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휘 아나운서 (이하 최휘) : 요즘 극장가에는 ‘오디세이’ 흥행돌풍이 거셉니다. 스크린을 넘어 다양한 신문과 방송을 통해 그 내용과 해석이 현대적 시각으로 재조명되며, 그리스신화에 대한 관심도 뜨겁습니다. 오늘은 오디세이와 그리스신화 속 단어들의 어원을 찾아보며, 이야기를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겠습니다. 어원연구가 신동광 작가 나오셨습니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 신동광 작가 (이하 신동광) : 말 속에 답이 있다. 안녕하세요, 말록 홈즈 신동광입니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 최휘 : 작가님도 오디세이 보셨나요?
◇ 신동광 : 다음주 평일에 보려고 합니다. 큰 화면으로 보고 싶은데, 주말에는 표 구하기가 쉽지 않네요.
◆ 최휘 : 그래도 내용은 알고 계시죠?
◇ 신동광 : 네. 초등학교 때 중학생이었던 사촌누나가 미국 작가 토머스 불핀치가 저술한 ‘그리스 로마신화’를 읽어 봤습니다. 그 시절에 호메로스의 원전은 구하기도 어려웠고, 있었다고 해도, 어린이들이 읽기엔 많이 어려웠을 것 같아요.
◆ 최휘 : 저희 나이 대는 그리스로마신화를 만화책으로 접했던 것 같은데요. 어릴 때라 오디세이 부분은 무슨 내용인지 기억이 어렴풋하네요.
◇ 신동광 :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그 안에 오디세우스의 귀환기인 ‘오디세이아’와 오디세우스가 거대한 말 목상으로 트로이 성 안에 침투해 활약했던 ‘일라아스’도 주요 에피소드 중심으로 들어가 있었던 건 기억합니다.
◆ 최휘 : 내용을 알고 있으면 영화를 보는 재미가 좀 식지 않나요? 결말이 스포일링 된 셈이니까요?
◇ 신동광 : 알고 봐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며칠 전 IP TV로 1997년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 감독이 만든 97년작 오디세이를 봤는데, 30년 전 작품인데도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이야기 자체가 워낙 대단하니까요. 저는 여기서 좀더 재미있게 작품을 즐기는 방법을 하나 소개해 드립니다.
◆ 최휘 : 물론 어원이겠죠?
◇ 신동광 : 정답입니다. 결과를 말씀하셨지만, 오늘 이야기는 꽤 흥미진진할 거라 기대합니다. 영화 오디세이의 열풍으로 수많은 정보와 다채로운 해석이 쏟아져 나오지만, 정작 이 거대한 서사의 뿌리가 되는 제목들, 즉 서사시의 제목 자체나 주요 인물들의 이름 속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아는 분들은 드뭅니다.
◆ 최휘 : 아, 어떤 말씀인지 알 것 같습니다. 국내 영화 같은 경우는.. 올해 개봉한 ‘왕과 사는 남자’나 ‘경주기행’ 같은 경우엔 제목만으로도 큰 힌트를 얻은 것 같은데요.
◇ 신동광 : 맞습니다. 이제는 옛 작품으로 기억되는‘태극기 휘날리며’나 ‘반지의 제왕’,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어메리카’ 같은 작품들은, 제목만으로도 느낌을 예상하게 해주거든요.
◆ 최휘 : 그리스 신화를 예로 들어 이야기해 볼까요?
◇ 신동광 : 호메로스의 양대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단순히 신과 영웅들의 활약상을 기록한 모험담만은 아닙니다. 이 이름들 속에는 사건이 일어난 장소와 인물의 정체성, 그리고 그들이 걸어가야 할 운명의 이정표가 새겨져 있습니다. 지명과 신, 인간 영웅, 신성한 물건, 그리고 괴물들의 명칭을 찬찬히 파고들다 보면, 그들의 성품과 그들에게 찾아올 삶의 굴곡을 미리 예견해 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 최휘 : 저는 그리스신화가 너무 엄숙하지 않아서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도덕적으로 완벽하지 않고, 능력에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가끔은 신들의 욕망이나 질투심이 인간보다 더 심하기도 한데요. 그런 성격이나 운명도 이름 안에 내포돼 있다는 말씀이죠?
◇ 신동광 : 정확합니다. 그리스 신화는 우리가 서구 고전에서 흔히 기대하는 ‘권선징악’의 틀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이곳의 신들은 완벽함과 거리가 멀며, 인간의 영웅심 뒤에는 언제나 지독한 결함과 고통이 따라붙습니다. 그리스 신화가 제시하는 세계는 정해진 보상과 처벌의 무대가 아닙니다. 예측할 수 없는 운명의 수레바퀴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맞서고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가에 대한 고군분투의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 최휘 : 그러면 먼저 ‘오디세이아’의 이전 배경이 된 ‘일리아스’부터 알아볼까요?
◇ 신동광 : 좋습니다. 우리가 접하는 고전 서사의 명칭은 단순한 고유명사가 아니라, 서사 전체의 성격을 압축한 지도와 같습니다. 트로이 전쟁의 비극을 다룬 ‘일리아스(Iliad)’라는 제목은, 사건이 벌어진 공간입니다. 국가이자 도시의 이름인 트로이의 옛 이름이 바로 ‘일리온(Ilion)’입니다.
◆ 최휘 : 그러면 ‘일리온에서 일어나 일’을 뜻하나요?
◇ 신동광 : 네. ‘일리아스’는 ‘일리온에 관한 이야기’ 혹은 ‘트로이의 노래’라는 아주 직접적이고도 명확한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일라이스는 10년 동안 치열한 공성전이 벌어졌던 도시 일리온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 결과까지 담으면 ‘일리온의 파멸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최휘 : 저 어렸을 때는 일리아스를 오디세이 같은 사람 이름이라고 알고 있던 친구들도 있었는데, 트로이의 다른 이름인 일리온의 이야기였군요. 그러면 오디세이아는요?
◇ 신동광 : 반면, ‘오디세이아(Odysseia)’는 주인공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드러냅니다. ‘오디세우스’라는 주인공의 이름 뒤에 서사시를 뜻하는 접미사 ‘-eia’가 결합해 ‘오디세우스에 관한 이야기’를 의미합니다. 시간의 순서로 보면, 트로이라는 특정 공간에 고정되어 있던 시선이, 전쟁이 끝난 후 한 인간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바다 위를 이동합니다.
◆ 최휘 : 육지에서 바다로, 국가에서 개인으로 배경이 달라지는군요?
◇ 신동광 : 네. 도시의 이름을 딴 서사시가 집단적인 비극과 명예를 다룬다면, 한 인간의 이름을 딴 서사시는 개인의 수난과 지혜, 그리고 생존의 투쟁을 다룹니다. 이처럼 제목에서부터 두 서사시는 스토리가 나아갈 방향을 명확히 제시합니다.
◆ 최휘 : 따지고 보면 이 거대한 일리온 파멸기와 오디세우스의 귀환기의 원인은 신들의 사소한 시기와 질투인데요. 그로 인해 불행을 겪는 이들은 신이 아닌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 신동광 : 저도 그 포인트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고귀한 이들의 경솔한 판단이 평범한 보통사람들의 고통을 야기한다는 현실 풍자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스 신화가 가진 가장 독특하고 매력적인 점은, 신들이 완벽하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다른 지역 신화를 보면, 초월적 존재들이 절대적으로 바릅니다. 이와 달리 그리스 신화 속 올림포스 신들은, 불사의 몸과 위대한 능력을 가졌지만, 감정과 도덕성에 있어서는 지극히 인간적이며, 때로는 인간보다 더 유치하고 잔혹합니다.
◆ 최휘 : 맞습니다. ‘그리스 신들의 왕’이라는 제우스조차 육체적 욕망에 자주 흔들리죠.
◇ 신동광 : 네, 자녀가 참 많죠. 신들의 왕 제우스(Zeus)는 ‘빛’을 의미하는 인도유럽조어로 ‘Dyeus’에서 왔습니다. 여기서 의미가 확장되어, ‘빛나는 존재’이자 ‘천상의 통치자’를 상징하는데요. 하지만 그 ‘빛남’은 신성한 정의로만 발현되지 않습니다. 제우스는 자신의 욕망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질투와 기만을 서슴지 않으며, 신성한 질서를 수호하면서도 스스로 규칙을 깨뜨리는 모순된 모습을 보입니다.
◆ 최휘 : 제우스 외에도 그리스 신들은 시기, 분노, 오만에 자주 빠지는 것 같습니다.
◇ 신동광 : 그렇습니다. 이러한 신성하지 않은 감정에 사로잡혀 서로 다투고, 인간의 비극을 방관하거나 촉발합니다. 역사 속의 무능하거나 부패한 기득권과 많이 닮아 있죠. 아테네의 여신 아테나를 아시죠?
◆ 최휘 : 그럼요. 지혜의 여신이죠. 이름 뜻이 궁금하네요.
◇ 신동광 : 도시명 아테네에서 온 말이라고 하는데, 아쉽게도 아테네의 어원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아테나는 지혜와 전쟁의 여신이지만, 자신에게 도전한 아라크네를 잔혹하게 괴물로 바꾸어 버립니다.
◆ 최휘 : 전쟁의 여신이기도 해서 그런지 살벌한 면모가 있네요.
◇ 신동광 : 쌍둥이 남매인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도 마찬가지입니다.
◆ 최휘 : 각각 태양의 신과 사냥의 신이죠? 이미지가 좋은 신들로 알고 있는데요?
◇ 신동광 : 그렇죠. 태양과 광명, 의료, 음악, 시의 신으로 알려진 아폴론은 ‘파괴하다’라는 말에서 왔다는 유래설이 있는데,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아폴론의 누이인 아르테미스는 사냥, 다산, 순결, 달의 여신인데요. ‘도살자’나 ‘사냥’으로 어원을 해석하기도 하는데, 명확한 근거가 없습니다. 이 쌍둥이 남매는 잔혹한 일을 벌입니다. 1남 1녀가 자식의 다인 자신들의 어머니 ‘레토’에게, 테베의 왕비 니오베가 7남 7녀를 자랑하자, 분노한 레토가 남매를 시켜 니오베의 자식들을 모조리 화살로 학살했습니다.
◆ 최휘 :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보복이네요..
◇ 신동광 : 이 또한 현실 풍자일 수도 있습니다. 양심과 정의 없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아랫사람들을 겨냥한 건 아닐까요? 이러한 신들의 불완전성은 그리스 신화의 세계관을 규정짓는 핵심요소입니다. 신조차 도덕적으로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은, 세계 자체가 선의로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현실을 반영합니다. 인간은 완벽한 신의 구원을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라, 모순되고 변덕스러운 ‘신’, ‘자연’, ‘운명’ 같은 거대한 힘 사이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고독한 존재로 그려집니다.
◆ 최휘 : 완벽하지 않고 인간적인 모습의 신들이 그리스 신화의 재미이자 매력이기도 하죠. 이번에는 우리에게 친숙한 영웅과 괴물들의 이름을 알아볼까요?
◇ 신동광 :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과 괴물, 심지어 도구들의 이름에는, 그들의 성격과 다가올 운명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이 명칭들을 들여다보는 것은 신화 속 인물들의 삶을 추적하는 유용한 열쇠가 됩니다. 아킬레우스(Achilles)는 트로이 전쟁 최고의 영웅입니다. ‘백성의 고통을 지난 자’과 ‘백성에게 고통을 주는 자’라는 의미가 번갈아 읽히죠. 민간어원이라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스토리와 개연성은 있습니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분노와 고집으로 인해 동료들과 백성들에게 극심한 고통을 안겨주었고, 동시에 불사의 몸을 가졌음에도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육체적 절정기에 사망해야 하는 비극적 운명을 타고났습니다.
◆ 최휘 : 영날의 검 같은 인물이었군요. 오디세이의 주인공 오디세우스는요?
◇ 신동광 : 오디세우스(Odysseus)라는 이름에는 ‘증오를 받는 자’ 혹은 ‘분노하는 자’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불현듯 ‘밉둥이’란 말이 생각나네요. 마찬가지로 민간어원입니다만, 실제로 오디세우스는 전쟁에서 귀향하는 여정 내내 포세이돈을 비롯한 신들의 지독한 증오를 받으며 방랑했습니다. 동시에 고향에 돌아와 구혼자들에게 지독한 분노를 쏟아내며 피의 복수를 감행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그가 겪어야 했던 수난과 그가 가진 날카로운 본성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 최휘 : 오디세이아는 밉둥이의 귀향기였군요. 메두사와 세이렌도 궁금합니다.
◇ 신동광 : 그리스신화 속 괴물의 대명사 메두사(Medusa)는 ‘지배자’ 또는 ‘수호자’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메두사는 본래 아름다운 여인이었으나 신의 분노를 사 머리카락이 뱀으로 변하는 비극을 겪었죠. 그녀의 시선은 마주치는 모든 것을 돌로 만들어 버리며, 파멸적인 지배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메두사의 머리를 본뜬 도상이 실제 그리스의 일부 신전 수호 표상으로 부착됐다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영화 오디세이에도 나오는 세이렌(Seiren)은 ‘묶다’ 혹은 ‘사슬’에서 왔습니다. 세이렌은 아름다운 노래로 선원들을 홀려, 배를 좌초시킵니다. 그들의 목소리는 인간의 이성을 묶어버리고 파멸로 이끄는 사슬과 같아 보입니다.
◆ 최휘 : 모두 개연성이 있어 보이네요. 영화의 흥행 덕분에 재미있는 지식들을 들어볼 수있었는데요. 오디세우스 신드롬에 대해 더 해주실 말씀 있을까요?
◇ 신동광 : 영화 ‘오디세우스’의 성공은 단순히 고전 재해석에 대한 흥미 때문만은 아닙니다. 정답이 없으며 불확실성이 가득한 현대 사회에서, 완전하지 않은 신들과 지독한 수난을 겪는 영웅들의 이야기는 오히려 강한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 속에서 필연적인 ‘비극적 전쟁, 일리아드’를 치르고 있으며, 스스로의 자아와 고향을 찾아가는 ‘긴 방랑기, 오디세이아’를 겪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만나는 지명과 이름들처럼, 우리 각자에게도 저마다의 성품과 한계가 부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을 계기로 영화가 더 재미있어질 것 같습니다.
◆ 최휘 : 네, 영화 재미있게 보실 거라 믿습니다. 오늘 이야기 감사합니다.
◇ 신동광 : 감사합니다.
◆ 최휘 : 지금까지 어원연구가, 신동광 작가였습니다.