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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오늘 새벽 0시 22분

2015.11.22 오전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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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환, YTN 정치·안보 전문기자


[기자]
[앵커]
이번에는 김주환 YTN 정치안보전문기자와 함께 자세한 얘기 나눠 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지금 빈소 관련해서 저희가 계속 보여드리고 있는데 이명박 전 대통령도 조금 있으면 빈소에 올 걸로 보이고요. 그리고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도 빈소를 11시쯤 찾을 것으로 예상이 되고 있습니다. 지금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가 이후 정치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금 빈소의 모습을 보면 그런 모습이 예상되기도 하고 궁금하거든요.

[기자]
일단은 큰 족적을 남겼던 정치거목이었고 해서 아무래도 조문을 하게 되면 나쁜 이야기는 할 수 없거든요. 덕담을 하게 되고. 지금 김무성 대표는 이미 상도동계 인사니까 이미 상주 노릇을 하겠다라고 얘기하고 있고 문재인 대표도 오늘 강원도 방문 일정을 취소하고 11시에 오겠다고 했는데 사실 또 김영삼 전 대통령과 경남중학교 동문, 마산 그쪽 지역하고 또 관계가 있고요.

여러 가지 관계들이 많이 있습니다. 상도동계 인사들이 했던 게 문재인 대표하고 여러 가지 인연이 있는 분들도 많이 있고요. 이런 관계 때문에 굳이 정책현안을 가지고. 그리고 JP도 다녀갔고요. 이런 부분에 있어서 아무래도 구 정치인들.

정치적 경험이 많은 인사들도 참여를 해서 자리를 하기 때문에 거중조절 역할이 많아질 수 있고. 우리 지금 현대 정치에서 가장 여야관계에서 지금 굉장히 나쁜점 중의 하나가 막후협상 같은 게 사라졌기 때문에 정치가 굉장히 각박하게 돌아간다는 진단들을 많이 하거든요. 이런 부분에 있어서 순기능적 기능이 있다고 봐야 되겠죠.

[앵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저는 상도동 집 한 채밖에 없습니다. 물러나더라도 상도동 집으로 돌아갈 것입니다라고 했는데 그 약속대로 퇴임 후 상도동으로 돌아갔고요. 상도동이 가지는 의미가 꽤 있지 않겠습니까?

[기자]
아무래도 80년대 민주화 봄 때 1960년대 말에 그 집을 샀어요. 상도동 집의 위치를 배경 설명을 약간 드릴 필요가 있는데 상도터널 지나지 않습니까. 그 위에 있는데 거기가 과거 일제시대 때 총독부 관리들이 모여살던 그런 데인데 집 구조들이 굉장히 작습니다.

과거 돌아가신 김동영 전 의원이 선생님, 야당 총재인데 이런 집에 어떻게 삽니까? 하니까 도배하면 괜찮다라고 해서 굉장히 검소한 모습을 보여줬고 실제 집을 저도 수차례 가봤습니다마는 굉장히 작습니다.

그래서 그런 정치적 민주화 역점으로 해서 그런 기반하에서 상도동계로 분류를 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아무래도 동교동에서, 신촌 넘어가는 데 김대중 대통령 도서관이 있는 그 자리, 그것을 개축해서 사용하지 않습니까.

거기서 동교동계 인사들은 거기에 주로 모였다고 해서 동교동계, 상도동계. 이 한 축이 한국 야당사에 있어서 특히 민주화에서 양대산맥을 이뤘고 굉장히 큰 획을 그은, 아직까지도 정치적 유산이 이어지는 그런 의미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행정구역을 따서 상도동계다, 동교동계다 이렇게 부르는 거죠.

[앵커]
단순히 지리적인 어떤 집으로써의 의미만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 빈소에도 상도동계 인사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다, 이런 소식이 들어오고 있는데 어떤 분들이 있을까요?

[기자]
일단은 김무성 대표가 있고요. 그다음에 서청원 전 대표가 있고. 그리고 이병석 의원, 4선 있죠. 정병국 의원이 있고. 그리고 전직 의원들로서는 김동영 의원이 있고. 오늘 아침에 영장사진을 제일 먼저 갖고 왔다는 문정수 전 부산시장이 있고요.

그다음에 울산시장을 지냈던 심완구 전 시장이 있고. 재미있는 게 지금 새정치연합 쪽 인사로 분류되죠. 최기선 전 인천시장, 이분 역시 상도동계 인물이죠. [앵커] 궁금한 부분이 상도동계 인물이었는데 결국 나중에 정치적인 노선을 달리하게 된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기자]
그렇죠. 지금 말씀드렸던 것이 김덕룡, 문정수, 심완구, 최기선 이런 분들이 여러 가지 인연 때문에 지금 대통령이신 박근혜 대통령과 문재인 후보가 지난 대선에서 경쟁을 했을 때 문재인 대표를 지지하고 역설적으로 동교동에 있던 한광옥 대표 같은 경우는 또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고 한화갑 대표 같은 경우 역시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고.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는 굉장히 얽히고 설킨, 그러니까 애증관계. 실제 양 전직대통령끼리는 관계가 좋기도 했고 나쁘기도 했지만 실제 밑에 이른바 가신그룹이었던 다른 정치인들은 실제 정치 현장에서 만나보면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어요.

정치적 노선 같은 건 저녁에 풀고, 그 역할들을 하고 우리가 표면적으로만 보듯이 나쁜 관계로만 지내지는 않았던 관계들이거든요.

[앵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참 사람을 잘 쓰는 정치인으로도 유명하지 않습니까? 적재적소에 썼던 사람들을 정치계로 입문시켰던 그런 정치인이었는데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도 상도동계는 아닙니다마는 발탁이 돼서 대통령까지 되지 않았습니까?

[기자]
그렇죠. 김광일 전 의원이라고 있습니다. 김광일 전 의원이 영화 변호사에서도 잠깐 김광일 의원 역할을 했던 인사가 영화제에서 잠깐 소개된 적도 있는데 노무현 변호사를 천거를 하죠.

천거를 해서 김영삼 전 대통령 대에 하는데 이른바 87년도 3당 합당 때 노무현 당시 의원, 원해영 의원 이런 분들은 따라가지를 않죠. 그래서 다시 꼬마민주당이라고 나중에 호를 부르고 그다음에 정치적 행위를 하기 위해서 고깃집도 만들어서 운영도 하고 이렇게 해서 정치적 입장에 따라서 노선이 갈리죠.

[앵커]
그렇게 또 사람들을 영입하고 키워내고 그러니까 호에서 말하는 것처럼 거산이다, 거목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본인이 정치를 시작할 때는 어땠는지 궁금하거든요.

[기자]
굉장히 오래 전이죠. 전쟁 전에, 1948년도로 기억이 나는데 당시 장택상 의원 비서관으로 시작해서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다 비서관부터 시작해서 정치에 입문을 하고. 전쟁 와중인 1951년 총리실 당시 비서관도 지냈고. 그다음에 그무렵에 부인 손명순 여사를 중매로 만나죠. 손명순 여사도 마산 분이시거든요.

마산여고를 나왔고 이화여대를 나왔던 그런 인물인데. 그래서 60년 한평생을 같이 하게 되는. 그리고 사실은 54년도 최연소 당선될 때가 이승만 정부인 자유당 당으로, 국회의원으로 당선을 하는데 이승만 정부에서 당시 사사오입 개헌을 하는데 그 개헌 반대를 해서 탈당을 하죠. 탈당을 해서 야당의 길을 쭉 걸어왔다가 그다음에 리포트에서 누차 보도를 했습니다마는 최연소 타이틀이 굉장히 많아요.

최연소 원내총무, 최연소 야당대표. 지금도 깨지지 않는 그런 기록들을 많이 갖고 있고. 다선 의원, 9선이 있고 앞서 늘 나왔던 단식도 나중에 깨지기는 했습니다마는 23일간의 단식도 했고.

[앵커]
최초 제명도 됐었잖아요.

[기자]
그렇죠. 그게 최초 제명으로 인해서 그게 부마사태로 연결이 되고 그런 와중에 1979년도부터 80년대까지 정치적 격동기. 그 이후에 여파로 정치활동이 금지가 됐고 그다음에 그것이 민추협. 민주화추진위원회를 83년도에 만들어서, 그 이전에 민산이라고 해서 민주산악회라고 해서 큰 정치적 그룹이 있었고 YS는 민산이 있었고 DJ는... 정치적 지지그룹들이 달랐던 그런 형태가 있었죠.

[앵커]
김영산 대통령의 아호는 거산입니다. 방금 언급하시기도 하셨지만 거제도의 거와 부산의 산을 따와서 지었다고 하는데 그만큼 부산 지역과 거제도 지역을 정치적인 본거지로 삼았다고 볼 수 있죠.

[기자]
그렇죠. 과거 90년도 노태우 대통령과 마지막에 내각제 파동을 겪었을 때 이른바 김영삼 전 대통령이 고향 마산으로 갑자기 내려갑니다. 당무활동이나 정치활동, 여의도 일정을 포기하고. 일종의 정치적 보이콧이죠. 이런 행위로 인해서 자기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고 정치적 정국을 반전시키는. 누구보다 탁월한 능력을 가진 정치인이었죠.

[앵커]
지금 말씀을 들어보면 굉장히 결단력 있게 행동하고 이런 모습들을 많이 보여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실제로 봤을 때는 어땠을지 또 궁금하거든요.

[기자]
실제 그렇습니다. 저도 전직 대통령 담당기자로서 몇 년간 상도동을 출입을 했고 담당을 해 봤었는데 말씀이 굉장히 직설적이죠. 직설적인 데다 경상도사투리까지 쓰니까 본인은 호통을 치시는데 기분은 안 나빴어요, 사실은. 대표적인 언사들이 문민정부 국정기조 하나가 변화와 개혁인데 이것을 처음에 참모들이 못 알았다고 합니다.

배나와 개핵 하니까 이게 무슨 소리냐라고 하니까 옆의 다른 분이 변화와 개혁이다. 저도 사실은 못알아들은 게 몇 개 있었죠. 제가 가니까 아이티엔 기자냐고 해서, 이분이 와이 발음이 안 돼서 아이티엔 기자라고 했던 거. 그다음에 제일 대표적인 게 확실히인데 학실이라고 하시고 이런 게.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건 고인에 대한 폄하가 아니라 굉장히 낭만적인 부분이 있기 때문에 소개해 드리는 건데 그리고 쓸데없는 소리를 씰데없는 소리라고 하셨고 여러 가지 그런 에피소드가 굉장히 많고. 그게 또 어록으로 남고 했던 정치인이죠.

기억에 남는 건 이분이 왜 문민정부라는 호를 썼냐하면 군사정부에 대해 정의를 이렇게 내립니다. 쿠데타로 일으킨 정권이지만 그 후배들이 전역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군정의 연장이다. 대통령 취임사 때 문민정부 오기까지 30년이 걸렸다는 것이 의미가 거기에 있는 거거거든요.

그래서 이런 부분에 있어서 본인이 문민정부에서... 문민정부 때 가장 큰 일이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 수차례 얘기했지만 앞서 하나회 척결 과정에서 역설적으로 차남인 김현철 씨가 군 내부 인사에 개입하게 되는 단초가 돼서 그게 결국은 영어의 몸이 되고 그런 과정을 겪다보니까 자식의 부덕은부모도 책임이 있다, 이렇게 됐고.

영원한 맞수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영어의 몸이 되기도 했었고요. 이런 부분이 정치 50년을 하면서 협력과 갈등을 반복했던 게 많이 있죠.

[앵커]
그렇죠. 비슷한 부분도 있고 그리고 서로 도운 적도 있고. 아까 최연소 기록 얘기할 때도 들어보면 그런 당내 직위 그리고 더 나아가서 대선 후보가 되는 과정에서도 계속 맞붙지 않았습니까, 김대중 전 대통령과요.

[기자]
그런 과정도 있었고요. 1960년대 신민당이라고 진산. 나중에 영등포, 과거에는 강남이 없었고. 이른바 진산파동이라는 것을 겪은 그 당시에 유진산 총재 비서실장을 YS 대통령이 한 적이 있어요.

그당시에 신민당의 원내총무는 지금 민족의 인사로 분류되는 정대철 전 의원의 부친인 정일형 원내총무가 있었고요. 그런데 이런 정치쟁의가 있을 때 당내 지도부 인사, 그때는 다른 당중진보다 어린 나이인데 밤에 이런 막후를 지프차 타고 다니면서 잘 했다는 것이 정가의 유명한 회자 중에 하나죠.

[앵커]
만 25세, 최연소로 국회의원에 당선이 됐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보여준 모습들을 보면 결코 그렇게 어린 사람, 정치적인 판단이나 이런 것들이 결코 그렇게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만만하게 볼 수 있는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는 말씀이신 거죠?

[기자]
그렇죠. 그리고 국내정치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금 러시아 북방외교의 단초도 우리나라 정치인으로서는 소련을 처음 방문했던 인사 중에 하나고요. 이런 것이 얼그러져서 평가가 엇갈린 부분이 있습니다마는 어찌됐든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북방외교의 단초가 되기도 하고 집권 시절인 1993년도 첫해 영변 핵발전소, 북핵위기가 발발을 하죠.

그런데 그 이듬해에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는 날 전군에 비상령을 내리는 바람에 그때 굉장히 남북 관계가 다시 안 좋아졌고 공과도 있고 그런데 아무래도 고인이 됐으니까 공은 굉장히 많이 평가를 하고 과는 적게 평가하는 그런 미덕이 필요해 보이지 않나 싶습니다.

[앵커]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 개인적인 삶에 대해서 드리겠습니다. 김 전 대통령 조깅 마니아로 알려져 있잖아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조깅했다고 하는데 조깅에 얽힌 개인적인 일화들이 있을까요?


[기자]
저도 들은 얘기인데 해외순방을 가도 꼭 조깅을 현지에서 하기 때문에 달리기를 잘 못하던 참모들은 굉장히 힘들었다고 합니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하고 그 당시 일화 중에 하나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어떤 외국 브랜드의 운동화를 신고 뛰어서 문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일화도 있고요.

[앵커]
저희가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소식 관련해서 전해 드리면서 여러 가지 얘기 나눠봤습니다. 뒷 얘기도 많이 나눠봤고요.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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