 모두 침수흔적도에 포함시키도록 했다는 것이 행안부의 설명이지만, 과거의 침수흔적도는 지자체마다 들쑥날쑥한 기준으로 작성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기에 더해 ‘정확한’ 침수흔적도를 제작하는데 필요한 전문인력과 예산을 얼마나 투입했는지도 중요한 변수입니다.
행안부와 서울시의 담당자는 모두 중앙정부에 제출된 생활안전지도의 침수흔적도가 더 공신력이 있는 지도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이미지 확대 보기
'재해지도 작성 기준 등에 관한 지침'은 침수흔적도는 침수정보로서 과거 최대의 침수흔적을 나타낸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과연 생활안전지도상의 침수흔적도가 과거 최대의 침수흔적을 나타내고 있다고 믿을 수 있을까요? 일부 속성정보가 빠져있어 신빙성 이 떨어진다는 지도 파일, 즉 인천시와 서울시가 별도로 공공데이터로 공개해놓았던 디지털 지도에는 지역 주민들이 침수 사실을 생생히 기억하거나 언론에 보도가 되었던 침수 구역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소 영역도가 과대 추정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송두리째 부정해버리기도 어려운 정보입니다.
지자체가 침수흔적도를 디지털 지도로 작성 보존하고 행안부가 이같은 재해지도를 통합관리 시스템으로 구축 운영하기 시작한 것도 기후재난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최근 몇 년동안의 변화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곳곳에 허술한 구석이 적지 않습니다. 기자가 확인한 인천과 서울 사례 이외에 다른 지자체의 침수흔적도에도 보완할 지점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부터 20년 전 국가 기록의 부실한 관리 실태를 고발한 ‘기록이 없는 나라’라는 제목의 연재 기사가 국내 언론에서 보도된 적이 있었습니다. 기후재난 시대의 핵심 정보인 침수 지도가 왜 부실하게 제작됐는지, 침수 당시의 정확한 실태를 다시 확인할 근거 자료도 사라진 게 현실이라면, 한국은 여전히 기록이 없는 나라인 셈입니다. 우리는 기후변화에 제대로 대응할 준비가 되어있을 걸까요?
#데이터저널리즘 #기후재난 #기후위기 #공공데이터
기사 및 데이터 분석 : YTN 데이터랩 함형건 기자
그래픽 디자인 : 정혜련
활용 데이터 출처 및 참고 자료 목록
1.행정안전부 생활안전지도 shp 파일 전국 침수흔적도(2002~2023년)
2. 서울 침수예상도 서울 침수흔적도 shp 파일 (2010, 2011, 2012, 2013, 2014, 2016, 2017, 2018, 2019, 2020, 2022)
공공데이터포털, 서울 열린데이터광장
3.인천광역시 상습침수구역 shp 파일(2017년 기준) 공공데이터 포털. 인천광역시 오픈데이터
4.2019년 인천광역시 자연재해저감 종합계획 문서
5.자연재해대책법
재해지도 작성 기준 등에 관한 지침
(국가법령정보센터)
YTN 함형건 (hkhahm@ytn.co.kr)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