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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일] 대안인가 꼼수인가...'문희상 법안' 뒷얘기

와이파일 2019-12-22 08:00
[와이파일] 대안인가 꼼수인가...\'문희상 법안\' 뒷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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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박근혜 정부 '화해치유재단'의 재림일까요? 새로운 한일관계를 선언한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재확인일까요? 이른바 '문희상 법안' 논란이 뜨겁습니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된 피해자를 지원하고 조사하려는 법안인데요. 악화한 한일관계를 풀 현실적인 '대안'이 될지, 일본의 사과 없이 현실을 모면하려는 '꼼수'가 될지, 꼼꼼히 따져봤습니다.

[와이파일] 대안인가 꼼수인가...'문희상 법안' 뒷얘기

법안은 2개입니다. '기억ㆍ화해ㆍ미래재단법안'과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인데요. 앞에 건 새로 법을 만드는 거고요. 뒤에 건 원래 있던 법을 고치는 겁니다. 법안 내용, 핵심만 추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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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 국회의장이 발의한 강제동원 관련 법안 2개

▲ 위자료 받은 피해자는 소송 못 한다?

맞습니다. 강제동원 피해자가 재단에서 위자료를 받으면 그 피해자의 재판청구권은 포기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만약 재판이 진행 중이라면 소송은 취하됩니다. 위자료 받는 조건에 '소의 취하'가 있거든요.

그럼 일본의 전범기업은 '땡큐' 아니냐고요? 100% 맞는 말은 아닙니다. 강제동원 피해자가 위자료를 받으면, 피해자의 권리는 재단으로 넘어갑니다. 재단은 그 권리를 갖고, 전범기업에 소송을 걸 수 있습니다. 재판청구권이 아예 사라진 게 아닌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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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 의장이 발의한 '기억ㆍ화해ㆍ미래재단법안' 19조

그런데 재단이 소송을 할까요? 현실적으로 가능성은 낮습니다. 재단이 주는 위자료는 일본 기업과 한국 기업의 기부금입니다. 기부금을 받은 재단이 기부금을 낸 일본 기업에 소송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물론 기부금을 낸 일본 기업과 소송을 걸 일본 기업이 같지 않을 수 있지만, 적어도 소송에 있어 재단의 '결단'이 필요한 건 명확합니다. 더구나 '문희상 법안'에는 재단의 일본 기업 소송 얘기가 한 줄도 없습니다. 이제는 해산된 화해치유재단처럼 이 재단도 해산되면 피해자들의 권리는 영영 소멸될 수도 있습니다. 일부 피해 단체가 '문희상 법안'이 '피해자 청산 법안'이라고 비판한 이유죠.

임재성 변호사 (지난달 27일)
"피해자를 청산하기 위한 법률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재단을 통해서 2억 원씩 받고 화해해서 더이상 아무런 법적 권리를 행사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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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정부의 사과·배상은 없다?

맞습니다. '문희상 법안'의 핵심은 강제동원 피해 조사와 지원입니다. 일본 정부의 사과, 배상 요구는 적혀 있지 않습니다. 피해자에게 주는 위자료는 한일 기업과 국민의 기부금 등입니다. 일본 정부 배상금은 없습니다.

원래는 일본 정부 돈도 포함하려 했습니다. 박근혜 정권 때의 화해치유재단 잔액 60억 원입니다. 애초에 '문희상 법안'의 피해 지원 대상에도 일본군 성 노예 피해자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피해 단체들은 강력 반발했습니다. 일본은 여지껏 일본군 성 노예가 정부 차원이 아니라 민간 차원의 동원이라고 주장하며 문제를 축소하고 있고, 아베 총리의 진정 어린 사과도 없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법안 초안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는데 최종안에는 다 빠졌습니다. 그래서 일본 정부의 돈은 한 푼도 들어있지 않습니다.

정혜경 일제 강제동원&평화연구회 박사
"문희상 의장 법안 자체가 일본이 입장을 바꿀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일본의 사과, 배상은 전혀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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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 법안 초안. 화해치유재단 잔액 60억 원을 위자료 기금으로 활용한다고 나와 있다. 숱한 비판 끝에 최종안에서는 빠졌다

▲ 독일 재단 사례와 비슷하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 전범국입니다. 패전 후 2000년, 다른 나라 피해자들에게 보상하기 위해서 '기억·책임·미래 재단'이란 걸 만들었습니다. 문희상 법안의 '기억·화해·미래 재단'과 이름이 비슷하죠. ('책임' -> '화해') 그런데 두 재단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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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기억·책임·미래 재단' 홈페이지

책임의 주체입니다. 독일은 전쟁 피해국의 출연금 없이, 독일 정부와 기업의 지원금으로 배상했습니다. 문희상 법안은 피해국인 우리나라와 가해국인 일본의 책임을 동등하게 지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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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 법안' 재단의 기금. 한일 기업과 한일 국민의 기부금이라고 써 있다

사과 여부도 다릅니다. 독일은 지금까지 전쟁 범죄에 대해 수차례 공식 사죄를 해왔습니다. 상징적인 사건은 1970년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가 폴란드의 유대인 추모비를 찾아가 무릎을 꿇은 일입니다. 일본은 강제동원에 대해 지금까지 한 번도 공식 사과를 한 적이 없습니다. 1993년 고노 담화 등으로 일본은 전쟁 범죄 전체에 대해 공식 사과를 계속 해왔다는 주장도 있으나, 그게 사과가 맞다면 가해 행위에 따른 피해 배상도 있어야 하겠죠. 하지만 일본의 배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습니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은 배상금이 아닌 지원금이라는 게 일본 공식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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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폴란드의 유대인 추모비를 찾아 무릎을 꿇은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

배상 대상도 다릅니다. 독일은 독일과 인접 국가 피해자 모두에 배상했습니다. 문희상 법안은 '국외' 강제동원 피해자를 지원할 뿐, '국내' 피해자에겐 배상하지 않습니다. 법안 발의에 참여한 관계자는 국외 피해자부터 먼저 구제한 뒤 국내 피해자까지 넓힐 계획이라고 했지만, 구속력 없는 '다짐'일 뿐입니다.

이렇게까지만 보면 '문희상 법안'은 '악법'도 이런 '악법'이 없을 정도의 천하의 '나쁜' 법안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렇기만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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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 의장이 발의한 개정안.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를 대상으로 한 법안이라고 제목에 써 있다

▲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문희상 법안' 찬성?

이주성, 김봉시, 백장호 등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은 지난 19일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요지는 문희상 법안을 하루빨리 통과시켜달라는 거였습니다. 이들은 성명에서 "일제 피해자 유족들은 80~90살의 고령으로 선친을 잃고 평생을 고아처럼 살아온 한 맺힌 사람들"이라며, "하루빨리 문희상 의장님의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 피해 당사자들이 죽기 전에 실질적인 유족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문희상 법안에 반대하는 일부 피해 단체를 겨냥해 "피해 당사자도 아닌 일부 몰지각한 운동권 시민단체들이 이에 편승해 자기들 밥벌이를 계속 하려고 한다"며, "운동권 시민단체들은 여기서 빠져줄 것을 강력히 권고하고, 피해 당사자들이 이를 배척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1만 명에 달한다는 법안 동의서를 제출했습니다. (1만 명이 모두 피해 당사자인지, 1만 명이라는 수치가 맞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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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 '문희상 법안' 통과를 외치는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반면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등은 문희상 법안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습니다. "일본 정부와 기업은 대법원 판결이 국제법 위반이라며 오히려 피해자 행세를 하면서 판결 이행을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특히 "일본 정부와 기업이 가해의 책임을 인정하지도 않고, 사죄도 하지 않은 채 자발적인 기부금으로 강제동원 문제 전체를 해결한다"며, "피해자들은 돈 몇 푼을 받자고 싸워 온 것이 아니다"라고 비판했습니다. 강제동원 피해 당사자인 양금덕 할머니 역시 "절대로 (일본의) 사죄 없는 더러운 돈을 받을 수 없다"라며 손편지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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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가 쓴 손편지. 문희상 법안에 강력 반발하는 내용이다

▲ 여론조사 결과, 국민 과반수가 문희상 법안 찬성?

문희상 국회의장실은 지난 17일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국민 설문조사를 해봤더니, 과반수가 문희상 법안 재단에 찬성한다는 내용이었는데요. 취재진이 설문조사 원문을 확인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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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 국회의장실이 낸 보도자료. 문희상 법안에 찬성하는 국민이 과반수라고 써 있다

보도자료에서 강조한 10번 질문입니다. "국회가 3권 분립을 존중하는 전제 하에, 피해자를 우선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기억·화해·미래재단법안」의 입법조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이었는데요. 68%가 찬성, 19%가 반대였습니다. 재단을 수식하는 말은 '3권 분립을 존중', '피해자를 우선적으로 지원'으로 긍정적입니다. 설문조사 전체 문항은 11개, 기억·화해·미래재단에 대한 질문은 그중 4개였는데요. 무슨 질문이었는지 모두 살펴보겠습니다.

"8. 기억・화해・미래재단을 설립하여 피해자의 즉각적이고 현실적인 지원이 가능하도록 기금을 모집하는데 참여할 의향이 있습니까?"

"9. 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 단체 39곳에서 「기억·화해·미래재단법안」제정을 지지하며 조속한 처리를 요청하는 연대서명 청원서를 국회에 보낸 바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0번 질문에서 '기억・화해・미래재단'에 대한 찬반을 묻기 전, 8번과 9번 질문에서 재단에 대한 긍정적인 인상을 심어줍니다. '피해자의 즉각적이고 현실적인 지원', '피해 단체 39곳에서 재단법안 제정을 지지하며 조속한 처리를 요청'이라는 문구로 말이죠. 이 문구들을 보면 '아, 재단은 피해자를 현실적으로 지원하고, 피해 단체들도 동의한 좋은 곳이구나'라는 선입견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 상태에서 재단의 찬반을 묻는 결정적인 10번 질문이 나옵니다. 그리고 마지막 11번 질문에서 긍정적 답변을 유도하기 위한 쐐기를 박습니다.

"11. ‘양국간의 과거를 기억하고 화해를 통해 미래로 함께 나아가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기억·화해·미래 재단」의 명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63.6%가 찬성, 26.2%가 반대. 10.2%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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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 국회의장실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한 설문조사 질문지

▲ 피해자들이 원하는 건 위자료일까, 사과일까

'문희상 법안'의 당사자는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입니다. 그들의 '다수'가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찬반 성명과 왜곡된 설문조사로는 알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일부 피해자분들은 금전적 보상을 절실히 원하고 있습니다. 반면 다른 일부 피해자분들은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바라고 있습니다.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원칙은 확실한데, 피해자가 둘로 나뉜 셈입니다.

또 다른 원칙도 있습니다.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와 배상'입니다. 전쟁 범죄는 명백한 잘못입니다. 잘못을 했으면 사과를 하고, 피해를 줬다면 배상을 해야 합니다. 일본이 수십 년 동안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앞으로도 가망이 없으니, 현실을 인정하고 피해자인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자는 주장. 두 번째 원칙과는 분명 어긋나 있습니다.

이제 살 날이 얼마 안 남은 피해자들이 원하는 건, 최소한의 위자료일까요,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일까요.


취재기자: 한동오 hdo86@ytn.co.kr
그래픽 디자이너: 손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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