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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된 딸 찾아야"...메르스도 물리친 부정

2015.06.19 오후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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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길용, 메르스 완치자


[앵커]
부성애로 메르스를 이긴 그리고 어제 퇴원한 송길용 씨를 만나서 얘기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같이 만나보시죠. 송길용 씨 전화연결 돼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인터뷰]
안녕하십니까?

[앵커]
축하드립니다. 애 많이 쓰셨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앵커]
이제 건강은 다 괜찮으신 거고요?

[인터뷰]
건강은 이제 완전히 회복하고 찾았습니다.

[앵커]
어제 퇴원하시고 처음에 무슨 일 하셨습니까?

[인터뷰]
허리가 아프고 여러 가지 뇌경색이 있어서 아무것도 지금 할 수가 없어서 메르스를 앓아서 그것 때문에 한 20일 동안 죽는 줄 알고 현재는 많이 회복된 상태이기 때문에 아마 하느님의 덕이라고 할까 아니면 여기저기서 메시지를 많이 주셨기 때문에 그 메시지 덕에 참 많이 건강을 찾았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그동안의 경과부터 먼저 여쭤보겠습니다. 허리가 안 좋으시고 또 뇌경색 때문에 병원에 갔다가 평택의 병원에서 거기서 메르스가 옮으신 건데요. 어떤 증세가 나타나고 얼마나 고통스러우시던가요?

[인터뷰]
허리 아픈 거하고 뇌경색인데. 어차피 뇌경색하고 허리 아픈 거는 그렇게 크게 힘들지는 않았던 건데 메르스 때문에 열이 나고 기침이 나고 피를 쏟을 정도로 해서 많이 아프고 했는데 지금 현재는 과장님이나 병원장님께서 많은 도와주셔서 회복을 당겨주시고. 현재 많은 회복 단계 중이고 또 어린이전문기관이나 아니면 서울경찰청 센터에서도 많은 메시지를 주셨기 때문에 현재 해법을 찾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앵커]
저희가 화면을 보여드리고 있는데요. 이 화면이 따님이 1999년에 실종됐고요. 그래서 이 따님을 찾기 위해서 그동안 지금까지 아주 오랜 세월을 애쓰셨고. 그래서 언론에서도 소개가 됐었던 그런 사연이 있으신 송길용 씨입니다.

[인터뷰]
제가 어느 날은 찾다가 이대로 죽는구나. 그거를 생각하니까 눈물만 나고, 이불 속에서 눈물만 흐르는 것이 그런 것밖에 남지가 않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가 왜 나는 할 일이 남고 어린 애를 찾아야 되는데 고등학교 2학년짜리를 찾아야 되는데 찾지 못하고 이대로 죽는다는 것이 너무 한이 되고. 진짜 아닌 게 아니라 귀신이 돼서도 딸을 찾아야 되는데 그러지 못하니까 모든 것이 제 자신이 원망스러운 것뿐이고. 모든 것이 힘들었어요. 그런데 여러 사람이 메시지를 주시고 응원의 박수를 주셨기 때문에 회복했죠. 메르스에 걸리시고 아프신 분이 있으면 결코 희망을 잃지 마시고, 이 메르스라는 것은 하나의 감기고, 하나의 몸살이라고 생각하시면 100번을 이기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아마 이거를 잘 관리하고 하시면 빨리 회복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저 역시도 그렇게 했기 때문에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앵커]
처음에 메르스라는 소리를 들으셨을 때 제일 먼저 따님 얼굴이 생각이 나셨겠군요.

[인터뷰]
그렇죠, 제일 먼저 났는데 제일 첫째로 죽는다는 것을 생각을 하니까 하늘이 노래지고 오히려 내 스스로 내 목을 끊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던 거죠. 그러나 지금은 많이 건강도 찾고 회복됐기 때문에 또 딸을 찾아야 되기 때문에. 아마 제 딸을 찾으면 여러 방송이나 언론으로 알 거예요, 송혜희라고. 아마 제가 회복이 됐으니까 또 아이를 찾아다녀야 되니까. 서울이고 어디고 걔를 찾는 전단지고 현수막이고 엄청 붙어있습니다. 전국에 안 가본 데가 없이. 이제 다시 어린 아이를 찾으러 다니려고 지금 현재 그러고 있습니다.

[앵커]
따님이 지금 말씀하신 대로 따님의 이름이 송혜희 양이고요. 1999년에 실종됐으니까 지금 나이가 몇 살된 겁니까, 따님이?

[앵커]
33살 됐군요, 따님이요. 그런데 어떻게 하다가 잃으셨습니까?

[인터뷰]
학교 갔다 오다가 밤 10시경에 깜깜한 밤중에 옛날 시골길에서 없어졌습니다, 바로. 그래가지고 지금까지 찾는데 아이 엄마도 걔를 찾다가 우울증으로 죽고 혼자 남은 몸으로 찾는데 내가 이 병에 걸려서 나 역시도 죽으려고 그랬던 건데 역시 죽지도 못하고 현재 다시 이렇게 일어나서 딸을 찾는 걸 다시 시작을 하니까 어느 분이고 감기라고 생각하시고 하면 모든 걸 다 이겨나가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앵커]
부인께서도 같이 따님 찾으러 애쓰시다가 2년 전에 먼저 세상을 떠나셨고요. 벌써 세월이 꽤 흘렀습니다. 16년 지났는데 아직도 이렇게 포기를 하지 못하시고.

[인터뷰]
포기는 내가 할 수가 없습니다.

[앵커]
그러시죠. 전단도 그동안 뿌린 것만 수십만장이라고 저희가 들었는데요.

[인터뷰]
전단지만 해도 한 600만 장이 되고. 현수막이 400만 장 되고, 또 차로 다니면 차도 아마 대한민국을 다섯 바퀴는 돌았을 겁니다.

[앵커]
따님 어릴 때 사진이 나오고 있는데요. 혜희 양은 선생님한테 어떤 따님이었습니까?

[인터뷰]
저한테는 둘도 없이 귀한 딸이었고, 그만큼 효녀였기 때문에 애착이 가고, 어느 날 학교 갔다오다가 실종이 되니까 집안 모든 게 풍비박산이 돼버리고 다 끝나거리는 거죠. 지금까지 아이를 찾으러 다니다보니까 내가 이 몹쓸병에 걸렸는데 그런데 지금은 완치가 돼서 또다시 어린 아이를 찾기 시작하는데 얼마나 긴 세월이 가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혹시 그동안에 조금의 어떤 단서나 누가 봤다거나 그런 것도 전혀 없었습니까?

[인터뷰]
그런 것은 있는데 내일 다시 경찰서에 같이 가야 되기 때문에, 제보가 들어온 게 두어 개 있기 때문에...

[앵커]
이 화면 잠깐 멈춰주시죠. 따님입니다. 왼쪽이 1999년 고등학생 때 당시 모습이고요. 오른쪽이 1997년경 사진입니다. 지금은 30대 중반으로 다가가고 있는 송혜희 씨입니다. 혹시라도 시청자 여러분들, 이러한 여성을 보시면 꼭 연락을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앵커]
송길용 씨 우선 완쾌되신 것 축하드리고요. 그리고 따님 꼭 찾으시기를 지금 들으시는 모든 시청자들 또 국민들이 염원하시고 있을 겁니다.

[인터뷰]
네, 감사합니다.


[앵커]
그래도 건강 잘 챙기시고요. 너무 무리하시지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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