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행 : 이여진 앵커, 장원석 앵커
■ 출연 :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인용 시 [YTN 뉴스퀘어 8PM] 명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앵커]
정겨운 '국민 아버지'이자 '영원한 수사반장',배우 최불암 씨가 남긴 발자취김헌식 대중 문화 평론가와 살펴보겠습니다. 어젯밤 10시 반쯤에 우리 곁을 떠나셨는데, 지난해 3월에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은 뒤에 재활에 힘써 오시다가 최근에 급격하게 건강이 악화됐다면서요?
[김헌식]
허리디스크가 악화가 돼서 수술을 받고 재활 중이라고 했는데 사실 14년 동안 진행했던 한국인의 밥상에서 도중 하차해서 최수종 씨한테 바통을 넘겼거든요. 그런데 사실 우리가 아시다시피 수사반장을 18년 했고 전원일기는 22년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우직하게 한 길로 가시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그만둘 분이 아니거든요. 그런 점에서 봤을 때 그동안 몸 상태가 좋지는 않으셨다, 이렇게 생각이 되지만 6월에 병문안을 오신 분들과 담소를 하시면서 웃는 특유의 모습을 보이셨기 때문에 특히 막걸리 한잔도 앞서서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 그 웃음이 여전히 있어서 곧 복귀하실 줄 알았는데 갑자기 비보를 전하게 되니까 국민들이 더 많은 충격을 받는 것 같습니다.
[앵커]
고인을 떠올리면 영정사진도 그렇지만 아주 포근하게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고 또 파 하는 그런 웃음소리도 많은 분들이 기억을 하실 겁니다. 이재명 대통령도 우리 시대의 아버지라고 표현을 했는데, 67년이라는 연기 인생 발자취를 돌아본다면요?
[김헌식]
일단 처음 출발은 연극영화과 출신이기 때문에 1959년부터 시작을 했는데요. 그런데 그때 당시 처음 시작은 그렇게 대형 스타는 아니었지만 햄릿을 만 20세에 할 만큼 연기력은 출중했고 국립극단 배우로도 활동을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아무래도 미디어 변동 상황 속에서 탤런트로 전격 활동하게 되죠. 그런 이후에 130여 편의 드라마, 그리고 90여 편의 영화를 남겼고 또 55편에 이르는 연극까지도 계속 놓치지 않고 활약하셨다는 점 빼놓을 수가 없겠죠. 특히 수사반장을 통해서 국민 경찰이기도 했고 또 전원일기를 통해서 국민 아버지의 반열에 올랐다는 점에서 봤을 때 우리 시대의 아버지는 누구이고 또 공권력 내지는 공적 서비스를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느냐라는 점을 보여줄 만큼 서민, 혹은 국민을 위한 연기자로서 우직하게 한 길을 걸어오셨다, 이렇게 평가할 수가 있겠습니다.
[앵커]
67년 동안 치열하게 연기를 보여주셨는데 최불암 씨의 연기관을 보여주는 대담 부분도 저희가 준비를 해봤습니다. 함께 듣고 오시죠. 지금 바람직한 인간상을 찾는다고도 말씀하셨는데 주옥같은 말씀을 많이 남기셨더라고요. 예를 들면 좋은 배우가 되려면 사람을 연구해야 하고, 그러려면 자신이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국민이 가는 길에 가시덤불을 치우는 게 광대 정신입니다. 이런 얘기도 남겼더라고요.
[김헌식]
사실 우리가 광대 정신 하면 전통사회에서는 광대를 낮게 보는 경향이 있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광대를 내세웠다는 것은 그만큼 연기자나 배우들이 국민들을 위해서 굉장히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예술철학적인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그런 발언들을 하셨다 이렇게 볼 수가 있겠고요. 그 말씀에 맞게 평생을 국민들이 원하는 대변자로서의 역할들을 계속 꾸준하게 해오셨다는 점이 언행일치로 그대로 드러났다, 이렇게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앵커]
장수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부부 역할을 함께 맡았던 김혜자 씨가 최불암 고인의 아내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죠?
[김헌식]
그렇습니다. 사실 부부로 처음 이렇게 연기를 하게 된 것은 1969년 개구리 남편이라는 작품인데 여기서 2년 동안 연기를 했는데 개구리 남편이 뭐냐 하면 개구리는 뭍에서도 살고, 물에서도 산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의 남편은 개구리 남편일 수 있습니다, 이게 한국 최초의 불륜드라마예요. 그래서 이때 당시에 굉장히 주목을 받았는데 어쨌든 조기 종영을 할 만큼 논란도 많이 일으켰습니다. 그 사이에서는 불륜 드라마 소재니까 티격태격했지만 1980년에 전원일기를 통해서 김혜자 씨는 국민 엄마, 어머니가 됐고 최불암 씨는 국민 아버지가 되는 그런 인연 이후에 2006년 궁에서는 황실의 황제와 부인으로 나오는 그런 인연까지 있었습니다. 실제로 김혜자 씨가 예능프로그램에서 밝혔거든요. 실제 부부로 여겨서 그 사람한테 해명을 해야 하는 그런 상황까지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부부 호흡을 맡아왔기 때문에 그런 점에 실제 부부로 여긴 사람들도 굉장히 많으셨던 거죠.
[앵커]
하지만 실제 배우자죠, 배우 김민자 씨와는 연예계에서 대표적인 잉꼬부부로 꼽히지 않았습니까?
[김헌식]
그렇습니다. 사실 최불암 씨 같은 경우는 이상형이 눈 크고 지적인 여성을 원한다라고 친구한테 얘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친구가 그때 당시에 드라마 정동마님을 봐라라고 하니까 거기에 김민자 씨가 딱 등장한 거예요. 주로 국립극장에서 활동을 했기 때문에 국립극장에서 보니까 김민자 씨가 점심때 매점에서 빵과 차를 먹는 것을 알고 미리 가 있다가 누구인지도 인사도 하지 않고 먼저 돈을 치러서 그때부터 안면을 트기 시작했고, 그 이후에 연극 환절기를 함께하면서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결혼 때는 굉장히 반대가 심했다고 해요. 그런데 김민자 씨는 내가 이 사람과 같이 가지 않으면 위험에 빠질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어서 결혼을 해야 되겠다라고 마음먹고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는 그런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앵커]
오늘 많은 동료 배우과 문화계 인사들이 고인의 빈소를 찾아서 조문했습니다. 목소리 듣고 오시겠습니다. 조금 전 보신 유인촌 전 장관이 빈소에 제일 먼저 찾았다고 하던데 전원일기에서 부자관계로 나왔었죠.
[김헌식]
그렇죠. 부자관계였습니다. 그런데 유인촌 전 장관 입장에서 봤을 때는 전원일기가 굉장히 각별하죠. 왜냐하면 자기의 첫 데뷔작이잖아요. 정말 젊은 시절에 출연했던 작품이 22년 동안 이렇게 계속될 줄은 본인도 몰랐을 텐데,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22년 동안 부자관계로 드라마에 출연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가족이다 이렇게까지 표현을 했습니다. 최근에 두세 달 못 뵀는데 나으면 보자, 이렇게 했는데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건데요. 평소에 말씀했던 부분을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행복이 멀리 있지 않다, 등 뒤에 있는 창문을 열면 거기에 행복이라는 놈이 있을 거다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최불암 선생과 관련해서 이런 말씀으로 기억하기를 바란다라고 유인촌 전 장관이 얘기했는데 어쨌든 각별한 그런 사이이기 때문에 맨 먼저 달려왔다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앵커]
장례가 5일장인데 이번에 눈에 띄는 곳이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라는 곳이거든요. 그래서 초록우산어린이재단장으로 거행이 되더라고요. 어떤 인연이 있는 겁니까?
[김헌식]
그래서 예술인장이 아니고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장으로 한 이유는 드라마의 인연 때문입니다. 1981년에 드라마 회차에서 어떤 내용이 나오냐면 금동이를 입양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래서 시장에 가서 농기구를 사려고 하는데 금동이가 동냥을 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서 1000원을 주려고 하다가 맛있는 거 있는 집에 가볼래? 그리고 형들이 입던 옷도 있어라고 하면서 집으로 데려온 거죠. 사실상 입양을 한 것이죠. 그 드라마 회차 방영 이후에 정말 편지와 격려가 엄청나게 많이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최불암 선생은 굉장히 원칙적인 그런 측면에서 그런 부분들이 가책으로 받아들여졌던 모양이에요. 왜냐하면 작가가 쓴 대로 나는 연기했을 뿐인데 왜 내가 다 찬사를 받느냐라고 해서 결국 어린이재단에 참여해서 어린이재단 후원회장을 40여 년 동안 하셨다는 이야기예요. 그런 인연 때문에 이번에 어린이재단장으로 장례식을 치르게 됐다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앵커]
최불암 씨 별세로 수사반장의 원년 형사 4인방이 모두 고인이 되셨는데 수사반장이 한때 시청률이 70%에 달했다면서요?
[김헌식]
그렇습니다. 사실은 예전에 수사물로써 본격적으로 첫 신호탄을 올린 작품이라고 볼 수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전반적으로 에피소드 중심이었기 때문에 매회마다 그 에피소드를 통해서 인기를 끌 수밖에 없는데 사실 그동안 그 4인방이 고인이 됐기 때문에 혼자 남아서 미안하다고 이렇게까지 했고요. 최근에는 그런 에피소드들이 다시 또 화제가 됐던 측면이 있겠습니다. 특히 무엇보다도 경찰에 대해서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최불암 씨가 했었던 박 반장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인간적입니다. 수사를 철저하게 하기는 하지만 범죄자를 바라보는 관점이 절대악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뭔가 사회 구조나 모순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게 만드는 그런 사연에 초점을 맞추고 사건 해결이 나오고 나서는 담배 한 개비를 전달해 줄 수 있는 그런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줬기 때문에 그런 사건 해결뿐만 아니고 경찰이 저런 면모를 보여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면들 때문에 더 인기를 끌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앵커]
오늘 경찰 지휘부도 빈소를 찾아서 고인을 추모했는데 실제로 고인은 경찰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계급인 명예 치안정감이었고 명예 국가수사본부장까지 이런 타이틀을 얻게 됐었죠?
[김헌식]
그렇습니다. 범죄자들이 직접 찾아와서 여러 가지 고민 상담을 했다고 해요. 그래서 조언을 하기도 했거든요. 실제로 그런 조치까지 하니까 1972년에 명예경찰이 됐고요. 그리고 2024년에는 민간인 중 처음으로 국가수사본부장 치안경정이 됐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그만큼 이미지상으로도 경찰의 역할들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실제 조치들을 여러 가지 했기 때문에 이런 점들이 또 참작이 된 게 아닌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앵커]
물론 최불암 배우와 정치권의 인연도 조명을 받고 있는데요. 어떤 내용들이 있었는지 한번 돌아보겠습니다. 고인은 1992년 통일 국민당 비례 대표로 14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1996년 15대 낙선 후 를 통해 연기에 복귀했는데요. 15대 총선 경쟁자가 다름 아닌 지금의 김민석 민주당 대표,당시 32살 청년 정치인이었습니다. 김 대표의 선거운동 구호가당시 '최불암은 무대로, 김민석은 국회로'였다고 하는데요. 김민석 대표는 "30년 전 선거에서 국보급 배우인 선생님과경쟁했던 것은 영광이었다고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또 고인과 박정희 전 대통령 내외와의 인연도 회자가 됩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을 매주 챙겨볼 정도로 열혈 팬이었는데,육영수 여사가 생전 최불암 배우에게 전화를 걸어 남편과 국민 건강이 염려된다며 담배 피우는 장면을 조금 줄이면 어떨까 제안했다고 합니다. 최불암 씨는 "이때 받은 전화가 평생 교훈이 됐다"며 자신이 나쁜 행위를 하면 국민도 따라서 한다는 건 "무섭고도 두려운 제약"이라고 회고했습니다.
[앵커]
최불암 씨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한 거죠?
[김헌식]
그렇습니다. 1992년에 통일국민당이 창당이 되거든요. 그런 과정에서 창당 발기인으로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최불암 선생이 그걸 거절했습니다. 그러고서 일본에 촬영을 갔다 왔는데 국내에 와 보니까 이미 명단에 올라갔다는 것이고요. 또 비례대표 명단에 올라가 있었다는 것이죠. 그때 당시에는 통일국민당이 선풍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례대표로 선출이 됐던 그런 인연이 있고요. 그런데 그전에는 드라마의 인연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야망의 25시라는 작품이 1984년에 있었거든요. 거기에서 정주영 회장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이런 점이 인연이 됐다는 것입니다. 이때 당시 김우중, 이병철, 정주영 회장의 25시를 다룬 드라마였기 때문에 이것이 인연이 돼서 정치계에 진출하는 그런 계기까지 된 것입니다.
[앵커]
정부는 또 고인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는데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김헌식]
사실 금관문화훈장은 문화훈장 중 최고 단계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수훈한 배우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2016년 백성희, 2021년에 윤여정, 2022년에 이정재, 2025년 이순재, 김지미 그리고 2026년 올해 안성기 씨가 받았거든요. 그래서 금관문화훈장은 문화예술인으로서 최고 예우라고 볼 수가 있겠는데요. 다만 좀 아쉬운 것은 생전에 계실 때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연기뿐만 아니라 사회적 활동도 매우 많이 해 왔기 때문에 이런 점들을 골고루 평가한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앵커]
최근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고 이순재 씨, 안성기 씨에 이어서 최불암 씨까지 별세를 하면서 이제 국민배우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이런 평가도 나오고 있더라고요.
[김헌식]
국민배우라는 것은 결국 20세기의 메스미디어 시대의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겠죠. 왜냐하면 전 세대, 전 연령대, 남녀노소가 모두 즐겨보는 모두 선호되는 배우 스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21세기 들어서 퍼스널미디어가 발전하면서 분산된 측면이 있겠죠. 한편으로는 개인들의 미디어 접촉이 긍정적으로 보일 수는 있겠지만 국민들이 같이 울고 웃고 즐길 수 있는 그런 콘텐츠 환경들이 달라지는 것 아니냐 이런 생각이 드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이순재, 안성기, 최불암 씨의 타계가 슬프게 더 다가오는 게 아닌가 싶어서 결국 국민들을 통합시킬 수 있는 국민배우 스타들의 역할은 여전히 거꾸로 필요하다는 점을 일깨우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앵커]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김헌식 대중 문화 평론가였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구수본 (soobon@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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