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이 돈이 되는 시대, 온라인 공간에 아주 매력적인 뉴스상품이 등장했다. 바로 '가짜 뉴스'다.
'가짜 뉴스'는 의도적으로 뉴스를 조작해 편파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을 퍼뜨린다. 지난 2016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트럼프 후보를 지지한다"거나 "힐러리 후보가 IS에 무기를 판매한다"는 등의 '가짜 뉴스'는 '진짜 뉴스'보다 사람들의 주목을 많이 이끌었다.
뿐만 아니라 케임브리지대학교의 알렉산드로 코건 교수팀이 만든 페이스북 서드 파티형 소셜 게임 앱 ‘ThisIsYourdigitalLife’는 전 세계 페이스북 사용자 약 8,700만 명의 디지털 개인정보를 수집해 트럼프 후보 측에 팔아넘긴 다음, 2016년 미국 대선에 가짜 뉴스 배포를 위한 백 데이터로 활용해 비난을 샀던 바 있다.
이처럼 '가짜 뉴스'라는 상품이 여론을 조작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자 이를 막기 위한 다양한 책임론이 제시되었다. 바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언론 및 교육계에서 '가짜뉴스' 문제 해결 방안을 논할 때마다 등장하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미디어 리터러시'란 무엇일까?
‘미디어 리터러시’란 미디어를 능숙하고 책임감 있게 다룰 수 있으며, 콘텐츠를 창조적으로 생산할 수 있고,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 등을 의미한다.
일반 시민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개념이지만 언론이나 교육계 등에서는 주목한 지 꽤 오래 됐다. 지금 이 순간에도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만큼 미디어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법 등을 익힌다는 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여전히 개념 정립조차 되어 있지 않고, 교육으로서의 큰 틀을 갖추려면 갈 길이 멀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미디어 교육 관련 입법을 추진하려는 움직임들도 있지만 관계부처 간 이해 관계가 얽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다가, 학교와 언론진흥재단, 전국의 시청자미디어센터 등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미디어 교육을 실시하면서 다소 혼란스러운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이미지 확대 보기
[사진설명] 참석자들이 작성한 미디어 리터러시에 관한 다양한 의견들
이에 따라 미디어 리터러시의 개념과 교육 목표와 방향 설정을 위해 현장과 각 부처, 기관 등의 목소리를 한 데 모으고 정리할 필요성이 커졌다.
지난 22일 서울 대학로 공공그라운드에서는 미디어 리터러시를 주제로 다양한 기관, 조직과 관계자들이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교사, 도서관 사서, 기자와 한국언론진흥재단과 시청자미디어센터 등 유관기관 관계자 40여 명이 참석해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한 의견과 현장에서 느낀 고충 등을 자유롭게 나눴다.
교육을 통해 미디어 활용 방법이나 미디어가 내게 미치는 영향, 내가 미디어에 미치는 영향, 미디어에서 오는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등의 능력을 포괄적으로 길러야 한다는 점 등 다양한 논의가 펼쳐졌다.
또, 미디어 교육의 인프라나 지원이 부족하다는 의견부터 이미 미디어를 활용한 수업을 실시하고 있는 학교 현장에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필요성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다는 지적 등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이미지 확대 보기
[사진설명] 발표하고 있는 최원석 프리랜서 기자(전 YTN 기자)
□ 협업의 필요성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행사 주최자인 최원석 프리랜서 기자는 “핀란드에서 미디어 교육을 공부하면서 가장 인상 깊게 느꼈던 부분은 협업”이라며 “미디어 교육이 중요하다는 공통 의식을 바탕으로 학교와 정부 기관은 물론 도서관, 방송사, 민간단체 등이 자발적으로 미디어 교육을 실시한다”고 설명했다.
또 “협업과 더불어 논의 역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데, 우리도 각 부처, 조직, 기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서로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논의하는 자리가 지속적으로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한 참석자도 "37개 지역 미디어센터 연합체가 있지만 체계적 연계되지 않고 있고, 지자체에 있는 센터들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방황하는 중"이라며 "연계의 필요성, 중요성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미지 확대 보기
[사진설명] 발표를 듣고 있는 이성규 전 메디아티 미디어테크랩장
□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용어가 만드는 벽, 충분한 설득과 이해 필요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용어 자체에 대한 지적 역시 논의 때마다 심심찮게 등장하는 논의거리다.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용어가 ‘미디어 문해력’ 정도만 뜻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실제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 담긴 내용을 포괄하기에 모호함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학교에서는 이미 미디어를 활용한 교육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라는 용어나 영역이 따로 생긴다는 게 의문이라며,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용어에 대한 설명은 물론, 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설득이 먼저 충분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이미지 확대 보기
[사진설명] 다양한 분야의 미디어 전문가들이 미디어 리터러시를 토론하는 모습
□ “미디어 환경 내에 다양성 부재, 올바른 비판 능력 갖출 수 있나?”
미디어를 통해 사회나 공동체에 자신이 어떤 영향력을 줄 수 있는지 등 정보 생산자로서의 역할 등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겠지만, 수용자로서 ‘정보 리터러시’ 능력을 갖추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정보에 대해서 무조건 신뢰하는 게 아니라 거리를 두고, 스스로 정보를 판별할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이 올바른 능력을 갖추기에 바람직한 미디어 환경이 조성돼있는가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사람들이 미디어에서 다양한 세계관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 참석자는 “최근 미디어를 보면 뭔가 양분화 돼있는 느낌이 든다. 공격과 비방이 만연하고, 다양한 시각을 제시하지 못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다양한 세계관을 접하지 못 한 아이들에게 과연 올바른 비판 능력이 생기겠는가?”라며 “다양한 세계관을 접하고, 각자의 세계관을 존중받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올바른 시각과 비판 능력을 함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참석자들 가운데 일부를 인터뷰 한 내용이다.
이미지 확대 보기
[사진설명] <b>오수정,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교육팀장</b>
■ 오수정,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교육팀장
“미디어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이 됐다. 일상이 돼버린 미디어를 현명하게 사용하는 법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것 같다. 미디어는 수단인데, 수단에서 산출된 콘텐츠에 대해서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고 유통 가능하게 된 지금은 부작용이 더욱 심해졌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허위 정보로 인해 피해를 입기도 하고, 온라인상에서 어떤 알고리즘에 의해 이상한 광고에 노출되고, 소비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것이 어떤 알고리즘에 의한 것인지에 대한 이해는 부족한 상황이다. 또한 필터 버블이라든가 확증편향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미디어의 위험성 역시 꼭 인지해야 할 부분인데, 이런 것들은 미디어 교육이 없으면 알아채기 힘들다.
미디어를 누구나 쉽게 접하고 쓴다는 인식이 별도 교육이 필요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지기도 해 어려움이 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도 이미 미디어 활용해서 해왔는데, 갑자기 별도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라는 걸 한다는 게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있다.
그렇지만 지금은 미디어 자체에 대해 알아야 하는 사회다. 정보의 바다에 빠지지 않고 유연하게 헤쳐 나갈 수 있는 생존기술이 미디어 리터러시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라는 것을 어떤 시험 과목이나 평가 받아야 할 역량이 아닌, 일상에서 꼭 필요한 요소라는 인식이 공유돼야 한다.“ - 오수정
이미지 확대 보기
[사진설명] <b>현용안, 인천 동산고등학교 미술 교사</b>
■ 현용안, 인천 동산고등학교 미술 교사
“미술교사로서 주로 시각적인 것을 다루고 있는데, 요즘 청소년들은 시각 매체에 많이 노출돼있지 않나. 게임이나 유튜브, 영화, 애니, 웹툰 등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산다. 내가 미디어 리터러시를 중요하게 생각한 이유는 이미지도 하나의 언어이자 표현 수단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애니메이션이든 영화든 그 속에 작가의 의도나 메시지가 들어 있지 않나. 그런데 아이들로서는 그걸 알아채기가 힘들다. 이미지를 언어나 표현 수단으로 인지하는 것부터가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무분별하게 받아들일 위험이 크다.
예를 들어, 군국주의나 전체주의를 담은 극우 성향의 일본 애니메이션이 있는데, 청소년들이 그러한 메시지를 읽지 못 해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극단적으로는 전쟁을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게 될 위험도 있다. 미술교사로서 이런 일을 방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 어떤 영화를 보여주고, 영화의 단순한 줄거리보다는 작가의도를 파악하게 한다. 상업 영화라 할지라도 감독, 작가가 캐릭터에 부여한 각각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이들을 자유로운 논의를 통해 알아내고 이해하게끔 한다. 또한 영화선상에서 선과 악으로 규정된 것들이 무조건 절대악이나 절대선으로 볼 수 있을지, 다른 입장에서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지, 다양한 각도로 비판하고 바라볼 수 있는 데 교육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 현용안
이미지 확대 보기
[사진설명] <b>임하순, 광운중학교 교장</b>
■ 임하순, 광운중학교 교장
“요즘 세대는 기성세대와 비교해 미디어에 대한 관심은 물론 활용 능력 면에서도 월등한 것 같다. 일전에 학생들에게 자신의 꿈에 대해 얘기하고, 영상물로 만들어 홈페이지에 올리라는
숙제를 낸 적이 있었는데, 유튜브에 올려도 될 만한 높은 수준급 실력들을 자랑하더라. 미디어 교육을 따로 하지도 않는데도 그와 같은 결과물을 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무엇이든 미디어로 표현하는 것에 익숙함과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확실히 본인의 의도와 의사를 담아낸다.
어쨌든 요즘 아이들이 미디어에 관심이 많고, 미디어의 영향력 또한 크다보니, 선생님들도 자연스럽게 미디어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됐고, 연수 등을 열심히 받고, 자유학년제 등을 통해 교육이 점차 활발해지는 분위기다.
다만, 비판적인 시각 등을 교육하는 데 있어 중학생들은 다소 이른 시기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가치중립적인 시각이 필요한데, 자칫 이념적인 내용이 섞여 어린 학생들의 시야가 좁아지고, 가치관 정립에도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론적 배경을 먼저 알려주고, 학생들이 이론적으로 충분히 인지한 상태에서 비판적, 논리적 능력 키워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 임하순
■하윤영, 신서중학교 도덕 교사
“미디어 교육을 통해 지금 아이들에게 교육해야 할 것 중 하나가 ‘나와 다른 문화의 아이들을 만나서 공존하는 방법’이다.
디지털 노마드라고 해서 디지털 본성을 갖고 태어난 아이들이 따로 있다는 말도 있지만, 기성세대가 책임감을 갖고 아이들에게 전달하고 가르쳐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미디어 세상에서 아이들끼리 만났을 때는 국적이라든가, 인종이라든가, 언어의 차이라든가 그런 것들을 넘어 새로운 언어가 있을 거다. 새로운 언어를 만나는 과정에서 어른들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또, 우리 교사들은 아이들과 만날 공식적인 자리가 있지만, 대부분의 어른들이 아이들과 만날 수 있는 공식적인 자리가 없다. 그런 점에서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것이 하나의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기성세대가 미래 세대에 다양성의 중요성을 전달하는 플랫폼으로서 말이다. 미디어 리터러시를 통해 더 넓은 소통의 기반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 하윤영
이미지 확대 보기
[사진설명] <b>류지영, 유은혜 의원(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보좌관</b>
■류지영, 유은혜 의원(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보좌관
“그간 현장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활동으로 미디어교육법 추진위원회 등과 소통을 해왔다. 그 결과를 모은 것 가운데 하나가 미디어교육 관련 법안이다. 입법도 발의했다. 현장의 목소리들이 담긴 법안이라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우리나라의 미디어 리터러시, 즉 미디어 교육은 짧지 않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역사를 통해 현재까지 큰 흐름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현장과 현장에 있었던 분들 덕분이라고 본다. 여기서 현장은 학교뿐만 아니라 여러 기관, 단체, 그리고 사회현장 등을 일컫는다. 우리처럼 정책을 수렴하는 사람들은 현장의 제안과 흐름 등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곳에 더 가까이 가고 현장의 의견을 수렴해 제도화 하는 것이 정책의 중요한 포인트이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앞으로가 중요하다. 그것은 정부 주도로만 될 수 없다. 현장과 함께 움직이는 것이 거버넌스이고 현장과 함께 머리를 맞대어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앞으로도 미디어 리터러시와 관련해 현장을 지켜왔던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 그 목소리에 답을 해야 하는 것이 정책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 류지영
취재 : YTN 서정호(hoseo@ytn.co.kr)
강승민(happyjournalist@ytnplus.co.kr)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