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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문화유산-창경궁과 대온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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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지역 소식을 좀 더 자세히 짚어보는 네트 워크 현장입니다.

일제에 의해 격하돼 한 때 창경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창경궁은 조선왕조와 함께 하며- 긴 역사의 수난과 아픔을 고스란히 이겨낸 문화 유산입니다.

이 창경궁 안에 지금은 잊혀진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유리온실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요.

C&M 서울미디어원이 창경국 대온실을 소개합니다.

[리포트]

서울 종로구 와룡동에 위치한 창경궁!

이곳에는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역사적인 건축물이 남아 있다.

창경궁은 세종 즉위 시 선왕인 태종을 모시고자 1418년에 지은 수강궁이 그 전신이다.

조선왕조의 정전 중에서 가장 오래된 명정전이 있는가 하면, 창경궁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의 난으로 많은 화를 입은 곳이기도 하다.

인현왕후와 장희빈, 영조와 사도세자의 아픔 또한 창경궁 뜰은 고스란히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러나 그 보다 더한 속내는 도저히 씻을 수 없는 일제의 수모를 겪은 뼈아픈 기억을 간직한 곳이라는 사실이다.

일본은 일제시대때 문화 말살 정책의 하나로 창경궁의 격을 낮춰 창경원이라 부르기에 이른다.

일제에 휘둘린 순종은 울적한 마음을 달랜다는 명분을 내세웠고 급기하 창경궁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기에 이른다.

창경궁은 창경원이라는 이름으로 서울 구경거리의 대명사가 되고 일제의 오욕은 사람들에게서 잊혀져 간 것이다.

그러나 1987년 창경원은 옛 궁으로써의 위치를 되찾고 식물원 만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유리온실로써 창경궁에'대온실' 이라는 이름으로 남게 되었다.

일본인이 설계하고 프랑스회사가 시공한 대온실 처음 그 모습은 지금과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외관은 19세기말부터 시작된 세계박람회 전시건물의 형식이며, 그 구조 역시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대온실과 돔 온실 두 개가 마주보는 것으로 축조되어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띄고 있다.

식물원은 6·25 전쟁때 반파됐다가 다시 고쳐 사용했으나, 후에 돔 온실 두 개는 철거하고, 현재는 대온실만 남아 있는 상태다.

우리는 대온실의 내부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등록문화재 83호로 지정 된 대온실은 여느 식물원과 다를 바 없었다.


단지 그 치욕의 역사적 사실만이 다를 뿐...

닦아도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물이끼 같은 역사는 이곳 대온실 철골 마디마디에 서려있지는 않을까...

낡은 철골 구조와 목조 그리고 유리가 얽혀 있는 대온실의 모습이 오늘따라 생경해 보이는 까닭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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