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위기가 통제 불능 상태로 치닫고 있다"...권력 투쟁이 만든 수단의 비극 [한방이슈]

　

조용하고 치명적인 전쟁…무너진 1,200만 명의 삶

지금 아프리카 수단에서는 조용하지만 치명적인 전쟁이 2년 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수도는 폐허가 되었고 1,200만 명이 집을 잃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정부군과 반군의 싸움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수단 내부의 복잡한 이해관계와 주변 강대국들의 이익 경쟁이 얽혀 있습니다.
　
　

"수단의 끔찍한 위기가 통제 불능 상태로 치닫고 있다"

수단에는 두 개의 강력한 무장 세력이 있습니다.

첫째, 수단의 정규군 SAF(Sudanese Armed Forces). 오랜 군부 권력의 뿌리이며 전통적인 군 조직을 중심으로 합니다.

둘째, 신속지원군 RSF(Rapid Support Forces). 과거 다르푸르 지역에서 정부가 키운 준군사조직이 발전한 형태입니다.

부족 민병대를 기반으로 급성장한 무장 세력입니다.

원래 이들은 한 군부 체제 안에서 함께 움직였지만, 권력과 자원을 두고 서로를 경쟁자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2021년 군부 쿠데타 이후, 국제사회는 수단에 민간 정부로의 복귀를 요구했습니다.

이 지점에서 비극의 씨앗은 싹을 틔웠습니다.

바로 신속지원군(RSF)을 정규군(SAF)에 흡수하는 문제였습니다.

정규군(SAF)은 빨리 편입시키려 했고, 신속지원군(RSF)은 시간을 끌었습니다.

통합 여부는 곧 권력, 자원, 군사적 주도권을 누구에게 줄 것인가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말뿐인 협상이 이어지던 2023년, 마침내 긴장이 폭발했습니다.

신속지원군(RSF)은 수도 하르툼의 민간 시설 속으로 숨어드는 도시전을 구사했고, 정규군은 전투기 폭격으로 대응했습니다.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병원, 학교, 주거 지역이 무너졌고 일상적인 물과 식량 공급이 붕괴되었습니다.

최근에는 다르푸르 지역의 마지막 보루였던 도시 '알파시르'가 함락되며 대규모 학살이 벌어지는 등, 사람들은 도시를 버리고 탈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세계 최대 규모의 난민 위기가 발생했습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 유엔 사무총장 (2025년 11월 4일) : 병원을 포함한 민간인과 민간 시설에 대한 무차별 공격, 성폭력과 민족을 겨냥한 폭력 같은 끔찍한 일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신속지원군(RSF)이 도시에 진입한 뒤, 대규모 학살이 벌어졌다는 신뢰할 만한 보고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폭력을 지금 당장 멈춰야 합니다.]

전쟁이 끝나지 않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신속지원군(RSF)은 금광을 장악해 독자적인 전쟁 자금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수단은 아프리카에서 세 번째로 큰 금 생산국.

이 금이 두바이를 중심으로 한 UAE의 금 거래·정제 시장으로 흘러들어가 국제 표준 금으로 세탁된 뒤, 다시 현금화되어 신속지원군(RSF)의 무기 구매 재원으로 쓰입니다.

즉, 금을 매개로 한 정제·세탁, 현금화, 무기 구매, 재유입의 순환 고리가 형성되며 신속지원군(RSF)의 전쟁 지속 능력을 강화하는 구조입니다.

반면, 정규군(SAF)은 관료적 체계 탓에 대응이 느리고 부족·민족 갈등이 겹치면서 전쟁은 더욱 확산되었습니다.

단순한 '군 내부의 싸움'이 아니라, 지역 분쟁의 모자이크가 되면서 점점 더 잔혹해진 전쟁은 끝날 기미를 잃었습니다.
　
　

"지정학적 리스크…각국 이해가 충돌하는 동안 전쟁 멈추지 않아"

여기에 지정학이 전쟁을 복잡하게 만듭니다.

수단은 홍해 항로 바로 옆에 있습니다.

중동, 유럽, 아프리카를 잇는 전략적 교통로입니다.

이 항로를 누가 장악하느냐는 에너지 수송과 군사 이동을 바꿔 놓습니다.

아랍에미리트(UAE)는 사헬과 홍해 연안에 영향력을 확대하며 항만 네트워크, 금 수급 체계, 안보 거점을 연결하는 전략을 구사해 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랍에미리트가 신속지원군(RSF)의 무기 공급에 연루됐다고 UN이 지목하며 국제적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림 케타이트 / 아랍에미리트(UAE) 외교부 고위 관계자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 2025년 4월 10일) : 전쟁이 시작된 이후, 아랍에미리트는 교전 중인 어떤 측에도 무기나 관련 물자를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다음은 영국입니다.

영국은 오랫동안 수단 문제의 외교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며 인도적 지원을 제공해왔습니다.

하지만 자국산 군사 장비가 우회 유입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중재자'와 '통제 실패'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습니다.

[스티븐 도티 / 영국 외무부 유럽·북미 담당 차관(2025년 10월 30일) : 수단에서 영국산 장비 일부가 발견됐다는 보고가 있었던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국산 무기나 탄약이 실제로 사용됐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이 사안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면밀히 주시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중국이 있습니다.

중국은 아프리카 전역에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며 영향력을 키워왔습니다.

일부 보고서는 신속지원군(RSF)이 사용하는 일부 무기가 중국산이며, 이것이 아랍에미리트(UAE)를 통해 수단으로 재수출되었다고 지적합니다.

이는 중국의 일대일로 및 에너지 수송로 확보 전략과 맞물려 복잡한 이해관계를 고착화합니다.

더 나아가, 미국·이집트·사우디·아랍에미리트(UAE)가 참여하는 비공식 협력축, 이른바 '수단 쿼드'까지 등장하며 외교 전선 역시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미국은 테러 확산과 난민 파장에 민감하며, 이집트는 국경 안보 문제로 정규군을 적극 지원합니다.

사우디는 홍해 연안의 안정과 항만 투자를 위해 중재에 나서고, 아랍에미리트(UAE)는 사헬과 홍해를 잇는 자신의 영향권 확대를 노리고 있습니다.

각국의 이해가 충돌하는 동안, 전쟁은 멈추지 않습니다.

[캐롤라인 레빗 / 백악관 대변인(2025년 11월 4일) : 앞서 말씀드린 아랍 지역 파트너들과는 지속적으로 긴밀히 소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번 분쟁이 평화롭게 끝나길 바라고 있으며 그동안의 여러 갈등처럼 외교적 해결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현장의 상황은 매우 복잡합니다.]
　
　

내부의 권력 투쟁이 외부의 지정학적 이익과 만나면 벌어지는 일

지난해 8월 미국의 주선으로 스위스 제네바에서 휴전회담이 진행됐지만 수단 정부군의 불참으로 무산됐습니다.

당시 수단 정부군 최고지도자 압델 파타 부르한은 "신속지원군(RSF)과 100년 동안이라도 싸울 것"이라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수단 내전을 이렇게 진단했습니다.

"수단 내전은 인도주의적 참사일 뿐 아니라 지정학적으로도 더 큰 분쟁으로 번질 수 있는 '시한폭탄'이다."

수단의 비극은 내부의 권력 투쟁이 외부의 지정학적 이익과 만나 어떻게 최악의 재앙이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들의 열망은 군벌의 탐욕에 짓밟혔고, 자원과 항로를 노린 외부의 개입은 이 전쟁을 끝날 수 없는 지옥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국제사회가 지금의 상황을 계속 묵인한다면, 수단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그러나 가장 조용한 비극의 무대가 될지도 모릅니다.
　
　
기획·구성 : 김재형(jhkim03@ytn.co.kr)
제작 : 이형근(yihan3054@ytn.co.kr)
참고 기사 : 로이터, AP
　
　
YTN 김재형 (jhkim03@ytn.co.kr)
YTN 이형근 (yihan3054@yt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