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전쟁이 50일을 넘겼습니다. "거래의 기술"을 자처하며 호기롭게 나섰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보가 점점 기묘해지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 휴전 기한만 반복해서 연장하며 시간을 끌고 있습니다. 과연 트럼프에게 이 전쟁을 끝낼 ‘전략’이라는 것이 있는 것일까요?
터키 출신 중동 전문 기자 알파고 시나 씨의 분석은 날카롭습니다. 그는 이 전쟁이 우리가 기존에 알던 국제 정치의 문법으로는 도저히 해석되지 않는 ‘미지의 영역’에 들어섰다고 경고합니다. 알파고와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지정학적 요새와 종교적 서사, 그리고 흔들리는 패권의 틈바구니에서 트럼프도, 이스라엘도 예측하지 못한 5가지 핵심 반전을 짚어봅니다.
1.전략 없는 트럼프, ‘즉흥적 반응’이 만든 외교적 미궁
많은 이들이 트럼프의 행보를 치밀한 계산으로 보려 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릅니다. 알파고 기자는 현재 미국의 대응을 ‘전략(Strategy)’이 아닌 ‘반응(Reaction)’으로 규정합니다. 트럼프의 외교는 보고서에 휘둘리는 SNS 외교로 전락했다고 평가합니다. 관리들의 보고서가 올라올 때마다 즉흥적으로 반응합니다. 정교하게 다듬어진 외교 메시지가 아니라, 그 순간의 기분과 보고 내용에 따라 X(구 트위터)에 글을 날리는 식입니다.
관례를 깬 직접 통화도 충격적입니다. 대통령이 언론사에 직접 전화를 걸어 인터뷰를 자청하는 행위는 한국은 물론 미국 외교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장면입니다. 이는 공식 외교 라인이 완전히 마비되었거나, 트럼프 본인이 통제되지 않는 상태임을 시사합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협상 대상의 부재입니다. 트럼프는 "누구와 협상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합니다. 실제로 이란 내부는 현재 극심한 파벌 싸움 중입니다. 최근 모즈타바 하메네이 선출 과정에서 온라인 투표를 강행했음에도 불구하고 20표 이상의 이탈표가 발생한 사건은, 미국이 손을 잡을 ‘확실한 파트너’가 사라졌음을 의미합니다.
"트럼프의 발언을 분석해보면 거대한 전술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관계자들의 보고를 받을 때마다 쏟아내는 즉흥적인 ‘반응’의 연속일 뿐입니다." - 알파고 시나 -
2. 이스라엘이 ‘뇌’이고 미국은 ‘꼬리’가 된 역전극
냉전 이후 중동의 주도권은 늘 미국이 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전쟁에서 미국은 이스라엘의 행동에 뒤처리를 담당하는 ‘꼬리’로 전락했습니다. 이번 전쟁의 진짜 설계자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라고 알파고 기자는 주장합니다. 네타냐후는 작년 한 해에만 미국을 일곱 번 방문했습니다. 전례 없는 횟수입니다. 이스라엘이 전쟁의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미국을 그 안으로 끌어들였음을 방증하는 대목입니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형국이라는 평가도 나옵니다. 과거 미국을 위해 일했던 한 러시아 전문가는 "미국이 역대급으로 주도권을 잃고 이스라엘에 끌려가는 꼬리가 되었다"고 냉소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레바논과 헤즈볼라를 타격해 이란의 미사일 대응을 유도하면, 미국은 울며 겨자 먹기로 개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3. 이란의 철옹성, 지형과 ‘순교’의 서사가 만든 맷집
이란은 단순히 경제 제재로 무너뜨릴 수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그들의 힘은 350년의 역사와 독특한 종교적 정서에서 나옵니다.
첫째, 천혜의 요새와 ‘카스르 시린 협정’의 유산입니다. 이란 서쪽은 험준한 산맥이 가로막고 있어 지상군 투입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1639년 오스만 제국조차 이 지형에 굴복해 ‘카스르 시린(Qasr-e Shirin) 협정’을 맺고 물러나야 했습니다. 다만, 이란의 지정학적 약점은 서쪽이 아닌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과 맞닿은 동부 지역에 있다는 점은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입니다.
둘째, 고통을 체화하는 ‘순교 프레임’입니다. 이란 시아파는 매년 10일간 ‘아슈라’ 행사를 통해 스스로 사슬을 휘두르며 육체적 고통을 체험합니다. 서구 자본주의 사회의 종교가 상징적이고 정신적인 면에 치중한다면, 이들은 죽음과 고통을 ‘물리적’으로 체화합니다.
셋째, 자본주의적 계산의 무력화입니다. "죽어도 혼자 죽지 않는다"는 이들의 마인드는 경제적 손실을 두려워하는 자본주의적 전쟁 계산기를 무력화시킵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이란 내 여론이 더욱 강경화되는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4. 예상을 뒤엎은 ‘공멸의 전략’, 사우디를 때린 이유
전쟁 초기, 전문가들은 이란이 미국 기지가 있는 바레인이나 카타르 정도만 선별 타격할 것으로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란의 선택은 전방위적인 ‘난사’였습니다. 가장 충격적인 반전은 이란이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직접 타격한 사건입니다. 이란이 사우디에 미사일을 떨어뜨린 것은 더 이상 특정 타깃을 고르는 단계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걸프 국가 전체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겠다는 ‘총력전 및 공멸의 전략’을 선택했다는 신호입니다.
사우디의 입장도 미묘하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미국만 믿고 이란을 압박하던 사우디는 본토가 공격받고 경제가 흔들리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 사우디가 파키스탄을 중재자로 내세워 전쟁을 가라앉히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이러한 위기감의 반영입니다.
5.흔들리는 패권, SWIFT 시스템을 겨냥한 폭탄
이번 전쟁에서 미국은 구조적인 고립에 직면했습니다. 이란은 미국의 본토가 아니라, 미국이 세운 ‘질서’ 자체를 파괴하려 합니다. 먼저, 미국 행정부 내부에서 균열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전폭 지원하려는 ‘친이스라엘 라인’과, 글로벌 무역과 경제 시스템 붕괴를 막으려는 ‘자본주의 라인’이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습니다. 이란이 겨냥하는 가장 치명적인 표적은 SWIFT 시스템입니다. 과거 언론인 ‘쉐리앗 마다리(Sheriat-Madari)’가 주장했던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이제 현실적인 위협이 되었습니다. 이란의 목표는 뉴욕을 폭격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 금융의 혈관인 스위프트(SWIFT) 제도를 마비시키는 것입니다.
이번 전쟁에서 미국은 유례없이 고립된 상태입니다. 과거와 달리 영국과 프랑스 등 핵심 동맹국들이 군사적 협조에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우방의 도움 없이 거대한 늪에 빠져 있습니다.
"이란의 계산은 명확합니다. ‘우리가 사라질 거라면, 너희가 세운 세계 질서도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함께 죽자는 이 극단적인 논리가 미국 패권의 심장인 경제 시스템을 정조준하고 있습니다." - 알파고 시나 -
끝을 알 수 없는 ‘치킨 게임’, 시간은 누구의 편인가
현재의 휴전은 평화의 시작이 아니라 폭풍 전야의 정적일 뿐입니다. 만약 이번 협상이 깨지고 다시 교전이 시작된다면,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치킨 게임’이 될 것입니다. 이란은 4~5개월만 더 버티면 미국의 선거 결과에 따라 판세가 바뀔 것이라 믿으며 시간을 벌고 있습니다. 반면 미국은 내부 분열과 동맹의 외면 속에서 출구 전략을 찾고 있습니다.
350년 전 국경선이 오늘날까지 유지된 지독한 고집의 땅 이란. 그리고 즉흥적인 반응으로 일관하는 트럼프. 중동은 지금 우리 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가장 거대한 폭풍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고 알파고 시나는 진단합니다.
트럼프도 모르는 이 전쟁의 끝. 과연 시간은 누구의 편일까요?
알파고 시나 인터뷰 풀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UQF8F1QhHxY
YTN digital 김재형 (jhkim03@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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