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 경제에서 가장 극적인 대비를 이루는 두 장의 성적표가 나란히 공개됐습니다. 중국과 타이완의 성적표입니다.
타이완의 2분기 성장률은 12.9%. 선진 경제권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숫자입니다. 반면 같은 기간 중국의 성장률은 4.3%. 나쁘지 않아 보이지만, 3년 반 만의 최저치이자 정부 목표를 밑돈 성적입니다.
같은 중화권, 같은 제조업 강국, 그런데 두 나라의 경제 그래프는 정반대 방향으로 교차하고 있습니다. 뒤바뀐 무역지도의 안쪽을 들여다보겠습니다.
호랑이의 귀환: 미국 수입 3위국이 된 타이완
올해 5월, 세계 무역사에 기록될 만한 역전이 일어났습니다. 타이완이 중국을 제치고 미국의 수입국 3위에 올라선 것입니다. 멕시코와 캐나다 다음 자리입니다. 수십 년간 미국 수입시장 상위권을 지켜온 중국이, 인구 2,300만의 섬에 자리를 내준 것입니다.
동력은 단연 AI입니다.
지난해 미국의 타이완산 수입액은 2,010억 달러. 전년 1,160억 달러에서 1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뛰었습니다. 첨단 AI 칩의 약 90%가 TSMC로 대표되는 타이완에서 생산됩니다. 전 세계 AI 데이터센터에 쏟아지는 돈이, 결국 타이완으로 흘러들어가는 구조입니다.
성장률도 폭발적입니다. 지난해 8.6%에 이어 올해 1분기 13.7%, 2분기에도 12.9%를 기록했습니다. 타이완 증시는 영국, 캐나다, 인도를 제치고 세계 5위 규모로 올라섰습니다.
1980년대 '아시아의 호랑이'가 AI를 타고 돌아왔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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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제친 타이완]()
중국의 잃어버린 자신감
같은 시기 중국의 표정은 정반대입니다. 2분기 성장률 4.3%. CNN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정부 목표치인 4.5~5%를 밑돈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속을 들여다보면 더 어둡습니다. 상반기 고정자산투자는 5.7% 감소했고, 특히 부동산 투자는 18% 급감했습니다. 글로벌 금융그룹 ING는 중국 물가가 10분기 가까이 디플레이션 압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시장경제 전환 이후 가장 긴 국면입니다.
수출과 첨단 제조업은 버티고 있지만, 내수와 부동산이 성과를 갉아먹는 절름발이 구조입니다. 결국 7월 말, 중국 지도부는 정치국 회의에서 추가 부양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내놓은 표현은 '점진적 지원'이었습니다. 시장이 기대한 대규모 부양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답습하는 것 아니냐는, 이른바 일본화 논쟁이 힘을 얻는 배경입니다.
중국 정부가 신중한 카드를 택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곳간 사정입니다. 지방정부의 숨은 부채를 정리하는 6조 위안 규모의 채무 교환 작업이 아직 진행 중입니다. 빚을 갚는 도중에 다시 빚으로 경기를 띄우기는 부담스러운 상황입니다.
위안화도 변수입니다. 지도부는 이번 회의에서도 환율의 기본적 안정을 유지하겠다고 재확인했습니다. 공격적으로 돈을 풀면 환율부터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마지막은 실탄 아끼기입니다. 미국과의 무역 갈등이 다시 격화될 경우에 대비해 대규모 부양 카드는 남겨두겠다는 계산입니다.
시장에서는 상황이 나빠지면 10월 정치국 회의에서 추가 부양책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교차의 이유
그렇다면 왜 하필 지금, 중국과 타이완의 그래프는 교차했을까요. 두 곡선을 움직인 힘은 같습니다. AI, 그리고 미중 패권 경쟁입니다. 미국의 고율 관세와 수출통제는 글로벌 공급망을 중국 바깥으로 밀어냈습니다.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이 타이완이었습니다. AI 붐이 만들어낸 천문학적인 수요가, 봉쇄선 바깥의 타이완으로만 흘러든 것입니다. 미국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타이완을 더 깊숙이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5,0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합의가 대표적입니다. 타이완 기업들이 미국에 공장을 짓는 대가로 고율 관세를 피하는 구조입니다.
중국도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습니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중국 정부 대변인은 타이완의 미국 밀착이 "타이완의 경제 이익을 빨아들이고, 핵심 산업을 공동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타이완해협 주변 해상 순찰을 강화하며 군사적 압박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주목해야 할 반격은 기술 자립입니다. 최근 중국이 반도체 핵심 설비인 '액침 DUV 노광장비'를 자체 개발해 양산에 들어갔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성능은 아직 선두권에 한참 미치지 못하지만, 미국의 봉쇄선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는 점 자체가 유의미한 신호입니다. 말과 힘, 그리고 기술. 중국은 세 개의 지렛대로 반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타이완의 빛과 그림자 그리고 대한민국
다만 타이완의 화려한 축제 뒤에도 그림자는 존재합니다. 반도체 반도체 산업이 직접 고용하는 인원은 많아야 35만 명. 대다수 국민에게 AI 호황은 아직 남의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TSMC 한 종목이 증시의 40%를 차지하는 편중도 위험 신호입니다. 2,000억 달러에 육박하는 대미 무역흑자 역시 적자를 용납하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의 다음 표적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 대목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반도체 수출에 의존하고 대미 흑자를 쌓아간다는 점에서 한국의 구조는 타이완과 닮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상황은 타이완보다 더 복잡합니다. 최대 교역국인 중국은 장기 침체의 초입에 서 있고, AI 수출 시장에서는 타이완이라는 경쟁자가 앞서 달리고 있습니다. 대미 흑자 압박과 AI 추격전이라는 이중고 속에서, 우리 반도체와 한국 경제는 과연 어떤 돌파구를 찾아야 할까요?
뒤바뀐 무역지도 위에서, 한국의 자리는 저절로 지켜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도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다시 그려지고 있습니다.
YTN digital 김재형 (jhkim03@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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