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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니 시리즈 65]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대출' 해주는 씨앗 대출 해보니

2019.01.19 오전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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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니 시리즈 65]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대출' 해주는 씨앗 대출 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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갚을 필요도 없고 이자를 꼬박꼬박 낼 필요도 없는 대출이 있다면? 한번 빌릴 때 이름과 사는 동네만 남기면 심사 없이 대출이 한번이 되는 은행이 있다면?


솔깃한 이야기라 자세를 고쳐앉을 사람들을 위해 미리 말하자면 돈 이야기는 아니다. 바로 '씨앗' 이야기다.

대출 조건은 간단하다. 씨앗을 대출해서 심어 키우고, 열매를 맺으면 다시 씨앗을 반납한다. 열매나 씨를 맺지 못하더라도 키우는 일지를 내면 다음에도 씨앗을 대출해준다.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당장 대출 씨앗 목록을 살펴보고 싶어지는 쉬운 조건이다.

아파트에서 태어나고 자라 식물을 가까이할 기회가 없었지만,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듯 씨앗을 대출해 크게 키워 다시 돌려주는 상상을 하며 직접 씨앗 대출을 해보기로 했다.

서울 식물원에서 시범 운영 중인 씨앗 대출 프로그램은 식물원 식물문화센터 1층에 있는 '씨앗 도서관'에서 3월까지 진행된다. 식물원에서 씨앗을 대출해주는 이유는 도시에 사는 시민들에게 식물을 가까이 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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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니 시리즈 65]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대출' 해주는 씨앗 대출 해보니

식물원에 준비된 씨앗은 해바라기, 잣나무, 완두, 소나무 타래붓꽃, 곰솔, 유채, 편백, 메밀로 9가지 씨앗이다. 인기가 좋으면 조기에 품절될 수 있고, 하루에 약 1000개 정도가 준비되어 있다.

씨앗을 빌리러 간 날 오전 중에만 450명 이상이 씨앗을 대출해갈 정도로 인기가 좋지만, 11월부터 대출을 시작했기 때문에 아직 대출 씨앗을 반납한 사람은 없다.

현재 대출 중인 잣나무 소나무, 곰솔, 편백 씨앗은 모두 싹 틔우기 어려운 소나무 종류지만 식물원은 "난이도가 높아도 반드시 발아해서 키워오는 사람이 나오기 마련"이라며 '식물 고수'들이 분양해간다고 말했다.

가장 인기가 좋은 씨앗은 해바라기로 토종 씨앗은 아니지만(모양이 조금 더 크다) 커다란 꽃을 볼 수 있고 씨앗도 많이 나오는 편이라 인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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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니 시리즈 65]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대출' 해주는 씨앗 대출 해보니

씨앗 도서관에서 씨앗을 대출해주는 분들은 서울시에서 훈련받은 식물원 코디네이터들로 씨앗의 싹을 틔우는 방법과 기를 때 주의사항 등을 알려준다.

온라인에 제각각인 식물 기르는 법 때문이라도 서울 식물원에서 각 식물을 키우는 법을 알려주면 좋겠지만 현재는 따로 매뉴얼을 제공하고 있지는 않다.

식물을 키우는 방법에는 왕도가 없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물을 많이 주면 안 된다고 알려진 식물이 물을 자주 줄수록 오히려 잘 자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직접 키워보고 식물에 대해 알아가는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

씨앗은 각각 20kg 정도 확보되어 있고, 약봉지처럼 포장해서 약재 상자에서 꺼내 준다. 씨앗마다 다르지만 포장된 양은 5~6개 정도다.

줄기가 저들끼리 휘감고 자라고 아름다운 보라색 꽃을 틔운다고 해서 타래붓꽃을 대출받기로 했다. 하지만 타래붓꽃 같은 경우도 씨앗 껍질이 단단한 편이라 싹을 틔우기 어려운 종이다. 대출할 때는 몰랐지만 찾아보니 "싹이 왜 이렇게 안 나오냐"는 글들이 나와서 조금 좌절했다.

씨앗을 대출해주는 분에게 "중간에 타래붓꽃이 죽거나 시들면 어떻게 하냐?"고 묻자 식물 관찰일기를 쓰거나 식물을 심고 길렀다는 사진 증거만 다시 제출해도 씨앗을 대출받을 수 있다고 대답해주었다.

그러나 대출을 하고 식물을 심고 키웠다는 증거가 없으면 추가 대출받기 어렵다. 대출할 때는 잘 기르겠다는 각오로 대출을 받아야 한다. 씨앗을 반납하면 난도가 높은 씨앗을 대출받을 수 있다.

지금까지 씨앗을 가장 많이 대출하는 연령대는 50대 여성이고, 가장 관심을 보이지 않는 연령은 20대 남성이었다. "나이 50이 지나야 비로소 화초의 아름다움을 안다"는 말이 있다고 하지만, 30년 인생에서도 식물의 아름다움을 공짜로 누릴 수 있으니 꽤 괜찮은 대출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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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니 시리즈 65]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대출' 해주는 씨앗 대출 해보니

도서관에서 씨앗을 대출할 수도 있지만, 기증도 가능하다. 씨앗도 '족보'가 있고, '출신지'가 있다. 식물원은 씨앗을 기증받으면서 이 씨앗이 어디 출신인지 잘 기록해놓고 다시 대출을 해주기도 한다.

씨앗을 대출한 후에는 '식물 도서관'으로 가서 식물을 키우는 방법, 정원 가꾸기에 관련된 책, 화보 등 다양한 식물 관련 정보를 접할 수 있다.

책 대출은 안 되지만, 그 자리에서 열심히 식물에 관해 공부하는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도서관 업무를 맡은 식물원 자원봉사자 변○○ 님은 "도서관 대출 업무를 돕고, 업무가 끝나고 나면 책을 보면서 틈틈이 공부를 더 한다"고 말했다.

책을 보면 "이전에는 몰랐던 것들이 보인다"면서 "식물의 무슨 무슨 과 무슨 무슨 목 이런 게 뭔지 정확히 몰랐는데 책을 보면서 알게 됐어요. 식물은 배울 점이 참 많아요"라고 말했다. 식물을 키울 때는 땅에 무조건 심고 물을 준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

변○○ 자원봉사자는 도서관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도서관에서는 조용히 해줬으면 좋겠다는 당부를 전했다.

씨앗을 대출받아 기쁘게도 싹이 났다면 대출 상환은 반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식물을 길러본 사람은 알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식물도 자라기를 멈추는 '정체기'가 온다. 평소와 다름없이 물도 주고 키운 거 같은데 시들시들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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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니 시리즈 65]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대출' 해주는 씨앗 대출 해보니

그럴 때는 서울 식물원 내의 '식물 상담'을 이용할 수도 있다. 식물 상담은 식물을 갖고 오면 적절한 진단을 내려준다. 아직은 씨앗만 손에 담은 상태니 식물 상담은 나중을 위해 기억하기로 하고 집으로 와 씨앗을 물려 불렸다.

식물원에 방문한 것은 8일이었지만, 기사를 쓰는 18일 현재까지도 싹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겉흙이 마르지 않게 계속 물을 주면서 갚을 날을 기다린다.

서울 식물원뿐만 아니라 전국의 작은 식물원이나 씨앗 도서관에서도 씨앗을 대출해준다.
지금은 미세먼지에 햇빛마저 흐린 겨울이지만 조금만 지나면 봄이 올 것이고, 마른 땅에 숨겨졌던 초록빛들이 고개를 내밀 것이다.

올 봄엔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기분 좋은 '대출'을 해보는 건 어떨까.


YTN PLUS 최가영 기자 (weeping07@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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