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레노 감독이 10월 29일 11월 평가전에 나설 대표팀 명단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평소 같으면 새 얼굴이 누구인지가 관심사였겠지만, 이번만큼은 시선이 다른 곳에 쏠려 있습니다. 손흥민 선수와 이른바 '96라인'으로 불리는 김민재·황인범·황희찬 선수가 나란히 이름을 올릴지입니다. 평가전 명단 한 장에 이토록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최근 대표팀을 둘러싼 갈등설 때문입니다.
갈등이 처음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지난 10월 6일 밤이었습니다. 손흥민 선수가 A매치 59호골로 차범근의 기록을 넘어 한국 축구 최다 득점자가 된 그날, 라커룸에서는 '은퇴'라는 단어가 오갔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그로부터 3주 동안 이 균열은 국정감사장을 거쳐 해외 언론의 가십으로까지 번졌습니다.
발단은 경기력이었습니다. 모레노 감독 체제의 9·10월 A매치 4연전 성적은 2승 1무 1패였지만, 우루과이전 4실점과 베네수엘라전 무득점 무승부는 숫자 이상의 불안을 남겼습니다. 베네수엘라전 직후 김민재 선수는 수비수들이 불쌍하다며 팀 전체가 함께 싸우지 않는다고 작심 발언을 했습니다. 황인범 선수도 대표팀에 온 지 9년째인데 바뀌어야 할 것이 바뀌지 않는다는 취지의 말을 남겼습니다.
두 선수 모두 이름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말이 누구를 향했는지를 두고 해석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김민재 선수는 이후 훈련에 나오지 않았고, 우즈베키스탄전에서 빠졌습니다. 경기 뒤 세 선수는 현영민 전력강화위원장과 자정을 넘겨 면담했고, 한발 물러서며 소동은 일단 가라앉았습니다.
이후의 전개는 '주어 없는 말'이 어떻게 증폭되는지를 보여줬습니다. 96라인이 손흥민 선수의 리더십 변화를 요구했다는 보도가 이어졌고, 10월 21일 국정감사에서는 일부 선수들이 손흥민 선수를 이름 대신 '7번', '그분'으로 부른다는 의혹까지 제기됐습니다. 여기서 분명히 해둘 것이 있습니다. 축구협회가 공식 인정한 것은 선수들이 대표팀 운영의 어려움을 호소했다는 사실까지입니다. 주장 교체 요구의 구체적 내용과 호칭 의혹은 아직 어느 것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가 사실처럼 소비되는 동안, 당사자들은 침묵을 지켰고, 그 빈자리는 추측이 채웠습니다.
손흥민 선수의 리더십을 한 단어로 재단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는 압도적인 실력과 헌신으로 위기마다 앞장서 온 선수입니다. 이번 4연전에서도 팀 최다인 3골을 넣었고, 공격수 가운데 활동량도 많은 편이었습니다. 다만 9년이라는 시간 동안 팀의 중심이 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쏠렸다는 지적도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이제 대표팀의 허리가 된 후배 세대의 목소리가 반영될 통로가 좁았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이는 손흥민 개인의 결함이라기보다, 한 사람이 너무 오래 같은 자리를 지킬 때 어느 조직에서나 생기는 피로에 가깝습니다.
그렇다고 96라인의 방식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를 제기한 것 자체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대표 은퇴를 시사하며 변화를 압박한 것은 태극마크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은 일이었습니다. 축구계 안에서도 국가대표 자리가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비판이 거셌습니다. 공개 인터뷰에서 대상을 밝히지 않은 채 메시지를 던진 것 역시 갈등을 풀기보다 키우는 쪽으로 작용했습니다. 이제 대표팀의 중추가 된 세대라면 그에 걸맞은 책임감으로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어야 합니다.
결국 이번 사태에는 한쪽만의 잘못이 없습니다. 오래된 리더십 구조에 대한 피로가 있었고, 그 피로를 표현하는 방식이 잘못됐습니다. 두 가지를 분리해서 볼 때 비로소 해법의 실마리가 보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 더 무겁습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개인 트레이너를 둘러싼 이른바 '2701호' 논란이 있었습니다. 2024년 아시안컵에서는 손흥민 선수와 이강인 선수의 물리적 충돌이 있었습니다. 올해 북중미 월드컵에서는 취재진의 발언을 계기로 한 인터뷰 보이콧을 두고 선수단 안에서 의견이 갈렸습니다. 매번 사과와 화해 사진으로 수습됐지만, 한 번도 근본적으로 해결된 적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감독이 바뀌어도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문제는 감독 한 사람에게 있지 않습니다. 감독의 장악력이 약할 때마다 대표팀은 선수단의 자율, 특히 주장단에 과도하게 기대어 왔습니다. 그 사이 갈등을 중재해야 할 축구협회는 자리를 비웠습니다. 정몽규 전 회장이 7월 물러난 뒤 협회는 직무대행 체제이고, 대표팀은 임시 감독이 이끌고 있습니다. 국정감사에서 협회가 방관적이라는 질타를 받고, 언론에서도 갈등을 중재할 사람과 능력이 없다는 평가가 나온 것은 이런 공백 때문입니다. 1년에 몇 차례, 열흘 남짓 모였다 흩어지는 대표팀의 특성상 갈등을 풀 시간 자체가 부족하다는 점도 이런 구조를 더 굳혔습니다.
바깥의 시선은 더 냉정했습니다. 싱가포르 스트레이츠 타임스는 해리포터 속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사람'에 빗대어 이번 사태를 꼬집었습니다. 일본과 중국 매체도 국정감사의 호칭 의혹과 과거의 충돌 사건을 나란히 소개했습니다. 세계적 스타인 손흥민 선수가 있기에 국내 라커룸의 문제가 곧바로 국제 가십이 된 것입니다. 물론 해외 보도 역시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사실처럼 옮긴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대표팀의 갈등은 반복되는 패턴'이라는 바깥의 진단만큼은 가볍게 넘기기 어렵습니다.
모레노 감독의 선택은 어느 쪽이든 해석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갈등의 당사자들을 모두 부르면 '불편한 동거'를 택한 것이 되고, 일부를 제외하면 한쪽 손을 들어준 것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명단이 확정되면 대표팀은 11월 13일 사우디아라비아, 17일 카타르와 도하에서 맞붙고, 내년 1월에는 아시안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명단 한 장이 갈등을 풀어주지는 않습니다.
필요한 것은 세 가지입니다. 먼저 감독과 협회가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원칙을 말이 아닌 운영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다음으로 당사자들이 최소한의 공식 설명에 나서야 합니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익명 보도와 추측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언론과 팬도 편 가르기를 멈춰야 합니다. 한쪽 선수를 향한 원색적 비난은 대표팀의 회복을 더 어렵게 만들 뿐입니다.
11월 도하에서 대표팀이 보여줘야 할 것은 승리 이전에,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한 팀의 모습입니다. 그것이 59호골의 밤에 남겨진 질문에 대한 가장 정직한 답이 될 것입니다.
YTN digital 김재형 (jhkim03@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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