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들이 반세기 이상 이어진 국제 규범을 뒤흔들면서 한국과 캐나다 등 ’미들 파워’(Middle Power)로 불리는 중견국들끼리 힘을 합치자는 목소리가 커졌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로드킬’을 피하려고 유럽 각국, 캐나다, 한국, 일본, 호주, 인도 등 세계 주요 중견국들이 연대 강화에 나섰다고 보도했습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이 새판을 짜려는 상황에서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의 지난달 세계 경제 포럼(WEF) ’반 트럼프 연설’을 계기로 중견국 연대는 국제 사회에서 시대적 흐름으로 주목받는 분위기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위협이 절정에 달한 때 이뤄진 연설에서 카니 총리는 미국을 위시한 강대국들의 강압 시대가 열렸다고 지적하면서 중견국들이 뭉쳐 함께 대응하자고 제안했습니다.
패권 행보를 예측하기 어려워진 미국과 중국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국제 질서 속에서 카니 총리의 연설은 특히 유럽 각국을 비롯한 중견국들의 사이에서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중견국들은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이후 변해버린 미국도, 새 대안을 자청하는 중국도 신뢰하기 어려워지면서 무역부터 안보까지 여러 분야에서 연대를 강화해 나가려 한다고 WSJ는 짚었습니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은 국제 규범을 뒷받침하는 지도자 역할에서 물러나면서 경제력과 군사력을 노골적으로 활용해 다른 나라들이 자국의 지시에 따르도록 강압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중국도 ’새 어른’ 행세를 하고 있지만, 각국은 중국을 자국에 유리하게 세계 무역 규칙을 왜곡할 수 있는 권위주의 체제로 보고 신뢰하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여러 중견국은 미국,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자립성을 키우는 한편, 다른 중견국과 연대 강화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 협정(USMCA)을 통해 미국과 경제 통합도가 높은 캐나다는 최근 카니 총리의 방중을 통해 중국과 경제 협력 강화를 모색했습니다.
또 미국에 대한 석유 수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수출 터미널 시설도 확충했습니다.
유럽연합(EU)은 지난달 남미 공동 시장(메르코수르·MERCOSUR)와 FTA에 서명한 이어 인도와도 역대 최대 규모의 FTA를 타결했습니다.
또 호주와 FTA 체결에도 속도를 내면서 ’트럼프의 무역 전쟁’에 맞서 ’메가 FTA’로 새 활로를 찾고자 하는 EU 차원의 노력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러시아 석유 구매를 이유로 미국으로부터 한때 고율 관세를 부과받았던 인도도 FTA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미국 의존도 낮추기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인도는 지난해 7월에는 영국과, 지난달 EU와 FTA를 각각 체결했고, 시크교도 암살 사건으로 인한 외교 갈등 때문에 중단했던 캐나다와의 무역 협상도 2년여 만에 재개했습니다.
서방 중견국들 사이에서는 안보 분야에서 미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자강 노력도 큰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나토 회원국들이 지난해 국내 총생산(GDP) 대비 5% 수준으로 국방비 인상에 합의한 건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도 있지만, 유럽 스스로 군비 증강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기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실제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안보 위기감이 커진 EU와 유럽 각국은 대서양 동맹의 미래에 불안을 느끼며 군사력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군사력 확충은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폴란드가 한국산 K2 전차, K-9 자주포 등 기갑전력을 대거 수입한 것처럼 무기 체계 보강과 군 병력 확대 양대 축으로 동시에 진행되고 있습니다.
WSJ은 폴란드, 노르웨이가 한국의 전차, 포병 장비, 미사일을 도입하는 등 한국이 유럽 국가의 무기 공급국으로 부상한 건 유럽과 아시아 간 중견국 협력 강화 흐름의 연장 선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다만 세계적으로 여러 중견국 사이의 이해관계가 매우 다양하고, 일부 중견국 간 이해관계는 상충할 수 있다고 짚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광범위한 ’미들 파워 연대’를 구축하는 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아울러 유럽 등 여러 국가가 여전히 안보를 크게 미국에 크게 의존하는 현실에서 미국과의 관계를 성급하게 정리할 수 없다는 지적도 여전히 나오고 있습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WEF에서 "우리의 모든 좌절과 분노에도 불구하고 대서양 동맹을 성급히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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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이승윤 (risungyoon@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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