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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달린 트랙, 16분 뛴 그라운드…금메달만 기억하는 '병역 혜택' [와이파일]

2026.10.05 오전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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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달린 트랙, 16분 뛴 그라운드…금메달만 기억하는 '병역 혜택' [와이파일]
남자 계주 400m 동메달을 획득한 대한민국 대표팀 서민준(왼쪽부터), 나마디 조엘진, 이재성, 비웨사 다니엘 가사마로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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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육상 남자 400미터 계주 결선.

한국 대표팀은 가장 불리하다는 1번 레인에서 출발해 38초43, 한국 신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하루 전 예선에서 바통 터치 구역 위반으로 실격 판정을 받았다가, 두 차례 이의 신청 끝에 겨우 결선에 오른 팀이었습니다.

결과는 동메달이었습니다.

2022 항저우 대회에 이어 두 대회 연속 메달이자, 1986년 서울 대회까지 포함해도 이 종목 역대 세 번째 메달입니다. 하지만 이 값진 메달에 병역 혜택은 따라오지 않습니다. 아시안게임에서 체육요원 편입 자격은 오직 금메달에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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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달린 트랙, 16분 뛴 그라운드…금메달만 기억하는
AG 금메달을 차지한 축구대표팀 <사진: 연합뉴스>

그로부터 엿새 뒤, 같은 대회 남자 축구 결승이 끝난 도요타 스타디움.

금메달을 목에 건 대표팀 주장은 카메라 앞에 메달을 들어 보이며 "군대 안 갑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같은 대회, 같은 태극마크였지만 두 장면이 남긴 여운은 사뭇 달랐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 남자 축구는 4회 연속, 야구는 5회 연속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그러나 대회가 끝난 뒤 쏟아진 건 축하보다 비판이었습니다.

축구대표팀 박승수 선수는 라커룸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이른바 '전역모'를 쓴 사진을 SNS에 올렸습니다. 병역 혜택을 자축하는 수준을 넘어, 지금도 복무 중인 또래 장병들을 조롱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비판이 잇따랐습니다. 주장 이기혁 선수의 "군대 안 갑니다" 발언, 그리고 메달보다 병역 혜택을 바라봤다는 취지의 양민혁 선수 인터뷰도 논란을 키웠습니다.

여론이 더 싸늘했던 이유 중 하나는 기여도 때문이었습니다. 박승수 선수는 교체로 세 경기, 16분을 뛰는 데 그쳤고, 양민혁 선수는 대회 내내 부진하다 결승에서야 도움을 기록했습니다. 반면 결승골을 포함해 4골 4도움으로 우승을 이끈 엄지성 선수는 병역보다 금메달이라는 목표 하나로 뭉친 결과였다고 소감을 밝혀 대조를 이뤘습니다.

비판이 거세지자 선수들은 결국 고개를 숙였습니다. 주장 이기혁 선수는 4일 인천공항 귀국 자리에서 주장으로서 말의 무게를 생각했어야 했다며,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모든 분들께 죄송하다고 사과했습니다. 이어 SNS에도 사과문을 올리고, 순간의 기쁨에 취해 대표팀의 품격보다 병역 혜택에만 초점을 맞췄다고 반성했습니다. 박승수 선수도 사과문을 통해 군 복무 중인 분들을 조롱하거나 그 의무를 가볍게 여길 의도는 없었다며, 불편함을 느낀 모든 분께 사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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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달린 트랙, 16분 뛴 그라운드…금메달만 기억하는
박승수 선수 SNS 캡쳐

앞서 야구대표팀도 비판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사회인 야구 선수로 꾸린 일본에 대회 도중 0대 5로 완패했고, 결승 재대결에서도 고전 끝에 3대 1로 이겼습니다. 대표팀 24명 가운데 16명이 이번 금메달로 병역 혜택을 받게 됐습니다. 대회 직전 코뼈 골절상을 입고도 출전을 강행한 김도영 선수를 두고는, 병역 혜택이 걸리지 않았어도 그랬겠느냐는 뒷말까지 나왔습니다.

선수들의 언행은 분명 경솔했고, 늦게나마 사과한 것은 다행입니다. 하지만 이번 논란에서 더 아쉬운 건 선수들 뒤에 있어야 할 어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축구와 야구 대표팀은 대부분 20대 초반의 젊은 선수들로 꾸려졌습니다.

금메달의 기쁨과 병역 혜택이라는 큰 선물이 한꺼번에 찾아온 순간, 들뜬 마음에 선을 넘는 말과 행동이 나올 수 있다는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병역 혜택을 둘러싼 논란은 대회 때마다 반복돼 왔고, 선배들의 발언 하나하나가 비교 대상이 돼 왔습니다. 그렇다면 대회 전 선수들에게 국가대표로서의 말과 행동, 그리고 병역 혜택이 갖는 사회적 무게에 대해 충분한 교육이 이뤄졌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병역 혜택을 대회의 목표처럼 내세운 건 어른들이 먼저였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민성 감독은 지난해 취임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수들이 병역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선수들의 동기를 북돋우려는 의도였겠지만, 지도자가 먼저 병역 혜택을 앞세운 상황에서 선수들의 언행만 탓하기는 어렵습니다.

논란이 불거진 뒤의 대응도 아쉽습니다. 사과의 무게는 고스란히 20대 선수들이 짊어졌고, 지금까지 감독이나 대한축구협회 차원의 공식적인 사과나 입장 표명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대표팀을 이끈 감독과 선수단을 관리하는 협회가 먼저 나서 책임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였다면, 선수들을 향한 비난도 이만큼 커지지는 않았을지 모릅니다. 선수를 보호한다는 건 잘못을 감싸는 것이 아니라, 잘못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가르치고, 잘못이 생겼을 때 함께 책임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논란은 더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같은 국가대표인데, 왜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한 번이면 충분하고,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바쳐도 닿지 않는 문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한국 육상 단거리의 간판이었던 김국영 선수가 대표적입니다. 김국영 선수는 남자 100미터 한국 기록 10초07을 세웠고, 역대 한국 100미터 최고 기록 1위부터 7위까지를 모두 자신의 이름으로 채웠습니다. 16년 동안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무대를 수차례 밟았지만, 개인 종목에서는 단 한 번도 메달권에 들지 못했습니다.

국제 무대에서 처음 메달을 목에 건 건 2022 항저우 대회 400미터 계주였습니다. 37년 만의 계주 메달이었지만, 그 역시 동메달이었습니다. 김국영 선수는 당시 메달을 딴 뒤, 16년 동안 대표팀 생활을 했으니 이제 은퇴할 때가 된 것 같다며 담담한 소회를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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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달린 트랙, 16분 뛴 그라운드…금메달만 기억하는
항저우 아시안게임 계주에서 개인 첫 메달을 차지한 김국영 선수(가장 왼쪽)

높이뛰기의 우상혁 선수도 비슷합니다. 세계실내선수권 정상에 오를 만큼 세계적인 기량을 갖췄지만, 아시안게임에서는 이번 대회 동메달까지 세 대회 연속 메달에 그치며 끝내 금메달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습니다.

육상은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 강국들이 버티는 종목으로, 한국 선수가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딸 확률은 극히 낮습니다. 이들에게 병역 혜택은 사실상 처음부터 손에 닿지 않는 목표였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매번 출발선에 섭니다. 금메달을 딴 선수들은 하나같이 메달이나 병역 혜택보다 국가대표로서의 자부심과 도전 정신이 먼저였다고 말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 말의 진정성이 의심받는 지금, 그 자부심을 가장 온전하게 보여주는 건 오히려 비인기 종목 선수들입니다. 큰 관심도, 거액의 연봉도, 병역 혜택도 기대하기 어려운 무대에서 0.01초를 줄이기 위해 수년을 바치는 이유는 태극마크에 대한 사명감과 도전 정신 말고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이번 대회 계주 대표팀이 실격의 위기를 딛고 한국 신기록으로 동메달을 따낸 것도, 김국영 선수가 16년 동안 트랙을 떠나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일 것입니다. 국가대표라는 이름의 무게를, 우리는 오히려 금메달 시상대 아래에서 확인하고 있는 셈입니다.

반면 축구와 야구는 사정이 다릅니다.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는 23세 이하 선수에 와일드카드 3명이 더해지는 구조입니다. 솔직히 말해볼까요. 두 종목에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선수는 대부분 일회성 출전에 그칩니다. 금메달을 따고 병역 혜택을 받으면 대부분 그 다음 대회에는 선발되지 않거나 소속팀 일정을 이유로 차출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만일 금메달을 못 딴다면 어떻게든 출전하려고 노력할 겁니다.

야구는 프로 리그 선수들이 주축이 돼 출전합니다. 아시아에서 정상급 전력을 갖춘 나라가 손에 꼽을 만큼 적습니다. 더구나 일본이 야구는 사회인 선수로, 축구는 21세 이하 선수로 대표팀을 꾸릴 정도로 경쟁의 무게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평생을 뛰어도 금메달이 닿지 않는 종목이 있는 반면, 한 번의 출전으로 병역 혜택을 얻는 종목이 있는 셈입니다. 이번 대회에서도 육상 계주 대표팀은 한국 신기록을 세우고도 동메달에 그쳐 혜택을 받지 못했고, 일부 축구 선수는 16분을 뛰고도 혜택을 받게 됐습니다. 형평성 논란이 대회 때마다 반복되는 이유입니다.

국위선양이라는 명분 역시 시대의 변화 앞에서 흔들리고 있습니다. 체육요원 제도는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한국이 북한보다 낮은 성적을 거두자, 국위선양을 명분으로 이듬해 도입됐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1984년 LA 올림픽 이후 줄곧 스포츠 강국의 반열에 올랐고, 경제 규모도 세계 10위권에 들어섰습니다.

국위선양의 기준을 두고는 방탄소년단, BTS와 비교하는 여론도 적지 않습니다. 세계 음악 시장을 이끌며 국가 이미지를 높인 BTS는 병역 특례 대상이 아니었고, 결국 멤버 7명 전원이 군 복무를 마쳤습니다. 대중문화예술인에게도 혜택을 줘야 한다는 논의가 이어졌지만, 2020년 법 개정으로 입영 연기만 허용됐습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과연 이들보다 더 큰 국위선양이냐는 물음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물론 반론도 있습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가 받는 건 흔히 말하는 병역 면제가 아닙니다. 정식 명칭은 '예술·체육요원'으로,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뒤 34개월 동안 해당 분야에서 활동하고 544시간의 공익복무를 채워야 하는 보충역 제도입니다. 선수들은 주어진 규정 안에서 정당하게 금메달을 땄고, 특정 종목을 표적 삼아 비난하는 건 역차별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프로야구의 경우 해마다 1,000명이 넘는 선수가 드래프트에 지원하지만 지명률은 10% 남짓에 불과하고, 그 치열한 경쟁을 뚫은 최정상급 선수만이 대표팀에 뽑힙니다. 전성기가 짧은 운동선수에게 군 복무로 인한 경력 단절은 치명적인 만큼, 제도 자체는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여전합니다. 정부도 이런 고민 끝에 2019년 제도를 유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연간 편입 인원이 45명 안팎으로 병력 확보 효과는 작은 반면, 국민 사기 진작 효과는 크다는 판단이었습니다.

그런데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병무청은 지난 8월 국방개혁 기본계획에 보충역의 단계적 감축과 폐지 방안이 최종 검토 단계에 있으며, 예술·체육요원도 상당 폭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저출생으로 병역 자원이 급감하는 상황에서, 이번 논란이 제도 개편 논의에 불을 붙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해외에서는 어떨까요. 징병제를 운영하는 나라들도 운동선수를 배려하지만, 대부분 복무를 면제하기보다 입대 시기를 늦춰주는 데 그칩니다. 싱가포르는 국가대표 선수에게도 병역 면제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2016년 리우 올림픽 수영 접영 100미터에서 미국의 마이클 펠프스를 꺾고 싱가포르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딴 조셉 스쿨링 선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스쿨링 선수는 7년 동안 입대를 미뤘지만, 도쿄 올림픽이 끝난 뒤인 2022년 결국 군에 입대했습니다. 싱가포르 국방부는 입대 연기조차 올림픽 메달 가능성이 있는 극소수 선수에게만 예외적으로 허용하며, 그마저도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국가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밝히고 있습니다. 튀르키예 역시 국가대표 선수와 올림픽·세계선수권 입상자 등이 30대 후반까지 입대를 미룰 수 있도록 할 뿐, 복무 자체를 면제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예외도 있습니다. 이란은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에게 메달 색깔과 관계없이 병역을 면제해 줍니다. 하지만 이란처럼 메달을 병역 면제와 맞바꾸는 나라는 드물고, 대부분의 징병제 국가는 선수의 경력을 지켜주되 의무는 결국 이행하게 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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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달린 트랙, 16분 뛴 그라운드…금메달만 기억하는
아시안게임 결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유승민 대한체육회장 <사진: 연합뉴스>

대안으로는 여러 대회의 성적을 점수로 쌓아 일정 기준을 넘으면 혜택을 주는 누적점수제가 꾸준히 거론됩니다. 한 번의 대회가 아니라 오랜 기간 국가대표로서 쌓아온 기여를 평가하자는 취지입니다. 이런 방식이라면 김국영 선수처럼 10년 넘게 태극마크를 달고 한국 기록을 써온 선수의 땀도 정당하게 평가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대한체육회는 선수들의 언행과 관련해 국가대표다운 품격을 지킬 수 있도록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교육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닙니다. 선수들의 경솔한 말 한마디는, 국위선양에 대한 보상이던 병역 혜택이 어느새 개인의 목표가 돼버린 제도의 민낯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한국 신기록을 세우고도 동메달에 머문 계주 선수들, 16년 동안 트랙을 달리고도 끝내 금메달에 닿지 못한 김국영 선수. 그리고 금메달을 들어 보이며 "군대 안 갑니다"를 외친 선수.

국위선양에 대한 보상으로 출발한 제도가 반세기를 넘긴 지금, 우리가 무엇을 국위선양이라 부르고 있는지 다시 물어야 할 때입니다.


YTN digital 김재형 (jhkim03@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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