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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 별세..."혁신의 리더십 vs 황제 경영"

2020.10.25 오후 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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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김영수 앵커
■ 출연 : 정철진 경제평론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앵커]
오늘 별세한 이건희 회장은 뛰어난 결단력과 추진력으로 삼성을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키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무노조 경영과 경영 승계를 둘러싼 논란 등 적지 않은 비판도 받았는데요.

이건희 회장의 발자취를 정철진 경제평론가와 함께 짚어보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오늘 아침부터 이 뉴스 계속 저희가 이어가고 있는데요.

이건희 회장이 사실 14년에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에 계속 좋아졌다, 다시 나빠졌다.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공식적으로 확인된 경우는 거의 없었잖아요.

[정철진]
그렇습니다. 2014년 5월 이후에 나왔던 이건희 회장의 병세에 대해서는 공식 파악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1년에 한 번씩은 건강에 대한 뉴스가 나왔었습니다.

당장 중환자실에서 2014년에 호전돼서 일반 병실로 옮겼다는 뉴스도 있었고요. 그 외에 이승엽 선수가 3점 홈런 쳤을 때 눈을 떴다라든가 연간에 이런 이야기들이 하나씩 하나씩 나왔었고요.

마지막으로 제가 봤던 뉴스가 한 종편에서 사진 컷이 나와서 병실에서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겠죠. 그러나 간호사와 함께 있었던 투 컷. 그 사진이 아마 2017년 말 것이 이건희 회장에 대한 비공식적 채널의 뉴스였다, 이렇게 볼 수가 있었겠고.

전반적으로 건강 전체를 보면 지금 자주 언급은 안 되지만 1987년에 본격적으로 이병철 창업주한테 승계를 받지 않습니까. 받기 전에 80년대 초에 한번 큰 교통사고를 겪게 됩니다.

그 뉴스는 별로 집중이 안 됐는데 그리고 어쨌든 복귀를 하고 삼성을 이끌어 왔고요. 가장 최근에 나왔던, 이번 급성 심근경색 전이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왔을 때 폐암 수술 뉴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마 여러분들 기억하시겠지만 2000년 이후로는 언론에 나오는 횟수들이 굉장히 많이 줄어들게 됐었고요. 그다음에 2014년 5월에 이번에 사태가 나게 된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졌고요.

스텐트 시술을 받고 거의 7년 가까이 병상에 있다가 이번에 별세하게 된, 그렇게 흐름을 파악해 볼 수 있겠습니다.

[앵커]
건강이 굉장히 안 좋았는데도 불구하고 27년 동안 삼성을 이끌면서 굉장히 큰 성과들을 만들어냈지 않습니까? 설명을 해 주시죠.

[정철진]
그렇죠. 거목이라는 표현이죠. 지금 각계에서 관련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는데요. 먼저 자산 가치를 보면 시작을 1987년으로 봐야 되겠죠. 그때 당시에 비교해서 매출 기준이 한 17조에서 300조니까 거의 20, 30배 가까이 늘어났다.

[앵커]
저희가 그래픽으로 준비해 둔 걸 보여드리고 있습니다.

[정철진]
그리고 조금 이따 설명하겠지만 이건희 삼성에서 한 획을 그은 것이 1993년 프랑크푸르트의 신 경영이거든요. 저때 기점으로 보면 이익은 거의 한 50배 가까이가 늘어나게 되는.

그래서 삼성 자체로도 키워냈고요. 또 하나 산업군으로 보면 역시 반도체에 있어서 대한민국이 명실상부, 특히 메모리 분야에서 선두를 완전히 유지하게 된, 거기에서는 이건희 회장의 공로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대목이죠.

거기다가 메모리에서는 D램뿐만 아니라 낸드까지도 거의 확실하게 압도적으로 잡았었고 이후에 반도체로 이끌어가는 가전과 모바일, 양대 축을 함께 이끌어가는. 일종의 원소스, 멀티 유즈겠죠.

반도체를 기점으로 가는. 그래서 모바일 시장에서도 거의 20% 이상 점유를 하게 되면서 압도적으로 세계 유일을 차지하는 그런 혁혁한 공로들이 모두 다 이건희 회장과 함께 따라다니는 그런 수식어다,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앵커]
언급을 해 주셨는데 삼성 하면 사실 반도체, 휴대전화. 이렇게 두 개로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중에 반도체가 지금 세계 1위를 선도하고 있는 건 이건희 회장의 결단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어떤 과정이 있었던 겁니까?

[정철진]
그렇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1980년대, 10년 더 올라가면 70년대. 1970년대에는 반도체라는 이야기 자체가 굉장히 생소하죠. 반도체가 뭐야? 이랬을 당시였었는데 그때 이건희 회장이 미국의 실리콘밸리들을 쭉 순회한 다음에 반도체라는 것에 굉장히 깊은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거의 회사가 망해가게 됐던, 파산하게 됐던 한국 반도체라는 것을 거의 자신의 지분을 통해서 인수를 하면서 반도체에 첫 발을 내딛게 됐고요.

그다음부터 지속적으로 반도체에 대한 관심들, 또 올인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80년대에는 64kD램이었는데요. 그때는 조립이었죠. 조립을 하면서 점점 생산을 하게 되고요.

그 뒤에 90년대 오면서 16메가D램, 또 웨이퍼도 8인치로 늘리게 되면서 괄목상대하게 되는 반도체, 획기적 발전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많은 결단들이 있었죠.

도시바의 결합들도 뿌리치고 오로지 반도체로 나가게 되고. 또 반도체라는 게 주기 사업입니다. 그러니까 잘 될 때는 한없이 잘 되지만 안 될 때는 정말 불황에, 돈 먹는 하마거든요.

그렇게 불황일 때 끝까지 버티는, 치킨 게임이라고 하는데 계속해서 버텨서 경쟁사를 다 몰락시키게 되는. 그래서 홀로만 살아남게 되는 그런 주요한 전략들을 펼치게 되면서 전반적으로 반도체 리더십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고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앵커]
휴대전화 산업도 살펴보면 애니콜 신화를 내지 않았습니까? 지금도 굉장히 갤럭시가 잘 되고 있고요. 어떻게 보십니까?

[정철진]
그렇습니다. 휴대폰 역사로 가면 제 아이들은 애니콜이라는 브랜드는 모르더라고요, 중학생만 돼도요. 그런데 최초에는 이동통신이죠. 우리가 80년대에는 카폰이라는 게 있었는데 카폰은 아날로그 방식입니다.

그리고 2세대, 디지털 방식으로 오면서 문자와 전화가 함께 되는 첫 2세대 스마트폰이 삼성 브랜드는 애니콜이었는데요. 94년에 저 애니콜이 처음 브랜드로 나오고 되게 격앙됐다고 그래요, 회사가.
우리도 해냈다, 해냈다고 했는데 95년도에 테스트를 해 봤는데 이건희 회장 보기에는 너무나 형편없었다. 그래서 95년에 전체 애니콜 사업부에 있었던, 핸드폰이죠, 당시에는.

한번 화형식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래서는 절대 택도 없다. 그러고 나서부터 애니콜이라는 품질 자체가 완전히 바뀌게 되고요.

애니콜 시대를 통해서 거의 스마트폰 점유율을 쭉 끌어올리게 되고 그다음에 핸드폰에서 스마트폰 시대로 넘어가는 가장 중요한 이슈 중의 하나가 2007년, 2008년, 2009년 이 사이에 이제 기존의 핸드폰이 스마트폰, 3G가 4세대, 4G로 가게 되는 그 시점에 엄청난 공룡이 나오죠.

아마 여러분들이 아는 스티브 잡스의 애플의 아이폰이 나오게 되는데 그때 아마 못 쫓아갔으면 아이폰이 거의 전 세계를 독식했을 겁니다.

그런데 바로 애니콜에서 갤럭시라는 브랜드를 바꾸게 되면서 스마트폰으로 전환해서 따라가는, 여기에서도 안착하게 되고 급기야는 현재 모바일 스마트폰 점유율 1위를 하게 되는.

그런 모든 것의 지시라든가 휴직 계열화라든가 거기에 맞는 것을 이건희 회장이 총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지금 우리나라가 갖고 있는 모바일 강국 또 반도체 강국의 거의 일등공신은 이건희 회장이다,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앵커]
그룹 운영에 있어서 전반적인 부분을 다 지시하고 그랬던 것 같은데 이건희 회장, 많은 어록들이 있지만 제가 몇 개 소개를 해 드리면 누구나 개인 휴대폰을 갖고 다닐 것이다.

그리고 얇은 브라운관 TV가 벽에 붙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이게 1993년에 했던 얘기라고 합니다. 대단한 직관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정철진]
그러니까 이건희 회장의 경영 능력, 여러 가지 중의 하나가 직관 능력, 통찰력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15년, 25년을 앞서 준비하는 그런 것들이 여러 가지 평가를 받고 있고 지금 화면 속에서는 그동안 어록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취임사 때 초일류 기업으로 만들겠다. 저게 굉장히 중요하고 앞으로 아들이고 현재 삼성의 이끌게 되는 이재용 부회장에게도 중요한 어록인데 이병철 회장 시대에는 그때 당시의 삼성은 1등을 추종하는 전략입니다.

1등이 있으면 2등까지 찾아간 다음에 효율로서 1등을 쫓아가는 그런 형태였었는데 이건희 회장은 그게 안 된다. 우리가 아예 1등을 먹자. 초일류로 가자라는 이슈였었고요.

그다음에 나왔던 것이 1993년에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 선언이라는 걸 하게 돼서 핵심은 바꾸자입니다. 다 바꾸자. 나부터 바꾸고 부인과 자식 빼고는 다 바꾸자.

이게 뭘 바꾸자는 얘기냐면 주인의식에 대한 이야기였던 거죠. 뭘 하나를 하더라도 100% 완성물을 끌어내야 되는데 대충 만든다라는 거예요.

거기에서 바꿈을 통한 신경영이 나오게 됐고 그다음에 95년에 한국 정치는 4류다. 행정관료는 3류고 기업도 2류다. 이 이야기가 하나 있어서 그것도 세간에 관심을 받았고요.

그다음에 93년 신경영 이후 10년 후에 2013년, 20주년이죠. 그때 천재 경영이라고 해서 천재 1명이 10만 명을 먹여살린다. 그런 것도 있고 지금 재택근무 얘기 나오지만 과거에 이미 이건희 회장이 출근 도장 찍지 마라. 일만 잘하면 된다.

이런 것도, 굉장히 많은 어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앵커]
이건희 회장이 스포츠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하죠. IOC 위원으로도 활동을 했었는데 그 내용도 짚어주시죠.

[정철진]
스포츠에 대한 관심 자체도 있고요. 이걸 조금 더 키워보면 스포츠 마케팅이라는 것에 일찍 눈을 떴다. 그리고 스포츠 마케팅이 결국은 브랜드 마케팅으로 이어진다는 것도 이미 아마 30년, 40년 전에 통찰을 했던 것 같습니다.

지난주였던가요? 전 세계 브랜드 가치를 평가를 하는데 삼성 브랜드 가치가 5위를 차지했었죠. 그래서 거의 70조 원 정도, 60조 원 정도의 가치로 나오게 됐었는데 그 시작을 스포츠 마케팅이라는 것부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본인이 레슬링도 하고요. 사대부고 시절에서는 탁구, 레슬링 이런 것에 관심이 되게 많았었고.

[앵커]
실제로 하는 것도 좋아했던 거죠?

[정철진]
스키 같은 것도 굉장히 좋아해서 스키를 탔다, 90년대 후반에. 그때까지만 해도 스키라는 스포츠가 굉장히 고급 스포츠였었는데요.

그런 것도 있었는데 90년대 들어서는 올림픽 IOC 국제올림픽위원회를 하나의 창구로 생각한 거예요. 즉 스포츠 교류라는 게 정치교류 못지않게 굉장한 이익집단이라는 것.

거기에 또 하나의 입김들, 거기에서 펼쳐지는 스토리들이 기업 경영에도, 세계 경제에도 굉장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고 IOC 위원으로도 본인이 가게 되고요.

그러면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도 힘을 썼고 하게 되는. 큰 틀에서 보면 스포츠 마케팅, 브랜드 마케팅. 이런 것에 있어서도 거의 선구자적인 그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앵커]
지금까지 저희가 많은 업적들을 살펴봤는데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무노조 경영이라든가 승계 과정에서 불법 의혹들이 있었는데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정철진]
지금까지 두 번의 기소를 당합니다. 그런데 불구속 기소였고요. 크게 시점을 보면 2005년, 2006년 넘어갈 때 삼성 X파일 사건이 있었었죠. 그때 한 번 기소가 되고 그다음이 2008년에 유명한 삼성특검이 있었습니다.

그때 기소가 되고 3년의 집행유예, 5년까지 형을 받게 되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물론 이 내용은 2009년에 특별사면을 하게 되는데. 내용들을 보면 크게 세 가지, 네 가지 정도의 그림자 부분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가장 큰 것이고 많이 언급이 되는 것이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세습 문제, 삼성 에버랜드의 시비죠. 또 삼성 SDS의 BW, 헐값 발행을 통한 불법세습을 통한 게 하나가 있고요.

두 번째 같은 경우가 삼성 특검, 또 삼성엑스파일에도 나왔지만 비자금 조성, 그리고 언론, 검찰, 사회 전방위적으로 비자금에 대한 융통 부분에 대한 그런 이슈가 있었고 경영적으로는 무노조 경영이라는 것.

오늘도 정의당의 논평을 보니까 명복을 기원한다. 그런데 무노조 경영이라는 부분에 그림자를 남겼다라고 정의당이 이야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무노조 경영이라는 부분이 있고 또 본인 스스로에게 있어서는 IMF 직전에 삼성 자동차.

그것도 많은 분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고는 있는데 아마 이건희 회장의 본인의 가장 한, 또 실패에 대해서 안타까워 했던 부분이 삼성 자동차에 진출했다가 그것을 성공을 못 거두고 했던 부분들.

거기다가 최근 나왔던 반도체 백혈병 사건, 산업재해 사건 이런 것들이 빛에 대한 그림자로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앵커]
이재용 부회장 얘기를 해볼게요. 이건희 회장이 오랜 투병생활 있는 동안에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을 사실상 총괄해 왔잖아요. 계속 보폭을 넓혀가고 있는 거죠?

[정철진]
그렇습니다. 2014년부터 이건희 회장은 완전히 경영을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 됐고요. 바로 2015년부터 이재용의 삼성이 시작됐다, 이렇게 볼 수가 있는데요.

먼저 2015년에 보면 산업 정리를 좀 하죠. 그래서 화학 같은 것들을 넘기게 되면서 큰 틀에서 있어서의 삼성이 나아갈 부분들, 전자라든가 금융이라든가 미래 먹거리라든가 바이오라든가 이런 것들의 섹터 정리를 좀 했었고요.

2016년에 실은 얼마 전에 있었던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 사업부 인수에 대한 가장 큰 딜이었었습니다. 80억 달러의 하만 인수하는, 미 하만 인수 부분들이 있었죠. 약 9조 원이거든요, 80억 달러 부분의.

가장 큰 M&A를 하면서 왜 전기 장치가 중요하냐 하면 향후 찾게 될 전기자율주행차는 내연 기관, 자동차 회사의 차가 아닙니다. 배터리도 하나의 모빌리티 수단이고요.

차 자체도 중요하고 그걸 이끌어가는 전기자율장치들도 또 하나 차의 일부분이거든요. 그런 것들도 이재용 부회장이 하게 되는. 그래서 올해까지 이끌어왔었는데 이재용 부회장에게 남은 숙제는 본인이 하게 되는 뭔가의 성과가 남아 있죠.

바이오든 헬스케어든 아마 그런 것들이 또 숙제가 남아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앵커]
자연스럽게 이건희 회장이 가지고 있는 재산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 언론 보도를 보면 가지고 있는 게 18조라고 하고 이걸 다 상속 받으면 세금이 10조에 달한다.

이런 정말 상상하기도 어려운 숫자들이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진행이 되겠습니까?

[정철진]
말하기가 굉장히 조심스럽기는 한데요. 상속세는 50%이기는 한데 이렇게 보면 특수관계인들인 거예요. 그러니까 주식을 상속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거의 20%가 더 붙게 되니까 지금 약 60% 이상은 상속세율이 나오게 될 것 같거든요.

그러면 18조 원이라고 잡으면 한 10조 원 정도 상속세를 내야 합니다. 그런데 아마도 현금 10조 원을 한꺼번에 내기는 힘들 것 같고 LG그룹의 사례를 보면 연부연납 방식이라고 해서 6년에 걸쳐서 납세하는 것을 국세청이 아마도 그런 식으로 하게 되지 않을까.

그러니까 6분의 1을 이번에 내고 앞으로 향후 5년에 걸쳐서 내게 되는 부분인데 그래도 이것도 만만치 않은 게 10조라고 하면 연간 2조 원이 넘는 현금을 마련해서 내야 된단 말입니다.

그런 것들에 대한 부담이 있겠고 또 하나의 문제들이 지분 구조 관련된 부분인데요. 복잡하기는 한데 현재 삼성그룹이 어느 정도의 지배구조 체계를 갖추기는 했습니다.

가령 정점에 이재용 부회장이 있고요.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물산. 삼성물산이 삼성생명, 삼성생명이 다시 삼성전자를 이렇게 지배하는 형태로 큰 틀에서 지배구조가 되어 있는데 지금 이게 유효하게 된 것은 삼성생명하고 삼성전자에 있어서 이건희 회장의 지분이 상당히 많거든요.

그런데 지금 보면 가령 삼성생명에 있는 이건희 회장의 지분이 20% 정도 되는데 이것을 과연 상속 받을 수가 있을까. 상속세를 납부하고요.

그다음에 지금 또 하나가 삼성생명에 얽혀 있는 것은 보험업법 개정이라고 해서 화재도 마찬가지죠. 이번에 통과되게 되면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삼성생명이 전자를 지배하고 있는데 거기 3%만 남기고는 또 팔아야 되는 이런 이슈들이 나오기 때문에 여기에서의 지배구조를 어떻게 돈을 내고 어디선가 지분을 다 인수할지, 아니면 일부를 시장에 내다팔지.

이런 것들은 좀 더 시간이 필요하고 당장 내일부터 주가 흐름, 이런 것에 대한 관심도 큰 것 같던데 이것 역시도 지금으로서는 단언하기 힘든 그런 상황입니다.

[앵커]
평론가님, 마지막으로 이재용 부회장이 이끄는 뉴삼성. 앞으로 전망을 해 보면 어떻습니까?

[정철진]
제가 앞서 말했지만 고 이병철 회장은 1등을 추종하는 전략입니다. 카피켓 전략이죠. 거의 1등보다 더 잘하게 추종하는 전략이고요.

이번에 타계한 고 이건희 회장 같은 경우에는 우리가 1등을 하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재용 부회장에게 남긴 뉴삼성은 새로운 분야에서 혁신을 해서 거기에 깃발 꽂는 그거에 대한 책임입니다.

왜냐하면 삼성은 이미 글로벌 브랜드 톱5, 삼성전자만 봐도 석 달의 영업이익이 13조, 14조 나오는. 이미 1등이 됐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 분야 외에서 또 다른, 그러게 바이오든 드론이든 4차 산업혁명의 인공지능이든 어디선가 그 부분에서 깃발을 꽂고 혁신을 하고 거기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1위를 차지하는 것이 이재용 부회장의 숙제로 남아 있겠다.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앵커]
오늘 말씀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지금까지 이건희 회장 별세 관련해서 정철진 경제평론가와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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