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같은 날 태어난 쌍둥이도 몇 분 먼저 태어나면 '장녀(장남)', 나중에 태어나면 '차녀(차남)'이라고 불러 왔다. 그러나 두 개의 난자 정자가 동시에 수정되거나(이란성), 하나의 수정란에서 분리된(일란성) 쌍둥이에게 손위, 손아래의 개념이 존재할 리가 없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쌍둥이의 순서를 따지는 걸까?
이는 두 명만 모여도 서열을 정하려고 하는 우리나라 특유의 문화 때문이다. 물론 해외에서도 쌍둥이의 위아래를 나누는 경우가 있지만, 서로 이름을 부르며 친구처럼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나라처럼 어른들이 나중에 태어난 쌍둥이에게 손위 쪽을 '오빠', '형', '누나', '언니'로 부르라고 강요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쌍둥이의 서열을 정하면 편리한 사람들은 기존 '서열 중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뿐이다. 이런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들은 아이들끼리 싸웠을 때도 "너는 동생에게 양보도 안 하니?" / "너는 왜 언니에게 대들고 그러니?"와 같은 말로 갈등의 본질을 놓칠 위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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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청소년상담원에 올라온 '쌍둥이 서열 문제' 다툼 글 캡쳐, 2008)
일상생활에서도 부모가 쌍둥이의 서열을 명확하게 구분하면 형(언니)에게 형으로서의 책임감을, 동생에게 동생으로서의 책무를 지우고 윗사람과 아랫사람을 구분함으로써 이에 걸맞은 기대감을 투영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양육방식은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보통은 손아래 쪽이 피해의식을 느끼거나, 손위 쪽이 권위의식을 갖게 되는 식이다.
그래서일까? 최근 젊은 부모들은 대부분 쌍둥이를 친구처럼 키우고 싶어 한다. 여아 일란성 쌍둥이 엄마 A 씨는 "언니, 동생으로 아이들을 구분하면 학교에 가고 친구를 사귈 때 친구들 사이에서도 호칭이 이상해지고, 친구들 역시 쌍둥이 가운데 동생 쪽을 동생 취급한다고 들었다"며 "태어났을 때부터 친구처럼 동등하게 키우기로 가족들과 이미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회적 장벽은 아직도 높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반대에 부딪히는 경우도 있고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 역시 "누가 형(언니)이냐"고 쉽게 물어본다. 만약 "친구처럼 지낸다"고 하면 곧장 "그래도 구분이 있어야...."라는 대답이 돌아오기 일쑤다.
쌍둥이의 위, 아래를 가르는 사람들의 논리는 우리나라의 '장유유서(長幼有序)', 즉 유구한 전통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 살, 한 달, 혹은 몇 분 차이로 서열을 나누는 것이 정말 우리의 전통적인 문화일까? 그렇지 않다. 생각과는 달리, 유교 문화를 가진 조선 시대는 오히려 지금보다 훨씬 열린 사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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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과 한음-포천시 캐릭터)
조선 시대 소학 교재 '동몽선습'은 '장유유서' 개념을 이렇게 설명한다.
"나이 차가 배가 나면 아버지처럼 모시고, 10년 위면 형님으로 모시고, 5년 위라면 어깨를 나란히 걷되 조금 뒤떨어져서 따라가라"
(年長以倍 則父事之 十年以長 則兄事之 五年以長則肩隨之 長慈幼 幼敬長然後 無侮少陵長之弊 而人道正矣)
다시 말해 '5년 미만'의 나이 차이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동등하게 발을 맞춰 걷는 벗으로 지낼 수 있다는 뜻이다. 잘 알려진 조선 시대 최고의 벗 오성과 한음이 사실 5살 차이가 났었다는 사실을 되새겨 보라. 우리의 빡빡한 서열 문화는 조선 시대 전통이 아닌, 군사 독재를 거치면서 생겨난 '군대식 문화'라고 보는 편이 더 타당할 것이다.
위·아래, 아들·딸 구분 없이 키우고 싶은 요즘 젊은 쌍둥이 부모는 그래서 서열화가 불편하다.
YTN PLUS 정윤주 모바일 PD
(younju@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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