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 방송 : FM 94.5 (17:10~19:00)
■ 방송일 : 2020년 7월 12일 (일요일)
■ 대담 :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환경영화제를 포함해 다양한 환경운동을 통해 지구를 지켜오고 있는 최열 서울환경영화제 위원장
◇ 이성규 한국장애인재단 이사장(이하 이성규)> 우리나라에서 환경운동에 관해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분이 계십니다. 이 사람에게는 대한민국 제1세대 환경운동가라는 수식어가 붙는데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환경재단의 최열 이사장입니다. 이사장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이하 최열)> 네.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 이성규> 정말 바쁘시죠?
◆ 최열> 아닙니다. 하하하. 제가 안 쓰는 단어가 세 개가 있어요. ‘바쁘다. 힘들다. 죽겠다.’ 그거를 한 번도 안 쓰고 생을 마감하려고 합니다. 하하하.
◇ 이성규> 느리게 걷는 환경 얘기가 벌써 나는데요? 7월 2일부터 제17회 서울 환경 영화제가 진행 중이지 않습니까? 거기 조직위원장으로 활동 중이신데, 환경에 관한 영화라. 이 환경 영화제가 뭐죠?
◆ 최열> 어떻게 보면 인간을 제외한 모든 게 환경이잖아요. 최근에는 환경이라는 단어보다 생태라는 단어를 쓰는데, 생태는 인간도 생태계의 일부라는 거고, 환경은 인간이 중심이 된 거기 때문에, 저는 좋은 단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제가 40년간 환경운동을 하면서, 환경운동을 그냥 구호 외치는 것으로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데는 문화적인 접근이 필요하고, 그래서 저는 한 편의 좋은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고, 한 편의 좋은 영화가 10번의 세미나나 심포지엄보다 훨씬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환경운동을 오래 했기 때문에, 환경을 문화적인 접근으로 해서,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게 영화라고 생각해서 이렇게 했는데요. 벌써 17년 됐거든요. 17년이 됐는데, 처음에는 환경 영화가 잘 없었어요. 그런데 점점 환경문제가 심각하고 중요해지니까, 금년에는 저희가 전 세계에서 환경 영화 3,300편이 들어왔어요. 그중 57편을 선정해서 영화를 상영하게 되는 거죠.
◇ 이성규> 네. 환경 영화제를 그렇게 문화의 힘으로 같이 환경을 알린다는 느낌으로 말씀을 주셨는데, 환경 영화제가 여러 곳에 좋은 영향을 많이 미쳤다면서요?
◆ 최열> 처음에는 그냥 소수가 반응이 좋다고 했는데, 이제는 영화 자체도 좋지만, 영화제만 하는 게 아니고, 영화제에서 좋은 것을 모아서, 학교나 직장 같은 곳에서 계속 상영하거든요. 그런 쪽으로는 저희는 특색있다고 봅니다. 환경이라는 내용으로, 환경이 굉장히 광범위하니까, 식생활도 있고, 해양환경, 쓰레기 등이 있는데, 특히 저희가 영향을 준 것은 2년 전에 중국에서 ‘플라스틱 차이나’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어요. 그래서 저희가 그 영화를 상영했는데, 너무 심각한 거예요. 그 영화를 상영했는데, 중국에서 그것으로 ‘어떻게 우리가 전 세계에서 이런 플라스틱 쓰레기를 수입하냐?’ 그렇게 해서 중국 시진핑 정부가 중단시켰죠. 중단시키니까 우리가 수출하다가, 우리나라가 이제 대란이 났잖아요. 그래서 그 사람을 우리가 작년에 초청했어요. 자기 딸이랑 왔는데, 제가 그것을 보면서 진짜 좋은 영화 한 편이 정부의 정책도 바꾸고 사람들의 생각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이성규> 네. 이 영화제가 7월 15일에 폐막하는데, 참 이것은 놓치지 말고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영화를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 최열> 저는 반려견을 프랑스 작가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는데요. 강아지 9마리가 태어났는데, 9마리가 다 분양이 됐어요. 분양된 강아지가 주인이 바뀌면서 겪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강아지의 관점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든 거예요. 우리는 사람의 관점으로 생각하는데, 저런 영화는 특히 우리가 반려견을 많이 키우는데, 어린이가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또 하나는 나무에 대한 독일 영화예요. 우리는 나무라고 하면, 감각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나무가 느낌도 느끼고, 나무끼리 소통도 하고요. 그래서 사람의 관점에서 나무를 보면 안 된다. 진짜 감동적이었어요. 나무는 제일 오래 산 게, 지금 만 년 살고 있거든요. 나무의 평균 수명은 인간보다 5배 정도 오래 살아요. 그러니까 우리는 굉장히 빠른 템포로 가는데, 나무는 천천히 가거든요. 그래서 저는 우리가 나무를 우리 인간의 생각대로 마음대로 자르는 것은 문제가 된다. 환경운동을 하면서 제가 몰랐던 것을 많이 배웠습니다. 그 외에도 식생활에 대한 것도 있고, 전 세계 5개 대륙을 다니면서 사진을 찍어서, 하늘에서 영상을 찍어서 플라스틱 쓰레기가 얼마나 지구 전체에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영화도 있고요. 재미있는 영화가 많습니다.
◇ 이성규> 57편이 다 좋겠지만, 지금 말씀하신 3~4편 정도는 봤으면 좋겠다는 거죠?
◆ 최열> 네. 그것을 보시려면 서울 환경 영화제 홈페이지에 들어오시면 영화 제목도 있고 다 소개되어 있거든요. 그걸 보시면 되고, 이번 영화제가 끝나면, 저희는 그중 좋은 것은 아카이브로 계속 상영할 예정입니다.
◇ 이성규> 네. 저도 꼭 보겠습니다. 최열 이사장님 앞에는 늘 수식어가 대한민국 1세대 환경운동가다. 늘 이렇게 붙어 있거든요. 환경문제에 일찍부터 관심을 갖게 된 동기가 있나요?
◆ 최열> 동기가 있죠. 원래 저의 전공은 농화학을 했어요. 농화학은 식품, 농약, 비료. 이런 거를 공부하는 곳이기 때문에, 제가 그때는 식품첨가물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긴급조치가 선포되고, 저와 친한 동료들이 구속이 많이 돼서, 저희가 명동 성당을 중심으로 석방 운동을 하다가, 긴급조치로 구속됐어요. 옥중에서 앞으로 나가서 무엇을 해야 하나. 그래서 제가 전공이 화학이니까, 내 전공을 살려서 뭘 해보겠다고 생각했죠. 그러다가 그 당시에 공해라고 그러죠. 폴루션. 그것을 택했더니 동료들이, 그게 76년이니까 44년 전 아니에요. ‘야 공해라도 좀 배불리 먹고 싶다.’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책을 넣어달라고 했더니 공해 책이 없는 거예요. 그 당시에 일본이 공해가 심했거든요. 미나마타병이나 이타이이타이병. 그래서 일본 책을 일본의 앰네스티에서 보내 주는데, 일본어를 또 모르잖아요. 그래서 일본어를 배워서 옥중에서 250권. 독방에서 읽었는데.
◇ 이성규> 그 책을 한 번만 읽은 건 아닐 것 같아요.
◆ 최열> 그렇죠. 여러 번 읽은 것도 있고, 그런데 독방에서 그런 걸 읽으면 꿈에서 제가 환경운동을 하는 꿈을 꿔요. 어떨 때는 꿈에서 토론을 하다가, 토론에서 밀리면 깜짝 놀라서 꿈에서 깹니다. 그래서 아, 이게 정신 분열 초기증상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까 뭔가 한 가지에 몰입하면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옥중에서 환경 공부한 게, 결국 제가 환경운동가가 됐기 때문에, 저는 감옥 간 것에 대해 후회하는 게 없습니다.
◇ 이성규> 네. 그러셨군요. 옛날 기억을 이렇게 쭉 떠올리시면 그때는 정말 환경운동이라는 게 생소하기 때문에 더 어려웠을 텐데, 그런 당시에 시작하시면서 어려움과 그 당시 환경은 지금보다 좋았잖아요?
◆ 최열> 우리나라 국토 전체로는 좋았고요. 그때도 나쁜 지역은 있었어요. 서울의 구로공단, 안양천, 청계천, 대구의 염색공단. 지역 쪽으로 나쁜 곳이 있었지만, 우리나라 국토 전체는 지금과 비교가 안 되죠. 그렇지만 그 당시에 심한 지역이 특히 울산, 온산, 여천. 공단이 만들어졌을 때인데, 그 당시에는 우리가 국민소득도 낮고 기술 수준도 낮으니까, 외국에서 문제가 되는 사양산업이 들어오니까, 그런 것에 대해서 우리가 문제를 제기하면, 그 당시 정부는 공해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국가 발전을 저해한다. 그래서 그때는 탄압을 많이 받은 거죠. 지금은 환경운동이라고 하면 좋게 보지만, 그 당시는 정부 차원에서 환경운동에 대해 반정부적인 것으로 여겼죠.
◇ 이성규> 그랬군요. 쭉 해오시면서 이것은 잊을 수 없다. 그런 추억이 있을 것 같은데요.
◆ 최열> 80년대 후반, 90년대, 2000년대까지는 진짜 환경문제가 심각했어요. 우리나라 전체가 공해 실험장일 정도로. 어떻게 보면 지뢰밭. 갑자기 사건이 막 터지니까, 터지는 부분은 페놀 사건. 대구의 낙동강 페놀 사건으로 대구 시민 250만이 물을 못 먹을 정도로 심각한 적도 있어서, 그 현장에 가서 그 문제를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도 했고요. 그다음에 더 중요한 것은 막아내는 게 중요하잖아요. 문제가 된 다음에 하는 것보다. 그래서 막아내는 부분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게, 강원도의 아름다운 동강. 그곳에 댐을 만들려고 해서, 댐 만드는 것을 백지화시켜야 하는데, 참 힘들었어요. 참 힘들었는데, 그때 느낀 것은 우리 국민들이 동강의 아름다움을 직접 체험하면 달라질 거다. 그래서 저희들이 많은 사람들이 체험하고, 언론사에서 다큐멘터리도 만들고, 저희가 33일간 동강댐 백지화 환경운동연합마당에서 계속했거든요. 그렇게 했더니 안성기 씨부터 유명한 배우들도 와서 힘도 보태주고. 그래서 결국 그 당시 김대중 대통령께서 세계 환경의 날에 세종문화회관에서 백지화 선언을 했어요. 그래서 그런 것은 파괴된 다음에 중단시키는 것보다 사전에 댐을 막아낸 것은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죠.
◇ 이성규> 그렇게 위험한 것을 알리기도 했고, 훼손되는 것을 막으신 것. 많은 일이 있었겠지만, 그 두 개가 기억에 남았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쯤에서 최열 이사장님과 함께 듣는 최열 이사장님의 인생 음악을 하나 들어야겠는데요. 어떤 곡을 들어볼까요?
◆ 최열> 제가 우리나라 음악도 생각하다가, 저희가 대학교에 다닐 때는 팝송이 굉장히 유행했어요. 그래서 그 당시 팝송 중에서 들으면 항상 기분이 좋은 노래가 Mary Hopkin의 ‘Those were the days’, 그리운 시절. 이런 노래인데요. 여자 가수가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 자기가 진짜 살면서 그리운 시절이 좋았다는 것이 생각날 수 있는 노래여서, 제가 신청했습니다.
◇ 이성규> 지나온 환경운동 시간을 한 번 다 떠올리시면서, 최열 이사장과 함께 Mary Hopkin의 ‘Those were the days’를 들어보겠습니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환경재단의 최열 이사장님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사장님 환경운동가라고 하면 일상생활에서도 다르죠? 누구는 자전거 타고 다닌다고 하고, 이런 걸 많이 듣지 않습니까?
◆ 최열> 저는 지금까지 자가용은 없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많은 에너지를 쓰는 게 자동차거든요. 자동차는 자기 몸무게보다 20배 이상 크잖아요. 그것을 움직이려면 에너지를 써야 하고, 그 에너지를 쓰면, 거기서 미세먼지도 나오고 온실가스가 나와서 우리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에, 승용차는 안 타고, 대중교통으로 많이 다니자. 그게 제 생각이고요.
◇ 이성규> 여기저기 다니시는데, 불편하지는 않으시고요?
◆ 최열> 다닐 때는 사무실 차는 있거든요. 사무실 차를 이용하지만, 제가 개인적으로 활동할 때는 대중교통으로 가고, 아주 급하면 택시를 타지만. 제일 좋은 게, 집에서 사무실로 가는 데가 전기 버스가 나왔어요. 전기 버스를 타면 승차감도 좋고, 진짜 좋습니다. 앞으로 수소 버스가 나오면, 수소는 연소도 하면서 미세먼지를 흡수하거든요. 그러면 더 좋잖아요.
◇ 이성규> 그러면 수소 자가용이 나와도 안 타실 건가요?
◆ 최열> 자가용은 안 타고요. 앞으로 사무실에서 쓰는 차는 수소차나 전기차가 필요하죠.
◇ 이성규> 네. 드시는 거는요?
◆ 최열> 가능하면 고기를 적게 먹으려고 하는데, 이게 제 마음대로 되질 않아요.
◇ 이성규> 그렇죠. 밖에서 다른 사람과 같이 하려면.
◆ 최열> 같이 하려면 사람들이 자꾸 까다롭다고 하거든요. 독일 국민의 10%가 채식을 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채식 식당이 없어요. 우선 채식 식당이 만들어지고, 채식이 맞는 사람도 많이 있어요. 저희 환경재단에도 채식을 하는 스텝이 꽤 있거든요. 그런 면에서 채식을 해야 하고, 그리고 개인적으로 저희 집은 유기농, 에코 생협이라고 해서, 생협에서 공급을 해줘요. 생협에서 채소라든지, 계란이라든지. 이런 것을 먹는 거죠.
◇ 이성규> 네. 2002년에 환경재단 만들어서 계속해오고 계신대, 미래 활동이 좀 달라질 것 같지 않아요?
◆ 최열> 네. 그래서 저는 환경운동을 한 40년 하면서, 계속 줄여라, 아껴라. 이런 것은 생각만큼 효과가 없습니다.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 바탕에는 물질적인 욕망이 있어요. 그 욕망을 줄이라는 것은 쉽지 않고요. 물질적인 욕망을 문화로 전환시키자. 예를 들어 영화를 본다든지, 음악을 듣는다든지, 올레길을 걷는다든지. 이런 거는 삶의 질을 높이면서도 환경에 영향을 덜 주잖아요. 그래서 저는 문화 쪽으로 가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환경운동은 우리나라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서, 저희들이 아시아 환경 운동 허브가 되자. 그래서 아시아 지역의 우물도 파주고, 최근에는 아시아에 환경친화적인 에코 빌리지를 만들어서, 그 모델을 만들어서 확산시키자. 그런 운동도 하고 또 모든 사람들이 계속 배워야 하는데, NGO는 장학제도가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저희가 장학시스템을 만들어서 지금까지 국내외 석박사 과정 104명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요즘은 일회용 마스크가 플라스틱만큼 상당히 말이 많아요. 그런데 이것을 안 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해요?
◆ 최열> 환경과 보건을 똑같은 거라고 생각하는데, 달라요. 보건은 한 번 쓰고 버려야 하는 것도 있거든요. 마스크 같은 경우에는 매일 버려야 하니까, 그것은 잘 모아서 잘 처리해야죠. 그것은 소각하면 되는 거니까. 그런데 그것을 그냥 마구잡이로 버리니까 쓰레기 문제가 되는 거죠.
◇ 이성규> 네. 어쨌든 앞으로도 최열 이사장님이 하실 일이 정말 많을 것 같은데요. 마지막으로 청취자분들과 마무리하시면서 내가 이런 일은 같이하고 싶다는 말씀을 해주시죠.
◆ 최열> 저희가 다보스포럼이라는 다큐영화를 상영하는데요. 그게 뭐냐면 세계 경제포럼입니다. 그런데 경제 문제로 환경이 해결될 수 없잖아요. 세계환경포럼이 없어요. 환경의 관점에서 경제도 살릴 수 있는, 그러니까 환경과 경제가 균형된 두 바퀴로 가야 하는데, 지금 서양에서 만든 다보스포럼은 경제의 관점에서 환경을 보니까, 경제는 큰 바퀴고, 환경은 작은 바퀴니까 균형이 안 맞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세계환경포럼을 만들고 싶고요. 그런 부분은 동양이 가지고 있는 불교사상, 노장사상. 이런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우선은 글로벌 에코 캠퍼스를 만들어서 많은 사람이 서로 토론하고, 젊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글로벌 에코 캠퍼스를 저희가 준비하고 있어요. 그래서 거기에 벽돌 한 장이 만 원입니다. 벽돌 한 장씩 내서, 많은 사람이 참여해서 그런 공간이 만들어져야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지 않느냐. 그래서 앞으로 기후변화를 비롯한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공간, 허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이성규> 환경을 아끼고 미래를 내다보는 그런 하나의 공간이 잘 마련됐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은 40년이 넘는 세월을 환경운동가로 살아온 환경재단의 최열 이사장님과 함께했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 최열> 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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