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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막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그대들에게

2026.06.16 오후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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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막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그대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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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라디오(FM 94.5) [YTN 뉴스FM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일시 : 2026년 6월 16일 (화)
□ 진행 : 박귀빈 아나운서
□ 출연자 : 백명재 교수 / 경희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 박귀빈 : 대한민국은 OECD 자살률 1위 국가입니다. 자살은 더 이상 누군가의 비극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됐죠. 지금 이 시간, 오늘을 홀로 버티면서 괜찮다는 이 말 뒤에 숨어, 내일이 두려운 이들을 위해서 편견 없이 서로가 서로를 살펴보는 사회를 꿈꾸면서 준비한 시간입니다. 삶이 힘든 그대에게 YTN 라디오와 한국 자살예방협회가 띄우는 절박한 열 통의 편지 <들어볼래요?> 다섯 번째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경희대학교 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백명재 교수 모셨습니다. 교수님 어서 오세요.

● 백명재 : 네 안녕하세요. 백명재입니다.

◇ 박귀빈 : 네, 교수님과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삶이 힘든 그대에게, 들어볼래요?> 백명재 교수님이 띄우는 다섯 번째 편지부터 듣겠습니다.

● 백명재 : 재난은 단 한 순간 일어나는 일입니다. 하지만 재난을 겪은 이후 하루하루를 매일같이 재난 속에서 지내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한 순간이 스스로와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을 송두리째 바꾸기 때문입니다. 이미 일어난 사건 자체를 되돌릴 수는 없지만, 사건 이후에 고통 속에서 지내는 분들의 어려움을 우리 시민들이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고, 또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재난 이후에 나타나는 2차적인 트라우마, 스트레스는 재난 그 자체만큼 혹은 사건 자체보다 더욱더 이분들을 지치게 만들기도 합니다. 사실과 다른 여러 루머, 괴담, 조롱, 사고 원인에 대한 섣부른 판단들이 재난을 겪은 이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이 되는지를 알고, 우리가 이런 언행을 하지 않도록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상처를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재난을 경험한 분과, 사고로 가족을 잃은 분들 중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마음속에는 죄책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은 아주 인간적인 마음이며, 너무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적인 마음을 실제 죄책감, 책임감과 혼동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재난은 시스템의 실패입니다. 당신이 막을 수 있었던 문제가 아닙니다. 당신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며, 책임은 당신이 져야 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 시민들이 그 책임을 나누고, 사고를 기억하며, 그들의 죄책감과 책임감을 덜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 박귀빈 : 네. 삶이 힘든 그대에게 들어볼래요? 백명재 교수님이 띄우는 다섯 번째 편지 먼저 듣고 왔습니다. 재난 피해 생존자 유가족에 대한 아픔을 짚어주셨는데, 사실 재난이라는 거는 아주 짧은 시간 어찌 보면 뭐 재난마다 유형별로 다르긴 하겠지만, 한순간이지만 남겨진 분들의 그 하루하루는 너무 고통스러우실 것 같고, 매일매일 재난 같이 사신다 뭐 이런 말도 들은 것 같습니다. 너무 먹먹하고요. 이게 그 트라우마가 개인의 삶을 다 삼켜버리지 않아야 하는데, 계속 반복된다고 들었습니다. 트라우마가. 그거는 왜 그렇습니까? 어떻게 진단을 할 수 있는 건가요?

● 백명재 : 그게 시간이 지나더라도 그때의 상황, 이미지, 기억, 감정들이 계속 떠오르는 증상을 우리가 ‘재경험’이라고 보통 얘기하는데요. 이게 PTSD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하죠. 그 진단의 가장 주요한 증상입니다. 그래서 트라우마를 겪어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으신 분들의 대부분은 이러한 증상들을 가지고 계시는 거죠.

◇ 박귀빈 : 계속 생각나고, 재경험이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근데 사람들이 흔히 어떤 아픔을 겪거나, 슬픔을 겪은 분들에게 가장 많이 위로라고 하는 말은 “시간이 약이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이런 말을 하잖아요? 이건 어떻습니까?

● 백명재 :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이 어떻게 보면 맞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저절로 좋아지시는 분들도 분명히 있거든요. 하지만 이제 그렇지 않은 분들도 분명히 또 있는 거죠. 일부에서는. 근데 이제 그런 분들한테 시간이 약이다 이런 것 얘기를 하는 것은 오히려 그분들의 마음을 내가 이해받지 못한다 이런 생각이 들게 하면서, 오히려 그 사람을 피하는 게 약이다. 이런 식으로 이제 흘러가는 거죠. 그래서 오히려 섣부르게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 피해를 입은 분들한테는 큰 부담이 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 박귀빈 : 그러면 본인도, 그 아픔을 겪고 있는 본인도 그런 생각을 안 하시는 게 좋겠네요?

● 백명재 : 이게 본인이 시간이 좀 필요하구나, 확실히 좀 시간이 지나면서 좀 좋아지고 있구나. 이렇게 느껴지시는 분들이 있거든요. 이제 그런 얘기들을 누군가가 꺼냈을 때, 그때는 확실히 그런 부분이 있다. 보통은 지지해 주고 공감해 주는 편입니다.

◇ 박귀빈 : 그러니까 제가 여쭤보고 싶은 건, 지금 내가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고, 자꾸 그 기억이 떠올라서 힘든데, 스스로가 “아니야 시간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시간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이러면서 그냥 계시는 것보다는 어떻게 전문의를 찾아간다거나,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게 더 맞는 건지 그걸 좀 여쭤보고 싶었어요.

● 백명재 : 중요한 지적이신데요. 그런 생각들이 떠오르고 힘들더라도 일상생활을 비교적 잘 해 나가신다면 치료가 당장 시급하게 필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를 들면 잠을 너무 매일같이 못 주무셔서 일상생활이 안 되신다든지, 혹은 이런 재난을 겪은 분들, 그리고 유가족분들은 고립되시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이랑 이제 관계를 끊고, 혹은 직장 생활이나 학업 생활들이 중단되고, 이런 일상생활이 중단되는 경우에는 그때는 꼭 좀 필요한 치료를 받으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 박귀빈 : 그러니까 내가 나의 삶이 무너졌구나 느끼면 그거는 치료가 필요하신 거네요. 아무래도 가장 먼저 전문의한테 찾아가는 게 좋겠죠? 아니면 주변 누구한테라도 좀 상담을 하면 도움이 되나요?

● 백명재 : 저는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 분들도 분명히 있으시거든요? 그래서 그런 경우에는 주변 분들한테 본인의 마음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괜찮은데요. 근데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털어놓는 것 자체가 반대로 너무 고통이 큰 거죠. 예를 들면 생각만 해도 괴로운데, 그것을 또 표현하는 것 자체가 더더욱 힘들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옆에서 그때 얘기를 해봐라든지, 뭔가 말로 표현하면 괜찮을 거라고 하면서 그것을 억지로 표현하게 하는 것은, 오히려 그분들의 아픔을 더 가중시키는 결과가 됩니다.

◇ 박귀빈 :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옆에서 나는 도와주고 싶어서 계속 얘기해 봐 그때 어땠어 이런 걸 자꾸 떠올리게 하는 게 자칫 오히려 이분한테 하면 안 되는 일일 수도 있다는 얘기네요. 그러니까 힘드실 때는 아무래도 선생님들을 찾아가는 게 가장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고요. 그리고 2022년이었습니다. 10월 29일에 이태원에서 있었던 참사 당시에 정말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고, 특히나 그 이후에도 그렇고 당시 출동해서 도와주셨던 구조해 주셨던 소방관분들이나 이런 분들이 또 자살을 하는 그 이후의 일들도 있었잖아요? 그분들의 트라우마도 상당한가 봐요.

● 백명재 : 네 맞습니다. 최근 연구들에서 이런 구조 인력들의 트라우마가 크다는 것이 실제로 결과로 나타났고요. 이분들은 잘 알다시피 반복적으로 트라우마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최근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 기준이 변경되기까지 했습니다. 기존에는 없었던 구조 인력의 반복적인 직업적 노출 자체가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는 문구가 삽입될 정도로 그분들의 고통이 크신 경우들이 있습니다.

◇ 박귀빈 : 이분들이 겪는 트라우마의 심리적인 가장 큰 원인은 근본 원인은 뭔가요? 어떤 죄책감 같은 건가요? 내가 구조하지 못했다 뭐 이런 건가요?

● 백명재 : 아 제가 요즘 3년째 소방관 분들을 직접 많이 뵙고 있는데요. 말씀하신 대로 그런 죄책감 당연히 있고요. 그다음에 동료를 잃으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게 그분들한테는 굉장히 큰 고통이 되는 경우죠.

◇ 박귀빈 : 그러면 그분들은 어떻게 좀 치료를 하고 나아지실 수 있는 건가요?

● 백명재 : 실제로 이런 소방관분들이라든지, 경찰·군인 분들은 치료를 잘 받지 않으려고 하시는 경향이 있습니다. 뭐 이런 것들이 진급이나 이런 것들에 좀 영향을 준다든지 그런 오해나 편견들이 있는 건데요. 그래서 요즘에는 소방관들을 대상으로 상담사분들이 직접 소방서로 찾아가는 프로그램들이 우리나라에서는 널리 활용되고 있습니다.

◇ 박귀빈 : 이거는 상시로 있는 건가요?

● 백명재 : 네네 상시로 있습니다. 각 지역별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 박귀빈 : 그러니까 평소에 미리미리 좀 트라우마에 대한 대비를 해 놓는 건가요?

● 백명재 : 네네. 그래서 꼭 힘들지 않더라도, 1년에 한 번 이상은 필수적으로 상담을 좀 받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 박귀빈 : 예. 앞서 교수님의 편지를 먼저 듣고 이야기를 시작을 했는데, 그러니까 피해자들이 어떤 2차적인 트라우마, 2차적인 스트레스도 굉장히 그것 때문에 힘들어하신다고.. 구체적으로 어떤 사례들이 있나요?

● 백명재 : 이게 주위에 믿는 지인이나 친구, 가족분들한테 상처를 받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 제 진료를 다니고 있는 환자분이신데요. 동료가 직장에서 자살한 것을 목격하신 분이세요. 그래서 사실 최초 목격자이기도 하고, 원래 굉장히 친했던 동료라서 그 상처가 너무 큰 나머지 직장을 그만두기까지 하셨는데요. 근데 가족들 입장에서는 그게 너무 답답한 거죠. 다시 일을 좀 시작했으면 좋겠고, 치료도 이거 언제까지 받아야 되나 싶기도 하고. 그래서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거냐, 언제까지 치료를 받아야 하느냐. 이런 부담들을 계속 주는 것 자체가 그분한테는 너무 큰 스트레스가 돼서, 오히려 요즘 외래진료를 와서는 그때 당시에 그런 트라우마보다는 가족과 관련된 갈등 이런 것들을 저한테 토로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 박귀빈 : 그러면 그럴 때, 가족들은 어떻게 해야 되나요?

● 백명재 : 사실 좀 기다려 줘야 됩니다. 일단은 이게 본인도 어쩔 수 없는 거죠. 원해서 일을 그만둔 것도 아니고, 도저히 이것이 본인 스스로 어찌할 바를 몰라서 그만둔 건데, 당분간은 좀 기다려주고 옆에서 지켜봐 주는 것이 오히려 더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 박귀빈 : 근데 또 가족들 입장에서는 그러니까 우리 가족이 너무 힘들어 하니까, 뭐라도 이렇게 좀 해보게 하기 위해서 그러시는 걸 텐데 말이죠.

● 백명재 : 네네 맞습니다.

◇ 박귀빈 : 그냥 기다려준다는 거는 어떤 방식으로, 그러니까 인정해 주는 겁니까?

● 백명재 : 네네. 인정해 주고, 그러니까 옆에서 필요하다 라고 생각하는 것과, 본인이 스스로 필요하다는 것이 생각보다 굉장히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옆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얘기나 행동을 해주는 것보다, 어떤 게 필요한지 물어봐 주면 됩니다. 혹시 지금 필요한 게 어떤 게 있는지, 내가 옆에서 도와줬으면 하는 게 어떤 게 있는지.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당신이 필요할 때 내가 언제든 도와줄 수 있으니 편하게 이야기해 달라”하면서 조금 더 기다려 줄 필요가 있습니다.

◇ 박귀빈 : 네. 앞서도 잠깐 이야기를 했는데, 10.29 참사 때 그 영상, 그러니까 현장의 어떤 영상이 무분별하게 SNS를 통해서 퍼지고 막 이랬었어요. 또 이런 행동들 역시 피해자들뿐만 아니라 그것을 보는, 접하는 분들에게도 트라우마를 줄 수 있는 거 아닌가요?

● 백명재 : 그렇죠. 초기에 첫날 특히 그런 영상들이 좀 돌아다니다가, 이것은 도저히 아니다 라는 사회적인 합의가 있어서, 좀 그래도 무분별하게 확산되는 것이 어느 정도 제어가 되기도 했는데요. 생각해 보시면 만약에 내 가족이 그런 일을 당했는데 그런 영상들이 돌아다닌다고 하면 정말 가슴이 찢어질 것 같지 않습니까? 어떻게 보면 가족의 경우 돌아가신 분의 그런 존엄, 명예가 굉장히 중요한데, 이게 아무렇지도 않게 퍼뜨리는 행동 자체가 그런 돌아가신 분의 존엄을 크게 해치는 행위가 될 수 있는 거고요. 그 장면 자체를 보는 것이 실제로 치료가 필요할 정도의 질병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만, 그 고통이 몇 날 며칠 계속 이어지는 경우들은 흔하죠. 대신 그것들을 반복적으로 노출했을 경우에는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힘들어지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 박귀빈 : 당시에 그러니까 피해자 분들, 피해자의 가족들, 또 현장에 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뉴스를 통해 계속 보도됐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사망자가 늘어나는 모습을 지켜본 국민들도, 그것 자체로 조금 트라우마가 생겼던 것 같아요. 저도 그걸 보면서 굉장히 먹먹하면서 너무 답답함을 느꼈었거든요?

● 백명재 : 네. 제가 아마 그때도 YTN에 나와서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 뉴스에 나가서 했던 얘기 중에 하나가 “힘드신 분들은 제발 뉴스 보지 말라” 그 말씀을 좀 반복적으로 드렸습니다.

◇ 박귀빈 : 맞습니다. 교수님 진료실에도 재난 트라우마로 좀 힘든 분들 많이 찾아오실 것 같아요. 가장 먼저 호소하시는 부분이 어떤 건가요?

● 백명재 : 여러 가지 증상들 당연히 있지만, 특히 이런 재난 중에 자연 재난보다 사회적 재난이 더욱더 고통이 큰 걸로 되어 있거든요. 이게 사람으로부터 입은 피해, 그 상처 때문에 우리 원래는 전혀 그렇지 않았던 분들이 사람에 대한 불신, 그리고 세상에 대한 불신. 이런 믿음이 깨져 버린 거죠. 이것이 어떻게 보면 그분들에게 굉장히 큰 후유증으로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치료를 진료실에서 하고, 약을 먹고 이런 것들이 증상은 좀 조절이 될 수 있겠지만, 이 사람에 대한 믿음까지 금방 회복시켜 줄 수는 없는 거거든요. 그래서 결국에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는 사람에게 입은 상처는, 사람을 통해서 회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래서 더더욱 주변 사람들, 가족들, 또 우리 시민들의 몫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박귀빈 : 그리고 어떤 사회적 재난, 어떤 정책 부재, 시스템의 부재로 인해서 일어난 일들도 있잖아요.

● 백명재 : 네네.

◇ 박귀빈 : 그럴 때 관련자를 정확하게 찾고, 처벌하고, 정확하게 어떤 사과를 하고. 이런 것들도 그분들이 어떤 재난 트라우마를 겪게 하는 데에, 그것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나요?

● 백명재 : 굉장히 중요한 지적인데요. 회복에 있어서 그 부분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 사회에 대한 믿음이 깨진 것들, 그래도 우리나라가 비교적 괜찮은 나라고, 뭔가 내가 피해를 입더라도 이런 것들이 잘 원인이 규명되고, 재발이 되지 않도록 시스템이 갖춰지고, 충분히 이런 나라라고 생각을 해 왔는데, 그것이 되지 않았을 때 내가 살고 있는 땅 자체가, 세상 자체가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면 그때서부터는 세상이 완전히 달라 보이는 거죠. 그래서 그런 투명한 사고 원인 규명이라든지, 책임자 처벌이라든지, 재발 방지를 위한 시스템의 변화 이런 것들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박귀빈 : 네네. 사람마다 그러니까 치료, 그걸 회복해가는 과정에 걸리는 시간이 상당히 많이 차이가 날 것 같아요. 좀 빨리 회복해서 일상생활이 가능해지시는 분들은 빨리 회복이 가능한가요?

● 백명재 : 당연하죠. 실제로 이런 재난을 겪는다고 해서 모든 분들이 그 트라우마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건 아닙니다. 실제로 연구들을 보면 재난의 종류나, 혹은 피해의 그런 종류에 따라 다른데요. 예를 들면 가장 큰 경우가 성폭력, 성폭행의 경우에는 한 절반 정도 되는데, 이런 사회적 재난의 경우에는 한 20%에서 30% 정도? 그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적지 않은 비율이긴 하지만, 그렇지 않고 잘 회복하시는 분들이 더 많다는 뜻이기도 한 거죠.

◇ 박귀빈 : 혹시 이런 재난 트라우마도 그러니까 내가 회복이 됐고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재발할 수도 있나요?

● 백명재 : 실제로 비교적 안정이 되시는 분들이 별 이유 없이 나빠지는, 다시 재발이 되는 경우는 이론적으로는 가능한데 그렇게 흔하진 않습니다. 대신 예를 들면 기념일 반응이라고 하는데요. 다시 1주기, 2주기 그럴 때가 돌아오면 잘 지내시는 분들도 다시 잠을 좀 못 주무신다든지, 좀 더 마음이 아파 온다든지 그런 일시적인 변화들을 겪으실 수는 있는데, 또 그때가 조금 지나면 다시 안정적으로 지내시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 박귀빈 : 그러면 어떤 사회적 재난, 정말 많은 사람에게 트라우마를 남겼던 그런 사건의 기념일이 돌아올 때, 사회적으로 기념일을 어떻게 보내느냐도 좀 방식이 있어야 되는 건가요?

● 백명재 : 네네. 저는 올해 세월호 12주기 행사가 굉장히 좋은 선례를 남겼다고 생각이 드는데요. 처음으로 대통령도 참석한 행사였다고 들었습니다. 대통령뿐만 아니라 이런 많은 사회적인 책임이 있는 분들이 같이 그날을 기억하고, 함께 추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박귀빈 : 재난의 그늘 속에서 여전히 굉장히 힘든 분들 많으실 것 같아요. 그러니까 생존자분들, 같은 재난 현장에 있었지만, 누군가는 돌아가셨지만 나는 살아남은 그런 생존자분들. 그리고 희생된 분들의 유가족분들. 돌아가신 분들의 유가족분들. 여전히 좀 힘들어 하시는 분들 계실 것 같아요. 전문의로서 그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 것 같아요.

● 백명재 : 되게 역설적인 부분을 좀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실제로 트라우마 때문에 고통이 심하신 분들이 오히려 진료나 상담을 잘 받지 않으려고 하십니다. 이게 그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든데, 진료나 상담을 가면 그 얘기를 꺼낸다는 것 자체가 엄두가 안 나시는 거죠. 그러니까 더더욱 이제 치료나 상담을 피하려고 하십니다. 근데 저는 예를 들면 진료실에 트라우마 환자가 오시면, 자세하게 트라우마에 대해서 묻지 않습니다. 간단하게 어떤 일 때문에 고생하고 계시는지를 좀 듣고, 일단 충분히 안정이 될 때까지 치료를 하고요. 그다음에 천천히 트라우마와 상황에 대해서 한참 지난 뒤에, 이분이 충분히 어느 정도 그것이 소화가 될 수 있을 때 이제 그 이야기를 같이 나누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전문가라고 하는 분들이 그런 피해자 분들,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분들의 그런 걱정을 충분히 알고 있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만약에 그런 걱정 때문에 치료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치료를 받지 못하시는 분들은 그런 부분들을 좀 알고 가시면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고. 본인이 원치 않는 얘기는 안 해도 된다 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혹시나 진료 상황이나 상담 상황에서 얘기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은 좀 얘기하기가 힘들다. 그것을 말씀하셔도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 박귀빈 : 네. 지금 해 주신 말씀은 힘드신 분들, 트라우마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 해주신 말씀이고, 끝으로 저희가 항상 여쭤봅니다. 그러니까 주변에서 우리가, 내가 내 옆에 있는 트라우마로 힘든 분들에게 뭘 해야 될지를 대부분 다 모르시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처방전 좀 내려주세요.


● 백명재 : 이게 다들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있으신데, 무엇을 어떻게 도와줘야 될지 모르겠고,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게 맞을지 모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거든요. 우리가 이런 것들에 대해서 배운 적이 없습니다. 말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말을 어떤 얘기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오히려 말 실수를 할 수 있거든요. 말을 많이 하시기보다는 옆에 같이 있어 드리고, 안아드리고, 손을 잡아드리는 것들이 더 도움이 될 수 있고요. 아까 잠깐 말씀드렸지만 내가 필요하다 라고 생각하는 걸 해주는 것은 그분들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분들이 필요한 게 무엇인지 옆에서 물어봐 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필요할 때 언제든지 내가 도와줄 수 있다 라는 메시지를 전해 주시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 박귀빈 : 네. 지금까지 슬기로운 라디오 생활과 한국자살예방협회가 함께하는 <삶이 힘든 그대에게, 들어볼래요?> 경희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백명재 교수였습니다. 교수님 고맙습니다.

● 백명재 : 감사합니다.


YTN 이시은 (sieun0805@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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