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보' 타고 파격 강조하는 이준석
라보. 다마스와 함께 '소상공인의 발'로 불리는 대표적인 소형 승합차다. 그리스어로 '일하다'는 뜻이다. LPG를 연료로 쓰면서 적재 공간도 비교적 넓다. 게다가 상용차로는 유일하게 다양한 경차 혜택까지 받으면서 자영업자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일석이조'란 말도 부족하다. 효율성 그 자체이다. 라보는 지난 2013년 생산 중단 위기를 한 차례 겪은 뒤 재작년 상반기에 완전히 단종됐다. 1991년 첫 생산 이후 30년 만이다.
개혁신당을 창당한 이준석 대표가 라보에 몸을 싣고 등장했다. 직접 운전해 처음으로 향한 곳은 서울 강서구. 여긴 지난해 이른바 '윤심'까지 실렸지만 국민의힘이 구청장 재보궐 선거에서 크게 졌던 지역이다. 이날 이 대표는 라보를 타고 강서구 화곡 남부시장 주변 골목골목을 돌았다. 여기서 이런 말을 남겼다. "(라보가) 쌀 배달하던 차고, 마트에서 배달하던 차인데, 저희는 여기에 정책을 담아가지고 달릴 수 있도록, 전국을 누벼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달 27일) 이준석 대표가 즐겨 쓰는 '파격'이란 말에 걸맞은 발상이다.
다음 날 이 대표는 라보를 타고 마포구 일대를 돌았다. 이곳은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김경율 비대위원 '사천 논란'이 불거진 지역이다. 이날 이 대표는 또 (망원)시장을 돌았는데 합당을 선언한 양향자 한국의힘 대표도 함께했다. 이후 이 대표는 라보를 타고 정부세종청사에 가서 대중교통 무임승차 폐지 공약을 다시 언급했고 광주에 가서는 '이낙연 신당'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을 늘어놓았다.
다음 날 순천 과자점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이낙연 신당은 윤핵관이랑 다를 바가 없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이어 "호남에서 제2당 차지는 확실히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낙연 전 대표의 지역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호남에서 민주당 다음으로 제2당에 오르겠다는 얘기다. '윤핵관'·'호남 제2당' 얘기가 잇따라 나오면서 한때 언론을 장식하던 '낙준연대'는 이미 물 건너갔다는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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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연합뉴스
'카니발' 타고 양보 언급한 이낙연
이낙연 전 대표는 주로 카니발을 탄다. 의원 시절부터 쓰던 대형 승합차다. LPG가 아닌 가솔린이나 디젤을 주연료로 하는데 연비가 9~13.1km/ℓ 정도 나온다. 소위 기름 많이 먹는 차다. 대신 공간이 넓어 가족용 차 또는 연예인 차로 많이 알려졌다.
국회 본회의가 열리면 검은색 카니발 차량이 본청 앞에 길게 줄을 선다. 대부분 민주당 의원들 차량이다. 참고로 국민의힘은 고급 세단인 제네시스를 주로 탄다. 예전엔 어느 당할 것 없이 고급 세단을 주로 탔는데 민주당 의원들이 실용적 이미지를 앞세워 카니발로 갈아타기 시작했다. 눈이 내리던 탈당 전 마지막 회동 때 이재명 · 이낙연 두 전 · 현직 대표 모두 카니발을 타고 왔다.
카니발의 느낌은 역시 안정감이다. 이낙연 전 대표가 걸어온 정치 이력과도 매우 유사하다. 이낙연 전 대표는 서울대 법대를 나와 동아일보 기자로 있다가 2000년 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처음으로 당선됐다. 5선 국회의원에 올랐고 중간에 전남지사와 문재인 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지냈다. 지난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이재명 대표와 경쟁까지 했다. 대통령 빼고 다 한 정치 이력의 소유자다. 올해 39살 이준석 대표 눈에는 72살인 이낙연 전 대표는 누릴 거 다 누린 기성 정치인인 셈이다.
이낙연 전 대표는 극도로 싫어하고 억울해하지만 늘 '엄근진'(엄격·근엄·진지) 말이 따라다녔다. '엄근진'은 인터넷 공간에서 '장난스럽게 쓴 글을 놓고 웃어서 넘기면 될 것을 높은 잣대를 들이대며 깐깐하게 평가하는 것'을 이른다. 그런데 민주당 탈당 이후 신당 창당에 몸을 던진 이낙연 전 대표가 달라졌다고 한다.
"(이준석 대표가) 우리 총리님을 향해서 두 가지를 이야기했어요. 하나는 엄숙주의를 걷어내야 한다. 이건 어떻게 받아들이세요?" (지난 12일,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
"좋은 충고죠. 저도 걷어내고 싶어요. 잘 안 떨어져서 그렇지." (이낙연 전 대표)
30살 이상 어린 정치 후배의 충고도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준석 대표는 아직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뒤에서 후배들을 양성하시겠다는 그런 마음에서 벗어나서 선봉장이 돼 주십시오" (지난달 18일, SBS 편상욱의 뉴스브리핑) "이낙연 전 총리는 이재명 대표의 비민주적인 당 운영에 대해서 지적을 많이 하셨기 때문에 저라면 계양(을)에 간다" (지난달 19일, 연합뉴스TV와 인터뷰) 이낙연 전 대표를 향해 감독이나 코치가 아닌 직접 뛰는 선수가 되어달라는 의미다.
나아가 이준석 대표는 이낙연 전 대표와 정치 지향점이 다르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지향점이 같아야 합당을 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는 (개혁미래당의) 그런 지향점을 확인하지 못했다", "신중하게 지켜보고 있는 상황", "단순히 호남지역 출마자를 확보하기 위한 그런 수단으로서의 합당이나 연대라는 것은 지역민의 공감을 사기 어려울 것" (지난달 31일) 간극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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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연합뉴스
빅텐트 열쇠 쥔 쪽은 '이준석 신당'
또 하나의 큰 상황 변화가 생겼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결국 연동형비례대표제를 택한 것이다. 이준석 대표가 이끄는 개혁신당의 장점은 기존 여의도 문법으로는 아주 생경한 기동성이다. 무임승차 폐지 공약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장의 논란이 예상되지만 기꺼이 꺼내 드는 '이슈 파이팅'에 능하다.
반면 이낙연 전 대표가 속한 신당의 특징은 기존 여의도 문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안정감이다. 아주 익숙한 느낌이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상황에선 이런 안정감이 어느 정도 장점으로 발현될 수 있지만 이준석 신당에 비해 기동성이 떨어지는 묵직함은 부인할 수 없다.
현재로선 빅텐트의 열쇠를 쥔 건 이준석 대표 쪽이다. 연동형비례대표제 하에서 연대 없이 가는 게 득표에 도움이 되는지, 아니면 각자도생의 사각지대를 메울 필요가 있을지는 이준석 신당이 선택하기에 달려 있다. 현재로선 이준석 · 이낙연 양쪽이 함께하기에는 갈 길이 한참 멀어 보인다. 바로 '라보'와 '카니발', 딱 그 차이다.
YTN 이대건 (dglee@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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