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최근 경기 안성시에 있는 지역농협에서 직원이 5억 원을 빼돌린 뒤 잠적하는 등 농협에서 횡령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올해 발생한 것만 벌써 10건에 달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고 이를 막을 방법은 없는지,
이번 사건을 취재한 기자와 자세히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황보혜경 기자 안녕하세요.
최근 경기 안성시에 있는 지역 단위 농협에서 또 횡령사건이 벌어졌죠?
[기자]
네, 이번에는 경기 안성시 고삼농협입니다.
양곡을 매입해 판매하던 양곡 유통사업부 소속 직원 40대 A 씨가 회삿돈 5억 원을 횡령한 겁니다.
A 씨는 지난달 초부터 갑자기 회사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동료들이 집에도 찾아갔지만 만날 수 없었고, 연락도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A 씨가 하던 업무를 다른 직원이 대신 챙기게 됐는데, 어느 날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A 씨가 지난 2월부터 석 달 동안 지역 영농조합법인에서 잡곡을 매입했다며 받은 세금계산서가 가짜였던 겁니다.
농협은 잡곡 업체 법인 통장으로 직접 매입 대금을 보냈는데요,
농협에서 법인 계좌로 지급한 대금 5억 원을 A 씨가 자신의 계좌로 빼돌린 정황도 함께 포착됐습니다.
농협 측이 사기 등 혐의로 A 씨와 잡곡 업체 관계자를 고소했지만, A 씨는 이미 잠적한 상태였습니다.
경찰은 우선 A 씨의 소재 파악에 주력하면서, 잡곡 업체도 범행과 관련이 있는지 수사하고 있습니다.
[앵커]
그동안 농협에서 횡령 사건이 발생한 게 벌써 여러 차례인데, 최근 부쩍 잦아진 것 아닌가요?
[기자]
네, 지난달에만 농협에선 수십억 원대 횡령 사건이 무려 세 차례나 터졌습니다.
특히 지난달 30일에 발생한 서울중앙농협 구의역지점 직원 횡령 사건은 피해 금액이 50억 원에 달하는 거로 새롭게 확인됐습니다.
또 지난달 27일에는 경기 파주시 김포파주인삼농협 직원이 70억 원대 횡령을 저질렀고요,
지난달 15일에도 경기 광주시 오포농협 직원이 40억 원 규모 공금을 빼돌린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 밖에도 경기 수원시 농협하나로마트 직원이 8억 원을 빼돌리는 등 올해 상반기에 확인된 횡령 사건만 아홉 건에 달합니다.
[앵커]
이번에 터진 고삼농협 사건까지 합치면 열 손가락을 채울 정도인데, 횡령을 저지른 직원들에겐 공통점이 있다고요?
[기자]
네, 최근 사례 네 건만 살펴보면 직원들이 모두 30~40대 젊은 층이란 점입니다.
특히 지난달 횡령 3건은 모두 30대 직원이 저질렀는데요,
돈을 어디다 썼는지를 봤더니, 도박이나 코인, 주식 등에 투자한 거로 확인됐습니다.
전문가들은 지난 몇 년간 초저금리 기조가 계속되면서 주식이나 코인 등으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분석했습니다.
특히 젊은 층 사이에서 투자에 대한 유혹을 크게 느끼는 상황이 계속됐다는 겁니다.
또 감옥에 몇 년 살다 나오면 되지 않겠느냐는 약한 처벌에 대한 인식도 한몫했을 거란 분석입니다.
전문가들은 실제로 우리나라의 경우 횡령과 같은 경제 범죄에 대한 처벌이 선진국에 비해 약한 편이라면서,
일선 직원들의 범죄를 내부 통제장치로 걸러내지 못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직접 들어보시죠.
[하준경 / 한양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 돈을 빼돌려서 투자한다든지 이러한 유혹을 더 크게 느끼는 상황이 발생했고요. 아무래도 적발될 확률이 일선 실무자들은 작다고 평가할 수 있겠죠. 자기가 이걸 다루니까요.]
[앵커]
농협도 금융기관이고, 분명 통제 장치가 있을 텐데 왜 막지 못했나요?
[기자]
농협 내부의 구조적인 문제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힙니다.
지난 6월 말 기준 농협 본점은 천 115개, 지점까지 합하면 4천8백 곳이 넘습니다.
이 지역 농협 천여 곳은 모두 개별 법인입니다.
농협중앙회에서 2년에 한 번씩 진행하는 정기 감사로는 전국 수천 개 지점을 모두 관리·감독하기엔 한계가 있는 겁니다.
게다가 지역농협의 경우 내부 사정에 밝은 장기근속 직원들이 대부분입니다.
지역 순환배치도 잘 이뤄지지 않아서 직원이 작정하고 비리를 저지르면 쉽게 알아차리기 힘든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큰돈이 빠져나가는 걸 왜 모를까 의문이 드는 게 당연한데요,
농협중앙회 측은 비정상적인 자산 흐름을 감시하는 전산 감사 시스템이 이미 마련돼 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조금씩 여러 번에 걸쳐 횡령을 저지를 경우 정상적인 거래패턴으로 인식해 걸러지지 않았던 거라고 설명했습니다.
[앵커]
횡령이 한 두 번 발생한 것도 아니고,
농협중앙회와 관계부처들이 적극적으로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하지 않을까요?
[기자]
네, 우선 농협중앙회 측은 위험징후를 조기에 발견하는 경보장치와 같이 기존 전산 감사 시스템에 있는 사전예방 기능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횡령을 저지른 직원들에게 중징계조치를 내려 경각심을 갖게 하겠다며 내부 단속에 나설 뜻도 밝혔습니다.
관계자의 말 직접 들어보시죠.
[농협 관계자 : 전산 감사 사전예방 기능을 강화하고 앞서 발생했던 횡령사고에 대해서는 중징계조치를 통해 경각심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농협에 포괄적인 감독 권한을 갖고 있는데요,
농식품부 관계자는 '횡령사고 방지 TF' 회의를 열어 내부 통제 장치를 점검하고, 제도 개선 방안도 논의할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와 별도로 금융감독원은 농협의 대출이나 예금 등 신용사업에 한해서 감독 권한이 있는데요.
금감원 역시 '상호금융 내부통제 TF'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면서, 최근 잇단 횡령 사건으로 운영에 더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답변했습니다.
[앵커]
내부적인 조치 외에도 제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없을까요?
[기자]
우선 지난해 3월부터 시행된 금융소비자보호법, 일명 '금소법'에 농협도 포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금소법은 금융 소비자의 권리를 강화하기 위해 불공정행위나 부당한 권유를 금지하는 등 6대 판매 원칙을 마련해둔 법인데요,
이를 위반하면 금융사는 수입의 최대 50%까지 징벌적 과징금을 물어야 합니다.
현재 신협을 제외하고 농협이나 새마을금고 등 상호금융업은 모두 금소법 대상에서 빠져 있습니다.
농협은 농림축산식품부, 새마을금고는 행정안전부와 같이 소관부처가 각기 나뉘어 있다 보니, 금융위 소관인 신협만 금소법 적용을 받게 된 겁니다.
금소법이 판매 행위에 대한 규제이긴 하지만, 금소법을 적용받게 된 금융기관들은 내부적인 통제 장치와 시스템을 전면 개편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농협도 금소법 적용을 받게 되면, 내부 통제 강화와 금융사고 예방 측면에서 긍정적일 거라고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지난달, 금소법 적용 대상을 모든 상호금융업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개정안도 국회에 발의된 상태입니다.
[앵커]
금융소비자보호법이 '판매행위'에 대한 규제라면 직원들이 몰래 회삿돈을 빼돌리는 걸 막기엔 충분치 않아 보이는데요,
다른 대책은 없을까요?
[기자]
네, 내부 비리 감시를 강화하기 위해선 관련 조합법 자체를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더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농협과 신협 등 각 상호금융업은 저마다의 조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농업협동조합법엔 내부통제 기준을 명시해두고 있는데요.
"중앙회는 내부통제기준을 정하고 지키는지 점검한 뒤, 위반하면 조사에 들어가 감사위원회에 보고하는 사람을 1명 이상 두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상이 '중앙회'만이라는 겁니다.
앞서 지역 단위 농협이 전국에 천 곳 넘는다고 말씀드렸는데요,
개별 지역 조합은 내부통제 기준에 대한 법적 의무에서 빠져 있습니다.
이 때문에 관계부처는 개별 조합 역시 내부통제 기준을 적용받도록 하는 법 개정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내일 열리는 금융위 상호금융정책협의회에서 해당 내용을 안건으로 올릴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앵커]
네. 황보혜경 기자 잘 들었습니다.
YTN 황보혜경 (bohk1013@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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