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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수사반장' 최불암...내일 영면

2026.11.01 오후 0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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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정지웅 앵커, 박민설 앵커
■ 전화연결 : 김성수 문화평론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인용 시 [YTN 뉴스와이드] 명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앵커]
정겨운 '국민 아버지'이자 '영원한 수사반장',배우 최불암 씨의 빈소에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내일 고인의 발인식과 장례미사가 진행됩니다. 김성수 문화평론가와 함께최불암 씨가 우리 문화사에 남긴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평론가님 연결 돼 있으시죠?

[김성수]
안녕하세요. 김성수입니다.

[앵커]
고 최불암 선생님의 발인이 내일 예정돼 있는데요. 기본적으로 장례 일정은 어떻게 진행됩니까?

[김성수]
내일 오전 7시 40분에 서울아산병원에서 발인이 엄수됩니다. 그런데 발인 자체는 유족의 뜻에 따라 전부 비공개로 진행되고요. 9시께 여의도 성당에서 추기경이 직접 집전하는 장례미사가 진행되는데요. 이 장례미사에는 제한적으로 참석도 가능하고 또 취재도 가능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례미사 이후에 오전 10시 40분께 고 최불암 선생님과 45년간이나 함께했던 초록우산본부를 들르게 됩니다. 그래서 작별인사를 하게 되는데요. 이 일정은 최불암 선생의 당부에 따라서 마련된 특별한 일정입니다. 마지막으로 꼭 초록우산본부를 들르고 싶다고 당부를 했다고 하는데요. 아마도 45년간 아이들을 지원하고 키워내는 데 헌신했던 그 마음을 마지막까지 주고 가고 싶은 그런 심정 아니었을까 하고 상상을 해 봅니다.

[앵커]
최불암 선생님은 배우로서 많은 국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죠. 고인의 연기인생 설명을 해 주신다면요?

[김성수]
짧게 말씀드리면 대한민국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세기의 캐릭터를 만들고 가셨습니다. 어떤 배우들은 전체 인생에서 하나의 캐릭터를 만들어도 많은 대중들이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성공한 배우다, 이렇게 얘기하는데. 최불암 선생님은 수사반장의 박영한, 정의를 지키고 원칙을 세우는 아버지의 모습이었고요. 그리고 전원일기에서는 한 발자국 뒤에 물러나서 중재하고 소통하는 그런 아버지의 역할로서 22년을 한결같이 한가족과 마을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교양프로그램으로 기억하지만 한국인의 밥상이라고 하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동네 밥친구 같은 그런 인물인데 우리가 지켜야 될 맛과 가치를 일깨워주는 그런 역할을 맡았거든요. 이건 참 지혜로운 어르신의 캐릭터라고 볼 수 있는데 이렇게 3개의 캐릭터로 우리에게 늘 살아 있는 그런 분이 되셨기 때문에 범접할 수 없는 그런 배우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앵커]
앞서 평론가님께서 초록우산 관련된 얘기를 해 주셨는데 최불암 선생님께서 전국후원회장으로 활동을 하지 않았습니까?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하셨나요?

[김성수]
최불암 선생님은 1981년에 초록우산과 인연을 맺었는데요. 이거는 전원일기라고 하는 극에서 업둥이, 금동이를 키우면서 온갖 다양한 갓난신고를 겪는 역할을 하셨지 않습니까? 그런데 금동이를 키우면서 느끼셨던 극에서 가짜로만 아이를 키워내는 그런 역할을 하면 안 되겠다. 그래서 초록우산과 인연을 맺고 그리고 45년간 한결같이 아동복지 지원활동에 참여를 했습니다. 전국후원회장으로 58만 후원자를 대표했고요. 전국 46개의 지역 후원회와 1600만 명의 후원자를 이끌었고 해외 아동지원에도 세 차례나 참석을 하셨을 정도로 극에서 배운 깨달음을 실천으로 현실의 인생에 접목했던 그런 인격적 성숙을 보여주신 분이었습니다.

[앵커]
초록우산본부에서도 잠시 들러서 작별의 시간을 갖게 된다는 소식도 전해드렸습니다. 방송계에서도 최불암 선생님을 추모하기 위해서 특집 다큐멘터리 등을 긴급 편성하고 있다고 하는데. 정작 고인께서는 특집 방송을 고사하기도 하셨다고요?

[김성수]
실제로 방영이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다큐멘터리도 자기 건강이 허락하지 않는다. 이렇게 사양을 하셨는데 어떻게 보면 빨리 회복을 하셔서 방송현장 또 콘텐츠를 제작하는 현장에도 돌아오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감히 생각해 보는데요. 기억되는 배우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현장에서 활동하는 배우로서 고인의 삶을 마감하고 싶었던 의지가 느껴지는 이유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정부가 고 최불암 선생님에게 문화예술 분야 최고 등급인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습니다. 이 훈장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설명해 주시죠. 이미 은관문화훈장을 받으신 바가 있는데 연기 67년 인생을 이미 훈장으로서 평가를 받았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한 것은 최불암이라는 배우는 모든 연기를 생업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범이다, 이런 의미가 싶다고 생각합니다. 고인은 배우로서 가질 수 있는 사적인 욕망들을 내려놓고 우리 시대가 또 우리 시청자들이 원하는 그런 캐릭터로서 살아오셨어요. 한국인 밥상에서의 캐릭터가 14년이고 제일 길게는 22년을 특정한 캐릭터로 공적인 배우의 삶을 살았습니다. 어떤 캐릭터를 두루두루 섭렵하면서 연기자로서의 도전과 성취를 만끽하고 싶다는 그런 욕망들을 내려놓고 나를 사랑해 주신 분과 함께 사회적인 합의와 담론들을 만들어가고 싶다는 그런 공적인 삶을 많은 후배들이 함께 배워야 되지 않을까 생각되고요. 그런 측면에서 당연히 훈장이 추서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평론가님께서는 고인이 맡은 여러 가지 캐릭터 중에서 가장 국민들에게 큰 사랑을 줬던 캐릭터, 어떤 것으로 기억하면 좋을까요?

[김성수]
사실 전원일기의 김 회장 역할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원래 전원일기 처음 시작할 때는 회장님은 굉장히 고집이 있고 원칙을 중시하는 그런 캐릭터로 많이 그려졌고요. 가부장적이면서 가장 이상적으로 묘사하는 그런 아버지적인 역할이었습니다. 그런데 김혜자 씨와 연기호흡이 깊어지면서 또 전원일기가 김포 옆에 있는 양촌이 배경인데요. 여기가 점차 변화되면서 농촌이 사라지고 가족이 사라지고 공동체가 사라지는 그런 모습들을 그 안에서 그려냈어야 됐거든요. 그러면서 고집보다는 중재를 하고 소통하고 그래서 현명한 대안을 찾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으로 많이 기억됐어요. 이것은 상당히 예언적인 캐릭터였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지금 이 시대에도 진짜 어른은 서로 소통하게 하고 중재하게 하고 화합하게 하고 공통의 문제를 찾아가게끔 하는 부분이 어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영원히 기억될 수 있는 캐릭터로 김 회장 캐릭터를 손꼽고 있습니다.

[앵커]
최불암 씨가 단순히 연기를 잘하는 그런 배우를 넘어서 말씀해 주신 것과 같이 아버지와 같은 그런 이미지를 많이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오랜 시간 동안 최불암 씨가 많은 분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최불암 씨만의 매력은 뭐라고 보십니까?

[김성수]
최불암 선생은 처음 데뷔할 때부터 노역으로 데뷔를 하셨어요. 늘 항상 어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을 하고 캐릭터에 일관되게 관철시켜야 하는지.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이분은 원칙과 기준, 그 안에서의 따뜻한 배려 그리고 항상 원칙 이외에도 새로운 대안들과 함께 고민해 주는 그런 어른의 역할들을 많이 했는데요. 그러다 보니까 우리들한테는 항상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혹은 의논하고 싶은 상대가 있을 때 떠올리는 이미지로서 최불암을 선택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어떤 일도 벌어졌냐 하면 최불암 시리즈라고 하는 유머가 돌았는데 그것만 봐도 아버지로서의 딱딱한 이미지와 그 이미지 뒤에 있는 따뜻함을 같이 연결시켜서 유머로 삼았던 겁니다. 그래서 그런 최불암 씨는 배우로서의 캐릭터라는 삶과 현실에서 독특한 실천들을 결합시켜서 한 번도 흔들리지 않고 그 모습을 일관되게 연결시켜 나갔기 때문에 그런 대중문화적인 새로운 변화의 소비가 가능했던 거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정말 우리 문화사에 영원히 기억될 수 있는 그런 업적을 남기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앵커]
이렇게 고인께서는 진짜 어른의 모습을 스크린에서 많이 보여주셨는데요. 저희같이 젊은 세대들은 90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최불암 시리즈의 유머러스한 이미지를 기억을 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최불암 선생께서는평소에 이런 모습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성수]
그냥 허허 하고 웃으셨고요. 그리고 그렇게 다양하게 소비되는 것을 굉장히 재미있어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항상 캐릭터는 대중 속에서 살아 숨쉬고 대중들이 만들어나감으로써 완성된다고 생각하셨거든요. 그러니까 본인의 캐릭터를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에 의해서 해석되고 기억되는 것이 진짜라고 생각하셨던 거죠. 그러니까 대중들이 자기가 개인적으로는 열심히 구축해 왔던 캐릭터들을 이용해서 농담하거나 장난을 친다면 불쾌해할 수도 있는데 그것을 오히려 유쾌하게, 그래서 본인이 나서서 최불암 시리즈의 콩트를 선보이는 그런 모습들도 있었거든요. 그런 넉넉함들이 바로 소통을 하는 사람의 모습으로서 이미지를 더 굳히게 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많은 후배 배우들이 그리고 많은 시청자들이 이분에게 어려움을 털어놓으면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됐던 것이고 그것이 결국은 이분 자체를 공적인 배우의 삶을 유지하게끔 만들었던 그런 요인이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앵커]
마지막으로 수많은 배우들이 최불암 선생님을 존경하고 안타까워하고 있는데 연기자로서 최불암 씨가 후배 연기자들에게 남긴 가장 큰 유산이라고 할 만한 것들은 어떤 게 있을까요?


[김성수]
배우가 자기의 욕심만 쫓아가게 되면 기술적으로는 완성될 수 있을지 몰라도 이렇게 폭넓고 깊은 사랑을 받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자기의 욕심을 내려놓고 진짜 국민들이나 대중들이 원하는 연기들을 숙명처럼 전개해 나갈 때큰 사랑을 받게 되거든요. 물론 지상파 시대에서 살아남았기 때문에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수사반장은 18년 정도 하셨고 전원일기는 22년을 하셨고 한국인의 밥상도 14년을 하셨거든요. 그렇게 긴 시간 동안 한 우물을 파도 괜찮은 미디어 환경에서 이룬 성취이기도 합니다마는 실제로 한 캐릭터의 완성도가 높아지게 되면 그런 공적 배우의 삶을 살 수가 있어요. 시리즈가 계속 이어지게 되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이제 나는 하나의 캐릭터로 영원히 기억되는 그래서 일정한 사회에서 기호로 해석될 수 있는 그런 캐릭터를 남기고 싶다는 그런 분들이라면 최불암 씨를 보고 배우게 될 겁니다. 그래서 배우의 깊이가 깊어지는 하나의 길을 최불암 선생이 보여줬기 때문에 후배들이 그런 길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앵커]
최불암 씨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문화사에 남긴 의미는 오랫동안 남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까지 김성수 문화평론가와 함께 자세하게 알아봤습니다. 평론가님, 고맙습니다.

YTN 정유진 (yjq07@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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