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이란 최고지도자를
'중동의 히틀러'에 비유했던
사우디 빈 살만 왕세자,
그로부터 5년 뒤
입장을 180도 바꿨습니다.
앙숙 이란과의 관계 복원에
전격 합의한 건데요.
국기 앞에서 손을
꽉 잡은 두 나라,
그리고 그사이에 자리한 건
다름 아닌 중국이었습니다.
심지어 발표 장소는 베이징,
중국 측이 외교력의 승리라며
한껏 고무된 이유기도 한데요.
리 샤오셴 / 닝샤대학교 중국 아랍연구소 소장
(시진핑 3연임 확정 이후)
중국의 외교가 기대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 이유입니다.
애써 불편함을 숨겨보는 미국.
하지만 미 언론.
중국이 일으킨 중동 쿠데타다,
또 사우디가 바이든 행정부의
뺨을 때린 격이라는
표현까지 쓸 만큼
이번 사태를 가볍게 지나치지
않고 있습니다.
신냉전 속 국제 정세에
미칠 파장, 각국의 계산기는
더욱 빠르게 돌아가는 상황입니다.
중동의 대표적인 패권 경쟁국,
바로 사우디와 이란입니다.
전 세계 석유 35%가 움직이는
페르시아만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자원 부국이라는 공통점.
하지만 사우디는 아랍,
반면 이란은 페르시아.
여기에 같은 이슬람이지만,
사우디 수니파, 이란은 시아파.
차이도 극명한 상황이죠.
이 같은 두 나라의 갈등.
시계를 7년 전으로 돌려보겠습니다.
대표적 수니파 국가 사우디,
하지만 10% 남짓 시아파도
존재하는데요.
이들이 밀집한 동부,
바다와 가깝고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각종 시설과
전력생산 시설까지 밀집한
'경제의 척추'와도 같은 곳입니다.
그리고 2016년 사우디 내
40여 명의 반정부 인사가
'테러범'이란 꼬리표로
처형됐습니다.
그중 한 명이
님크 바르크 알님르.
대표적 시아파 지도자였습니다.
님르 바크르 알님르 / 사우디 반정부 지도자(2014년 10월)
왜 사우디는 외국이 아니라
몇 명 되지도 않는
가엾은 우리를 공격하는 겁니까!
사우디 입장에선
시아파를 결집시키고
나라를 흔든 불순분자로,
반면 이란에게는
사우디 내 시아파
처우 개선과
개혁을 요구한 성직자로,
7년에 걸친 양국 갈등의
시발점이 된 건데요.
물론 더 근본적인 갈등의
불씨는 훨씬 이전부터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민족과 종파 차이에도
사우디와 이란,
현대 국가 성립 뒤
1970년대까지 그럭저럭
사이를 유지해 왔습니다.
석유와 무기로
미국과 엮인 사우디.
그리고 친미 왕정 국가였던 이란.
크게 부딪힐 요인이
없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이
모든 걸 바꿨습니다.
부패하고 무능했던
전제군주정 무너뜨리고
신정국가를 선포한 이란의 경험,
혹시라도 자국에 번질까
사우디 왕실이 경계를
더 강화하게 된 건데요.
여기에 2000년대 들어
미국의 중동 개입은
기름을 부었습니다.
후세인 정부 사라지고
권력 공백에 빠진 이라크
그 빈틈을 노린 게
바로 시아파, 그리고
인접 국가 이란이었죠.
이란과 이라크, 시리아,
여기에 시아파 헤즈볼라가
장악한 레바논 남부까지.
이른바 '시아파 초승달 벨트'가
만들어진 겁니다.
여기에 사우디 턱밑에 자리한
예멘에서도 이란 지원 받는
시아파 반군의 활동이
시작됐습니다.
2015년, 미국과 이란의 핵 합의는
또 다른 변수였습니다.
악당 낙인이 해소된
이란에 자칫 중동 주도권
넘겨줄 수 있다는 우려 속
사우디 역시 자국 내
시아파 지도자 처단으로
방아쇠를 당겼고,
이란 지원받는 반군과
사우디 지원받는 정부군의 싸움.
예멘 내전이 사실상
이란과 사우디 대리전으로
불린 이유기도 합니다.
실제 2019년,
예멘 반군의 사우디
정유시설 드론 공격,
국제유가가 20%까지 폭등했고
그 배후로는 이란이 지목되기도
했을 정도입니다.
이랬던 두 나라의
전격적인 관계 회복.
그 내용을 보면
첫째, 두 달 내 외교관계 복원
둘째, 기존 두 나라 사이
안보협력 협정과
무역-경제 투자 합의를
다시 활성화한다는 게 골자인데요.
여기에 이번 합의가 더 주목받는 이유.
바로 중재자를 자처한 중국 때문입니다.
이번 합의의 발표 시점,
공교롭게 시진핑의 3연임이
확정된 날이기도 했습니다.
베이징에 세계 이목 집중시키고,
외교적 실리까지 챙긴 중국
특히 시진핑 3기가
더 주목되는 측면,
시진핑 1인 지배체제의
완성에 있습니다.
중국 내 2인자이자
내각을 이끄는 총리,
시진핑의 비서실장 출신,
복심으로 꼽히는
리창의 차지였습니다.
과거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
덩샤오핑과 자오쯔양,
이렇게 1인자와 총리가
어느 정도 보완 관계였다면
이번엔 수직적 관계가
두드러지는 상황인데요.
여기에 경제 사령탑,
또 군 관련 요직도
시진핑의 충복,
시 씨 가문의 사병이란 의미의
'시자쥔' 세력의 차지가 됐습니다.
반면 경쟁 계파 공산주의청년단
대표주자이자 한때 포스트
시진핑으로 꼽혔던 '후춘화'도,
그리고 다른 경쟁 계파
상하이방의 '한정'도
나란히 정협 부주석직과,
국가 부주석직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실권 없는 자리 주면서
계파 독점 비판 피하는
구색 맞추기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 이유인데요.
이처럼 지배체제
완성한 시진핑 3기.
더 적극적으로
국제사회 우군 확보하고
미국과 힘 겨루는 외교 정책이
예상되는 이유기도 합니다.
그 대표적 시험대가
바로 '제3 세계 자원 부국'이
밀집한 중동이라는 분석인데요.
실제 중국,
연내 또 다른 이벤트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사우디,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쿠웨이트,
오만, 바레인까지.
아랍 6개 산유국으로
구성된 걸프협력회의,
이들과 이란이 베이징에서
만나도록 추진하겠다는 겁니다.
중동에서의 존재감
더 부각하겠다는 의도인데요.
물론 미국은
이번 중국의 역할을
평가절하하고 있습니다.
관계 개선 원하는
두 나라의 기회를
중국이 이용한 것이라며,
시진핑 3연임에 맞춰
숟가락만 얹은 수준이라고
비판한 건데요.
오히려 이란이 사우디와
협상 테이블에 앉은 건
사우디의 억지력,
즉 미국이 제공해 온
무기 덕분이라며
은근 자신들의 역할을
부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미국의 중동 내 영향력,
예전 같지 않다는 분석이
잇따르는데요.
그 이유를 보면
첫째, 경제적인 측면.
사우디 원유 최대 수입국,
바로 중국입니다.
여기에 중국은 이란의 주요
무역 파트너 중 하나이기도 하죠.
이란은 경제제재로 인한 문제 해소,
사우디는 석유 일변도인
경제 구조 변화를 위해서라도
투자 유치가 필요하고,
안보 불안요소도 줄여야 하는 상황,
두 나라 가려운 부분을
동시에 긁어줄 수 있는 게
바로 '큰 손' 중국이라는 겁니다.
미국의 대중동 영향력 악화,
'이스라엘'의 존재 역시
이유 중 하나로 꼽히는데요.
이란 견제 위해서
과거 미국, 심지어 이스라엘과도
군사적 협력을 했던 사우디,
하지만 기본적으로 국민의
대 이스라엘 감정은
좋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스라엘을 편드는
미국과의 관계에도
일정 부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측면이죠.
여기에 어쨌든 중국,
당장은 미국과 달리
독재, 인권, 이슬람 극단주의에 대한
언급, 간섭이 없다는 점 역시
변수인데요.
"우리는 주권 존중하고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
신장-위구르와 홍콩 문제 당시
중국이 강조했던 측면이기도 합니다.
물론 국제 관계에
'공짜 호의'는 없고,
언젠가 이자까지 쳐서
받아낼 위험은 존재하겠지만요.
중국의 영향력 강화,
그러면서 미국 대
러시아-중국이라는
신냉전 전선,
우군 확보 전쟁의 확대 역시
미국 입장에서 골칫거리 중
하나일 텐데요.
전쟁이 한창인
우크라이나 포함한 동유럽.
과거 러시아 앞마당이었지만,
최근 미국이 접근
중인 중앙아시아.
또 대만 있는 남중국해.
여기에 남북한이 서로 총구를
겨누는 한반도.
그리고 중동까지.
셈법이 더 복잡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요.
물론 당장 사우디가
이란과 혈맹이 된다고
보기는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은 뜰 수 없다"
단순 종파 측면을 넘어
중동 내에서 서로
겹치는 영역이
많기 때문인데요.
여기에 사우디가
바로 친중으로 돌아설
가능성도 크지
않다는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이제 막 이란과 관계 개선의
첫발을 뗀 상황.
여전히 전쟁 억지력 위한
무기 수급 중요한 상황에서
사우디가 최대 무기 제공처인
미국을 외면하기
어려운 상황인데요.
실제 최근 출범한
사우디 국영 항공사가
미국 기업인 보잉으로부터
46조 원 넘는 항공기
주문할 계획이라는 보도 역시
이 같은 내용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얼어붙는
신냉전 구도.
각국의 자국 우선주의도
더 강화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한복판에 선 국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우리와 사상 최대규모
연합훈련을 진행하며
한미 넘어 한미일 공조
주문하는 미국,
그러면서도 반도체법 앞세워
경제적 압박도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삼성이나 SK하이닉스 등
우리 기업에
보조금 지급하는 조건으로
첫째, 미국 내 생산 확대
둘째, 중국 등 우려국 배제
셋째, 수익성 지표,
현금 흐름 등의 입증,
넷째, 수익 초과분 공유 등을
내걸고 있는데요.
이 과정에서 중요 기술이나
경영정보 노출과 같은
우려도 커지는 상황입니다.
여기에 중국 역시
우리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높이고 있는데요.
미국의 열차에
자신을 더 단단히 묶어
정치적 독립성 잃어가고 있다
한미일 군사 동맹은
한국 안보와 경제에 위험하다며
연일 경고의 말을
쏟아 내고 있습니다.
사우디의 자원,
인도의 인구와 시장 같은
두드러진 우리만의
무기도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점점 더 안갯속이 되어가는
신냉전 구도.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는
냉혹한 국제현실은
이번 사우디와 이란의 이야기를
우리가 남의 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기도 합니다.
기획 : 박광렬(parkkr0824@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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