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 박귀빈 :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시간이 흐르는 곳, 역사에 머무르던 공간 궁궐이 젊은 세대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면서, 새로운 시간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가장 한국적인 공간, 궁궐 속 특별한 서사를 따라 걸어봅니다. [다시 궁을 걷다] 왕과 왕비, 황제와 황후의 신주를 모신 국가 사당 조선의 정신적 지주 종묘로 가봅니다. 송진욱 궁능유적본부 전시 큐레이터 모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 송진욱 :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박귀빈 :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짧게 부탁드립니다.
◆ 송진욱 : 저는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에서 전시 큐레이터 일을 하고 있는 송진욱 큐레이터입니다.
◇ 박귀빈 : 반갑습니다. 전시 큐레이터면 어떤 일을 하시는 건가요?
◆ 송진욱 : 보통은 전시 업무를 하기는 하는데, 요즘 저는 행사 위주로 지금 일을 하고 있어요. 대표적으로 많이 유명한 밤의 석조전이라든지, 조선왕릉축전, 묘현례, 창덕궁 달빛기행 이런 것을 저희가 지금 하고 있는데, 거기서 일부를 제가 지금 담당하고 있습니다.
◇ 박귀빈 : 담당이라는 것은 기획을 하시는 건가요?
◆ 송진욱 : 기획까지는 아니고요. 어떻게 보면 기획일 수도 있고요. 관리도 있고, 어떻게 행사를 잘 치러야 되는지. 뭐 이런 것을 좀 확인도 하고, 그다음에 아무래도 행사 자체가 역사적인 이야기가 있어서, 그런 걸 고증도 하고 그런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 박귀빈 : 하는 일이 많으시네요. 그 바쁜 시간 중에 이렇게 시간을 내서 와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오늘 다시 궁을 걷다의 주인공은 종묘입니다. 사실 그동안 저희가 여러 군데의 궁궐에서 나오셨어요. 보통은 경복궁, 창경궁, 덕수궁. 궁이었습니다. 궁. 근데 오늘은 종묘거든요? 궁궐과는 또 다른 곳일 텐데, 어떤 의미가 있는 곳입니까?
◆ 송진욱 : 먼저 종묘는 궁은 아니고요. 조선과 대한제국의 왕과 왕비, 황제와 황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공간입니다. 그러니까 왕의 생전 공간이 궁이었다면, 사후의 공간이 종묘예요. 그래서 그게 이제 똑같은 왕을 위한 공간이지만, 생전과 사후에 차이가 조금은 있다 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 박귀빈 : 이렇게 하니까 의미가 확 닿아요. 그러니까 살아계시는 동안 계셨던 곳은 궁궐인데, 사후에 계시는 곳은 종묘라는 거잖아요? 그럼 지금 종묘에 왕과 왕비들이 계신다는 거잖아요?
◆ 송진욱 : 혼이 모셔져 있는 거죠.
◇ 박귀빈 : 혼이 모셔져 있는 거잖아요? 조선시대에 왕과 왕비들이 다 그쪽에 계신 건가요?
◆ 송진욱 : 뭐 우리가 흔히 말하는 태조부터 마지막 황제였던 순종까지는 계시는데요. 중간에 ‘군’이라고 이름이 붙는 분이 계세요. 연산군이랑, 광해군. 이 두 분은 폐위가 된 분들이기 때문에 이제 왕자예요. 왕이 아니시기 때문에. 그 두 분은 종묘에 안 계시고요.
◇ 박귀빈 : 나머지 분들 다 계신 거에요?
◆ 송진욱 : 예. 그리고 추존왕이라고 계시는데, 이게 뭐냐면 살아계셨을 때는 왕이 아니세요. 근데 돌아가시고 나서 왕의 이름으로 올려드리는 것을 추존이라고 하는데요. 그분들까지 다 포함해서 종묘에 계십니다.
◇ 박귀빈 : 그러면 계속 그분들의 혼이 머물고 있는 곳인 거잖아요? 1년 내내. 그러면 그곳은 굉장히 뭔가 조용해야 될 것 같고, 뭔가 관리를 더 열심히 해야 될 것 같고 이런 느낌인데요?
◆ 송진욱 : 딱 종묘라고 해서 이렇게.. 물론 엄숙하고 장엄한 공간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왕의 쉼터라고 생각을 하시면 될 것 같아요.
◇ 박귀빈 : 왜냐하면 사실 많은 분들이 궁궐 나들이를 많이 하시는데, 사실 종묘에 대해서는 어찌 보면 조금 아직 이해를 잘 못하시거나, 저도 그렇습니다. 정확하게 이곳의 의미라든가, 우리가 이곳에 가고 무언가를 볼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자세로 봐야 되나? 이런 것들도 한번 오늘 큐레이터님이 정리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 송진욱 : 네. 제가 포인트라든지 이런 걸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박귀빈 : 조선의 정신적 지주라고도 불립니다. 종묘가 굉장히 큰 역할을 했던 곳인가 봐요?
◆ 송진욱 : 사극에서 보면은 대사 중에 “종묘와 사직을 보존하소서” 이런 대사를 많이 들어보셨을 거예요. 근데 거기서 말하는 종류가 이 종묘고요. 그다음에 사직은 따로 있습니다. 조선시대가 농경사회였기 때문에 가장 중요했던 곡식의 신이랑, 땅의 신에게. 또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 사직이에요. 그래서 종묘랑 사직이 조선시대 나라의 기본 근본으로 생각을 했는데요. 예를 들어서 새로운 임금님이 즉위를 했다든지, 왕이 돌아가셨다든지, 그래서 이런 국가의 큰일이 있을 때마다 무조건 종묘에 가서 고할 정도로, 나라를 통치함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공간으로, 중요한 공간이다 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 박귀빈 : 조선 건국 직후, 태조 4년에 좌묘우사 원칙에 따라서 종묘가 지금의 자리에 세워졌다. 이렇게 돼 있는데요. 이게 어떤 이야기입니까? 설명 좀 부탁드려요.
◆ 송진욱 : 맨 처음에 1392년에 조선이 건국이 됐어요. 그런데 그때 당시에 수도가 여기 한양 서울이 아니라 개성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몇 년 뒤에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자. 그래서 맨 처음에 지어진 게 법궁, 경복궁을 짓고, 그다음에 궁궐을 기준으로, 우리가 바라보는 입장이 아니라 궁궐을 등진 기준으로, 왼쪽에는 종묘, 오른쪽에는 사직을 둔다. 이게 좌묘우사라고 해요.
◇ 박귀빈 : 제가 궁궐을 등지고 서 있으면 왼쪽엔 종묘, 오른쪽에는 사직. 이렇게 설계가 됐다는 이야기네요?
◆ 송진욱 : 네. 그게 이제 조선은 억불숭유의 나라였잖아요? 그래서 유교를 숭상하는 국가였는데, 그 유교의 경전 중에서 주례라고 있습니다. 거기에 좌묘우사의 얘기가 나옵니다. 그래서 그 예에 따라서 등지고 봤을 때 이렇게, 이렇게.
◇ 박귀빈 : 지금 말씀하신 좌묘우사 맞습니까? 좌묘우사의 그림이 나가고 있는 건가요?
◆ 송진욱 : 지금 위치가 바뀌었네요. 그래서 등지고 봤을 때 이렇게 있습니다.
◇ 박귀빈 : 등 지고 봤을 때?
◆ 송진욱 : 네. 그래서 지금 경복궁역이 여기 있고, 종로 3가역이 여기 있잖아요? 그래서 종로 3가역에 종묘가 있습니다.
◇ 박귀빈 : 그렇군요. 우리 큐레이터님의 설명을 경청해 주시길 바랍니다. 가장 정확한 정보를 지금 주고 계시기 때문에. 사실 처음부터 지금처럼 정전과 그 외에 여러 가지 것들이 함께 있었던 거는 아니라면서요?
◆ 송진욱 : 네. 지금 신주를 모시는 곳이 정전이랑, 영녕전 이렇게 두 군데가 있는데, 근데 이게 좀 길어지는데 괜찮을까요?
◇ 박귀빈 : 괜찮으세요. 일단 하다가..
◆ 송진욱 : 좀 재미가 없을까봐서.
◇ 박귀빈 : 역사가 너무 재미 있죠. 너무 배우는 거 많고. 그동안에도 나오셨던 분들이 간략하게라도 소개를 해 주시는데, 전 빠져들겠더라고요. 많은 분들이 그러실 것 같으니까, 가장 간략하게 한번 설명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 송진욱 : 종묘가 1395년에 창건을 했는데요. 그때 당시에는 정전만 있었습니다. 근데 그때는 정전이라고 부르지 않고, 그 건물 자체를 종묘라고 불렀어요. 그래서 맨 처음에는 태조 이성계의 4대 조상님들을 신주를 먼저 모셨고요. 조선시대 때는 오묘제로 신주를 모시는데요. 이게 뭐냐면 쉽게 말하면 현재 재위한 왕의 4대 조상.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 그다음에 개국시조. 이렇게 해서 5명의 조상을 모시는, 5대를 모시게 되었는데요. 세종 때 들어서 이 5대가 끝난 왕의 신주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신주를 놓고, 무덤에 묻어야 되냐, 능에 묻어야 되냐. 아니면 별도로 사당을 지어야 되냐. 이거를 논의를 하다가 결국에는 별도의 사당을 짓자 라고 해서 그때 만들어진 게 영녕전이고요. 그래서 영녕전이라는 뜻이, ‘왕실의 조상과 자손이 함께 평안하다’라는 뜻입니다.
◇ 박귀빈 : 영녕이라는 말이..
◆ 송진욱 : 예. 영자가 편안할 영자. 그러니까 안녕할 때 그 영자고요. 그래서 맨 처음에 돌아가신 왕은 정전에 모셨다가, 5대가 끝나면 영녕전으로 신주를 옮기게 됩니다. 그렇게 했다가 한 번 또 변화가 생기는 게 연산군 때예요. 연산군 때, 신주를 모시는 제도를 좀 바꾸자. 변경을 하자라고 해서 변경을 하는데, 이때 이제 만들어진 제도가 세실, 조천입니다. 이게 뭐냐면 세실로 지정을 한 왕은 종통을 잘 이었거나, 아니면 공덕이 좀 많은 왕. 이분들은 세실로 지정을 해서, 정전에 영원히 모시자. 그리고 나서 조천 같은 경우에는 종통이 끊어졌거나, 아니면 추존된 왕. 이분들은 영녕전으로 옮길 천 자를 써서 조천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그래서 옮기자 라고 해서 그렇게 모셔졌고요. 그러면서 그 공간이 부족하게 되면서 증축을 하게 된 거고, 중간에 1592년 임진왜란으로 소실이 되고, 광해군 때 재건을 한 거고요. 그리고 왕이 계속 이어지면서 재위한 왕이 많아지니까, 그만큼 18대 현종 때라든지, 21대 영조 때라든지 계속 증축을 했고요. 지금의 모습은 24대 헌종 때 일입니다. 그래서 그때 마지막으로 증축을 해서, 지금의 정전 19칸, 영녕전 16칸. 이렇게 해서 지금의 모습을 보실 수가 있는 거고요. 조금 아이러니한 게, 제가 연산군 때 신주 모시는 제도가 변경이 됐고, 광해군 때 재건을 했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공교롭게 이 두 분이..
◇ 박귀빈 : 그러네. 이 두 분이 안 계시잖아요. 종묘에.
◆ 송진욱 : 네. 종묘에 들어가시지는 못했습니다.
◇ 박귀빈 : 그러네. 진짜 공교롭네. 그러니까 처음에 정전만 있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오묘제라고 해서 5대까지 쭉 하다가, 세종 때는 5대가 지나면 영녕전이라는 것을 새로 만들어서 그쪽으로 옮기자. 오래되신 분은 그쪽으로 모시다가, 연산군 때는 아예 모시는 방법이 달라져서 어떤 분들은 정전에 계속 평생 계실 수 있도록, 영원히 모실 수 있도록 한 거고. 또 어떤 분들은 영녕전으로 옮기는 것으로 약간 방식이 바뀌었고. 계속 공간이 부족하니까 증축되면서 왔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정전 19칸, 영녕전 16칸의 현재의 종묘를 보실 수 있다 이거네요. 종묘를 딱 보러 가시면, 전체를 이렇게 쭉 둘러보는데, 천천히 둘러보는 데 몇 시간 정도 걸릴까요?
◆ 송진욱 : 천천히 보시는 데는 한 1시간?
◇ 박귀빈 : 그래요? 생각보다 금방 끝나네요.
◆ 송진욱 : 네. 앞에 제례를 준비하는 공간도 있지만 제례를 시행하는 공간. 정전, 영녕전. 여기서 사람들을 좀 많이 보세요. 누가 모셔져 있는지. 특히 사극이나 이런거요. 최근에 <왕과 사는 남자> 천만 넘어서면서, 그때 영녕전에 단종의 신주가 있어요. 그래서 그때 좀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고. 사극이 나오면 또 정전이나 영녕전에 관람객들이 좀 많이 구경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한 1시간 반 이렇게 보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고요.
◇ 박귀빈 : 사실은 제가 그걸 왜 여쭤봤냐면, 그러니까 종묘라는 곳이 일반 또 궁궐은 우리 임금들이 살아계실 때 살던 진짜 말 그대로 궁궐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규모도 있고, 천천히 가면 걸을 만한 산책길도 있고 막 이렇잖아요? 그런데 종묘 같은 경우는 딱 봤을 때 정말 다 하나하나 의미 있는 공간이다 보니까 그런 공간을 쭉 도시는데, 여유롭게 도실 때 1시간 정도 걸리지만, 또 해설사님들이 설명을 해 주실 거잖아요? 우리 큐레이터님도 직접 설명을 해 주세요?
◆ 송진욱 : 저는 아니고요. 저는 사실 종묘 소속이 아니라서요.
◇ 박귀빈 : 그렇죠? 아까 궁능유적본부에서 오셔서 설명을 해 주고 계시는 건데, 그렇게 종묘 가셔서 전문 해설가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요즘 또 드라마나 영화 통해서 함께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해 주실 테니까, 많은 분들이 옛날 생각하시면서 그렇게 좀 마음 아프게 돌아가신 우리 왕들은 사후에 어디에 어떻게 계시나를 또 이제 알게 되는 거예요. 현재의 모습을 보면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돼 있네요? 종묘가.
◆ 송진욱 : 네 그렇습니다. 이게 31년 전에.
◇ 박귀빈 : 굉장히 오래전에 등재 됐네요?
◆ 송진욱 : 네. 1995년에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종묘가 세계유산으로 등재가 됐는데요. 그게 유형적 가치랑 무형적 가치가 좀 동시에 인정을 받아서, 세계유산에 등재가 됐습니다. 먼저 목조 건물이잖아요? 정전 같은 경우에는 되게 길어요. 이게 쭉 늘어져 있다는 거죠. 건물 자체가. 건물 자체가 쭉 늘어져 있다는 건데, 이게 굉장히 특이하다.
◇ 박귀빈 : 그런 건축 양식이 특이한 거에요?
◆ 송진욱 : 네. 그게 어느 세계에서도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이게 한 번에 딱 이렇게 지은 게 아니라, 몇 차례씩 증축을 한 거고. 그래서 한 건물 안에서 조선시대의 역사가 다 담겨져 있다. 그리고 저희가 그냥 딱 건물만 이렇게 있는 게 아니라 그게 뭐가 문제가 있거나 그러면은 보수랑 복원을 합니다. 정전 같은 경우에는 한 3년 정도 전면 해체 보수를 해서, 작년에 완공을 해서 관람객을 맞이했는데요. 그게 이제 지금도 가능하고, 그다음에 무형적인 거는 아무래도 제례 문화가 있다 라는 것? 동아시아권 나라에서는 이게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제사가 있다는 게.
◇ 박귀빈 : 그래요? 일본 같은데 없나요?
◆ 송진욱 : 네 제사가 없습니다. 중국도 그렇고요. 우리나라만 지금 유일하게 제사를 아직도 조선시대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졌다는 게, 좀 많은 인정을 받아서 세계유산으로 등재가 됐습니다.
◇ 박귀빈 : 네. 지금 이 방송을 유튜브 채널로 보시는 분들은 조금 전에 나갔던 사진도 아마 보셨을 거예요. 종묘 건축 양식이 이렇게 가로로 길다, 이게 굉장히 특이하다 라고 유형적 가치에 대해서 먼저 설명을 해 주셨는데, 보니까 정전 길이만 100m래요. 101m? 이 정도로 이렇게 지은 것도 뭔가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 송진욱 : 뭐 그렇게 사실 크게 의미는 없고요. 조선시대 신주를 모시는 제도에 따라서 서쪽을 높이는 제도, 그러니까 서상제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서쪽이 무조건 1실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기준에서 1실이 서쪽이에요. 그래서 이게 증축을 할 때 동쪽으로 이렇게 증축이 되는 거죠. 그렇게 해서 지금 현재 101m 정도가 건물만입니다. 이게.
◇ 박귀빈 : 그러니까요. 101미터입니다. 그러니까 수평 구조예요. 그러니까 높이 쌓는 게 아니잖아요? 이거는 쭉 가면, 딱 봤을 때 한눈에 멀리서 쫙 봤을 때 굉장히 장관이시잖아요.
◆ 송진욱 : 네. 좀 웅장한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 박귀빈 : 그러니까요. 그래서 수평적 구조에 계속 증축을 하다 보니까, 또 이렇게 길어진 의미가 있는 것 같고. 종묘 입구에 들어서면 외대문이 나오는군요? 근데 여기에는 또 세 갈래 돌길이 나온다고 하는데, 이 돌길의 의미도 있을까요?
◆ 송진욱 : 외대문에 들어서면 그 삼도가 이렇게 쫙 깔려져 있고, 그게 정전이랑 영녕전으로 이어지게 되는데요. 궁궐에 있는 근정전이라든지, 인정전에도 세 갈래 길이 있어요. 근데 그 의미랑은 전혀 다르고요. 여기는 돌아가신 분의 공간이기 때문에, 제례를 지낼 때 걷는 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이제 가운데가 실로, 신을 위한 길이고요.
◇ 박귀빈 : 가운데로 난 길이 신을 위한 길?
◆ 송진욱 : 예. 신을 위한 길이고요. 실로라고 하고 있고요. 그다음에 바라보고 있는 기준에서 오른쪽이 어로. 왕의 길. 제례를 하러 오신 왕이 걷는 길이고요. 그다음에 왼쪽이 세자.
◇ 박귀빈 : 세자가 걷는 길이에요?
◆ 송진욱 : 네. 세자가 걷는 길이라고 해서 3도로 구성이 되고 있습니다.
◇ 박귀빈 : 그렇군요. 외대문 들어가서 입구 종묘 입구를 설명하는 겁니다. 외대문 들어가서, 세 갈래 돌길의 의미를 짚어주셨습니다. 또 종묘를 걷다 보면 망묘루, 향대청, 재궁 이런 건물들이 나옵니다. 각각 어떤 역사와 이야기가 숨어 있는 곳들 인가요?
◆ 송진욱 : 세 건물의 공통점은 제례를 준비하는 공간이고요. 망묘루 같은 경우에는 이제 ‘종묘를 바라본다’라는 뜻이에요. 바라볼 망자 써서 그게 종묘 제례전에 종묘를 바라보면서 선왕과 종묘를 생각하자. 이런 뜻에서 이름이 붙여지게 된 거고요. 그런데 여기는 당시 조선시대 때도 그 관리소가 있어요. 지금도 저희 다 관리소가 있는데, 조선시대 때는 종묘서라고 불렸어요. 거기 관원들이 업무를 보는 곳이 이곳이고, 그다음에 제례를 같이 준비 하고 있고요.
◇ 박귀빈 : 거기가 망묘루?
◆ 송진욱 : 네 망묘루요. 그다음에 향대청은 제례에 쓰는 향. 그다음에 축문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사 지낼 때 몇 월, 며칠 누구께 고합니다. 뭐 이런 축문을 보관하고, 그다음에 폐백도 같이 보관을 하는 곳이고요. 그다음에 제례 전에 재관들이 이곳에서 잠깐 대기를 하는 곳으로 사용을 하였고요. 그다음에 재궁 같은 경우에는 왕이랑 세자가 제례를 준비하던 곳입니다. 이제 옷도 갈아입으시고, 그다음에 목욕청이 따로 있어요. 목욕재계 하시고 그런 공간으로 사용을 했던 곳이 이 제례를 준비하는 공간이었습니다.
◇ 박귀빈 : 종묘를 걷다 보면 만나실 수 있는 망묘루, 향대청 재궁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종묘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게 또 있잖아요? 종묘제례입니다. 아마 종묘를 안 가보신 분들도 종묘제례에 대해서는 이야기 들어보셨을 거고, TV나 영상을 통해서 장면도 아마 보셨을 가능성이 큰데요. 이건 뭡니까?
◆ 송진욱 : 정말 재미가 없다고.. 사실 저도 좀 재미가 없어요. 제례가 조금 재미가 없는데.
◇ 박귀빈 : 제례가 재미가 없어요?
◆ 송진욱 : 제례악도 재미가 없긴 한데. 어쨌든 이게 세계 인류 무형 문화유산입니다. 종묘제례랑 종묘제례악 두 개 다요. 종묘제례는 말 그대로 제사를 의미 하는 거고, 그다음에 종묘제례악은 제례를 할 때 왕들의 공덕을 칭송하기 위해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의식을 이제 종묘제례악인데, 이게 좀 아시는 분들을 좀 이렇게 들으시면 약간 추임새가 좀 “아~” 이렇게 들리시는 분들이 계신데, 그게 사실 가사예요.
◇ 박귀빈 : 가사예요?
◆ 송진욱 : 가사예요. 이게.
◇ 박귀빈 : 가사가 있었어요?
◆ 송진욱 : 네 가사가 있어요. 일단 뭐 “아, 에~” 뭐 이렇게만 들리시는 분들이 많이 계실 거예요. 근데 그게 사실 가사예요.
◇ 박귀빈 : 다 의미가 있는 말일 거 아니에요?
◆ 송진욱 : 네. 공덕을 칭송하기 위한.
◇ 박귀빈 : 아 왕의 선대왕이 어떤, 어떤 공덕이 있다를 쭉 읊는 거군요?
◆ 송진욱 : 네. 그러니까 이게 세종 때 만들어지게 된 건데, 왕조의 정통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조선 건국이랑, 그다음에 선대왕의 위엄을 기리기 위해서 창작한 거예요. 그래서 이게 이제 왕의 정통성을 나타내는 것과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그게 지금 600년의 역사가 있고, 현재까지도 잘 보존이 되었습니다.
◇ 박귀빈 : 그러니까 이런 건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예전부터 계속 해 왔던 거 아닙니까? 조선시대부터. 이것을 현재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우리가 정기적으로 볼 수 있는 거잖아요? 이거 자주 하지 않나요?
◆ 송진욱 : 자주는 아니고요. 1년에 두 번 공식행사..
◇ 박귀빈 : 1년에 두 번이면, 사실은 조선시대 어떤 행사를 1년에 우리가 두 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는 건 저는 굉장히 의미 있고, 되게 자주다 라고 생각을 해요. 사실은 분기별로 해도 좋을 것 같긴 한데.
◆ 송진욱 : 조선시대 때는 사계절에 한 번, 이렇게 하거나 명절에도 하고요. 그렇게 했었는데, 지금은 매년 5월 첫째 주 일요일이랑, 그다음에 11월 첫째 주 토요일.
◇ 박귀빈 : 날짜가 따로 정해져 있네요?
◆ 송진욱 : 네. 이렇게 딱 고정이 되어 있습니다.
◇ 박귀빈 : 의미가 있나요? 날짜는?
◆ 송진욱 : 큰 의미는 없습니다. 사실.
◇ 박귀빈 : 행사하기 좋은 날로 잡은 거예요? 예전에는 그 날짜도 다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 사계절에 한 번씩 하는 것. 그러면 일반 시민들이 종묘제례, 종묘대제 행사 관람할 수 있으려면 5월 첫째 주 일요일, 11월 첫째 주 토요일인데. 이거는 그냥 가서 보시면 되는 거예요?
◆ 송진욱 : 5월 행사 같은 경우에는 사전 예약을 좀 받고 있고요. 11월 행사 같은 경우에는 그냥 가셔가지고 보실 수는 있으세요.
◇ 박귀빈 : 그렇군요. 우리 큐레이터님이 특별히 종묘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난 이 공간이 참 좋더라, 혹은 나 이거는 꼭 소개하고 싶었다. 하는 것도 있으세요?
◆ 송진욱 : 아무래도 종묘의 핵심 공간이 정전이잖아요? 그래서 정전이 가장 아름답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요. 또 저 같은 경우에 일하러 종묘를 자주 가는데요. 종묘가 쉬는 날에 가는 경우도 좀 있어요. 그러면 저 혼자 종묘 정전에 있으면은 굉장히 좀.. 뭔가 약간 웅장하면서도, 어쩔 때 보면 약간 좀 무서운 기운도 좀.. 왕들이 이제..
◇ 박귀빈 : 압도당하는군요? 그 기운에.
◆ 송진욱 : 약간 그런 것도 좀 있고. 그래서 좀 정전이 아름답다고 생각을 하고. 특히 겨울에 눈 쌓인 정전이 진짜 예뻐요. 오히려 더 조용해요. 눈이 쌓여 있으면은. 그래서 그게 가장 저는 좀 관람 포인트라고 생각을 하고 있고요. 제가 좀 추천하는 그런 곳이고.
◇ 박귀빈 : 겨울에 꼭 가보시길 바랍니다. 정전은 꼭 보세요. 아까 101m짜리 어떤 압도되는 장면을 꼭 한번 느껴보셨으면 좋겠고요. 종묘가 시간제 관람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면서요? 관람 시간, 또 해설 프로그램 궁금하신 분들도 계실 거예요. 간단하게 정리 좀 해주시죠.
◆ 송진욱 : 네. 일단 저희 종묘는 평일에는 시간제 관람입니다. 그래서 해설사 동행하셔가지고 해설 들으시면서 종묘를 관람하셔야 되는데요. 한국어를 기준으로 좀 설명을 드리면, 매시 20분에. 9시 20분, 10시 20분해서 매시 20분에 입장하셔서 약 1시간 동안 투어하시면서 관람하실 수가 있고요. 그다음에 주말이나 공휴일 같은 경우에는 자유롭게 입장해서 관람이 가능하시고요. 이때도 해설은 저희가 다 해드리고 있는데, 이게 또 해설 시간이 조금 달라요. 그래서 이거는 자세한건 저희 궁능유적본부 홈페이지에 체크하셔가지고 관람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 박귀빈 : 요즘에 외국인도 많이 오실 것 같은데요?
◆ 송진욱 : 종묘는 그렇게 많이는 오지는 않은데요. 궁보다는 많이 오지는 않는데, 그래도 요즘 들어서 좀 이제 관람객 외국인들이 많이 오고 있습니다.
◇ 박귀빈 : 그러면 해설도 다양한 언어로 하시겠네요?
◆ 송진욱 : 영어, 일본어, 중국어 이렇게 해드리고 있습니다.
◇ 박귀빈 : 그렇습니다. 보이는 라디오를 여러분 계속 보고 계신 거 맞죠? 계속 우리가 종묘의 아름다운 장면들을 보내드리면서 우리 큐레이터님과 이야기를 했습니다. 끝으로 우리 국내외 관람객들이 종묘를 둘러보고 꼭 얻어갔으면 하는 어떤 느낌이나 가치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려요.
◆ 송진욱 : 아무래도 이렇게 종묘라고 하면 신주가 모셔져 있는 사당의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좀 재미없고, 딱딱하고, 엄숙한 공간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좀 많으실 텐데요. 그런 공간이 아니라 조선시대 역사를 함축적으로 볼 수가 있고, 유네스코에서도 인정한 그 곳이기 때문에 유형적 가치랑 무형적 가치가 같이 공존하면서 살아 숨 쉬는 곳이 종묘다 라는 것을 좀 느끼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 박귀빈 : 네. 지금까지 송진욱 궁능유적본부 전시 큐레이터와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 송진욱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