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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아저씨가 18년 간 8명을 죽였다...미국판 ‘살인의 추억’

2026.04.09 오전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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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아저씨가 18년 간 8명을 죽였다...미국판 ‘살인의 추억’
재판정에 선 렉스 슈어만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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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법정에서 62세 남성이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감정의 기복도, 눈물도 없었습니다. 검사가 피해자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살해 방법을 물을 때마다, 그는 짧게 답했습니다.

"목 졸림."

법정을 가득 메운 유가족들 사이에서 탄식이 새어 나왔습니다.

피고인의 이름은 렉스 휴어만(Rex Heuermann, 62). 뉴욕 맨해튼에서 30년간 건축사무소를 운영해온 평범한 건축가였습니다. 휴어만은 8일(현지시각) 서퍽 카운티 법원에서 1993년부터 2011년까지 18년에 걸쳐 8명의 여성을 살해했다고 자백했습니다. '

미국판 살인의 추억'으로 불려온 길고 비치(Gilgo Beach) 연쇄살인 사건이 사실상 마침표를 찍은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법정을 채운 이름들 속에서, 끝내 불리지 않은 이름이 하나 있었습니다.

발견, 그리고 미제

2010년 겨울, 롱아일랜드 남쪽 해안 도로변에서 인골이 잇따라 발견됐습니다. 경찰은 연쇄 범행을 직감했지만 용의자를 좁히지 못했습니다. 사건은 미제로 쌓였고, 피해자들의 이름도 서서히 뉴스 밖으로 밀려났습니다.

전환점은 2022년이었습니다. 새로 부임한 경찰청장이 전담 태스크포스를 꾸렸습니다. 수사팀은 피해자 한 명이 실종되던 날 밤 현장 인근에서 목격된 픽업트럭의 차량 등록 기록을 추적해 휴어만을 용의자 선상에 올렸습니다. 이후 300건이 넘는 수색영장과 소환장이 발부됐고, 그의 통화 기록, 인터넷 검색 이력, 익명 선불폰 사용 내역이 낱낱이 뒤집혔습니다.

결정적 증거는 쓰레기통에서 나왔습니다. 수사관들은 맨해튼에서 일과를 마친 휴어만이 인도 쓰레기통에 버린 피자 크러스트 상자를 수거했습니다. DNA를 채취해 대조한 결과, 피해자 시신을 묶었던 삼베 천에서 나온 남성 모발 DNA와 일치했습니다. 공공장소에 버린 물건은 법적으로 소유권이 포기된 것으로 간주돼 영장 없이 수거할 수 있었습니다. 범행으로부터 30년 가까이 지난 시점에, 사건의 실마리는 버려진 점심 식사 흔적에서 풀렸습니다.

2023년 체포된 그는 이후 무죄를 주장하며 DNA 증거에 이의를 제기해왔습니다. 그러다 이날 법정에서 돌연 입장을 바꿨습니다.

자백

휴어만은 7건의 살인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고, 추가로 확인된 피해자 카렌 베르가타의 살해도 시인했습니다. 검찰은 베르가타 건의 추가 기소를 면제하는 조건으로 플리딜에 합의했습니다.
그가 자백한 피해자는 모린 브레이나드-반스, 멜리사 바텔레미, 메건 워터만, 앰버 코스텔로, 제시카 테일러, 발레리 맥, 샌드라 코스틸라, 카렌 베르가타 등 8명입니다. 가장 이른 범행은 1993년, 가장 늦은 것은 2011년이었습니다.

범행 방식은 일관됐습니다. 익명 선불폰으로 피해자들에게 접근해 금전을 제안하며 만남을 유도했고, 아내와 딸이 집을 비운 날을 골라 자택으로 불러들여 목 졸라 살해했습니다. 시신은 삼베 천으로 묶어 유기했으며, 일부는 사지를 절단했습니다. 검찰에 따르면 그는 결박과 성폭력을 다룬 음란물을 반복 검색했고, 익명 선불폰으로 500회 이상 피해자들에게 접근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휴어만은 롱아일랜드 매사피쿼 파크의 단독주택에서 아내, 의붓아들, 딸과 함께 살았습니다. 체포 당시 이웃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저었습니다. "매일 평범하게 출근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던 사람"이었다고 했습니다.

딸 빅토리아는 부친 체포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빠는 저에게 오픈북(open book)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한 번도 위협적이라고 느낀 적이 없었습니다." 아내 엘러럽도 "남편이 연쇄살인마라는 사실을 도저히 믿기 어렵다"며 "단 한 번도 이상한 낌새를 느끼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오픈 북(open book)'은 숨기는 것 없이 속이 훤히 보이는 사람을 뜻하는 영어 표현입니다. 딸의 눈에 아버지는 정말로 그런 사람이었을 겁니다. 그 말이 거짓이 아니었기에 오히려 더 섬뜩합니다.

범죄 심리학에서는 이런 유형을 '정상성의 가면(mask of sanity)'을 가진 인물로 설명합니다. 연쇄살인마들이 공통적으로 가졌던 특성입니다. 이들은 주변에 지극히 평범하게, 때로는 오히려 다정하게 보였습니다. 휴어만 역시 가족 앞에서 진짜로 다른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범행을 일상과 철저히 분리된 공간에 가뒀고, 아내와 딸이 집을 비운 날만 골라 범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그 분리의 정교함을 보여줍니다.

불리지 않은 이름

그런데 이날 법정에는 또 다른 공백이 있었습니다.

2013년 1월, 롱아일랜드 북부 래팅타운(Lattingtown) 해변가에서 여성의 백골 시신이 발견됐습니다. 수사당국은 피해자가 20~50대 동양인, 특히 한국인으로 추정된다고 밝혔습니다. 시신 곁에는 돼지 모양 펜던트가 달린 순금 목걸이가 있었습니다. 2000년대 초 국내에서 휴대전화 액세서리로 유행했던 이른바 '복돼지 목걸이'였습니다.

이 단서는 한국의 수사 당국과 방송사들을 한 이름 앞으로 이끌었습니다. 2003년 6월, 뉴욕 퀸스 카운티에서 22세 한국인 여성 이 모씨가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제주 소재 보육시설에서 성장한 그녀는 스무 살이 되던 해 홀로 미국으로 건너왔습니다. 퀸스의 자신의 아파트로 귀가한 뒤 연락이 끊겼고, 그 후로 23년이 흘렀습니다.

2024년 3월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롱아일랜드에 묻힌 한국인 여성 백골의 비밀을 추적했습니다. 제작진은 래팅타운 시신이 이 모씨일 가능성과 길고 비치 연쇄살인과의 연관성을 파고들었지만, 끝내 결론에 닿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날, 렉스 휴어만의 자백에서 이 씨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남겨진 질문

이 사건이 10년 넘게 미제로 남은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확인된 피해자 다수는 성매매 종사자였습니다. 이들의 실종 신고는 느리게 접수됐고, 수사에도 힘이 실리지 않았습니다. 사건이 다시 조명되면서 "누구의 실종이 더 빠르게 수사되는가"라는 질문도 함께 떠올랐습니다.


기술의 진보가 수사의 판도를 바꿨다는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30년 전이라면 사실상 불가능했던 DNA 데이터베이스 대조, 차량 등록 추적, 대포폰 이력 분석이 이 사건을 해결했습니다. 증거는 수십 년을 견딥니다. 미제 사건 역시 언제든 다시 열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래팅타운 해변의 백골 시신은 여전히 공식적으로 신원 미상입니다. 이 모씨의 행방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렉스 휴어만이 법정을 나선 뒤에도, 그 이름들은 아직 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범행은 1993년 시작됐습니다. 체포는 2023년. 자백은 2026년 나왔습니다. 33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아직, 모든 이름이 불린 것은 아닙니다. 렉스 휴어만에 대한 선고는 오는 6월 17일입니다.



YTN digital 김재형 (jhkim03@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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