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을 확인하고 보건소에 가면 간단한 피검사를 해주고 철분제와 엽산제를 무료로 준다. 여기에 임산부 배지를 함께 준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임산부를 배려해달라는 임산부 '표식'이다. 이번 해보니 시리즈에서는 임산부 배지를 2주간 달고 다녀본 소감을 적어보려 한다.
■ 임산부 배지, 이게 뭔지 아는 사람?
임산부 배지가 뭔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배지는 가방에 달고 다니는 식인데 '암행어사 마패'처럼 들이대지 않는 이상 '임산부 먼저'라는 작은 글씨도 알아채기 힘들다.
남편에게 배지를 처음 보여주며 "이게 뭐 같아?"라고 물으니 "몰라"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분홍색 배지는 임산부 좌석의 분홍색과 같은 색이지만 '여성=분홍'이라는 도식을 좋아하지 않아 처음에는 달고 다니기 꺼려졌다.
하지만 보건소에서는 "임신 12주까지는 조기 유산의 위험이 있는데 배가 나오지 않아 임신부라는 걸 사람들이 모르니 배지를 하고 다녀라"고 당부했다.
참고로 임산부 배지에 있는 종이에는
♥표시가 안 나는 임신 초기는 세심한 배려가 가장 필요한 시기!
♥지하철과 버스에서 자리 양보는 임산부 배려의 시작!
♥직장에서 임산부에게 무리한 근무와 스트레스는 금물!
♥산전·후 휴가는 선택이 아닌 필수!
라고 쓰여 있다. 너무나도 맞는 말이지만, 이 글을 보게 되는 건 오로지 임산부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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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사람 중 양보한 사람은 단 1명
평일 낮시간에는 임산부 배려석이 비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임신하기 전에도 임산부 배려석만 비어있다면 앉는 것을 포기했다. 임신한 이후에 떳떳하게 앉아갈 수 있는 자리가 생긴 셈이지만 출퇴근 시간에는 남성 여성, 연령대 상관없이 지친 사람이 버티고 앉는 경우가 더 많았다. 가방을 앞섶에 놓고 보여줘도 스마트폰을 보느라 눈치 못 챈다.
임산부 배려석에 남성이 앉아있는 경우에는 지하철 민원을 넣기도 했다. 직접 가서 "내가 임신을 했으니 자리를 비켜달라"고 말하는 건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다. 임산부가 시비가 붙었다가 배를 맞는 사건이 벌어진 기사를 본 적이 있어 무섭기도 했다.
지하철 민원을 넣는 '2656-0009번'으로 문자를 보내 신논현행 9113번 사평역에서 임산부석에 남성 착석'이라고 보내니 "임산부 배려석에는 임산부가 앉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내용의 방송이 나왔다. 그러나 남성은 비키지 않았다.
이런 일이 빈번하니 아이폰 에어드랍 기능으로 "지금 이 칸에는 임신한 남성이 앉아있습니다"라는 사진을 불특정 다수에게 보내 창피를 주는 일화까지 공유되는 것일까.
임산부 배지를 보고 자리를 비킨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영등포시장역에서 자리를 양보한 20대 여성은 가방에 달린 임산부 배지를 확인하자마자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다른 곳으로 갔다.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임산부가 미안할 일이 뭐가 있는가? 나도 임신 기간이 끝나면 절대 이 자리에 앉지 않으리라. 마음을 다잡고 편하게 앉아서 목적지까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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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통공사의 지하철 캠페인
■ 임산부를 위한 지하철의 노력 하지만..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에서 동대문 역사공원역 구간에는 "비워두고 배려하고 양보해요~♪"라는 임산부 배려 캠페인 노래가 나온다.
노래 가사는 다음과 같다 "비워두고 배려하고 양보해요~ 멋져 멋져
몸도 마음도 편치 않은 임산부 위해 우리 모두 비워둬요
핑크색 자리는 임산부 자리로
우리의 배려가 멋진 하루 만들어줄 거에요.
교통약자인 임산부를 위해 자리를 비워두세요"
하지만 가사를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은 없다.
한때 지하철 임산부 좌석엔 임산부 배려 곰 인형을 놓는게 유행하기도 했다. 곰 인형이 앉아있는 자리는 임산부를 배려하는 자리라는 표시로, 임산부가 앉아서 자연스레 인형을 안고 있으면 임산부라는 표식도 되기 때문.
그러나 지금은 전국 지하철에 놓였던 임산부 배려 곰 인형은 자취를 감췄다. 임산부석 곰 인형은 오염에 따른 각종 민원과 분실의 우려가 높아진 까닭이다. 서울 지하철은 물론 대구 지하철도 마찬가지다.
■ 옛날에는 양보 잘했어요?
나의 엄마도 지하철을 타고 만삭의 몸으로 지하철을 타며 일을 나갔다. 엄마는 당시를 회상하며 "절대 안 비켜주는 건 젊은 여자"였다고 말했다. "가장 잘 비켜주는 건 아주머니랑 젊은 남자들"이었다고.
나의 경우는 유일하게 비켜준 사람이 젊은 여성이었는데, 또 다른 여성은 내게 "가장 비켜주지 않는 것은 50대 이상의 여성들"이라고 말했다.
제각각 양보받은 사람에 대한 기억과 경험이 다르지만, 공통적인 것은 양보받은 경험을 따로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자리를 양보받은 기억이 적다는 거였다.
임신하면 국가는 임산부의 병원비를 감면해주고, 국민행복카드로 50만 원을 지원해준다. 모성보호를 위해 12주까지 2시간 단축 근무를 할 수 있게 해주고, 태아 검진을 하러 가는 날은 공가를 쓸 수 있는 법도 있다.
생각보다 임신이라는 게 겁먹을 일이 아닐 수도 있구나... 싶지만 "내 가족의 임신은 축복, 그러나 회사 입장에서는 별로"라는 말도 들어보고, 임산부 배려석에 자연스럽게 앉은 아저씨를 보면서는 제도도 제도지만 인식이 아직 멀었다고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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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통공사의 비워두고 배려하고 양보해요 노래
최근 서울 교통공사가 실시한 설문조사에도 배려석이니 배려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인식이 드러난다.
실제로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본 경험이 있냐"는 질문에 일반인 응답자 39.49%가 '앉아본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그 이유로는 '비어 있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54.64%고, '배려석이라서'가 26.86%였다. 그 외의 이유로는 차별이라 느껴져서, 임산부 배려석을 몰라서 순이었다.
배려석에 앉았을 때 주변에 임산부가 있으면 어떻게 대처했느냐는 질문에는 '임산부인지 알면 양보한다'가 54.66%로 가장 많았다. 이어 ‘임산부인지 몰라도 양보한다’가 39.5%를 차지했다.
그러나 임산부 배려석에서 임산부인지 알려면 일단 고개를 들고 상대를 봐야 한다. 그러나 대다수가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47.52%는 '그냥 간다'고 답했다. 32.85%는 스마트폰을 본다고 답했다. 졸면서 간다, 주변을 무시한다, 책을 본다. 순으로 답했다. (일반인 응답자 해당)
이제 임신 10주를 넘어간다. 아직 배가 나오지 않았지만, 입덧 증상으로 갑자기 사람의 체취를 심하게 인식하게 됐고 택시 냄새도 싫어서 대중교통을 더 많이 이용한다.
나보다 먼저 임신을 경험한 동지는 내게 "그 자리에 애써 앉으려 하지 마라"는 말을 해줬다. 그녀는 임신 기간 내내 딱 두 번 양보받아보았다고 대답했다. 그 기록을 깨보겠다고 웃었지만, 한편 그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YTN PLUS 최가영 기자 (weeping07@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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