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에 이어 사진 배우느라 정신없어요. 잘 찍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취재 기자의 카메라를 보며 이것저것 묻는 소탈한 모습이 방송에서 본 그대로다. 무뚝뚝한 경상도 사투리에서는 김병준(54) 변호사 특유의 유머와 친근함이 묻어났다.
과거 TV 법률 프로그램 ‘솔로몬의 선택’을 통해 대중들에게 알려진지도 꽤 오래된 느낌이다.
방송 활동을 갑자기 줄인 이유를 물으니 김 변호사는 “아직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다”며 “지금부터가 인생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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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방송을 접고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하다.
2002년에 우연히 SBS ‘솔로몬의 선택’에 변호사 패널로 출연했다. 많은 사랑을 받아 다른 프로그램 출연 섭외도 많았고 전국에서 강연 요청이 끊이질 않았다. 주 1회 이상 강연했고 적어도 1년에 1편씩 CF촬영까지 했다.
감사한 시간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공허함이 밀려왔다. 방송에서 진지한 법률 견해는 편집되고 농담만 나간 적도 있어 마음고생을 했다. 약 10년 동안 방송을 하면서 정체성에 혼란이 왔다. 법조인으로서 더 발전하고 싶어 방송을 그만뒀지만 간간히 YTN의 ‘판도사(판단을 도와주는 사이언스)’에 출연하거나 강연하기도 했다.
Q. 요즘 관심사와 근황은?
무엇인가를 배우는 일에 빠져 있다. 오토바이(Bike)를 타고 싶어서 개인 강습을 받고 중고 오토바이로 하루 6시간씩 연습했다. 요즘은 카메라에도 빠져있는데 여행을 다니며 촬영한 사진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사진 찍는 법을 익히고 있다.
또한 연세대 법무대학원에서 조세법을 전공하며 고시 준비하듯이 몰두한 결과, 지금은 세무사 일도 함께 한다. 지난해부터는 건국대 부동산대학원에서 부동산 경영관리를 전공하고 있다. 이 과정을 마치면 신학대학원에 진학할 계획이다. 힘든 사람들을 종교적으로 위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전문적인 공부가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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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회사에 다니다가 35살에 변호사가 됐다. 계기는?
20~30대에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유년시절 꿈은 법조인이었지만, 가난한 농부의 셋 째 아들이던 저는 크면서 그냥 빨리 취직해 안정적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제대 후 한국통신(현재 KT)에 겨우 합격했다. 이제야 행복해지나 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시련이 왔다. 바로 남동생과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이었다.
동생은 백혈병 진단을 받고 6개월을 투병하다 하늘로 갔다. 이어 9개월 뒤에 존경하던 아버지마저 돌아가시면서 충격이 컸다.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심이 생겼는데 ‘죽기 전에 오랜 꿈인 법조인으로서의 삶을 살아보자’는 마음이 생겨 직장에 사표를 냈다. 적은 나이가 아니었고 결혼도 한 상태였다.
이후 고시촌에 들어가 독학으로 고시 공부를 해 6년 만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좀 무모했다. 이직을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면 너무 위험한 모험은 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다.
Q. ‘변호사 패널’ 전성시대이다. 허와 실을 꼽는다면?
법률 방송 프로그램이나 변호사 패널들의 영향력은 날로 커지고 있다. 한 예로는 제가 나갔던 프로그램에서 대기업들이 마일리지를 멋대로 소멸시키는 것을 쟁점 사례로 다루었다. 이후 방송의 여파로 대부분의 기업들이 마일리지 소멸 시효를 상사 시효 5년으로 하는 등 제도적으로 많이 바뀌었다.
그러나 아무리 요즘 변호사 광고가 허용된다 해도 방송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이들도 있다. 실제로 방송출연 경험이 있는 변호사들의 사무실 홈페이지는 자신이 출연했던 방송 화면으로 도배되기도 한다. 저는 방송 출연 당시에 운영하던 홈페이지를 전부 없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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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최근 끊이지 않는 법조비리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요즘 여러 사건이 많은데 원인이 한 가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개인적 차원에서 접근해 보겠다. 법조인은 법에서 정한 조건만 충족하면 누구나 될 수 있다. 그러나 법조인의 ‘자질’은 이와 별개다. 또한 조직 안에서 비리 발생을 예방할 만한 시스템이 부족했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국가흥망 필부유책(國家興亡 匹夫有責, 국가의 흥망은 국민 한 사람에게도 책임이 있다)’이란 말이 있듯이 국민들의 의식 수준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국민들은 법조비리의 뉴스를 보고 ‘판·검사가 어떻게 저럴 수 있냐’면서 분개한다. 하지만 막상 자신이 송사에 휘말리면 제일 먼저 담당 판·검사와 친한 변호사를 찾기 마련이다. 사건을 맡을 변호사에게 지급할 수임료는 아까워하면서도 판·검사와 식사를 한다고 하면 거액을 내놓는다. 변호사에게 ‘돈은 얼마든지 지불 할 테니 판·검사에게 먼저 로비하라’고 요청하는 의뢰인도 있다.
Q. 다른 공무원에 비해 판·검사들에 대한 처벌이 약하단 지적도 있다.
판사는 사법기관, 검사는 준사법기관에서 마련한 제도적 장치의 하나가 바로 ‘신분보장’이다. 이는 사법권 독립을 위한 제도에서 오는 반사적 이익일 뿐이다.
판사는 헌법에서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하며, 징계처분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직·감봉 기타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검사는 검찰청법에서 ‘검사는 탄핵이나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하며, 징계처분이나 적격심사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해임·면직·정직·감봉·견책 또는 퇴직의 처분을 받지 아니한다’는 내용으로 신분보장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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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은 ‘과잉규제’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법을 어떻게 적용·운영하느냐에 따라서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성매매처벌법처럼 실제적인 효력을 거의 잃어버릴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사회가 발전하는 밑거름이 됐으면 좋겠고 이에 따른 비판이나 부작용은 우리가 감내해야 할 부분이다.
Q. 변호사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이길 사건은 이기고, 질 사건은 질 줄 아는 변호사가 유능하다.’ 사법연수원 시절 법조계 원로 선배님이 하신 말인데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변호사 자신의 능력 안에서 정직하게 상담하고 적정한 수임료를 제시해야 한다. 변호사들이 중시하는 것은 대부분 승소 가능성이며 의뢰인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똑같은 사건이라도 변호사마다 승소와 패소에 대한 견해가 다르므로 의뢰인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 저는 시험 한 번 잘 봐서 변호사를 하고 있고 여러 혜택을 받은 만큼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소신으로 업무에 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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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PLUS] 취재 공영주 기자, 사진 정원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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