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국민 아버지로 불린 배우 최불암 씨는 반세기 넘게 안방극장을 지키며 우리 시대의 희로애락을 함께했습니다.
최불암 씨가 우리 대중문화에 남긴 발자취와 그 의미를 문화부 김승환 기자와 함께 짚어보겠습니다.
이번 장례는 고인이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온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장으로 치러지는데요.
배우의 장례를 복지재단이 주관한다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기자]
최불암 씨는 1981년 초록우산의 전신인 한국어린이재단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부모 없는 금동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인 김 회장 역할이 그 계기가 됐는데요.
1985년부터는 전국후원회장을 맡아 40년 넘게 어려운 환경에 놓인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해 활동했습니다.
단순히 이름만 내건 후원회장이 아니었습니다.
직접 아이들을 만나고 후원을 독려하며 나눔의 현장을 지켰는데요.
드라마에서 품었던 아이들을 현실에서도 보듬어온 셈입니다.
이번 장례 역시 배우로서의 업적뿐 아니라, 평생 이어온 나눔의 삶을 기리는 의미에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장으로 치러지게 됐습니다.
[앵커]
최불암 씨 하면 특유의 호탕한 웃음과 '국민 아버지'라는 호칭이 떠오르는데요.
수많은 배우 가운데 유독 최불암 씨가 이처럼 오랫동안 사랑받은 이유는 뭘까요?
[기자]
최불암 씨가 '국민 아버지'로 자리 잡은 데는 대표작 '수사반장'과 '전원일기'의 영향이 컸습니다.
'수사반장'에서는 불의에 맞서면서도 서민들의 아픔을 헤아리는 박 반장으로 18년, '전원일기'에서는 대가족의 중심을 지키는 김 회장으로 22년간 시청자들과 함께했습니다.
두 인물은 직업도, 살아가는 환경도 달랐지만 원칙을 지키면서도 사람에 대한 따뜻함을 잃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시청자들은 최불암 씨가 연기한 인물들에게서 우리 사회에 있었으면 하는 어른의 모습을 발견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앵커]
드라마뿐 아니라 교양 프로그램 '한국인의 밥상'도 빼놓을 수 없겠죠.
고인이 10년 넘게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녔는데, 고인이 전하고자 했던 것은 뭐였다고 보세요?
[기자]
고인은 2011년부터 2025년까지 무려 14년 동안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요.
'한국인의 밥상'은 음식을 소개했지만, 정작 주인공은 그 음식을 만든 사람들이었습니다.
음식 한 그릇에 담긴 지역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평범한 이웃들의 삶을 들여다봤습니다.
화려한 진수성찬보다 어머니가 차려주던 소박한 밥상, 가족의 추억이 깃든 음식에 더 귀를 기울였는데요.
특히 최불암 씨 특유의 낮고 묵직한 목소리, 상대의 이야기를 재촉하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는 태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자극적이고 빠른 콘텐츠가 쏟아지는 시대에 힐링하고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고요.
'수사반장'과 '전원일기'에서는 연기로 서민들의 삶을 보여줬다면,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직접 이웃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앵커]
최불암 씨 하면 1990년대 크게 유행했던 이른바 '최불암 시리즈'를 떠올리는 분들도 많으실 텐데요.
요즘으로 치면 배우 이름 자체가 하나의 '밈'이 됐던 셈이죠?
[기자]
저도 어린 시절 '최불암 시리즈'라는 유머책이 유행했던 기억이 나는데요.
인터넷이나 SNS가 대중화되기도 전이었지만, 학교에서, 직장에서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만큼 그야말로 전국적인 인기였습니다.
평소에는 한없이 진지한 분이 엉뚱한 행동을 한다는 설정 자체가 웃음의 포인트였던 거죠.
그만큼 남녀노소 누구나 아는 친숙한 인물이었기에 가능했던 현상입니다.
무엇보다 최불암 씨 본인도 이런 유행을 너그럽게 받아들였는데요.
오늘 1998년에 했던 YTN과 인터뷰를 찾아보니, "사람들의 상상력이 자신을 유머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준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소탈함 역시 최불암 씨가 오랫동안 사랑받은 이유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앵커]
마지막으로, 최불암 씨가 평생 배우로 살아오면서 우리 사회와 대중문화에 남긴 가장 큰 유산은 무엇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기자]
최불암 씨가 생전에 강조했던 말 가운데 '연기자는 광대'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여기서 광대는 단순히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존재만을 뜻하지는 않았습니다.
지난 2024년 후배 배우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국민이 나아갈 길에 가시덩굴이 있다면 그것을 치우는 게 광대 정신"이라고 강조했는데요.
배우도 사회의 잘못을 비판하고 좋은 일에 앞장서야 한다는 당부였습니다.
실제로 고인은 작품 속에서 서민들의 애환을 그렸고, 화면 밖에서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40년 넘게 나눔을 실천했습니다.
그래서 최불암 씨는 단순히 연기를 잘했던 배우를 넘어, 우리 사회가 오래도록 기억할 어른으로 남게 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앵커]
네, 문화부 김승환 기자와 최불암 배우 별세 관련 소식 나눠봤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YTN 김승환 (ksh@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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